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스페셜 미드나잇 4부
이틀 뒤, 금요일 오후.
서둘러 신문 배달을 마친 나는 보급소에 잠시 들렀다가 곧장 미용실 앞으로 내려갔다.
유리문 너머로 보니 하나는 어깨에 가방을 메고 외투를 챙기며 원장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원래 퇴근 시간은 여덟 시였지만, 오늘은 미리 양해를 구해 한 시간 일찍 나온 참이었다.
우리는 근처 분식집에 들러 김밥과 쫄면으로 간단히 저녁을 먹고, 명함에 그려진 약도를 따라 약속 장소로 향했다.
그곳은 5층짜리 건물로, 2층 ‘작은 카페’라는 네온사인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문을 열자 볶은 원두 향이 부드럽게 퍼졌다.
테이블은 십여 개쯤 놓여 있어, 이름처럼 아주 작은 카페는 아니었다.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지만, 맨 구석 자리에는 이미 김정훈 기자가 신문을 펼쳐 든 채 앉아 있었다. 테이블 위 찻잔에서는 잔잔한 김이 올랐다. 그 옆엔 물이 반쯤 찬 유리컵도 놓여있었다.
그는 우리가 들어서는 걸 보자 고개를 들어 손짓했다.
하나와 나는 가볍게 인사하고 자리로 향했다.
“어서 와. 저녁은 먹었니?”
그가 신문을 접으며 물었다.
“네. 저희는 간단히 먹었어요. 아저씨는요?”
하나가 자리를 잡으며 되물었다.
그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곧 카페 직원이 오렌지 주스 두 잔을 내려놓았다.
차가운 잔 표면을 타고 물방울이 천천히 흘러내렸다.
“오렌지 주스 괜찮지?”
우리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커피나 차보다 우리가 이런 음료를 좋아할 거라 생각해 미리 주문해 둔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는 곧 하나를 향해 눈썹을 살짝 추켜올렸다.
“너는... 오늘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네.”
하나는 쑥스러운 듯 머리를 한 번 쓸어 넘겼다.
옅은 화장, 살짝 말린 머리끝, 단정한 후드티에 치마까지 훨씬 성숙해 보였다.
“아저씨는 제가 정말 고등학생인 줄 아셨나 봐요?”
“너희 둘이 친구 아니었어?”
“얘가 어쩌다 그렇게 둘러댄 거죠. 저는 근처 미용실에서 일하고 있어요.”
“그래... 어쩐지.”
그의 시선이 다시 나에게 돌아오자 나는 물었다.
“아저씨. 오늘 왜 보자고 하신 거예요?”
그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 교회에 대해 취재한 걸, 너희에게 얘기해 주려고.”
나는 의자를 당겨 자세를 고쳐 앉았다.
김정훈 기자는 그동안 자신이 추적해 온 일들을 차분히 털어놓기 시작했다.
거짓휴거 소동 이후 신자들은 교회를 떠나 가정집에서 종교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고, 그 ‘가정집’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빨간 대문집이었다.
우리는 이미 화요일에 진수에게서 비슷한 얘기를 들은 바 있었다.
그는 교인들을 만나며 알게 된 사실도 덧붙였다.
현재 이 교회를 이끄는 목사는 과거 휴거를 주장했던 그 교회의 장로였고, 몇몇 신도들 말에 따르면 그는 한때 자신의 전 재산을 헌납했던 사람이기도 했다.
이 역시 진수에게 전해 들어 익히 알고 있던 내용이었다.
휴거 후속 기사를 준비하던 어느 날, 신도 몇 명이 그를 찾아와 제보를 했다.
목사가 신도들에게 대출을 받게 시킨다는 내용이었다.
목사는 겉으론 ‘개인 신앙 점검’이나 ‘영적 상담’처럼 들리는 명목을 내세워 신도들을 따로 불러냈다.
신도들은 그 방에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선택받았다’고 착각했고, 목사는 그 틈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목사는 믿음에는 행동이 따라야 한다며 가능한 최대 금액으로 대출을 받아 오라고 은근히, 하지만 끈질기게 종용했다.
마지막에는 하나님과의 비밀이라며 면담 내용을 절대 발설하지 말라고 입단속까지 시켰다.
신도들은 오히려 그 비밀을 ‘더 큰 은혜’로 받아들였다고 했다.
그 결과, 신도들은 적금 통장을 깨고, 직장 동료를 보증인으로 세워 대출을 받았으며, 은행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한 푼이라도 더 끌어모았다.
그 돈은 며칠 안 돼 교회로 넘어갔고, 신도들은 그것을 ‘마지막 때를 대비한 영적 보험료’라고 믿었다고 했다.
얘기를 들려주는 김정훈 기자의 얼굴에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
새로운 피해자들이 양산되고 있다는 사실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듯했다.
하나와 나는 말문을 잃은 채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럼... 그 목사가 신도들 신앙을 이용해서 대출까지 받게 만든 거라고요?”
김정훈 기자는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이전 휴거 목사가 신도들 돈을 갈취했던 방식 그대로야.”
하나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입술을 달싹였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그걸 믿어요?”
“세상이 곧 불에 타 사라질 테니 빚 같은 건 남지도 않는다고, 목사가 그렇게 세뇌시킨 거야.
죽기 전에 재산을 정리하듯, 하늘로 올라가기 전 마지막으로 ‘신앙을 증명하라’는 식으로.
그것이 신도들에겐 일종의 ‘구원의 증표’로 여긴 거겠지.”
나는 손을 꽉 쥐었다가 천천히 풀었다.
“그걸 사람들이 믿었다고요?”
“믿은 게 아니라, 믿게 만든 거지. 그래서 맹목적인 믿음이 그렇게 무서운 거야.”
김정훈 기자는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리고 목이 마른 듯 물을 한 모금을 들이켜고는 재킷 가슴 쪽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때 그 작은 녹음기였다.
녹음기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주변을 살폈다.
“자, 이거 들어봐.”
그는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딸깍’
[첫 번째 녹취]
잠시 잡음이 흐른 뒤,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금은 마지막 추수의 때입니다.”
목사의 목소리였다.
톤은 부드럽고 느렸다.
“하늘에서 상급을 받을 만큼,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헌신을 주께 올려야 합니다.”
짧은 숨이 섞인 신도의 기척이 녹음기 너머로 스쳤다.
목사는 말투를 한층 낮추었다.
“곧 세상은 불로 심판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자는 그전에 주님의 손에 붙들려 하늘로 들려 올라갈 것입니다.”
목사는 신도의 반응을 기다리듯 잠시 침묵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때 이 땅에 남는 집도, 재산도, 빚도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 남는 것들은, 그 순간 모두 불에 타 사라질 테니까요.
그러니 미련을 두지 마십시오.”
“아멘...”
신도의 약한 목소리가 따라왔다.
목사는 숨을 한번 고르고, 곧바로 더 부드럽고 친밀한 톤으로 바꾸었다.
“집사님, 우리가 앞으로 누릴 것은 오직 하늘나라에서의 기쁨입니다.
거기서 하나님과 함께할 영원한 행복만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 말 끝에, 마치 중요한 말을 꺼내기 직전의 숨 고르기처럼 아주 짧은 정적이 흘렀다.
“그래서 긴히 말씀드리는 겁니다.”
신도가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집사님은 은행에서 받을 수 있는 최대한의 금액으로 대출을 받아 오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주님께 헌금하세요.”
목사는 바로 이어서 걱정을 덜어주는 말투로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은행에서 진 빚은 염려하지 마세요.
우린 곧 하늘로 올라갈 테니, 그 빚이 누구에게 남는지도, 갚을 필요도 없습니다.
이 땅의 법과 질서는 그날 심판과 함께 끝날 것입니다.”
신도는 머뭇거리다 입을 뗐다.
“아... 아멘”
목사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결정적 한마디를 덧붙였다.
“집사님이 보여주실 헌신은 주님께서 집사님을 택하신 증거가 될 겁니다.
믿음에는 행동이 따릅니다.
그 행동이 바로 지금, 여기에서 필요한 겁니다.”
“아멘... 믿습니다.”
“그 헌금은 우리 교회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휴거 이후, 하늘나라에서 쓰일 것입니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목사는 다급한 어조를 덧붙였다.
“서두르셔야 합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네 목사님.”
목사는 목소리를 낮춰 신도의 귓가에 속삭이듯 말했다.
“이건 믿음이 연약한 자는 쉽게 시험에 들게 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만, 집사님께서는 워낙에 믿음이 강직하신 분이라 말씀드린 것입니다.”
“아멘.”
“그리고 오늘 저와 나눈 대화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십시오.
오늘 일은 오직 하나님과, 나와 당신만이 아는 비밀입니다.”
신도의 목소리가 거의 속삭임처럼 떨렸다.
“네, 목사님 믿습니다.”
목사는 마무리하듯 단호하게 말했다.
“아멘.”
‘딸각’
김정훈기자가 정지버튼을 눌렀다.
녹음기에서 마지막 “아멘”이 울리고 난 뒤, 카페의 공기는 뚝 끊긴 듯 고요해졌다.
한쪽에서 돌아가는 에스프레소 머신의 낮은 진동만이 배경처럼 깔렸다.
나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은행에서 받을 수 있는 최대 금액으로 대출을 받아 오라던 그 목사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되감기처럼 맴돌았다.
옆에서 하나가 컵에 떨어지는 물방울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갑자기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저... 이게 진짜예요?”
하나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평소 씩씩하던 표정은 사라지고, 믿고 싶지 않은 진실을 마주한 듯한 얼굴이 떠올랐다.
“아저씨 이거, 조작 아니죠?”
담담하려던 하나의 목소리는 끝부분이 살짝 떨렸다.
김정훈 기자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아직 충격을 떨치지 못한 채 말했다.
“저런 말을 진짜 믿고 대출을 받아온 사람이 있다고요? 그것도 여러 명이?”
하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리고 손등의 힘줄이 돋도록 주먹을 움켜쥐었다.
“저게 말이 돼요?
빚은 걱정하지 말라니... 휴거 되면 없어진다니...
이건 그냥 사람을 빚쟁이로 만들려는 거잖아요.”
목소리는 한 번 높아졌다가, 금세 힘없이 가라앉았다.
김정훈기자가 무겁게 말했다.
“그래. 이건 단순한 교회 문제가 아니야. 이런 일로 평범했던 가정이 파탄 나는 게 더 큰 문제지.”
말을 듣는 순간 등골이 다시 서늘해졌다.
나와 하나는 작은 숨을 삼켰다.
"대출을 실행에 옮기지 않는 신도를 다시 불러 대출을 재촉하는 녹취도 있어."
김정훈기자는 다시 녹음기의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이거 더 들어봐."
‘딸각’
[두 번째 녹취]
“집사님, 지난번에 말씀드린 대출 건 잘 생각해 보셨습니까?”
신도의 숨소리가 떨렸다.
“아직 결정을 못 해서요... 금액이 너무 커서...”
목사는 부드럽게 웃는 기척을 보였다.
“집사님, 하나님께선 우리에게 믿음을 시험하시는 순간을 주십니다.
그 시험 앞에서 망설임은 결국 이 세상에 대한 미련 때문이지요.”
신도는 작게 ‘아...’ 하고 숨을 삼켰다.
“곧 불의 심판이 옵니다. 이 땅의 모든 재산은 한 줌 재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집사님의 믿음은 하늘에서 영원히 남습니다.”
목사는 잠시 말을 끊고, 의자에서 몸을 앞으로 내밀며 속삭이듯 말했다.
“하늘 곳간에 쌓이는 상급은, 땅, 돈 몇 푼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광입니다.”
신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그럼 얼마를 헌금해야 할까요?”
목사의 숨이 천천히 들렸다.
“집사님 재산의 대부분을 하나님께 올려놓으세요.
가지고 있는 것, 거의 모두를요. 남겨두는 건 앞으로 몇 개월 치 생계비 정도면 됩니다.”
신도의 숨이 거칠어졌다.
“집... 집까지요?”
“집사님.”
목사가 단단하게 끊어 말했다.
“휴거가 되면, 그 집에 누가 삽니까? 집사님은 하늘로 들려 올라갈 텐데요.”
긴 정적이 흘렀다.
목사는 다시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리고 그 헌금은 교회의 재산이 아닙니다.
하늘나라에서 집사님이 받게 될 새 거처, 새 몸, 새 상급으로 바뀌게 됩니다.
우리 교회는 그저 하늘로 인도하는 통로일 뿐이지요.”
신도가 조용히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저... 남편에게는 뭐라고 해야 할까요...?”
“하나님과 저 그리고 집사님과의 비밀입니다.”
목사의 목소리가 한층 날카롭고 단호해졌다.
“누구에게도 말하면 안 됩니다.
남편에게도, 부모에게도, 자식에게도요.”
잠시 숨소리가 멎었다.
“사탄은 언제나 하나님의 일을 방해합니다.
집사님의 남편이 혹여 반대한다면 그건 남편이 아니라, 사탄 마귀가 집사님의 믿음을 흔드는 것입니다.”
신도가 흐느끼며 말했다.
“... 네, 목사님.”
목사는 마지막으로 안심시키듯 말을 덧붙였다.
“집사님은 믿음을 보이기만 하면 됩니다.
하늘에서의 상급은 제가 약속드립니다.”
‘딸깍.’
김정훈 기자의 버튼 위에 얹힌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하나는 입술을 손등으로 꾹 눌러 참고 있었고, 나는 손에 쥔 오렌지 주스 잔을 내려놓는 것조차 잊은 채 멍하니 앉아 있었다.
녹음기 옆 찻잔에서 오르던 김은 서서히 식어 조용히 흩어지고 있었다.
나는 한동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목사가 집까지 팔고, 대출까지 받으라고 지시하던 말들이 아직도 귓가에서 생생하게 되감기고 있었다.
하나는 잔을 아예 내려놓고 양손을 무릎 위에 올린 채, 터져 나오려는 숨을 천천히 고르고 있었다.
“이게 다 진짜예요?”
하나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다시 물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김정훈 기자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고, 짧게 대답했다.
“응. 첫 번째 때랑 마찬가지야. 어떤 편집도 안 돼 있어.”
나는 숨을 한 번 삼키고 겨우 입을 열었다.
“그럼, 그 집… 빨간 대문집 사람들도… 다 이런 식으로…?”
김정훈 기자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부정하지도 않았다.
그저 찻잔을 손끝으로 천천히 굴리며 말했다.
“내가 확인한 바로는... 그 집에 모인 사람들 대부분은 이미 전 재산을 교회에 넘긴 상태였어.
대출까지 받아서.”
하나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진수도 그랬을까요?”
“아냐. 내가 알기론, 애들은 빼고야.”
“후~”
나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