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CLASS 연재글입니다.
“아빠, 나 오늘 사직서 내려고.”
“딸, 마음 가는 대로 해. 네 인생이잖아.”
난 아빠와 퍽 친하다. 친하다는 단어로는 모두 담을 수 없는 끈끈한 우정 같은 것이 섞여 있다. 불구덩이 속으로 장렬히 뛰어드는 것을 웃으며 지켜봐 줄 사람이랄까? 힘든 과정이 있을 것 뻔히 알면서도 ‘죽을 정돈 아니잖아? 스스로 겪어봐야 알지’라며 팔짱을 끼고 멀리서 불구경하듯 구경해줄, (그런 쿨한) 관계이다.
똥인지 된장인지 직접 찍어 먹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이상한 성격을 가진 나는 인생이란 굴곡진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구르는 걸 즐기며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고민은 개인의 것이라 짊어진 문제의 아픔과 무거움을 당사자가 아닌 이상 정확히 진단하지 못한다.
결국, ‘이래라저래라’ 두는 훈수는 피곤함과 짜증을 유발하는 소음이 될 뿐이다. 그러니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마음 가는 대로 해’ 정도로 이야기하는 아빠의 적당히 차가운 관심이 편하다.
자연스레 아빠 앞에서는 말이 많아진다. 무아지경으로 춤을 추는 조르바처럼 입 밖으로 터져 나오는 언어는 뇌를 거치지 않고, 거침없이 ‘다다다’ 쏟아져 나온다. 아빠도 내가 편한지 온갖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아빠와 40일간 인도 여행 후
처음부터 우리가 친했던 건 아니다. 학창 시절, 노력의 절반도 보상하지 않는 수학 시험 점수로 속상해하고 있을 때였다. ‘공부한 것 맞아?’ 무심히 툭 내뱉은 아빠의 말에 삐쳐서 한동안 이야기를 하지 않은 적도 있다. 서먹한 아빠와 딸의 관계는 ‘40일간의 혹독한 인도 여행’을 함께 겪으며 조금씩 나아졌다.
배낭여행지의 최고난도에 속하는 인도를 첫 장소로 선택한 아빠는 첫날부터 잽, 잽, 훅, 어퍼컷을 맞고 뻗어버렸다. 거의 울 정도였는데, 엄마가 배낭에 넣어준 팩 소주로 간신히 마음을 진정하고 허공에 ‘여보, 살려줘’를 읊조리다 잠이 들었다. 혼자서도 배낭여행을 곧잘 다녔던 나는 여행 도중 겪을 수 있는 당황스러운 사건에 견딜 수 있는 굳은살이 단단하게 버텨줘서인지, 인도인들의 작은 사기극이 꽤 재미있었는데 말이다.
딸에게 완벽해야 했던 한 남자와, 아빠의 눈에 어린아이였던 나의 역할이, 여행을 하면서 조금씩 바뀌어갔다. 다소 허술한(?) 남자와, 의외로(?) 믿음직스러운 여자로 말이다. 인도 신이 선물한 ‘아빠와 딸의 관계 회복 프로그램’을 마칠 즈음엔 우리는 짊어져야 한다고 믿었던 무거운 역할에서 자유로워졌다. 서서히 관계의 시소가 균형을 잡게 되자, 우리는 비로소 서로를 제대로 바라보게 되었다.
나를 평가하지 않는 사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일 수 있는 사람, 그리하여 말도 안 되는 계획을 신나게 떠벌릴 수 있는 사람이 인생에 존재한다는 것은 축복받은 일이다. 삶의 길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사람에게, 특히 나처럼 겁보 개척자에게는 말이다. ‘하고 싶은 대로 살아’를 기대하며 오늘도 난 아빠 앞에서 한껏 허풍을 충전한 수다를 발사 중이다. 그러다 예상 밖의 무자비한 대답을 듣고 말았다. (가끔, 의식의 흐름대로 이야기하는 ‘대화의 기술 없는 대화’의 부작용으로 상대의 허를 찌르는 공격이 나갈 때가 있다.)
“아빠, 내 인생 어때 보여?”
“멋대로 사니까 멋지지.”
“나 같은 사람 데리고 와서 결혼한다고 하면 뭐라고 할 거야?”
“난 반대다.”
“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인생인데 뭘 믿고 딸을 맡겨?”
“흥, 앞으로 불안한 삶을 즐기는 사람의 시대가 올 텐데?!”
아빠의 무안한 눈동자와 딸의 당황한 눈동자가 마주쳤다. 둘 다 앞니를 멋쩍게 드러내며 입술을 씰룩거리다가 크게 소리를 내어 웃었다. 대화는 스리슬쩍 안드로메다로 넘어간다. 꿈과 희망과 모험을 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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