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고백

장편소설 스페셜 미드나잇 4부

by 나라연

하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지금 그분들은 돈 떼이고서 그냥 손 놓고 있는 거예요?”


“물론 경찰에 신고는 했지.”
김정훈 기자는 말하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어.”


그는 목을 문지르며 말을 이었다.
“이요셉 목사. 신원 파악이 안 되고 있어.”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아 되물었다.
“교회 위치도 알고, 목사 이름이랑 얼굴도 아는데 신원을 모른다고요?”


“주거지가 불분명해.
그리고 ‘이요셉’이라는 이름으로는 일치하는 인물이 없어.
다 다른 사람들이었어.
이름이 가명일 가능성이 커.”


“역시 그런 거였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하나와 김정훈 기자가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마음속에만 맴돌던 말을 꺼냈다.
“진수한테 처음 이요셉 목사에 대해 전해 들었어요.

이야기를 듣다 보니 혹시 그 사람이 아버지가 아닐까란 생각이 들기 시작했죠.

왜냐하면, 이요셉 장로가 진수네 교회에 처음 나타났던 시기와 아버지가 엄마의 지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어울렸던 시기, 아버지가 갑자기 사라졌던 시기와 교회에서 장로가 되었던 시기, 그리고 원래 지역사람이 아니었다는 것과 교회에 헌납한 재산이라는 것이 지방에 있던 땅을 팔아 재산을 헌납했다는 얘기까지 여러 정황과 시기가 아버지와 많이 겹쳤어요.

물론 이름은 아버지 이름과 달랐지만요.

그래서 진수에게 이름이 본명인지 물었죠.

진수가 다녔던 그 교회에서는 애초부터 이요셉 장로로 불렸다고 했어요.

진수에게 이요셉 장로의 이름이 본명이냐고 물어봤지만, 잘 모른다고 했어요.”


나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러다 지난 화요일, 그 빨간 대문 집 교회 안에 있는 가구들을 보고 확신이 들었어요.

분명 이곳에 아버지가 살고 있으며, 이요셉이란 사람이 아버지일 거라는 확신요.

그런데 설교 영상 속 이요셉 목사 얼굴을 확인하고 알았어요.”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요셉 목사가 아버지가 아니란 걸요.

그날 본 목사의 얼굴은 아버지와 닮은 데라고는 한 군데도 없었거든요.

그때 제가 어찌나 실망했는지 몰라요.”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어렵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모든 정황은 분명 아버지인 건 확실해요.”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어요.”


김정훈 기자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 말했다.
“만약 신분을 숨기려고 작정한 거라면, 누구든 쉽게 알아보게 두지는 않았을 거야.”


그의 말은 의심을 더 깊게 파고들게 만드는 한마디였다.


하나는 음료수 잔만 바라보고 있었다.

주스잔 속 얼음이 녹아 물방울이 흘러내렸지만, 그녀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잠시 정적이 흐른 뒤 내가 말했다.

“제가 몇 달 전에, 이요셉 목사를 직접 본 적은 있어요.”


두 사람이 동시에 나를 바라봤다.


“그 빨간 대문집에 신문을 던졌는데, 평소라면 들려야 할 신문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안 들리더라고요.

그게 조금 이상해서 대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봤는데, 현관에 신발이 스무 켤레쯤 가지런히 놓여 있었어요.
평소엔 볼 수 없던 광경이었죠.

신문은 그 신발 위에 떨어져 있더라고요.

그래서 돌아서려는데 여자 한 명이 현관 밖으로 나왔고 그 뒤를 따라 나온 남자가 나왔죠.”

여자는 교회 전도사였고, 남자는 설교 영상 속 그 목사였어요.”


“그리고 그 여 전도사는 그전에도 여러 차례 본 사람이었어요.

제가 처음 신문 배달 하던 날 처음 봤었는데 역전 사거리에서 휴거 피켓을 들고 전도지를 나누어줬던 사람이었죠.

그곳을 지날 때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는 봤던 거 같아요.”


김정훈 기자가 물었다.

“그럼, 지난번에 전도사님을 봤을 때, 처음 보는 척 시치미 뗐던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이후에, 이요셉 목사를 한 번 더 봤어요.
아저씨가 제게 신문을 처음 샀던 그날이요.”

“기억나, 그때 네가 슈퍼 담벼락에 붙어서 어딘가 엿보고 있었어.”

“네. 그날, 그때 그 사람이 대문 밖에 나와 서 있는 걸 엿보고 있었거든요.”

“난 네가 뭘 그렇게 유심히 엿보나 했다. 근데 그땐 왜 그러고 있었던 거야?”

“그때는 그 집에서 신문 배달이 안 왔다는 전화가 이어질 때였고, 심지어 대문에 신문 사절 종이까지 붙어 있던 때였어요.
그래서 범인을 잡으려고 며칠 동안 그 집 앞을 오가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었거든요.”


나는 김정훈 기자를 보며 말했다.

“그땐 그 범인이 아저씨인 줄은 몰랐으니까요.”


하나가 놀라며 물었다.

“뭐라고? 이 아저씨가 그 범인이었다고?”

하나는 김정훈 기자를 흘겨봤다.


김정훈 기자는 멋쩍게 웃었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으니까. 그건 나중에 얘한테 들어.”


나는 이어 말했다.
“때마침 그때 그 집에서 그 사람이 나온 거였고, 그런데 그 사람도 대문에 붙은 신문 사절 종이를 보고 의아해하는 듯했어요. 그래서 그때 저도 그 사람이 범인이 아니란 걸 눈치챘죠.”


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런데 그날은 처음 봤을 때처럼 양복차림이 아니었어요.
집에서 뒹굴다 막 나온 사람처럼 흰 러닝셔츠에 바지는 무릎이 튀어나온 체육복 차림이었거든요.”


하나가 말했다.

“그럼 혹시... 그 집에서 거주하고 있는 건 아닐까?”


기자가 고개를 저었다.

“에이, 설마.”


하나가 말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도 있잖아요.”

김정훈 기자가 말했다.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드나드는 곳에 살 이유가 없지, 신분이 노출될게 뻔한데 바보가 아닌 이상.”


내가 말했다.
“만약 변장에 능하다면요.
아까 아저씨 말처럼, 신분을 숨기기로 마음만 먹는다면 누구로든 변장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건 그렇지만...”

김정훈 기자가 말을 흐렸다.


내가 물었다.
“아저씨는 실제로 이요셉 목사를 본 적 없다고 했잖아요?”

“아직.”

“설교영상 속 목사 모습 보면, 좀 이상하지 않았어요? 저는 뭔가 어색하다고 느꼈거든요.”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글쎄. 난 잘 모르겠던데.”


나는 다시 물었다.
“그런데 예배를 왜 영상으로만 하는 걸까요?
왜 직접 예배를 하지 않는 거죠?”


김정훈 기자는 잘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이어 말했다.

“그게 조금 수상하단 생각이 들어요.

영상 보면 설교 내내 목사 상반신만 잡히잖아요.

현장 예배라면 교회 전체모습이 화면에 나올 법한데요.”


하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저도 보면서 이상하다고 느꼈어요.
마치 세트장 느낌이랄까?”


내가 말을 이었다.
“그렇죠? 저도 같은 생각이었어요. 만약 세트장에서 찍은 거라면, 직접 설교한 적이 없었다는 거잖아요?”


하나가 말했다.

“그랬다면, 신도들이 있는 것처럼 연기하는 거였을 테고.”


김정훈 기자가 피식 웃었다.
“너네들, 너무 나가는 거 아니니?”


내가 말했다.

“그때 소리를 유심히 들었는데요. 신도들이 아멘 하는 소리나 함성소리도 어디서 따다 붙인 것 같았어요.”

"맞아. 그런 것 같기도 했어."

하나가 맞장구를 쳤다.


김정훈 기자가 말했다.

“그래?? 난 매주 예배 영상을 보면서도 으레 신도들이 반응한 소리겠거니 생각했지.”

내가 재미도 없고 따분한 설교영상을 볼 이유는 딱히 없었으니까.”


하나가 짓궂게 말했다.

“아저씨, 눈썰미가 너무 없으신 거 아니에요? 명세기 기잔데.

그런 눈썰미 없이 어떻게 기자가 되셨대?”


김정훈 기자는 살짝 멋쩍은 표정으로 대답 대신 찻잔으로 시선을 돌렸다.
손끝으로 찻잔을 톡톡 두드렸다.

“그런데 말이야...”


말을 잇다 말고 그는 찻잔을 손가락으로 굴리며 한동안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무언가를 망설이는 모습이었다.


“사실은...”
그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내가 이 휴거를 주장하는 교회들을 뒤쫓고 있는 데에는 개인적인 이유가 있어.”


나와 하나는 동시에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목소리는 앞서 녹취를 틀던 순간보다 훨씬 낮아져 있었다.


“지난 휴거 소동이 있기 몇 달 전이야.

조카가 아무 연락도 없이 사라졌어.”


하나가 눈을 크게 떴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다음 말을 기다렸다.


“조카는 대학교 1학년 생이었어, 조용하고 공부만 하던 애였는데, 어느 날 집으로 학교에서 전화가 왔어.

형수가 전화를 받았는데 2학기 등록금이 미납됐다는 전화였어.

그래서 조카를 붙잡고 캐물었더니, 다음 학기 등록금을 전부 교회에 헌금했다는 걸 알게 됐어. 그동안 모아두었던 용돈까지 말이야.”


그는 손등을 천천히 훑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 형이랑 형수님이 그 사실을 알고 조카를 많이 꾸짖었고 그 뒤로 교회에 나가지 말라고 타일러도 봤지만, 별 소용이 없었어.

공부하러 학교에 간다며 나가서는 교회에 계속 다녔던 것 같아.

그렇다고 다 큰 자식을 집 안에 붙잡아 둘 수도 없고 말이야.
그렇게 형부부와 조카사이는 점점 살얼음판을 걷는 분위기가 됐을 테고.”


한 박자쯤 지나 그의 시선이 테이블 위에 내려앉았다.


“그러다 어느 날, 조카가 도서관에 가서 공부하겠다고 나간 뒤로 집에 돌아오지 않았어.
그 이후로 연락이 안 돼서 조카가 다니는 교회를 찾아가 봤지만, 거기선 그런 사람은 없다고 잡아 때더라고.

그 뒤로 몇 차례 그 교회를 찾아갔지만 문전박대만 당했어.”


하나는 숨을 삼키듯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휴거 소동이 있은 뒤에는요?”


김정훈 기자가 고개를 저었다.

“조카가 집에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직까지 연락은 없어.
그냥 어딘가에서 무사하기만을 바랄 뿐이야.”


“그 교회는요?”
내가 물었다.


“그곳 사람들은 다 떠났고, 문을 닫았어.”
김정훈 기자는 담담히 말했다.
“그날 이후 그런 교회가 한두 곳이 아니었어.”


김정훈 기자는 잠시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래서 조카를 찾으려고, 휴거 잔존 세력들이 활동하는 교회들을 추적하기 시작했어.
처음엔 완전히 개인적인 이유였어.”


그리고 잠시 말을 멈췄다가 낮게 덧붙였다.
“하지만 이건 개인의 문제를 떠나 명백한 우리 사회의 문제야.”


김정훈 기자의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기자 특유의 냉철함이라기보다는, 잃어버린 가족을 찾는 사람의 절박함에 가까웠다.


“그 당시 종말론에 빠져 내 조카처럼 사라진 사람들이 꽤 많아.

지금도 그 부모들이, 가족들이 자식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거야.”


잠시 정적이 흘렀다.
카페 음악이 잔잔히 흘러나왔지만, 그의 말이 남긴 공백은 쉽게 메워지지 않았다.


김정훈 기자가 말했다.

“그래서 난 손 놓고 있을 수가 없었어.

조카가 어딘가에서, 이 녹취 속 사람들처럼 또 누군가에게 속고 있을까 봐 그게 걱정이지.

그 생각만 하면 너무 속상해.

가족이라서도... 기자로서도 그렇고.”


그 말은 오래 가슴에 묻어 두었던 것을 처음 꺼내놓는 사람의 고백처럼 들렸다.


나는 입술을 눌러 삼키듯 말했다.
“조카분이 어서 집에 꼭 돌아왔으면 좋겠어요.”


하나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도, 무슨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김정훈 기자는 우리를 번갈아 보며 힘없이 웃었다.
“고맙다. 이런 얘기 사실 누구한테도 해본 적이 없는데...”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김정훈 기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근데 정말 악질이야.

이요셉 목사.
자기 자신도 속아서 재산을 잃은 사람이, 그걸 만회하겠다고 똑같은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의 믿음을 이용해 돈을 갈취하고 있으니 말이야.”


그 말이 내 가슴에 돌멩이처럼 박혔다.

만약 그 이요셉 목사가 정말 아버지라면, 아버지가 다른 사람들의 믿음을 이용해 돈을 갈취하고 있다면.
그 사실은, 아버지가 예고 없이 나를 떠난 것보다 훨씬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마지막으로 본 아버지의 얼굴, 그날의 광기 어린 눈빛이 스쳤다.
그 눈빛은 왠지 모르게 영상 속 목사의 눈빛과 겹쳤다.


김정훈 기자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이제 알겠지.

왜 내가 네게 접근했던 건지”


조각처럼 흩어져 있던 단서들이 하나로 맞물리며 커다란 원을 그리는 느낌이었다.

그 원의 중심에, 아버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스며들었다.

순간 목이 바짝 말랐다.

가슴 깊은 곳에서 열기가 치밀어 올랐다.


내가 물었다.

“아저씨, 그 목사가 우리 지부에서 예배하는 날은 아직 안 잡혔나요?
진수 말로는 지부를 돌아가면서 한다고 하던데요.

설교영상이 제가 생각하는 세트장이 아니라면요.”


“응. 나도 그렇게는 알고 있는데 아직 그런 소식은 없었어.

다만, 조만간 부흥회를 연다는 얘기는 전해 들었어. 전도사한테.”


“정말요? 날자는요?”
나는 숨을 삼켰다.


김정훈 기자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딱히 정해진 날자는 없는 거 같아. 날 정해지면 알려줄게.”


“네. 꼭요. 그날은 꼭 직접 보고 싶어요.

만약 그 목사가 정말 아버지라면, 저를 보고 분명 놀랄 거예요.

그날이면, 모든 게 밝혀지겠죠.”


내 말이 끝나자,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잠시 후, 하나가 가방을 뒤적였다.

그리고 가방에서 비디오테이프 두 개를 꺼냈다.

하나는 테이프를 나와 김정훈 기자에게 건넸다.

지난 화요일, 교회 안을 촬영한 영상 복사본이었다.


“아저씨, 이것도 취재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김정훈 기자는 테이프를 받아 가방 안에 넣었다.
“고마워. 분명 도움이 될 거야.”


“저도 한번 돌려 봐야겠어요.”


내가 김정훈 기자에게 물었다.
“아저씨 이제 어떻게 하실 거죠?”


김정훈 기자는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우선, 신도들에게 휴거가 거짓이라는 걸 사람들에게 알려야 해.
그다음엔 차명 계좌를 찾아서 압류하고, 돈을 환수해서 피해자들에게 돌려줘야지.”


“꼭 그렇게 됐으면 좋겠어요.”
하나가 말했다.

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