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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ossenzersdorf Aug 21. 2017

13. 바르셀로나

가우디의 도시

나는 가우디를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그의 건축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의 건축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건축에 대한 그의 관점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장식적 요소가 많은 건축을 좋아하지 않는다. 또한 장식적 요소를 좋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특히 가우디의 장식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가우디가 조각한 동쪽의 파사드를 더 좋아하지만, 나는 수비라츠가 조각한 서쪽의 파사드를 더 좋아한다. 이래저래 가우디와는 정말 안 맞는 모양이다. 바르셀로나가 가우디의 도시라는 점을 고려하면 여행이 어땠을지는 대충 상상할 수 있을 듯하다.


파리에서 바르셀로나로 갈 때, 처음엔 항공편을 이용할까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유레일 패스가 아까워 결국 그냥 기차를 타기로 했다. 스페인 철도는 프랑스 철도와 궤간이 달라 특수시설을 통해야만 같은 열차로 움직일 수 있다고 한다. 이 시설이 신기할 것 같아 관심을 가지고 기차에 탔다. 


예전에 파리-런던 구간의 기차를 탄 적이 있었다. 언제쯤 기차가 지하로 내려갔다가 바다를 지나 다시 올라올지 궁금해하면서 창 밖을 내다봤다. 그러나 프랑스의 농촌 풍경만 주구장창 보다가 지겨워졌고 결국 잠이 들어 중요한 순간은 못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인간은 늘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이번에도 정작 그 구간이 오기 전 잠들고 말았다. 바르셀로나에선 일어난 게 다행이다.

우리는 첫 날 파에야를 먹으러 La Fonda로 갔다. 한국인들에게 잘 알려진 곳이다. 우리가 가고 난 뒤에 '셰프끼리'라는 프로그램에도 나왔다. 프로그램에선 셰프들이 악평을 쏟아냈던 곳이다. 하지만 그 때는, 사실 지금도 그렇지만, 빠에야라는 음식이 어떤 음식인지에 대한 생각이 딱히 없었으니 맛있는지를 따지기는 참 어려웠다.

빠에야는 마드리드에서도 먹었다. 그래서 두 곳을 비교분석하는 것은 다음 편으로 미루겠다. 다만 이 집이 좋았던 건 'no salt'라고 말하면 비교적 짜지 않게 해준다는 점이었다. 사실 스페인 음식은 매우 매우 짜다. 한국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건 아마 원하면 짜지 않게 해주는 것이 하나의 이유가 됐을 것이다.


다음 날은 가우디로 시작해서 가우디로 끝나는 날이었다. 오전과 오후에는 가우디 투어를 하고, 저녁에는 야경투어에 갔다. 전부 소개하면 좋겠지만, 큰 의미가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좋은 곳들이야 다른 블로그나 글에서 신나게 칭찬했을테니 나는 불만이 있었던 것들만 짧게 언급하고 넘어가고 싶다.

예전 동대문야구장 자리에 지어진 DDP라는 건물이 있다. 자하 하디드라는 유명 건축가의 작품인데 건물만 보면 아름다워 보이기도 하지만, 문제는 이 건물이 허허벌판에 홀로 있는 건물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사실 DDP는 꽤나 주변 환경과 안 어울려서 구설에 오르기도 했으며, 본인도 높은 점수를 주고 싶진 않다. 카사 바트요도 마찬가지인데 구엘 공원처럼 주변이 온통 가우디 세상이면 모를까, 혼자 저런 모습을 하고 있는 건물은 참 애처로워 보이기도 하다. 내부에 들어가진 않았다. 돈도 많이 내야 하면서, 줄도 오래 서야 하니까. 차라리 그 시간에 밥을.


야경 투어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영화 <향수>의 배경이 됐던 산 필립네리 광장이었다. 물론 그 광장 뿐만 아니라 그 주변의 좁은 골목길이 주는 음산함이 좋았다. 음산함이 좋은 감정은 아닐지 몰라도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는 게 재밌는 일이고, 그런 관점에서 그 음산함은 평소에 경험할 수 없었던 강렬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좋았다. 이 야경투어는 아그바르 타워에서 끝났다. 아그바르 타워의 외형은 참 거시기하다.


다음 날은 시장도 가고, 바르셀로네타 해변도 가고, 몬주익 성도 갔다. 그리고 멸망했다. 몬주익 성을 둘러보는 동안 해는 져버렸고, 주위는 어두컴컴해졌고, 도무지 길을 찾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일단 성은 언덕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니 내려가는 게 정답이었고, 아래 스포츠 센터가 있다는 둥의 정보들이 있었지만 사실 어디로 가야하는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래도 내려가는 길에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황영조 선수의 숨결을 느낄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는 점은 좋았다.

그래도 어두운 가운데 계속 걸었더니 에스컬레이터도 나오고 표지판도 나왔다. 길이 길고 사람들이 안 보여서 막막했을 뿐이지 아예 길을 잘못 든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떻게든 음악분수를 찾았으니 다행이다. 음악분수는 바르셀로나에서 경험한 것들 중 가장 인상깊은 것이었다. 그냥 시원하고 신기한 게 아니라 음악과 잘 어울리고 미적으로도 세련되어 보였다.

바르셀로나를 좋아하지 않는 건 사실 축구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원래 첼시 팬인데, 첼시 팬으로서 악연이 많았던 바르셀로나를 좋아하기는 참 힘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기억이 도시 자체에 대한 선호로 이어진 측면도 있다. 이성적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좋아하고 싫어하는 건 내 마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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