영민한 세 인생에 보내는 '시선'의 연대
“엄마, 짐 다 쌌어? 책도 가져가면 되겠다.” “안 그래도 그러려고.”
엄마가 집을 떠난다. 짧으면 보름, 길면 한 달 정도. 여행이라면 좋겠지만 목적지는 병원이다. 척추 협착으로 신경이 눌려 골반과 사타구니, 다리가 터질 것 같은 증상으로 걸음을 잘 못 걷게 된 지 반년이 흘러 결국 수술대에 오른다.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십여 년 전 엄마는 홀로 통증을 참고 견디다, 홀로 판단해서, 홀로 수술을 받았다. 조금 전 수술실로 들어가는 엄마의 손이라도 다정히 잡으려 했는데 그럴 틈도 없이 엄마는 아빠에게 병실에 올라가서 쉬고 있으라 말하며 세상 의연하게 시야에서 사라졌다. “하여튼 변 아무개씨 씩씩한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씩씩하다, 강하다는 말의 반대편에는 자신의 감정에 무딘, 어쩌면 아예 마음조차 모르는 ‘마음 불감증’을 앓는 존재가 있다.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화가 난다고 소리 한 번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도움조차 요청할 줄 모르는 반쯤 죽은 상태의 갈등 회피 주의자가 살고 있다.
엄마는 일상을 살면서도 그랬다. 감정을 표현하거나, 마음을 전하거나, 원하는 것을 취하거나, 좋아하는 것을 명확히 하는 일이 없었다. 그저 없는 살림에 딸아이 셋과 아들인지 상전인지 모를 배우자를 억척스럽게 키워내는 것이 전부였다. 힘에 부치는 날이면 우리에게 짜증과 화를 내기는 했지만, 정작 불합리하고 공격적인 상황에서 자신을 지켜내는 모습을 나는 본 기억이 없다. 그러는 가운데 엄마 자신에게 상처가 되는 일이 없었겠냐마는 상처로 자신을 훼손하기보다 잊었다. 차갑게 잊었다. 그리고 또 하루를 살아갔다.
2021년 어느 여름날, 부모님 집에서 엄마랑 단둘이 저녁을 먹던 날이었다.
나는 밥상에 막걸리를 올렸다. “엄마가 할머니를 닮아서 몸에서 술은 좀 받는 체질인데, 그 좋은 거 물려받아놓고 평생 술도 안 마시고 산 거야. 맛 좀 보시라니까.”
막걸리 몇 잔에 엄마가 아무도 모를 이야기를 했다. 정말, 처음으로 듣는 이야기였다.
엄마는 초등학교 3, 4학년 나이에 광화문에 있는 부잣집 사모님 집에서 먹고 자며 집안일을 돕는, 그러니까 요즘으로 치면 상주하는 가사 도우미 격으로 들어가서 산 적이 있다고 했다. 사모님이 공부도 시켜줄 수 있다고 했단다. 그런데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할아버지가 엄마를 데려갔다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식을 떼어 놓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을 할아버지였다. 아버지 등에 업혀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 기억난다고 했다.
그런데 엄마는 이따금 ‘만약’을 떠올린단다. “만약 그때.. 그 집에서 계속 살면서 공부했더라면. 최소 중학교까지는 혹은 그 이상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더라면.”
옛 시대 배경의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우리 엄마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꽤 놀랐다. 이모를 통해서 들었던 엄마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할아버지가 한 때 종말론을 주장하는 종교를 믿었던 탓에 어느 특정 시기에 자식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는 사실, 거기까지였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항상 자식들에게 미안해하셨고 돌아가시는 순간에는 유독 둘째 딸인 엄마에게 속삭였다고 했다. “너한테 특히 미안하다….”
이는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된다. 하나는 하필 그 시기에 운 없이 걸려든 것이 둘째 딸 너였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시기와 무관하게, 멋 내는 것에 관심 많고 연애도 할 줄 아는 큰딸과는 다른 캐릭터의 둘째 딸은 적절한 교육을 받았다면 정말 극과 극으로 삶이 바뀌었을지 모를 만큼 타고난 영민함이 반짝이던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이모는 이따금 말했다. “너희 엄마, 얼마나 예뻤는지 몰라”. 어린 시절 그리고 젊은 시절 엄마의 눈빛은 그녀의 영민함이 그대로 반사되어 사슴 눈처럼 빛났다고 증언했다. 실제로 내가 본 사진 속 엄마는 나의 엄마가 아니었다.
내가 보는 엄마는 감각할 줄 아는 사람, 배워 익힌 지식은 적을지 몰라도 냉정함을 바탕으로 직관과 지혜가 발현되는 사람, 상황을 복합적으로 보는 시각을 지닌 사람이다. 이런 엄마는 중학교는커녕 초등학교 고학년도 아닌 3학년쯤에서 흔히 말하는 가방 줄이 끊겼다. 이후 가족과 살면서 공장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번 돈은 집안 살림이나 동생들 학비에 보탰을 것이다. 엄마는 배움이 짧다는 사실이 부끄럽고 자존심이 상해 말을 아껴왔다고 했다. 이런 사실을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이상 사람들은 엄마의 외모에서 풍기는 분위기, 태도 등에서 최소 그보다는 한참 더 배운 사람이라고 자신들 스스로 알아서 오인했다. 엄마는 굳이 열등한 부분을 드러낼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반면 아래 여동생은 조금 더 공부했고, 그 아래 막내는 소위 대학물까지 먹었다. 유일하게 대학 공부를 마친 막내 이모는 손에서 책을 떼어놓질 않는 다독가이자 달변가이다. 이모 또한 변 아무개 집안의 여자답게 똑똑하고 예리하다. 게다가 엄마에게는 없는 듯한(아니 없는) 감성과 공감의 영역도 발달되어 있다.
이런 이모는 어느 날, 엄마와 바로 위 언니(둘째 이모)에게 제안한다.
영민한 세 인생은 독서 모임을 하기로 했다. 나이 들고 자식 얘기 같은 반복적이고 진부한 이야기나 나누면서 의무감에 만나는 관계가 아니라, 그 이상의 차원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인문학적 소양을 가진 한 사람의 철학이 담긴 이유에서였다. 둘째 이모는 막내 이모를 통해 진작에 독서력을 제법 키웠다. 토지와 레미제라블 전권을 완독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리스펙을 외쳤더랬다.
그에 비해 칠십이 넘은 엄마는 앞서 언급한 그녀의 인생사에서 짐작할 수 있듯 거의 평생을 책과는 가깝지 못했다. 어느 정도 삶의 여유가 주어졌을 때는 이미 눈이 다 망가져 버린 후였다. 새로운 무언가를 원하고 실행하기에는 눈, 귀, 이, 목, 허리를 다 잃은 노인의 몸이 되었다.
이런 사정이 있는 엄마가 놀랍게도 모임을 이끄는 리더이자 선생님인 막내 이모를 따라 책을 읽으며 한 달에 한 번 있는 만남을 즐거워한다. 이모는 두 언니를 고려해 매달 책을 선정한다.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고 그녀들의 아버지를 떠올리며 함께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고(나중에 엄마 책 빌려서 나도 읽었다. 그리고 그녀들의 시선에서 추억하는 나의 외할아버지를 더 진하게 떠올렸다.) 기초 지식이 부족한 두 사람을 위해 어린이 대상의 역사책을 읽기도 했다. 그 외 몇몇 고전들, 요즘 젊은 작가들의 책, 나아가 페미니즘과 관련된 책까지. 최근에는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를 연이어 읽었다.
처음에는 한 문장 한 문장.. 별 다른 이해 없이 읽어내리는 것조차도 벅차했던 엄마가 한 걸음 한 걸음씩 발을 떼는 아기처럼 시작해 어느새 10권 이상의 책을 완독했다. “어려워 어렵다…. 어려워. 눈 때문에 속도도 느리고….” 맞춤 설명을 끝내주게 잘하는 모임 리더에 의지해 배움을 쌓아가고 있다. 칠십이 넘은 엄마의 뇌리에 깊이 저장되는 내용이 많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중요할까. 책을 읽는다는 것. 텍스트를 통해서 세상과 처음 접속하는 엄마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살았다는 걸 참.. 많이 느껴.”
관찰자로서의 나의 시선이 가 닿는 부분은, 지적 수준이 현저히 다를 수밖에 없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 만들어 나가는 하모니이다. 사실상 엄마를 위한, 하나의 자궁을 공유한 세 인생이 나누는 사랑이다. 고단한 한 인생을 배려하는 두 인생의 배려이다.
안경을 쓰고 책을 읽는 엄마의 모습에, 병원에 입원해 있는 시간 동안 읽을 책을 자연스럽게 챙기는 엄마를 바라보는 나는 안도한다. 그리고 감사한다.
내년에는 엄마가 잘 회복해서 책과 여행을 잇는 세 인생만을 위한 길을 함께 떠나보면 어떨까 상상해 본다.
시선의 연대에서 동행의 연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