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덩치

장편소설 스페셜 미드나잇 3부

by 나라연

얘기를 듣던 하나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영아… 진짜 네 말이 진짜였구나.”


김정훈 기자가 의아한 듯 물었다.
“뭐가?”


하나가 설명을 덧붙였다.
“아까 그 집 가구들 말이에요. 얘가 전에 살던 집 가구랑 똑같다고 해서요. 전 얘가 뭔가 착각한 줄 알았거든요.”


김정훈 기자는 짧게 숨을 들이쉬었다.
표정엔 놀람과 확신이 동시에 떠올라 있었다.
그는 하나를 가만히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그때 그 단발머리 여학생이었지. 맞지?”

그 말에 나는 놀랐다.
하나도 눈을 크게 뜨더니 곧바로 나를 봤다.


“하나도… 누군지 이미 알고 계셨던 거예요?”

그는 말이 없었다.

하나가 과장된 몸서리를 치며 얼굴을 찡그렸다.

“아저씨 진짜 소름 돋는 사람이네.”

“그건 아니고 그때 기억을 떠올려 보니 얼굴이 생각난 것뿐이야.”


공교롭게도 선배, 하나, 그리고 김정훈 기자까지 셋 모두가 그날 빨간 대문집에 들어온 이삿짐을
각자의 자리에선 우연히 마주쳤던 셈이었다.


그때 마을로 들어오는 마지막 버스가 슈퍼 앞에 멈춰 섰다.
우리 학교 교복을 입은 한 명 버스에서 내렸다.
덩치였다.

무거운 책가방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앞으로 걸었다.
나는 무심코 덩치의 뒷모습을 눈으로 따라갔다.


하나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쟤는… 시간이 몇 신데 이제 오는 거야.”


덩치는 담벼락을 따라 우측 어둑한 골목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그 골목에서 하나 어머니가 나타났다.

“하나야, 거기서 뭐 하니? …어, 학생은 왜 거기 있는 거고?”


하나는 머쓱한 듯 어깨를 움츠렸다.
“어, 엄마. 곧 들어갈게.”


나와 기자는 허리를 숙여 인사했고, 하나 어머니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하나는 짧게 숨을 고르고 말했다.
“오영아, 시내로 나가는 막차 곧 올 거야. 난 엄마 가게 마감하는 거 같이 도와야 해서 그만 들어갈게.”

“응. 오늘 고마웠어.”

하나는 김정훈 기자에게 말했다.
“아저씨도 버스 타고 나가실 거죠? 그럼 얘 좀 잘 부탁해요.”

그녀는 가방을 둘러메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곧 시내로 나가는 막차가 도착했다.
우리는 나란히 뒷자리에 앉았다.
버스가 출발하자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흔들리는 가로등 불빛이 창문을 스칠 때마다 김정훈 기자의 얼굴이 잠깐씩 빛 속에 드러났다 사라졌다.


한동안 말이 없던 그가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뜬금없는 미안하다는 그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네? 뭐가요?”


김정훈 기자는 침을 삼키며 잠시 침묵했다가 낮게 말했다.

“전에 있었던 신문 배달 사고들 말이야. 그거… 다 내가 한 짓이야.”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그 멍한 상태로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난처한 표정으로 시선을 앞을 고정한 채 말했다.
“신문이 안 왔다고 거짓 전화한 것도, 신문사절 종이를 붙인 것도… 전부 나야.”

“네? 진짜요?”

“네가 누군지 확인해야 했어…. 그래서 어쩔 수 없었다. 미안하다.”


나는 허무하게 웃음을 내뱉었다.

“근데… 제가 배달하기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는데요?”
“그래? 그건 내가 한 게 아닌데. 그럼… 정말로 신문이 안 간 거겠지.”


나는 피식 웃었다.
“저 그 일 때문에 얼마나 곤란했는지 아세요?”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미안하다고 했잖아.”


버스 안에 잠시 조용한 시간이 흘렀다.
창밖엔 집집마다 불빛이 가득했다.


나는 물었다.
“그럼… 왜 이장 아저씨는 아버지가 빛과 함께 사라졌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릴 한 걸까요?”

김정훈 기자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게… 나도 이상했어.
술에 취해서 헛것을 본 걸 수도 있고… 아니면…”

나는 그의 말을 끊었다.
“아마… 아버지의 부탁이었을 거예요.”

내 말이 버스 안 공기 속에 가라앉았다.

그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엔 동정이 아니라, 뭔가 확신을 찾은 듯한 표정이었다.


버스가 선안역 정류장에 다다르자, 그는 명함 하나를 건넸다.


'작은 카페'
앞면엔 가게 이름과 전화번호, 뒷면엔 가게 약도가 있었다.

금요일 저녁 8시에 그곳에서 보자는 말을 하고 버스에서 내렸다.

나는 그 명함을 다시 한번 천천히 훑었다.

실마리 하나를 손에 쥔 느낌이었다.





다음날 저녁, 진수가 순대국밥 두 그릇과 순대 한 접시를 주문했다.
진수가 저녁을 사준다고 해서 중앙시장 순대골목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나는 테이블에 티슈를 깔고 수저를 올려놓으며 물었다.


“야, 무슨 돈이 있어서 순대를 사준다는 거야? 용돈이라도 받았어?”
“응, 우리 전도사님이 줬어.”
“전도사님이 왜?”
“전도 잘했다며 용돈을 주더라, 그래서 얼른 받았지.”
“원래 전도해 오면 용돈도 주고 그러는 거야?”

“그런 건 아닌데…. 야, 용돈을 받았다는 게 중요한 거지.”

진수는 씩 웃었다.

“사실은 용돈을 주면서 너랑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했어.”

“나랑 왜?”

“그냥 사주면 먹어, 뭘 그리 궁금한 게 많냐?”

“뭔가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그런 거 없어. 그냥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만 했어. 진짜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의도가 의심스러웠지만 더 캐묻지 않았다.


“참, 진수야. 궁금한 게 있는데.”
“뭔데?”
“예배 왜 화요일에 해? 보통 일요일에 하잖아.”

진수가 젓가락으로 깍두기를 하나 집으며 말했다.
“말했잖아. 우리 목사님이 지부 돌면서 예배한다는 거.”

난 고개를 끄덕였다.

“본교회는 일요일에 하고, 다른 지부는 그 영상 화요일에 보는 거야. 영상 편집하고 비디오를 복사하는 데 시간 걸리니까.”

“아, 그렇구나. 예배 시간은 아침 아홉 시고?”
“그렇지.”
“그럼 다음에 우리 교회에 순번 돌아오는 날엔, 나 신문 아침 배달하고 바로 예배 봐야겠네.”
“너네 신문은 석간 아니었어?”
“야, 일요일엔 아침 배달이야.”
“아, 그건 몰랐네. 하하.”


나는 다시 물었다.
“그 목사님 이름 말이야. 본명인지 모른다 그랬지?”
“응. 왜?”
“그냥… 궁금해서.”


진수는 나를 힐끔 쳐다봤다.
“너 요즘 목사님한테 관심 진짜 많다.”

나는 웃음으로 대답을 피했다.
진수가 말했다.

“목사님이 우리 교회에서 예배하는 날 잡히면 알려줄게.”


식당 아주머니가 순대국밥과 순대를 가져왔다.
따끈한 김이 올라오며 눈앞이 잠깐 흐려졌다.


“진수야. 맛있게 잘 먹을게.”


담백 매콤한 국물에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오랜만에 밥다운 밥을 먹은 기분이었다.
순대는 다 먹지 못해 따로 포장을 했다.


둘이 순대골목을 빠져나오면서 대화를 하며 시장 입구에 막 빠져나가는 길이었다.

그때 낯선 남자 셋이 우리 앞을 가로막았다.

얼굴을 봐선 또래로 보였지만, 사복 차림이라 학생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그들은 말보다 눈빛이 먼저 시비를 걸고 있었다.


앞에 선 청카바 차림의 남자가 불쑥 말했다.

“야, 너네. 따라와.”

내가 물었다.

“왜요?”


그가 바짝 다가와 불쾌한 숨결을 뱉었다.
“왜긴 아까 우리 보면서 실실 쪼갰잖아?”
“우린 그런 적 없는데요.”

청카바 남자의 눈이 얇게 찢어졌다.
“이 새끼가… 확 그냥. 따라오라면 그냥 따라와.”


분위기가 일순간 험악해졌다.
진수의 얼굴은 잿빛으로 변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들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시장을 벗어나자 소음이 급격히 줄었다.
오십여 미터쯤 걸어가 남산고가도로 아래 좁은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막다른 골목, 누런 가로등 불빛 하나가 흔들리며 위태롭게 빛을 뿌렸다.
그 아래, 벽에 등을 기대고 있던 남자 하나가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그리고 그의 발끝 옆에서 우리 학교 교복을 입고서 무릎 꿇고 있는 학생 한 명이 보였다.

고개를 깊이 숙이고 있었고, 붉은 코피가 턱선을 타고 떨어져 바닥에 작은 점을 만들고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누군지 알 수 없었다.


“니들 얘 누군지 알지?.”

그때 학생이 고개를 들었다. 얼굴은 코피와 먼지로 얼룩져 있었고 피가 흐른 지 오래인 듯 핏자국이 굳어 있었다.

진수의 목소리가 떨렸다.
“희훈아…”

그 학생은 덩치였다.


그때 덩치 이름이 희훈이란 것도 알게 되었다.

청카바 남자가 비웃었다.
“이 새끼들. 같은 교복이라 혹시나 했는데 서로 아는 사이였네.”

옆에서 키 작은 남자가 말했다.
야, 니들. 돈 있는 거 다 내놔.”

나는 숨을 한번 삼키고 물었다.

“근데… 왜 저렇게까지 때린 거예요?”

키 작은 남자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처음엔 곱게 보내려 했는데 이 새끼가 돈 없다고 구라 치길래… 겁도 없이 덤비다가 이 꼴 난 거야. 털어봤더니 아 씨발 진짜 십 원 한 장 없는 거지새끼더라고.”


청카바 남자가 다시 앞으로 나섰다.

“그러니까 너네가 친구 몫까지 좋은 말로 할 때 돈 내놓고 깔끔하게 가라.”

“우리도 가진 돈이 없어요.”

내 말이 끝나자마자 진수가 내 팔을 툭 쳤다.

말리려는 듯한 손짓이었다.

나는 살짝 고개를 저어 진정을 시켰다.

청카바 남자가 비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우리가 너네 순대집에서 나오는 거 못 본 줄 아나?
지금부터 털어서 돈 나오면”


옆에서 키 작은 남자가 이어 말했다.
“십 원에 한 대씩이다.”

남산고가 아래 좁은 골목은 일순 정적에 잠겼다.
바람도 멎은 것처럼 느껴졌다.


청카바 남자가 말을 했다.
“야, 이 새끼들. 주머니 뒤져.”

그러자 키 작은 남자가 먼저 움직였다.

키 작은 남자가 내 셔츠 깃을 움켜잡았다.

“가만히 있으라니까.”


나는 진수를 뒤편 벽으로 밀어내고 손등으로 그의 손목을 탁 쳐냈다.

“앗!”

나는 그가 비명을 삼키기도 전에 한 발 뒤로 빼며 그의 손목을 비틀어 아래로 내렸다.
키 작은 남자의 상체가 기울어졌고 바닥으로 끌려 내려가는 듯한 자세가 되었다.

“아… 아, 씨… 잠깐만!”

청카바 남자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야, 뭐야 얘….”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또 다른 남자가 진수 쪽으로 돌진했다.

진수가 뒤로 밀려 넘어지려는 순간, 나는 옆차기로 그 남자의 무릎을 쳤다.

‘퍽.’

남자는 비명도 못 지르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청카바가 나를 향해 소리쳤다.
“야, 이 새끼가 진짜 죽고 싶….”

그가 말을 끝낼 틈도 없이 나는 주먹을 쥐었다.
온몸의 무게 중심이 발끝에 실리며 앞으로 튀어 올랐다.
청카바의 턱 가까이 정확하게 반 박자 빠르게 스트레이트가 꽂혔다.

‘툭.’

청카바 남자가 휘청이며 뒷걸음질 쳤다.
눈이 위아래로 흔들렸다.

그는 놀란 얼굴로 나를 봤다.

“야, 이 새끼 뭐야…?”


키 작은 남자와 청카바가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나는 청카바 남자의 주먹을 피하면서 다시 한번 오른쪽 훅을 짧게 꽂았다.
‘퍽’
턱이 꺾이며 그가 비틀거렸다.

키 작은 남자는 뒤쪽에서 팔을 잡으려 했지만 그때 왼발을 비틀어 중심을 잡고 주먹 대신 팔꿈치로 명치 쪽을 찍었다.
키 작은 남자가 헉소리를 뱉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막다른 골목 가로등 아래에서 담배를 피우며 광경을 지켜보던 남자가 꽁초를 바닥에 던지고 내게 달려들었다.

그때 무릎을 맞고 바닥에 주저앉아있던 남자가 내 한쪽 다리를 붙잡았다.
다리를 빼려고 했지만 쉽게 빠지지 않았다.

그때 갈비뼈 쪽으로 날아온 누군가의 무릎을 피할 수 없었다.

‘퍽’

짧고 묵직한 충격이었다.

순간 숨이 턱 막혔다.
그리고 시야가 흔들렸다.

내가 땅에 주저앉자 진수가 소리쳤다.

“오영아!”


그때였다.

골목 입구에서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울렸다.

“야! 뭐 하는 것들이야?”

모두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커다란 체격에 짙은 회색 트레이닝복 차림에 한 손에는 흰 봉지를 든 한 남자가 가로등 아래에 서있었다.


4층 복싱체육관 관장이었다.


청카바 남자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아 씨발. 아저씨, 그냥 가요.”


관장은 그 말까지 다 듣지도 않고 턱을 한번 쳐들었다.

“지금부터 십 초 센다. 그때까지 여기서 사라져.”


그리고 그는 한 손으로 흰 봉지를 돌리며, 다른 손은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천천히 걸어왔다.

표정은 기분 나쁠 때의 맹수처럼 느긋했다.


그가 서서히 다가오자, 키 작은 남자가 슬쩍 일어서더니 뒤도 안 돌아보고 골목 밖으로 달렸다.

뒤이어 청카바와 넘어져 있던 한 명도 서로 밀치며, 골목 밖으로 도망쳤다.
담배 피웠던 남자는 뒤늦게 욕을 한 번 뱉고 골목을 벗어났다.


관장은 나를 잠시 내려다보았다.

“… 너.”

나를 한참을 보다 관장이 입꼬리를 비틀었다.

나는 맞은 복부를 만지며 일어섰다.
순간 숨기고 싶었던 걸 들킨 듯한 기분이었다.


관장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 이놈이 진짜.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지 않겠네.”


그 말은 꾸중이면서도, 어딘가 인정의 뉘앙스가 섞여 있었다.

덩치는 여전히 무릎을 꿇은 채 흐느적거리는 손으로 코피를 닦고 있었다.

진수가 덩치에게 다가가 부축했다.
“희훈아… 괜찮아…?”

덩치가 진수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게, 괜찮아 보이냐?”


관장은 흰 봉지를 돌리며 말했다.

“일단 약국부터 가야겠다.”


나는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 관장님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관장님. 관장님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감사합니다.”

“감사하긴 나 없었어도 네가 다 해치울 것 같던데.”

“아니에요….. 근데 이 시간에 관장님은 여긴 어쩐 일이세요.”

“응 오늘 근처에 저녁 약속이 있었어. 살 것도 있고. 근데 순대는 잘 먹었냐?”

“시장에서 저희를 보셨어요?”
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관장은 시장 앞에서 우리가 그놈들에게 둘러싸여가는 모습이 이상해 뒤 따라온 것이라고 했다.

“앞으로 조심해. 시장 근처엔 불량배들이 많으니까.”


관장은 약국으로 우리를 데려가 덩치 얼굴 상처를 소독해 주고 약까지 챙겨줬다.

그리고 차로 우리를 집까지 태워다 주었다.

관장은 복싱체육관으로 들어갔고 우리는 옥탑방으로 올라왔다.



덩치는 저녁도 못 먹은 상태였다.

나는 라면을 끓여 김치와 함께 내놓고, 아까 포장해 온 순대도 상에 펼쳐놨다.

덩치는 허겁지겁 라면을 비웠고, 순대까지 모조리 입에 털어 넣었다.


덩치는 물 한 컵을 들이켜고 말했다.

“라면 진짜 잘 먹었다. 난 김희훈이야.”

“응. 난 유오영이야. 둘이 중학교 친구 맞지?”


진수를 보고는 희훈이가 말했다.

“친구라기보단 그냥 중학교 동창이지.”

“몸은 좀 어때 괜찮아?”

“괜찮아졌어. 내가 맷집이 좀 있거든.”

희훈은 씩 웃으려다 얼굴에 난 상처가 아픈 지 금세 찡그렸다.

찡그린 얼굴로 넌지시 물었다.

“너네는 어쩌다 그놈들한테 끌려온 거야?”

“시장에서 나오는 길이었는데 그놈들이 다짜고짜 그쪽으로 데려가더라.”

“걔네. 시장에서 애들 삥 뜯는 걸로 유명한 놈들이야. 내가 손 좀 봐주려고 했는데, 1대 4는 좀 무리더라.”

희훈은 웃으면서 괜한 허세를 부렸다.

내가 바로 받아쳤다.

“넌 나한테도 안되면서 무슨 1대 4야.”

“야, 쪽팔리게…. 말이라도 그렇게 해야 분이 풀릴 거 아냐.”

희훈은 괜히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 인정! 그러는 넌 어쩌다 놈들한테 붙잡힌 거야?”

“나도 운 나쁘게 걔네한테 걸린 거지 뭐.”


희훈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지난번 일들은 미안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다 지난 일인데 뭐. 그리고… 그때 내가 너무 세게 때렸던 건가 싶기도 하고. 그래서 내가 오히려 미안하다.”

“야.. 그냥 넘어가주면 안 되냐? 쪽팔리잖아.”

“알았어. 여기서 그만. 그리고 사과는 나보다 진수한테 먼저 해야 하지 않나.”

희훈은 쑥스럽다는 듯 멋쩍게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진수야. 그동안 못살게 굴어서 미안하다.”


진수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야, 미안하단 한마디로 퉁치려고? 내가 당한 게 얼만데.”

희훈이 바로 맞받아쳤다.

“어쭈? 아유 이 새끼 봐라. 오영이 옆에 있으니 내가 만만해 보이냐? 어? 그래서 어쩔 건데 인마.”


둘은 금세 서로 멱살 잡는 시늉을 하더니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조금 전까지 골목에서 벌어진 일이 무색할 정도로 방 안에 따뜻한 기운이 돌았다.


시간은 어느새 밤 아홉 시가 가까워졌다.

희훈이 시간을 보며 말했다.

“난 이만 가봐야겠다.”

희훈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어젯밤 하나슈퍼 앞에서 버스에서 내리던 희훈이의 모습이 불현듯 떠올랐다.


나는 무심결에 말했다.

“용정동까지 가려면 지금 나가야지. 막차 놓치겠다.”

진수가 순간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봤다.

희훈도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너… 내가 거기 사는 거 어떻게 알았어?”


나는 태연한 척 대답했다.

“내가 그 동네 신문 배달하거든. 네가 버스에서 내리는 거 몇 번 봤어.”

난 어제 늦은 밤에 봤다고 굳이 말하지 않았다.

“아… 그랬구나.”

나는 옆에서 미묘하게 입술만 깨물고 있는 진수를 봤다.

진수는 그 동네를 알고 있으면서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많이 늦었다. 어서 가라. 진수 너도.”


나는 둘을 배웅하려고 문 밖까지 따라 나갔다.

희훈은 평상 앞에서 잠시 멈춰 서더니, 어색하게 뒤통수를 긁었다.

“오영아… 다음에도 여기 와도 되냐? 그냥… 잠깐 놀러 오고 싶을 때.”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든 와. 내가 없어도 평상에 앉아 있다가 가도 되고.”

“오케이. 라면 잘 먹고 간다.”

희훈은 환하게 웃으며 손을 들어 보였다.

진수도 손을 흔들었다.

“오영아. 내일 봐.”


희훈과 진수는 계단 아래로 내려갔고, 나는 발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서 있었다.

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