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헌금

장편소설 스페셜 미드나잇 4부

by 나라연

김정훈 기자는 담담하게 말했다.
“녹취를 들었다시피 이건 위력을 이용한 전형적인 가스라이팅 수법이야.”


그 말끝에, 하나가 거의 속삭이듯 말했다.

“희훈이 엄마도… 이런 식으로 당한 거였구나.”

지난 화요일 그날 밤, 하나슈퍼 앞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는 희훈이를 보고 하나가 “쟤는… 시간이 몇 신데 이제 오는 거야.” 하고 혼잣말하던 그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하나에게 물었다.

“희훈이가 왜요?”

하나가 되물었다.

“너 희훈이를 알아?”

“네. 아는 애예요.”

그는 하나를 바라보았다.

“희훈이?”


하나는 말을 이었다.
“왜, 지난 화요일 밤늦게 버스에서 내렸던 애 기억나죠?”

“어, 기억나. 한쪽 어깨에 가방 메고 골목 안으로 들어갔던 학생.”

“그 애 엄마도 그랬었거든요.”


하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희훈이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희훈이는 하나네 집 뒤편 골목, 낮은 담장이 이어진 오래된 주택에서 아버지와 단둘이 살고 있다고 했다.

그 일이 있기 전에는 세 식구가 별 탈 없이 지내던 집이었다고 했다.


희훈의 어머니는 원래부터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지만, 3년 전쯤부터 휴거 종말론에 깊이 빠지면서 집안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했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예배가 있는 날뿐만 아니라 거의 매일 교회에 나갔고, 기도회가 있다며 밤늦게 돌아오는 날도 잦아졌다고 했다.


그 무렵부터 희훈이 부모님 사이에 갈등이 시작되었다.
희훈이 아버지는 처음에는 참고 지켜보려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교회에만 매달리는 아내를 더는 이해할 수 없었다고 했다.
어느 날부터는 직접 교회로 찾아가 어머니를 강제로 끌어내 집으로 데려오는 일까지 반복되었다고 했다.


그 집에서는 밤마다 고성이 오갔다.
창문 너머로 문을 쾅 닫는 소리와 울음 섞인 말, 서로를 탓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고 했다.


그때부터 희훈이도 점점 집에 늦게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겉돌기 시작했다고 했다.


어느 한날은 희훈이 어머니가 교회에 나오지 않자, 교회 쪽 사람들이 집에 찾아오는 일도 있었고, 결국 경찰을 부르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했다.

그러다 어느 날, 결정적인 일이 벌어졌다.
희훈이 어머니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동안 예금해 두었던 목돈을 전부 교회에 헌금해 버린 것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는 크게 분노했고, 말다툼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고 했다.


결국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손을 대는 일까지 벌어졌다.
희훈이는 그런 아버지를 말리려다 여의치 않자, 밤중에 하나네 집으로 달려왔다고 했다.
이웃사람들이 몰려들어 간신히 아버지를 뜯어냈고, 그날의 일은 금세 동네에 퍼졌다고 했다.


결국 그 일로 희훈의 부모님은 이혼을 선택했다고 했다.


그 이후 희훈이는 완전히 달라졌다고 했다.
덩치가 조금 컸지 성격이 밝고 착했던 희훈이는 학교에서는 힘없는 아이들에게 괜히 시비를 걸거나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불량한 아이들과 어울리며 밤늦게까지 시내를 돌아다니는 날도 늘어났고, 친구들과의 싸움으로 선생님과 충돌하는 일도 잦아졌다고 했다.


그때마다 희훈이 아버지는 학교에 불려 다녔다.
상대 학생의 부모에게 고개를 숙여 사과하고, 합의금이나 치료비를 대신 물어주는 일도 반복되었다고 했다.
희훈이 아버지는 아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이웃들에게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고 하나는 말했다.


“아마 어떻게 손을 내밀어야 할지 몰랐던 것 같아요.”
하나는 그렇게 덧붙였다.


그래도 최근 들어서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고 했다.
크게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고, 학교도 그럭저럭 다니고 있는 것 같다고.
완전히 괜찮아진 건 아니지만, 최소한 더 나빠지지는 않고 있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문득 희훈이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날 밤늦은 시간, 버스에서 내려 어둑한 골목으로 걸어 들어가던 뒷모습.
누가 불러도 돌아보지 않을 것처럼, 고개를 숙인 채 걷던 모습이었다.


희훈이는 나와 닮아 있었다.

평화롭던 가정이 일순간에 무너져내리는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봤을 테고, 어른들의 선택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믿음이라는 이름 아래, 부모님 사이에 벌어진 일속에서 배려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


희훈이가 남에게 괜히 날을 세우고, 시비를 걸고, 괴롭히고 상처 주려했던 이유를 나는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그건 누군가를 다치게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아무도 자기편이 되어주지 않는 세상에 먼저 등을 보이려는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와 비슷한 처지의 희훈이가 조금은 측은했다.



김정훈 기자는 잠시 하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맞아. 그때도 그랬어.”


하나는 짧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김정훈 기자가 말했다.

“이런 구조가 되면, 신도들은 목사의 말을 절대 거역하지 못해. 완전히 종속관계가 돼버리는 거지.”


나는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주먹을 쥐었다.

'그럼 어쩌면, 아버지도 이런 수법에 재산을 헌납했을까?

혹은... 그보다 더한 강요로 어쩔 수 없이 빼앗긴 건 아니었을까?'


그제야 빨간 대문집 교회에 드나드는 사람들의 얼굴이 다르게 보였다.

애처롭다는 감정이 먼저 들었지만, 곧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뒤따랐다.
분명 거짓 휴거 소동을 직접 겪었을 텐데도 한번 속았으면서도, 같은 말에 다시 마음을 내주고 그곳에 발을 들였다는 사실이 도무지 납득되지 않았다.


나는 김정훈 기자를 향해 물었다.

“그런데요. 사람들은 지난번 거짓 휴거 소동에 당했는데도, 왜 또 그걸 믿는 거죠?”


김정훈 기자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잠시 창밖을 바라봤다.

“그건 단순히 ‘속아서 또 속는’ 문제가 아니야.”
그는 낮게 말했다.
“인간이 가진 아주 깊은 심리 때문이지.”


잠시 숨을 고른 그는 말을 이었다.
“첫 번째는, 자기 믿음을 부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야. 사람은 스스로 선택한 신앙이, 자기가 바친 시간과 희생이 전부 잘못된 거였다는 걸 인정하지 않으려고 해.”


하나가 옆에서 작게 숨을 들이켰다.


“두 번째는 심리적인 보상 구조야.”

"보상 구조요?"

“어. 휴거가 거짓이었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 그동안 헌금하고 기도하며 버텨온 시간들이 한순간에 무너져버리잖아. 그걸 견디는 게 너무 고통스러운 거야.”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지난번엔 아니었지만... 다음엔 진짜일 거라고.

근거없는 희망이 그게 스스로를 지탱하는 마지막 동아줄이 되는 거지.”


나는 그의 말을 곱씹다 조심스럽게 말했다.
“약간 도박 같네요.”

“맞아.”

김정훈 기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판에서 돈을 잃었으니, 다음 판에서는 반드시 만회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심리야.

근거는 없어.

하지만 사람은 그런 희망이 있어야 버틸 수 있다고 착각하지.”


김정훈 기자는 다시 우리를 바라보며 덧붙였다.
“그리고 마지막 이유가 있어.

그건, 이미 너무 많은 걸 바쳐버렸기 때문이야.”


그는 단어 하나하나를 눌러 말하듯 말했다.
“재산, 관계, 가족, 시간... 신앙을 위해 잃은 게 많을수록, 사람은 더 강하게 스스로를 설득하게 돼.
자신은 절대 잘못된 길로 간 게 아니라고.”


하나는 고개를 떨구었다.


“그래서 오히려 더 깊이 빠져들어.”
김정훈 기자가 조용히 말을 맺었다.
“포기하는 순간, 자기 삶 전체가 무너져버리는 것처럼 느껴지니까.”


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그들의 심정을 한편으론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그 이유가 오히려 참담했다.



하나가 고개를 들고 물었다.

“아저씨는 그 녹음을 어떻게 한 거예요?”


김정훈 기자는 몸을 앞으로 숙이고 말을 이었다.

“이 녹취는… 그냥 얻어진 게 아니야.”

그는 목소리를 조금 낮췄다.


하나가 물었다.
“아저씨가 목사님 방에 직접 몰래 녹음기를 설치한 거예요?”


김정훈 기자가 픽 웃었다.
“아니, 그랬으면 아마 진작 들켰을걸. 쉽지도 않을뿐더러.”


그는 손가락으로 찻잔을 툭 건드리며 말을 이었다.

“내가 한 건, 신도들에게 접근한 거야. 특히 목사의 말을 믿지 않거나 수상함을 느끼고 믿음이 흔들리고 있던 사람들에게.”


나는 숨을 멈췄다.

“흔들린 신도요?”


김정훈 기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면으로 다가가면, 다들 바로 귀를 닫아버려.”


그는 잠시 말을 고르듯 시선을 내렸다가 이어갔다.
“하지만 빚에 쫓기거나, 가족 몰래 재산을 팔아 헌납해서 가정이 무너진 사람들.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그런 신도들은 하루하루를 불안 속에서 버티고 있어.”


그는 말끝을 잠시 흐렸다가 다시 말했다.
은행 빚을 내고, 그 이자를 감당하는 건 전부 당사자 몫이지, 교회나 목사가 대신 해결해 줄 문제는 아니니까.

그 일로 이혼을 당하든, 가정폭력에 휘말리든 마찬가지야. 결국 다 자신이 감당해낼 수 밖에 없었던 거고.

그중 몇 사람이 나한테 먼저 속내를 털어놨어.”


하나가 눈을 크게 떴다.
“먼저요?”

“응.”

김정훈 기자는 컵을 내려놓으며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듯했다.
“내가 처음 교회에 나갔을 때, 일부러 거의 말을 하지 않았어.”


그는 우리를 번갈아 보며 말을 이었다.
“그냥 사람들 옆에 앉아서 듣고, 끝나면 안부 묻는 정도였어.

그러다 보면, 꼭 먼저 말을 거는 사람들이 있어.
'요즘 어떠세요? 괜찮으세요?' 같은 아주 평범한 질문에 갑자기 말이 길어지는 사람들.”


그는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가볍게 두드렸다.
“믿음이 단단한 사람들은 말이 짧아.
하지만 흔들리는 사람들은, 누군가 귀 기울여주기만 해도 자기 얘기를 하기 시작하지.”


그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나는 조언도 안 했고, 결론도 내주지 않았어.
그냥 듣기만 했지. 고개 끄덕이고, 중간에 한 번씩 묻는 정도로.

그 사람은 계속 나를 관찰하는 것 같았어. 설교에 얼마나 반응하는지, 기도할 때 눈을 감는지 뜨는지까지. 헌금은 얼마나 하는지.”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러다 어느 날, 예배 끝나고 사람이 다 빠져나가고 아무도 없을 때 그 사람이 나한테 조용히 먼저 말을 걸어왔어.”


김정훈 기자는 고개를 조금 숙였다.

“밖으로 나가 보니, 두 사람이 초조한 듯 서성이고 있더라고.
그 사람을 포함해 그들은 내가 그냥 신도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 눈치였어.

나는 그걸 모르는 척하고 그 사람들과 함께 시내로 나가 차를 한 잔 마셨지.”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이어 말했다.

“그 자리에서, 그 사람들은 그동안 감춰두고 있던 얘기를 하나씩 꺼냈어.”


그가 낮게 덧붙였다.
“헌금 얘기였어. 그 때문에 생긴 가족 문제, 빚에 쫓겨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얘기까지.

모든 문제는 교회 헌금에서 비롯된거였고.”


그는 조용히 덧붙였다.
“나는 그저, 그 사람들 삶이 무너지고 있다는 걸 알아챘을 뿐이야.

그때, 나도 그 사람에게 내 신분을 밝혔어.”


김정훈 기자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 순간을 떠올리는 듯, 시선이 테이블 위에 놓여진 녹음기로 향했다.

“그다음 날 이걸 그 사람들이 용기 내서 내게 건네 준거야.”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사람, 지금도 교회에 있어요?”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니.”


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천천히 녹음기의 옆면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하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럼 그 집사님… 지금 괜찮나요?”


김정훈 기자의 대답은 짧았다.

“안 괜찮아.”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카페 주방에서 컵을 닦는 소리가 멀리서 메아리처럼 들렸다.


김정훈 기자가 이어 말했다.

“그 사람은 이미 교회를 떠났어.

그 대가로 많은 걸 잃고 나서.”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덧붙였다.
“참다못해 교회에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하긴 했지만 결국,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어.”


“왜요?”
내가 물었다.
“돈을 냈다는 증거가 있을 거 아니에요.”


“없어.”
그는 짧게 잘랐다.
“교회에서는 전부 현찰로만 받았거든.
헌금했다는 걸 증명할 서류 한 장도 받은 게 없으니까.”


그의 말투에는 분노도 놀라움도 없었다.


하나가 화를 눌러 담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나쁜 놈들이네요.”

김정훈 기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악랄한 놈들이지.”


내가 물었다.

“아저씨는 목사와 개인면담은 아직 안 한 거예요.”

“응, 아직, “언젠가는 부르겠지.

아니면, 이미 돈이 충분히 모여서 더 이상 부를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고.”

그는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는 듯 말을 흐렸다.


그리고 그는 시선을 테이블에 떨구었다.

“사실, 녹취를 받고 나서부터 나는 계속 누군가 감시하는 느낌을 받았어.”


그 말에 하나가 굳어졌다.
“교회 사람들이요?”


그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잠입 3주 차쯤 됐을 때였어.
예배 끝나고 나가는데, 처음 보는 남자가 내 어깨를 잡더니 이렇게 말하더라고.”


그는 목소리를 낮추고 말투까지 따라 했다.

“‘안 집사님, 요즘 왜 이렇게 조용해요? 예전처럼 기쁨이 없어 보이네요.’”


“난 그 뚱딴지같은 말에 소름이 돋았어. 왠지 감시와 경고 같은 것이라고 느꼈어. 그날 이후로, 내가 가는 곳마다 누가 따라붙는 기척이 느껴졌어.
혹은 내가 그렇게 느끼도록 만든 걸 수도 있고.”


김정훈 기자는 살짝 웃었지만 그 웃음에는 힘이 없었다.

“그래서 아무 신도한테 접근하는 것도 위험했지.”


나는 목이 타는 듯 갈증이 올라왔다.

냉기가 식은 오렌지 주스를 들이켰다.

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