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스페셜 미드나잇 2부
난데없이 날아온 신문, 대문에 붙은 ‘신문사절’ 종이, 그리고 배달이 안 됐다는 전화까지.
연달아 이어지는 일들은 더 이상 단순한 우연이라 생각되지 않았다.
그 생각에 잠긴 채, 계단을 내려갔다.
2층 미용실 앞을 막 지나려던 때였다.
갑자기 미용실 문이 바깥으로 열렸다.
“쿵-”
문 손잡이가 내 오른팔을 툭 채뜨렸다.
“어머!”
누군가 깜짝 놀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엇…!”
순간 몸이 휘청이며 들고 있던 신문 다발이 우수수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
피할 겨를 없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신문을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미안, 이를 어째…”
놀란 얼굴로 문 앞에는 서 있는 것은 바로 단발머리녀였다.
그녀는 잠시 나와 바닥에 신문 더미를 번갈아 바라보다, 주저 없이 무릎을 꿇고 신문을 줍기 시작했다.
나도 그녀 옆에 앉아 신문을 주섬주섬 정리를 했다.
그녀는 신문을 포개어 얹으며, 미안하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내가 조심성이 없었어. 팔 괜찮아? 문에 부딪히는 소리가 꽤 컸는데…”
“괜찮아요.”
나는 괜히 신문을 다시 한번 정리하는 시늉을 했다.
그녀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 팔을 힐끗 바라보았다.
“팔 정말 괜찮아?”
“진짜 괜찮습니다..”
신문을 챙겨 서둘러 건물 밖으로 나왔다.
사실 너무 갑작스러워 아프다고 느낄 겨를도 없었다.
그 앞에서 우스꽝스럽게 넘어지지 않은 것만으로 다행으로 생각했다.
이 건물을 처음 드나들던 날, 잠깐 그녀와 눈이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 후로는 그녀가 미용실 안에서 일하는 모습도, 문 앞을 오가는 모습도 본 적이 없었다.
딱 두 번, 하나슈퍼 앞, 버스에서 내리는 그녀의 모습을 스치듯 본 게 전부였다.
하지만, 그때마다 그녀는 금세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오늘처럼 마주한 건 처음이었고 그래서인지, 조금은 특별하게 느껴졌다.
곧 마지막 집 앞에 다다랐다.
나는 약간의 긴장감을 안은 채 페달 속도를 늦췄다.
숨을 고르고, 빨간 대문을 바라봤다.
다행히 우려와는 달리 대문에는 아무것도 붙어 있지 않았다.
평소처럼 신문을 반으로 접어 던지고, 하나슈퍼 방향으로 핸들을 틀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신문이 현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툭’ 하는 짧은 충돌음 있어야 하는데, 이번엔 아무 소리도 없었다.
‘이번엔 또 뭐지…?’
불안한 예감에 급히 브레이크를 잡았다.
자전거가 ‘끼익’ 소리를 내며 멈춰 섰다.
나는 조심스럽게 자전거에서 내려 대문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기둥 뒤에 몸을 붙이고, 대문 틈 사이로 마당을 엿봤다.
현관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문 앞엔 어지럽게 흩어진 신발들, 스무 켤레는 족히 되어 보였다.
신문은 그 신발 위에 걸쳐 있었다.
거실 안쪽에선 사람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반투명 유리창 너머로 실루엣이 오가고, 낮은 웅성거림이 흘러나왔다.
그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는 광경이었다.
이 집은 늘 조용했다.
현관 앞에 신발도, 사람 그림자가 보이는 것도 처음이었다.
그때, 현관 밖으로 익숙한 얼굴이 나왔다.
역전사거리에서 ‘휴거’ 피켓을 들고 서 있던 바로 그 여자였다.
‘피켓녀가… 왜 저 집에?’
의문이 머릿속을 휘저었다.
그 뒤를 이어 회색 정장 차림의 낯선 남자가 걸어 나왔다.
어깨까지 오는 머리카락, 덥수룩한 수염, 검은 뿔테 안경, 현실보다는 연극 무대가 어울릴 법한 차림새였다.
두 사람은 짧게 말을 주고받더니, 피켓녀가 신문을 집어 들고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남자는 현관 앞에서 잠시 서 있다가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곧장 대문 쪽으로 향했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나는 얼른 고개를 빼 기둥 뒤로 숨겼다.
숨소리마저 삼켰다.
다시 고개를 내밀었을 땐, 현관 앞에 아무도 없었다.
그 순간, 문득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분명 이 집에는 선생님 부부가 산다고 했었다.
그리고 2년 동안 신문을 배달하면서 단 한 번도 그 집 사람을 마주친 적이 없다고도 했다.
나는 다시 현관 쪽을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저 두 사람이 선생님 부부란 말인가?’
나는 자전거를 몰아 하나슈퍼 사거리 쪽으로 향했다.
중간쯤에 있는 전봇대 뒤에서 다른 신문사 배달원들을 지켜보기로 했다.
‘신문사절’ 종이를 붙인 사람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다른 신문사 배달원들이 그 집 앞을 지나갔지만, 누구도 멈추지 않았다.
모두 그냥 지나칠 뿐, 지국장의 예상이 빗나갔다.
다행히 일주일 동안 신문사절 종이가 붙지 않았고 배달사고 전화도 오지 않았다.
혹시 몰라, 며칠 더 지켜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내 예상대로 범인은 그 집주인 일 확률이 매우 높았다.
사흘이 후 화요일, 그 집 대문에는 또다시 ‘신문사절’ 종이가 붙었다.
이번엔 그전보다 훨씬 크게, 마치 보란 듯이.
나는 그 종이를 당장이라도 떼어버리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범인을 잡는 것이 우선이었다.
다시 종이가 붙은 이상, 이대로 보급소로 복귀할 수는 없었다.
이번에도 대문 앞을 지나는 신문 배달원들을 한번 더 지켜보기로 했다.
난 하나슈퍼 사거리 쪽으로 자전거를 몰았다.
전봇대 근처, 천천히 속도를 줄이려던 바로 그때.
“철커덕…”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휙 돌렸다.
누군가 대문을 열고 나왔다.
나는 자전거를 멈추려다가, 계획을 바꿔 곧장 슈퍼 쪽으로 속도를 높였다.
슈퍼코너를 돌자마자 자전거를 멈춰 세워고 슈퍼 담벼락 뒤에 몸을 숨기고 고개를 쓱 내밀었다.
대문 앞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거리가 멀어 분명치는 않았지만, 지난주에 현관 앞에서 봤던 회색 양복 남자 같았다.
이번엔 옷차림만 달랐다. 흰 티셔츠에 파란색 체육복 바지에 슬리퍼 차림이었다.
그리고 한 손에는 신문 한 부가 들려 있었다.
그는 하나슈퍼 쪽을 향해 삿대질하며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화난 듯한 손짓이었다.
대문 앞에 쭈그려 앉아, 신문을 넘기며 훑어봤다.
한동안 어느 한 곳에 시선이 멈춰 있다가 신문을 확 접고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신문을 그대로 바닥에 내팽개쳤다.
그리고 바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이려 했지만 그게 잘 되지 않았는지,
라이터를 몇 번이나 켜보다가 결국 라이터 마저 바닥에 내던졌다.
잠시 후, 그의 시선이 내 쪽을 향했다.
나는 얼른 담벼락 뒤로 고개를 숨겼다.
그때,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학생.”
날 부르는 것 같았지만 지금은 거기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난 조심스레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그는 대문 안으로 들어가려다, 무언가를 본 듯 걸음을 멈췄다.
잠시 망설이던 그는 뒷걸음질 치며 대문에 붙은 종이 앞에 섰다.
한동안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이내 손을 뻗어 종이를 확 뜯어냈다.
그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더니, 종이를 구겨 바닥에 던졌다.
그리고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 종이는 그가 붙인 종이가 아닌 듯했다.
‘누군가를 속이기 위한 연출일까?’
‘아니면 정말, 다른 신문사에서 붙인 것일까?’
“학생.”
다시 뒤에서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려는 바로 그 순간, 대문 안으로 들어갔던 남자가 다시 나타났다.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땅에 떨어진 신문과 라이터를 집어 들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대문 안으로 사라졌다.
“이봐, 학생.”
이번엔 약간 짜증이 묻어난 말투였다.
그제야 난 뒤를 돌아봤다.
내 자전거 앞에 쥐색 정장 차림의 낯선 남자가 서 있었다.
왼쪽 가슴엔 금색 배지가 달려 있었고, 햇빛을 받아 번쩍이는 그 반짝임이 눈에 들어왔다.
“뭘 그렇게 보길래, 몇 번을 부르는데도 들은 척도 안 해?”
그 말투엔 여전히 짜증이 묻어 있었다.
‘이 사람은 또 뭐야…’
속으로 중얼거리며 그를 훑어봤다.
나이는 삼십 대 초반쯤.
머리는 7대 3으로 가지런히 넘겨 무스로 단단히 고정돼 있었다.
둥근 턱선과 달리 눈매는 얇고 날카로웠다.
얇은 입술 끝이 살짝 올라가 있어 웃는 듯한 인상이었다.
구김하나 없는 정장, 이 동네엔 어울리지 않는 지나치게 말끔한 차림새였다.
내가 대꾸 없이 바라보자, 그는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뭐, 내가 그거까진 알 필요는 없고."
그러곤 곧 내 자전거 바구니에 담긴 신문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암튼, 신문 한 부에 얼마야?”
“사백 원이요.”
아직 상황이 파악되지 않은 나는 기계적으로 대답했다.
그는 주머니를 뒤적이다가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동전을 세어보더니, 입가에 짧은 한숨을 흘렸다.
“이런 모자라네….”
그리곤 동전을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고 재킷 안쪽에서 지갑을 꺼내 들었다.
잠시 지갑 속을 들여다보더니,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제가 그렇게 큰돈을 바꿔드릴 잔돈은 없어요.”
그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피차 잔돈이 없으니, 미리 선불로 받은 셈 치고 앞으로 아홉 부 만 더 배달해 줘. 그럼 됐지?”
그의 말투는 부탁과 명령 사이를 오가는 듯했다.
나는 잠시 말없이 그를 바라봤다.
뜻밖의 제안이었다.
만원이면 두 달치 구독료, 열 부에 만원이면 밑지는 장사는 아니었다.
하루에 운이 좋아야 두세 부정도 팔아본 적은 있었지만, 이처럼 선불로, 그것도 한꺼번에 이렇게 큰돈을 받은 적은 없었다.
잠시 망설였지만,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
하지만, 왠지 마음 한편이 찜찜했다.
내가 집주소를 묻자, 그는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다음 주 화요일, 이 시간에 여기서 보자.”
그는 시간을 한번 더 확인하더니 덧붙였다.
“혹시 내가 다섯 시까지 못 오면 여기 슈퍼에 맡겨 놔.”
시계를 보니 오후 네 시 오십 분을 막 지나고 있었다.
“아저씨, 내일이 아니라 다음 주라니요?”
“그래. 다음 주, 난 화요일마다 이 근처에 볼일이 있어 오거든.”
그는 이 동네 사람이 아니었다.
앞으로 아홉 번, 매주 화요일마다 이곳에서 신문을 받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자전거바구니에서 신문 한부를 빼들고 말했다.
“다음 주 까먹지 말고 내 신문 한 부는 꼭 남겨둬.”
그리고 그는 건너편 평상에 걸터앉아 신문을 펼쳤다.
잠시 후, 버스가 슈퍼 앞 정류장에 멈춰 섰다.
혹시나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훑어봤지만, 그 안에 단발머리녀는 없었다.
버스에서 내린 여섯 명이 모두 한 무리인 듯, 슈퍼 귀퉁이를 돌아 골목 안으로 사라졌다.
신문을 보던 그 남자는 그들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다, 다시 신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 남자… 대체 뭐 하는 사람이지.’
다음 날, 나는 지국장에게 보고했다.
마지막 집에 또다시 ‘신문사절’ 종이가 붙어 있었고, 지난 한 주 동안 그 집 앞을 지켜본 봐로 신문사절 종이를 붙인 건 다른 신문사 배달원의 소행도, 그 집 사람의 짓도 아닌 것 같다고.
지국장은 뭔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그래도 누군지는 잡아야지. 괜히 일 커지면 곤란하다. 며칠만 더 주위를 살펴봐라.”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누가, 왜 이런 짓을 하는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미궁에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그때 문득, 한 얼굴이 떠올랐다.
‘혹시… 덩치?’
하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그놈이 장난을 치려 했다면 굳이 마지막 집에서만 그럴 이유가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신문사절 종이가 또다시 붙은 이상, 이대로 끝날 것 같지는 않다는 예감이 들었다.
신문을 들고 건물 밖으로 나왔을 때, 1층 의류매장 사장님이 밖에 나와 있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빨간색 셔츠를 입고 있었다.
“뭐 하느라 이리 늦게 나온 거야? 한참 기다렸잖아.”
“안녕하세요, 사장님. 죄송합니다.”
사장님은 미간을 찌푸리며 지갑에서 오천 원을 꺼내 내게 건넸다.
지난주 신문값이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근데 얼굴은 또 왜 죽상이야?”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요즘 골치 아픈 일이 생겨서요.”
“무슨 일인데?”
“한 집에서 자꾸 신문이 안 온다는 전화가 오고, 신문사절 종이까지 붙어서요.”
사장님은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인마, 그런 일에 너무 신경 쓰지 마. 무슨 일이든 하다 보면 그런 건 어디에나 있는 법이야.”
“네, 사장님. 감사합니다.”
사장님은 위로의 뜻으로 한 말이었겠지만, 내 상황에선 위로가 되지 않았다.
신문값을 넉넉히 챙겨주는 덕분에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어서 늘 감사한 마음뿐이었다.
"그럼, 수고."
난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님은 자전거 바구니에서 신문 한 부를 꺼내 들고 익숙한 걸음으로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장편소설 '스페셜 미드나잇'은 월요일과 목요일에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