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스페셜 미드나잇 2부
나 혼자서 무지개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조금 전 빨간 대문집에서 벌어진 일을 떠올리자, 어이가 없을 따름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무지개도 언제 피었냐는 듯이 사라졌고 해는 산등성이 뒤로 넘어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잠시 다시 빨간 대문집으로 다시 돌아가볼까 망설이다가, 결국 발길을 돌려 신문보급소로 향했다.
내가 하나슈퍼를 떠나기 전까지, 버스에 내려 슈퍼 안으로 들어갔던 단발머리녀는 끝내 슈퍼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출입문 너머로 슈퍼 안을 들여다봤지만, 그녀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 단발머리녀는 지난번처럼, 이번에도 내 눈앞 잠깐 모습을 보였다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집에 돌아올 때부터 복싱체육관 청소를 마칠 때까지, 온통 머릿속엔 빨간 대문집 생각뿐이었다.
도대체 누가, 왜 신문을 던진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밤늦게 청소를 끝내고 옥상으로 올라왔다.
평상에 걸터앉아 숨을 골랐다.
검푸른 밤하늘엔 달빛 하나 없이, 구름 사이로 푸른 별빛이 총총히 박혀 있었다.
그중 한 점의 별빛이 유난히 밝게 반짝였다.
문득 엉뚱한 생각이 스쳤다.
정말 이장 아저씨 말대로, 아버지를 하늘에서 내려온 빛줄기가 데려간 것이라면?
아버지가 날 데리러 그 빛줄기를 내려보내지 않을까?
그런 엉뚱한 생각에 스스로 웃음이 났다.
그건 영화 속 이야기일 뿐이었다.
현실에서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사실 정황상 그게 사실일리도 없다.
팔베개를 한 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다가, 어느새 생각이 흐려졌다.
그 순간, 하늘이 갈라지듯 찢어졌다.
금이 간 틈새에서 새하얀 빛이 새어 나왔다.
구름 속이 녹아내리듯 천천히 벌어지더니, 곧 원형의 기둥 형태를 갖춰 아래로 천천히 뻗어 내려왔다.
마치 방아쇠를 당긴 듯, 매우 빠른 속도로 곧장 나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내가 눈을 감을 틈도 없이 내 몸이 그 빛 속에 휩싸였다.
바닥의 감촉이 사라졌고 보이지 않는 손이 나를 잡아끌어 올리는 듯했다.
나는 허공에 떠 있었다.
그리고 쏜살같이 하늘을 향해 치솟던 순간, 빛줄기가 갑자기 사라졌다.
완전한 암전 상태였다.
갑작스럽게 브레이크가 걸린 듯 내 몸이 공중에서 턱 하니 멈췄다.
위장이 붕 뜨는 느낌이 들었다.
어둠 속에 매달린 채 몇 초쯤 있었을까.
곧 몸이 빠른 속도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숨이 막혔다.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목이 굳어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끝없는 낙하였다.
이제 죽는구나, 하는 순간.
전원 스위치가 켜진 듯 눈앞이 환하게 터졌다.
빛줄기가 다시 나타났고, 그 안에서 내 몸이 공중에 멈춰 섰다.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천천히 눈을 떴다.
주변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불이 켜져 있는 옥탑방이 보였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런데 내 몸은 평상 위에서 십 센티쯤 떠 있었다.
'쿵-'
순간, 평상 위로 몸이 떨어지며, 충격이 퍼졌다.
숨이 턱 막혔고, 나는 대자로 누운 채 헐떡이며 숨을 골랐다.
그때. 하늘 높은 곳에서부터 뭔가가 떨어지고 있었다.
작은 검은 점 하나가 빠르게 다가왔다.
곧 그것은 사람의 형체로 변했다.
두 팔과 두 다리를 벌린 채, 대자 모양으로 낙하하고 있었다.
가만히 있으면 나를 그대로 덮칠 것 같았다.
몸을 피하려 했지만, 손끝 하나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곧 그 형체가 나를 덮치려는 찰나, 두 눈을 질끈 감고 비명을 질렀다.
“악-”
아무런 충돌도 없었고, 몸 위로 어떤 감촉도 닿지 않았다.
조심스레 눈을 떴다.
한 남자였다.
손을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나를 마주한 채 공중에 떠 있었다.
얼굴은 희뿌연 안개에 가려져 있어 누군지는 알 수 없었다.
그 사람 형체가 나와 간격을 좁히며 천천히 내려왔다.
거의 코앞까지 다가왔을 때, 안개 너머로 눈이 번뜩였다.
그 시선이 내 눈과 마주쳤다.
텅 빈 눈동자였다.
등골이 서늘하게 얼어붙었다.
그리고 숨이 막혔다.
나는 온몸의 힘을 짜내듯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아침이었다.
햇살이 창문너머로 쏟아지고 있었다.
목이 바싹 말라 있었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휴거가 불발된 지 3일째, 진수는 여전히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아침 조회 시간, 담임이 진수가 다음 주 초에 등교하리란 소식을 전했다.
그날 밤, 신도 가족들이 교회 안으로 들이닥쳤을 때 나는 진수가 출입문 쪽으로 걸어가는 걸 봤다.
진수의 이름을 크게 불렀지만, 진수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고개를 떨군채 교회 밖으로 나갔다.
이미 방송국 카메라와 기자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와 소란스러웠다. 나는 뒤엉켜 있는 사람들을 헤치며 가까스로 교회를 빠져나왔지만 진수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난 그저 진수가 무사히 집에 들어갔기를 바랄 뿐이었다.
마지막 집 일이 계속 마음에 걸려, 수업 시간 내내 도통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4교시 동안 듣는 둥 마는 둥 흘려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었다.
라디오를 틀어놓은 채 잠시 누워 있다가, 오후 네 시쯤 배달을 시작했다.
오늘은 수금 마지막 날이었다.
예순다섯 번째 집에선 이번에도 이하나가 아닌, 배가 불룩나온 중년의 아저씨가 나를 맞이했다.
이제 남은 집은 단 한 곳.
이십여 미터 앞, 빨간 대문집이 시야에 들어왔다.
출발 전, 숨을 깊이 내쉬고 페달을 밟았다.
여느 때처럼 대문 앞을 지나며 신문을 던졌다.
손을 떠나는 순간, 타점이 빗나갔음을 직감했다.
‘퉁’
‘최악-’
신문은 대문을 넘지 못하고, 땅바닥에 펼쳐졌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던 실수였다.
난 바구니에서 신문 한부를 꺼내 두 번을 접어 대문을 향해 던졌다.
이번엔 대문을 넘어가 벽을 맞고 현관 앞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혹시 어제 같은 일이 벌어질까 싶어, 긴장된 마음으로 대문 앞으로 다가갔다.
현관문은 굳게 닫혀있었고, 한참을 지켜봤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대문 앞에 떨어져 있는 신문을 줍고 일어서려는 순간, 왼쪽 대문에 붙은 종이가 눈에 들어왔다.
A4 용지보다 조금 더 큰 종이 한 장, 그 위에 빨간색의 굵은 글씨로 네 글자가 쓰여 있었다.
신문사절
엊그제는 웬 신문이 날아오더니, 이번엔 신문사절이었다.
연속으로 이런 벌어지다니, 난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건 그냥 우연은 아닌, 마치 누군가 일부러 꾸민 일처럼 느껴졌다.
‘철커덕’
그때 집 안에서 문을 잠그는 소리가 났다.
재빨리 대문 기둥 쪽으로 몸을 바짝 붙이고 안쪽을 살폈다.
현관문은 여전히 닫혀 있었고, 신문은 바닥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잠시 후,
‘딸깍’
이번에는 손잡이를 돌리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그 뒤로는 아무 인기척이 없었다.
나는 두세 걸음 물러나 허리에 손을 짚고 종이를 바라보았다.
그 종이는 일력 달력의 뒷장을 뜯어 쓴 것이었다.
‘신문사절’ 글씨 뒤로는 푸른색으로 인쇄된 숫자 28이 희미하게 비쳐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붉은 펜으로 또 다른 문장이 적혀 있었다.
‘하늘로 올라가는 날.’
나는 그 종이를 확 잡아 뜯어 구겨버렸다.
그리고 공처럼 돌돌 말아 자전거 바구니 속에 던져 넣었다.
며칠 후, 오랜만에 진수가 학교에 나왔다.
진수는 담임에게 그동안 몸살이 나 약국에서 약을 타 먹고, 집에서 어머니가 돌봐줬다고 주장했지만,
진료 증빙 서류가 없어 결국 8일 무단결석 처리되었다.
그날 진수는 자리에 앉아 고개를 숙인 채 책상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처럼 바보 같은 웃음을 짓거나, 씩 웃으며 장난을 치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사실 아침 등굣길에 진수를 놀려줄 생각으로 벼르고 있었다.
“예수님은 잘 만나고 왔냐?”, “십만 원 빵, 잊은 건 아니지?”, "너 뻰치 맞았구나."
그런 농담들을 던지면, 진수가 허둥지둥 변명거리를 찾는 모습을 상상하니 혼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과연 인정할지, 아니면 어떤 변명을 늘어놓을지도 기대도 됐다.
하지만 막상 교실에서 마주한 진수의 얼굴을 본 순간, 그 모든 생각이 싹 사라졌다.
허망하게 굳어 있는 진수의 표정 위로 문득 아버지의 얼굴이 겹쳐졌다.
그날 하루 동안 진수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 진수는 반 친구들에게 ‘하늘로 올라가지 않고 왜 여기에 있냐.’는 놀림을 들어야 했다.
진수는 그 모든 말에 침묵으로 답했다.
다음 날 신문보급소에 도착했을 때, 경리가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방금 마지막 집에서 전화 왔는데, 어제 신문이 안 왔대.”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쿵 하고 울렸다.
날카롭지도 않은 무언가가 머리를 세게 후려친 듯했다.
“그럴 리가요. 아시잖아요. 마지막 집은 빠뜨리려야 빠뜨릴 수가 없다는 거.”
나는 곧장 반박했고, 내 말에 토를 달지는 못했다.
“한동안 잠잠하더니… 어째 된 일이고?”
지국장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사실 지난주 토요일, 그 집 대문에 ‘신문사절’ 종이가 붙어 있었어요.”
내 말에 지국장의 눈이 순간 번뜩였다.
“뭐? 신문사절?"
지국장이 놀란 듯 말했다.
"혹시 정말 신문을 끊으려는 건 아니겠죠?"
"설마, 그 양반이 그럴 리가 없을 낀데…”
지국장은 되묻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가 대문에 붙어 있던 종이를 뜯어 왔어요.”
사실 그날 바로 보고하지 않았던 건, 그 집이 선금을 내고 구독해 온 장기 구독자였기 때문이다.
그런 집이 하루아침에 신문을 끊는다는 건 쉽게 납득되지 않았고, 좀 더 지켜봐야겠다는 판단에서였다.
나는 가방 속에서 구겨진 종이 뭉치를 꺼내 책상 위에 펼쳤다.
“보세요. 이거.”
지국장은 구겨진 종이를 집어 들고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눈살을 찌푸렸다.
“혹시 이거, 다른 신문사 놈들이 장난친 걸 수도 있다.”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이런 거 붙여놓고 자기네 신문 넣는 수법 쓰는 놈들이 있거든. 그 집 근처 지나는 신문배달원들 한번 잘 살펴보그레이. 그런 놈 있는지.”
지국장 말대로 그럴 수도 있었다.
요즘은 두세 달 무료로 신문을 넣어주고 구독자를 빼앗는 일도 허다했다.
하지만 지난주 그 일로 봐서는 꼭 그런 것 같진 않았다.
다만, 일단 지국장 지시대로 확인은 필요했다.
신문을 챙겨 들고 보급소를 나왔다.
장편소설 '스페셜 미드나잇'은 월요일과 목요일에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