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오피스텔 돌려차기 사건에 이어 의왕 아파트 엘리베이터 성폭행 미수남 사건까지 일어난 현 세태에 머리가 어질어질할 지경이야. 그 사건은 내 존재의 무력함을 느끼게 했어.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이룬 성취와는 상관없이 나는 무력한 아기 같은 존재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어.
여자인 나는 평생 내 안전을 위해 혼자서 밤늦게 다니지 말고, 으슥한 골목길에 가지 않고, 모르는 남성과 단 둘이 밀폐된 공간에 있거나 엘리베이터 타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왔어.
물론 매번 지킬 수 있는 건 아니야. 수리 기사님들이 집안에 들어올 때는 어쩔 수 없이 낯선 남성과 밀폐된 공간에 있어야 하고, 아파트 주민으로 추정되는 평범한 차림의 남자들과 배달 기사들과는 엘리베이터에 같이 타긴 하니까.
그런데, 그런 원칙을 철저히 지킨다 한들 범죄의 희생자가 되지 않을 도리가 없다는 걸 이번 엘리베이터 성폭행 미수남 사건 때문에 확실히 알게 됐어.
어느 평범한 날, 훤한 대낮에 쓰레기를 버리러 가려고 엘리베이터를 탔다가 재수 없이 한 층 아래서 기다리고 있던 성폭행범을 만날 가능성이 있다는 건 생각해 보지도 않았어. 그런데 이젠 엘리베이터에 탈 때마다 그런 위험을 염두해 둬야 하나 봐.
어떤 예방책이 있을까?
늘 보디가드를 데리고 다닐까? 사나운 개를 데리고 다닐까? 누가 탈 때마다 비상벨에 손가락을 대고 있을까? 아니면, 아예 집 밖으로 나가지 말까? 엘리베이터가 없는 주택으로 이사해? 한 집에 한 대의 엘리베이터만 다니는 엄청나게 비싼 아파트에 살까?(이번 생에 가능?)
사실 어떤 예방책도 소용이 없을 거야.
가장 확실한 예방책은 어떤 남자도 여자를 성폭행하거나 죽이지 않는 거야.
물론 여자도 남자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어. 성희롱이나 성폭행을 하거나 남편을 몇 명이나 죽여버리거나, 걷지도 못하는 갓난아기를 폭행하고 살해하지.
뉴스가 다루는 비중은 여자 범죄자 쪽이 더 크니까, 이 세상의 악은 여자 반, 남자 반이 저지른다고 착각하기 쉬워.
그럼 이쯤에서 여자에게 죽는 남자와 남자에게 죽는 여자의 수를 비교해 볼까?
아니, 그만두자. 비교해 볼 가치가 있나?
하루가 멀다 하고 남편, 전 남편, 남친, 전 남친, 직장 동료, 전 직장 동료, 배달 기사, 낯선 남자에게 폭행당하거나 죽는 여자들이 뉴스를 장식해.
여자가 남자에게 매일 죽어가는 세상에선 그게 너무도 평범한 일이라 우리는 어쩌면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한 건지도 몰라.
그런 뉴스를 보고 내 안위를 걱정하면 누군가는 그러니까 너를 지켜줄 든든한 남친이나 남편이 있어야 한다고 하겠지.
글쎄, 그 남친이나 남편과 24시간 붙어 다니지 않는 이상 그게 소용이 있을까?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데, 혼자 있을 때를 노리는 범재자에게 안 당할 재간이 있을까?
그러니까, 여자인 내가 지금까지 살아있는 건 정말 정말 심각하게 운이 좋아서야.
(성희롱, 성추행은 별개로 치자. 적어도 목숨을 위협하진 않았으니까 그냥 넘어갈게.)
대한민국이 유달리 치안이 좋아서가 아니고, 그냥 내가 운이 좋아서 그런 범죄자들을 만나지 않았어.
하지만 미래는 누가 알까?
위험한 곳만, 밤늦은 시간만 피하면 된다는 공식은 깨졌어.
안전하다고 믿었던 내 집에서, 우리 아파트에서, 우리 동네에서, 그런 무자비한 폭행을, 개죽음을 당하지 않는다고 누가 확신할 수 있을까?
엘리베이터에서 성폭행범을 만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뭐 어쩔 수가 있겠어? 내가 아무리 체력을 키우고 호신술을 배운다 한들, 죽이자고 달려드는 성인 남성을 이길 순 없을 거야.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그냥 죽는 거지, 뭐. 재수 없게.
그래, 그냥 재수 없게 죽는 거야.
애초에 재수 없게 여자로 태어났으니까.
아니, 이 말은 좀 심했다.
불행하게 여자로 태어났으니까, 로 정정할게.
아니, 이 말도 진실은 아니지.
결함, 그래, 결함이야.
여자로 태어난다는 건 심각한 결함을 지니고 태어나는 거야.
여자란 살아남기에 불리함이 기본 탑재된 상태인데,
그렇게 태어난 건 어쩔 도리가 없잖아.
치마를 입고 화장을 하고 험한 세상으로부터 널 지켜줄 왕자님을 만나.
혹시 그 왕자님이 널 때리거나 심지어 죽인다 해도 너무 슬퍼하지 마.
그게 네 운명이니까.
물론 지금은 여자도 여자를 조심해야 하는 세상이야. 과외 앱으로 알게 된 낯선 사람은 아무리 같은 여자라도 집안으로 들여선 안 돼. 나도 한때 과외 앱으로 만난 학생을 오랫동안 내 집에서 가르쳤어. 그런데 그게 내 목숨을 위협하는 행위가 될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면 정말 참담한 기분이야.
남자와 여자 둘 다에게 당하는 건 결국 약한 여자 쪽이야. 이보다 더한 세상의 을이 있을까?
존 레넌의 노래 중에 'Woman is the nigger of the world'라는 노래가 있어. 여자는 세상의 노예다. 노예들의 노예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지. 그런 세상은 이미 지나지 않았느냐고? 지금은 남녀평등을 넘어 남자가 더 차별받는 세상 아니냐고?
글쎄, 어느 주인이 길거리에서 개죽음을 당하지?
내가 알기론, 노예 밖에 없는데.
<여자는 세상의 노예다> by 존 레넌, 오노 요코
(* 직접 해석한 가사입니다.)
여자는 세상의 노예다
틀림없어, 생각을 해 봐
여자는 세상의 노예다
생각하고, 뭔가 행동을 취하라고
우리는 여자가 화장을 하고 춤을 추게 만들어
여자가 고분고분하지 않으면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여자가 현실적이면, 남자 흉내를 낸다고 비난해
우리는 여자를 무시하면서 우리보다 위에 있는 척 해
여자는 세상의 노예다, 틀림없이
내 말을 못 믿겠으면 네 여자를 봐
여자는 노예들의 노예다
세상에 힘껏 소리쳐 봐
우리는 여자에게 아이를 낳고 기르게 하지
그리곤 여자가 살찌고 늙으면 그녀를 떠나는 거야
우리는 여자가 있을 곳은 집이라고 말하면서
너무 세상물정을 모른다고 불평하지
여자는 세상의 노예다, 틀림없이
내 말을 못 믿겠으면 네 여자를 봐
여자는 노예들의 노예다
그렇다니까
우리는 TV에서 매일 여자를 모욕하면서
왜 여자는 베짱이나 자신감이 없는지 궁금해하지
여자가 어릴 땐 자유의지를 꺾어버리고
너무 똑똑해지지 말라고 하면서도 멍청하면 업신여기지
여자는 세상의 노예야, 틀림없이
내 말을 못 믿겠으면 네 여자를 봐
여자는 세상의 노예다
그렇다니까, 내 말을 믿는다면, 세상을 향해 소리쳐
우리는 여자가 화장을 하고 춤을 추게 만들어
우리는 여자가 화장을 하고 춤을 추게 만들어
우리는 여자가 화장을 하고 춤을 추게 만들어
우리는 여자가 화장을 하고 춤을 추게 만들어
우리는 여자가 화장을 하고 춤을 추게 만들어
우리는 여자가 화장을 하고 춤을 추게 만들어
<Woman is the nigger of the world>
Woman is the nigger of the world
Yes she is, think about it
Woman is the nigger of the world
Think about it, do something about it
We make her paint her face and dance
If she won't be aslave, we say that she don't love us
If she's real, we say she's trying to be a man
While putting her down we pretend that she is above us
Woman is the nigger of the world, yes she is
If you don't believe me take a look to the one you're with
Woman is the slave to the slaves
Ah yeah, better scream about it
We make her bear and raise our children
And then we leave her flat for being a fat old mother hen
We tell her home is the only place she should be
Then we complain that she's too unworldly to be our friend
Woman is the nigger of the world, yes she is
If you don't believe me take a look to the one you're with
Oh woman is the slave to the slaves
Yeah, alright
We insult her everyday on TV
And wonder why she has no guts or confidence
When she's young we kill her will to be free
While telling her not to be so smart we put her down for being so dumb
Woman is the nigger of the world, yes she is
If you don't believe me take a look to the one you're with
Woman is the slave to the slaves
Yes she is, if you believe me, you better scream about it
We make her paint her face and dance
We make her paint her face and dance
We make her paint her face and dance
We make her paint her face and dance
We make her paint her face and dance
We make her paint her face and da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