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빨간 대문집

장편소설 스페셜 미드나잇 2부

by 나라연

마지막 집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오후 네 시 오십 분을 막 넘긴 시각이었다.

평소라면 이제 남산동을 돌고 있을 시간이지만, 중간고사 기간이라 학교가 일찍 끝나, 평소보다 한 시간 정도 앞당겨 배달을 시작했다.

마지막집 현관바닥에 신문이 떨어지는 소리를 확인하고 나슈퍼 방향으로 핸들을 틀어 페달을 밟았다.

덜거덕 리와 께 페달이 휙, 헛돌더니 자전거가 멈춰 섰다.

톱니에서 체인이 빠진 것이었다.

좀처럼 드문 일이었다.

바구니에서 장갑을 꺼내 끼고 체인을 톱니바퀴에 친 다음 페달을 돌려 끼웠다.

장갑에 묻은 기름을 신문지로 닦고서 자전거에 올라타 페달을 밟았다.

그때였다.


툭-.


무언가가 내 머리를 쳤다.

가볍고 무딘 격이었다.

급히 레이크를 잡아당겼다.

앞바퀴 바로 앞에 신문 한 부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 신문이 어디서, 어떻게 날아온 건지 알 수 없었다.

단지 신문이 떨어진 방향으로 봐선 뒤쪽에 날아온 것이었다.

나는 자전거에서 내려 바닥에 있는 신문을 려다봤다.

기사 제목이 눈에 어왔다.


「10·28 휴거는 불발」

헌납 재산환 요구 잇따라


신문을 집어 들고 기사를 들여다봤다.

휴거가 불발되자 교회 간부들의 헌금 은닉 의혹, 피해 신도들의 헌납재산 반환 요구 등이 예상된다며 경찰에서는 신고센터를 설치해 피해접수를 받아 관련자가 혐의 드러나면 처벌한다는 기사였다.

기사중간에 두 장의 사진이 실려 있는데 한 장은 고개를 떨군 채 앉아 있는 사람들 모습, 또 다른 한 장은 성난 표정으로 기물을 내던지는 남자의 사진이었다.


그제 밤, 휴거 소동이 벌어졌던 그 교회에서 찍힌 사진이었다.




그날 밤, 교회 앞은 인산인해였다.
국내 방송사와 언론사는 물론, 해외 취재진까지 몰려들었다.

혹시 모를 인명사고를 대비해 경찰과 소방 인력도 배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휴거에 빠진 신도들의 가족들과 호기심에 모여든 구경꾼들까지 교회 앞은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교회 앞 철골구조물 위에 33인치 수상기와 스피커가 나란히 설치되어 있었다.

방송사에서 설치한 것이었다.

교회밖에 사람들은 그 수상기를 통해 교회 안의 상황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 화면은 전국에 TV로도 송출되 있었다.

화면 속에 비친 교회 안에는 맞춰 입은 듯한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들은 두 팔을 좌우로 흔들며 교회 밴드 연주에 맞춰 찬송가를 불렀다.

연주자들 역시 같은 흰옷 차림이었다.
진수의 말로는, 하늘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흰옷을 입어야 한다고 했다.
진수는 그 흰옷을 ‘승천복’이라 했다.


나도 그날, 승천복 차림으로 그 교회 안에 있었다.
진수에게 알리고 온 것은 아니었다.

하늘로 올라가 예수를 영접하겠다는 환상에 단단히 사로잡힌 진수가 며칠 전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진수는 종종 말했다.

휴거날이 임박하면 학교엔 안 나갈 거라고, 그 시간에 차라리 교회에서 기도하면서 주님을 기다릴 거라고.
그리고 결국, 그 약속을 지킨 것이다.

그런 진수를 완전히 이해 못 한 건 아니었다.
최근 뉴스에서는 매일같이 ‘휴거 소동’을 보도하면서, 상당수 신도들의 극단적 일탈행위 소식을 전다.
그에 비하면 진수의 일탈은 매우 순한 편이었다.


교회 안은 기도와 통곡 방언이 뒤섞인 아수라장이었다.

“주여— 주여—!”

어느 한 사람이 주를 부르자, 여기저기서 그를 따라 함께 복창을 했다.

주를 애타게 찾는 절규가 교회 안에 메아리처럼 번졌다.

흡사 굿판을 방불케 하는 괴상한 몸짓들과 서로 뒤엉킨 소리들은 그야말로 광란이었다.


나는 흰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강단 바로 앞으로 가 맨 앞줄에 서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훑었다.

그리고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맨 뒤 줄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훑고 지나왔지만, 뭐라도 홀린 듯 천장을 향해 중얼거리고 있는 진수 말고는 달리 아는 얼굴을 찾을 수는 없었다.


자정이 가까워질수록 공기는 점점 팽팽해졌다.
교회 안뿐 아니라 바깥까지 긴장감이 감돌았다.

24시 정각.
모두가 숨을 멈췄다.
교회 안 전체가 정적에 잠겼다.

그러나 하늘에서 예수가 내려오지도, 천사의 나팔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하늘로 끌려 올라가는 이 또한 없었다.
그들이 ‘스페셜 미드나잇’이라고 지칭했던 그 순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자정을 넘기자, 신도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두리번거렸다.
어떤 이는 발끝으로 살짝 몸을 들어 올려 천장을 바라봤고, 어떤 이는 눈을 감고 휴거가 일어나기만을 기다렸다.
또 어떤 이는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주여! 주여!”

누군가 절규하듯 외쳤다.

하지만 주의 응답은 없었고, 여기저기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고, 누군가는 멍하니 천장만 쳐다봤고, 누군가는 눈물을 흘렸고, 누군가는 조용히 교회 밖으로 발길을 돌렸고, 누군가는 강단 앞으로 달려갔고, 누군가는 하늘을 올라가려는 듯 발끝을 들고 점프를 하기도 했다.


잠시 후, 교회 문이 화들짝 열렸다.

밖은 매우 소란스러웠고 경찰들이 방패벽을 만들어 교회로 진입하려는 사람들을 막아서고 있었다.
경찰방패에 가로막힌 사람들은 밖에서 화면을 통해 교회 안 상황을 지켜보던 신도의 가족들이었다.

경찰의 방패벽은 내 뚫렸다.

그들은 순식간에 교회 강단까지 밀고 들어왔다.

그들 중 누가 먼 저랄 것 없이 강단 위의 서있는 목사와 임원들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강단에 걸려있는 현수막을 잡아 뜯었고, 연설대와 꽃장식을 발로 걷어차고 잡히는 대로 집기들을 바닥에 내동댕이 쳤다.

물론 악기들도 성치 못했으며 강단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들은 성에 차지 않은 듯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신도들의 철옹성 같던 확신은 식간에 절망으로 바뀌다.
그 절망에 빠진 그들의 눈빛은 마치 세상의 끝을 본 사람들 같았다.

아마도 그때 아버지가 그곳에 있었다면 아버지 역시 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난데없이 머리에 날아든 그 신문은 동화일보 오늘자 신문이었다.

그렇다면 마지막 빨간 대문집에서 날아온 것임에는 분명했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 또 누가 신문을 던진 건지 의아했다.

난 신문에 묻은 흙먼지를 툭툭 털어낸 뒤, 반으로 접어 핸들바구니에 던져 넣고 깨끗한 신문 한 부를 꺼내 들고 마지막 집 대문 앞으로 걸어갔다.

빨간색으로 칠해진 철제 대문은 마치 오래된 상처처럼 갈라지고 군데군데 벗겨져 있었다.

갈라진 틈마다 불그스름한 녹이 번져 있었고, 손끝으로 살짝만 건드려도 부스러질 것 같았다.

초인종을 세 차례 눌러봤지만, 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대문 틈 사이로 들여다보니, 현관문은 삼분의 일정도 열려있었다.

마당 오른편의 빨랫줄에 바짝 마른 옷 몇 벌이 살랑바람에 흔들리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대문에서 멀리 떨어져 신문을 대문 안으로 던졌다.

신문은 예의 그 절묘한 포물선을 그리며 벽을 맞고, 현관 앞 바닥에 정확히 떨어졌다.

난 대문기둥 옆에 쪼그려 앉아 문틈 너머를 지켜봤다.

반쯤 열린 현관문을 열고 누군가 나오지 않을까 싶었다.
그때, 등 뒤에서 알 수 없는 시선이 느껴졌다.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렸지만 날 쳐다보는 선은 없었다.
그냥 착각이겠거니 하며 다시 시선을 대문 안으로 돌렸다.

약 5분쯤 지났을까.

왼쪽다리가 점점 저려다.

이렇게 있다가는 일어나기도 힘들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만 지켜보기를 포기하고 저린 다리를 이끌고 뒤뚱 걸음으로 자전거를 세워둔 곳으로 음을 옮겼다.

자전거에 거의 도착했을 때였다.

‘파르르—’

뒤쪽에서 공기를 가르며 뭔가 날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렸을 때 것은 미 내 눈앞까지 날아들었다.
순간 반사적으로 몸을 젖히고 오른으로 낚아챘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머리를 또 한 번 맞을 뻔했다.

그것은 오늘자 신문, 방금 전까지 현관 앞에 떨어져 있던 그 신문이었다.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대로 신문을 다시 대문 안으로 힘껏 집어던졌다.

그리고 다리가 절인 것도 까맣게 잊은 채 단숨에 대문 앞으로 달려갔다.

신문은 현관 앞 난간 위에 아슬아슬 걸쳐 있었다.

그때, 현관문이 좀 더 넓게 려있었다.
그 순간 마당 안쪽에서 갑작스레 돌개바람이 일었다.

‘쿠-쿵-’

대문이 앞뒤로 두 차례 흔들리더니 흙먼지가 회오리처럼 솟구쳐 올라왔다.

문틈 사이로 먼지가 삐져나와 내 눈앞에 흩날렸다.

나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손으로 먼지를 휘저었다.

돌개바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잠시 후 ‘끼익-쿵!’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에 슬며시 샛눈을 떴다.


조금 전까지 열려 있던 현관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리고 난간 위에 걸쳐있던 신문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뒷머리가 순간 쭈뼛했다.

누군가 안에 있다는 증거였다.

그 순간, 또다시 바람이 몰아쳤다.
이번에는 훨씬 거칠고 차가운 바람이었다.
대문은 앞뒤로 덜커덕거렸고, 녹슨 쇳가루와 벗겨진 페인트 조각이 지처럼 흩날렸다.

저 멀리 산등성이 위로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천둥소리가 하늘을 흔들었다.

거센 바람을 타고 검은 구름이 빠르게 태양을 집어삼키더니 바짝 말라 있던 하늘을 순식간에 어으로 물들였다.

그리고 금세 소낙비가 내릴 기세로 먹구름이 빠른 속도로 빨간 대문집 쪽으로 몰려왔다.

그때 빗방울 하나가 얼굴에 떨어졌다.


서둘러 자전거로 달려가 바구니에 남아 있던 신문 한 부를 꺼내 빨간 집 대문을 향해 집어던지고, 자전거에 올라타 하나슈퍼 사거리를 향해 전속력으로 페달을 밟았다.

그때 뒤편에서 굉음과 함께 벼락이 내리쳤다.
가늘던 빗줄기는 점차 굵졌고 하나슈퍼에 막 도착했을 때 장대비로 바뀌었다.

비를 피해 서둘러 하나슈퍼 천막 아래로 자전거를 세웠다.

쏟아지는 빗줄기가 천막을 세차게 두드렸다.

비는 앞을 거의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섭게 퍼부었다.
왼편 먼 곳에서 뿌연 불빛이 다가왔다.

얼마 후, 흰 누런색의 헤드라이트를 앞세운 버스가 슈퍼 앞에 멈춰 섰다.

곧 버스 뒷문이 열리고 소낙비에 미처 우산을 챙기지 못한 사람들이 줄지어 내렸다.
비가 너무 세차서 얼굴을 분간하기 어려웠지만, 그 무리 속에서 한 사람을 알아볼 수 있었다.

역전사거리에서 피켓을 들고 전단지를 나눠졌던 피켓녀였다.

그날 밤 휴거가 일어났다면 그녀는 지금 이곳에 없을 사람이었다.

옷차림도 그날과 같은 옷차림이었다.

그녀는 비를 피할 생각이 없는지 손우산도 하지 않고, 뛰지도 않고 힘없이 걸어왔다.

그 뒤를 따라 내린 여자는 가방을 머리 위에 얹고서 피켓녀를 앞질러 어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서둘러 머리와 옷에 묻은 빗물을 터느나 정신없었다.

그녀는 다름 아닌 2층 미용실에 단발머리녀였다.

내가 그곳에 있다는 걸 알지 못한 듯 빗물을 털고서 슈퍼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뒤 따라 내린 사람들도 피켓녀를 앞질러 천막 안으로 서둘러 들어왔다.

비를 흠뻑 맞고 맨 마지막으로 천막아래에 들어온 피켓녀는 그대로 뒤로 돌아서선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빗줄기 어느 한 곳을 멍하니 응시한 채 몸 하나 꼼짝하지 않았다.

그녀의 멍한 눈빛은 그날 밤, 허공을 더듬던 신도들의 눈빛과 닮아 있었다.

그녀 역시 내가 그곳에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얼마 후, 먹구름이 빠르게 걷히면서 세차게 내리던 장대비가 거짓말처럼 그쳤고, 해가 다시 얼굴을 드러냈다.

천막 아래에서 비를 피했던 사람들은 하나 둘 자리를 떴다.

그 사이 저 멀리 산등성이 위로 선명한 색의 무지개가 피어올랐다.

천막 아래 남은 사람은 나와 피켓녀뿐이었다.


피켓녀는 무지개를 보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여전히 어딘가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바라보던 그녀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가로 졌더니 손차양을 하고서 해를 올려다보고는 천천히 걸음을 뗐다.


빨간 대문집 골목길로 사라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끝으로, 나는 시선을 거두었다.




장편소설 '스페셜 미드나잇'은 월요일과 목요일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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