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기자, 김정훈

장편소설 스페셜 미드나잇 3부

by 나라연

나는 자연스럽게 아까 신문으로 가방을 덮었다.
하나는 캠코더의 뷰파인더를 살짝 내리고, 조심스럽게 지퍼를 닫았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쥐색 정장남이 팔짱을 낀 채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둘이 뭘 보고 있던 거 같던데.”

나는 신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요. 낱말풀이 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난 곧바로 물었다.

“아저씨는 여기 어쩐 일이세요?”


하나가 재빨리 끼어들었다.
“버스 타러 오신 거겠죠. 10시 차라 그랬잖아요.”


나는 얼른 맞장구쳤다.
“아, 맞다. 그랬죠.”


그는 손가락으로 가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가방엔 뭐가 들어 있는 거지?”

하나는 가방을 두 손으로 꼭 끌어안았다.

“가방이요? 그냥 교과서랑 노트요. 그리고 성경 책하고요.”


색 정장남은 잠시 우리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재킷 주머니에서 손바닥만 한 전자기기를 꺼냈다.

검은 플라스틱 케이스에 ‘SONY’ 로고가 선명했다.
그가 옆면의 버튼을 눌렀다.
‘딸깍- 지잉’


“진수 친구들이구나. 한 명이라더니 두 명이나 데리고 왔네.”

“안녕하세요. 원래 저 혼자 오기로 했는데…”

‘딸깍.’
그가 정지 버튼을 눌렀다.


하나와 나는 동시에 서로를 바라봤다.

그건 아까 전도사 방에서 나누었던 대화였다.


쥐색 정장남은 자신의 정체를 숨길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그는 녹음기를 재킷 안주머니에 다시 집어넣었다.


나는 기습적으로 물었다.
“아저씨 이름, 김정훈 맞죠?”


그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그때, 골목 어귀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곧바로 검지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댔다.


골목에서 약 십여 명쯤 사람들이 빠져나왔다.
그 무리 중 예배 때 대표 기도를 했던, 머리 희끗한 남자가 우리 쪽을 향해 말했다.
“안 집사, 아직 안 갔네요. 아까 빨리 나가길래 벌써 집에 간 줄 알았는데.”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우리 쪽으로 쏠렸다.

쥐색 정장남이 능숙하게 대답했다.
“예, 집에 가려는데 얘들이 붙잡아서요. 이것저것 궁금한 게 많더라고요.”


옆에 있던 중년 여자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 안 집사님은 참 열심이시라니까.”


그가 가볍게 웃으며 되받았다.
“별말씀을요. 권사님은 어쩐 일이세요?”

“슈퍼 문 닫기 전에 먹거리 좀 사두려고요.”

“아 네.”
그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하나와 나도 덩달아 인사했다.


그때, 왼편 멀리서 버스 헤드라이트가 다가왔다.
60대 부부는 슈퍼 안으로 들어갔고, 나머지 사람들은 정류장으로 건너와 줄을 섰다.

잠시 후, 버스가 정류장 앞에 멈춰 섰다.


한 여신도가 버스에 오르기 전, 우리 쪽을 힐끔 보며 말했다.
“너희는 안 타니? 집사님도 버스 안 타세요?”

쥐색 정장남이 즉시 대답했다.
“네, 먼저들 가세요. 애들이랑 할 얘기가 좀 있어서요.”

“아, 그러세요? 그럼 또 뵈어요.”

그 여신도가 인사를 하고 버스에 올랐다.
버스가 출발하자, 정류장 주변은 금세 조용해졌다.


쥐색 정장남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네가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아?”


하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정말 기자 아저씨였네.”
“목소리 좀 낮춰.”
“와~.”
하나는 나를 보며 웃었다.


그가 나를 보며 물었다.

“뭐가 와야. 내가 기자란 걸 또 어떻게 알았어?

“지난주 화요일 기사를 봤어요. 르포 기획기사요. 읽자마자 바로 알겠더라고요. 그 기사에 나온 교회가, 그 빨간 대문집이란 걸요.”

하나도 끼어들었다.

"맞아요. 저도 그 기사보고 바로 저 집이 떠올랐으니까요."


그는 한쪽 눈썹을 올렸다.

“그래? 대체 뭘 보고 그걸 확신한 거지?”

“지난주에 진수에게 그 집이 교회라는 걸 처음 들었어요. 그리고 다음날 우연히 그 기사를 봤는데, 그 집을 가리키고 있었어요.”


“그럼 더더욱 거길 오면 안 됐지. 내가 그때 뭐랬어? 얼씬도 하지 말라고 했잖아.”

"왜 오면 안 되는데요?”

“그걸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그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여긴 종말론을 믿는 교회야. 그게 무슨 뜻인지 알잖아.”

“알아요.”
“그런데도 왔다고?”
“그래서요.”
“뭐?”
“그래서 왔다고요.”


그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때 슈퍼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까 슈퍼에 들어갔던 60대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한 손에 비닐봉지를 들고 나왔다.
머리 희끗한 남자가 말했다.
“안 집사, 아직 안 갔네요.”
“네. 다음 버스 타려고요.”
“너무 늦었어요. 얼른 들어가세요.”
“네. 권사님. 살펴가세요.”


그들이 골목 모퉁이를 돌아 완전히 사라지자, 그가 다시 내게 물었다.

“그걸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겠다고 일부러 거길 온 거라고?”
“아뇨.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
“그래? 그럼 진짜 이유는 뭔데?”
그는 나를 흥미롭다는 듯 바라봤다.


나는 숨을 한번 고르고 말했다.
“처음엔 아저씨가 궁금했어요. 뭐 하는 사람인지, 그리고 그 집이 어떤 곳인지.”

“그 두 가지 궁금증은 풀렸을 테고. 또?”


순간, 그는 이미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다는 눈빛이었다.

“아버지를 찾으려고요.”


그는 놀라지도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를 찾았니?”
짧고 단호한 질문이었다.


“아직요.”

“아직이라니?”
그가 되물었다.
“찾았는데, 직접 확인은 못 했다는 뜻이야?”


그의 목소리에 뭔가 날카로운 게 섞여 있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한 발 다가오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 뭔가 알고 있는 거지?”

숨이 막히는 침묵이 흘렀다.


그때 하나가 나섰다.
“기자 아저씨, 무슨 말씀하시는 거예요? 얘가 알긴 뭘 알아요? 설마 얘 뒤조사라도 한 거예요?”


그는 잠시 우리를 번갈아보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좋아. 그럼 나도 숨길 게 없겠네.”



내가 예상한 대로 그는 동화일보 사회부 기자, 김정훈이었다.
그는 교회 안에서는 ‘안형민’이라는 가명으로 불리며, 두 달 가까이 잠입 취재를 이어오고 있다고 했다.


그는 우연히, 몇 차례 빨간 대문집 앞에서 집안을 엿보던 나를 봤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예전에 누군가의 시선을 느꼈던 그날이 떠올랐다.
그는 그때, 내가 그 집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사람같아 보였다고 했다.


그 일을 계기로 나에 대한 의심이 생겼고, 신문 보급소에 연락해 구독자로 가장해 내 신분을 확인했다고 한다.

그는 내 이름을 듣는 순간 깜짝 놀랐다고 했다.

한 번도 얼굴을 보진 못했지만 유오영이란 이름은 알고 있었다고 했다.
처음엔 동명이인인가 싶었지만, 조사해 보니 내가 작년 서안에서 발생한 실종 사건의 피해자 아들과 동일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가 아버지의 실종사건을 알게 된 것은 지역지에 실린 신문기사 때문이었지만,

갑자기 빛과 실종되었다는 목격자의 말에 실소를 금치 못했다고 했다.

꿈이라면 모를까. 상식적으로 세상에 그런 일이 절대 벌어질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해 전국 곳곳에서 이처럼 갑자기 사라지는 비슷한 실종 사례가 이어지고 있었고, 사라진 직후 대부분 전 재산을 처분했다는 것이다. 나중에서야 밝혀졌지만, 대다수가 특정 교회와 연관되어 있었다.


그는 아버지 실종도 단순한 실종이 아니라는 직감했고 곧바로 서안경찰서를 찾았고 실종 신고가 실제로 접수되어 있는 걸 확인했다고 했다.

실종 당시 목격자는 마을 이장, 신고자는 실종자의 아들 유오영.

그는 그때 내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이었다.


곧이어 나를 만나러 집을 찾아갔으나 결국 만나지 못했다고 했다.

그 당시 우리 집 앞에 기자들이 번갈아가며 대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기자들을 상대하기 싫어 난 집에 아무도 없는 척, 모든 창문에 커튼을 치고 불을 끈 채 방 안에 숨죽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하는 수없이 마을 이장을 찾아갔고 기사와 마찬가지로 이장은 그날의 일을 ‘빛과 함께 사라졌다’고 한마디로 설명했지만, 왠지 꾸며낸 이야기처럼 들렸을 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점빵에서 내 아버지와 나눈 대화 내용을 전해 들은 뒤, 그는 아버지가 종말론에 빠져 있었다는 것을 그때 확신했다고 한다.


가족과 연락을 끊고, 재산을 정리하고, 어느 날 갑자기 자취를 감춘 사람들처럼, 아버지 역시 같은 길을 걸었다는 확신이었다.


김정훈 기자는 그 이후에도 서안에 몇 차례 찾아간 적이 있다고 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우리 집을 찾았던 날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시기는 이미 내가 선안으로 이사를 떠난 지 며칠이 지난 후였다.



김정훈 기자는 서안에 도착하자마자 경찰서를 먼저 찾았다.
담당 형사에게 실종사건의 진행 상황을 물었지만, 수사에 진전이 없다는 답변뿐이었다.

경찰서를 나온 그는 이장댁으로 향했다.

약 이십여분쯤 지나 그가 우리 마을로 들어섰을 때, 우리 집 마당에 이삿짐 트럭 한 대가 세워져 있는 것을 보았다.

실종된 지 얼마 안 된 시점에 이사를 간다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그는 직감적으로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집 근 처 길가에 차를 세워두고 담배를 물고 한동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마당에는 인부들이 분주히 오가며 짐을 나르고 있었다.
트럭 짐칸에는 이미 절반가량의 짐이 실려 있었고, 남은 가구들이 하나둘씩 밖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그는 담배를 비벼 끄고 트럭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짐을 나르던 인부 한 명에게 이삿짐이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인부는 자신들은 단지 짐만 나르는 사람들이라, 목적지는 모른다고 했다.

언제쯤이면 짐을 다 실을 수 있겠느냐고 재차 묻자, 인부는 잠시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다가 정오쯤이면 끝날 거라고 짧게 대답했다.


그는 서둘러 이장댁으로 향했다.

이장이라면 행선지를 알고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장 집엔 아무도 없었다.
다시 그 집에 돌아왔을 때, 트럭문은 잠겨있었고 인부들이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4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 둘이 대문 밖으로 나왔다.
둘은 트럭 앞에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더니 차에 올랐다.
점퍼 차림의 남자가 운전석에, 양복 차림의 남자가 조수석에 앉았다.
트럭은 천천히 골목을 빠져나갔다.


그는 거리를 두고 그 트럭을 뒤따랐다.
트럭은 서안 시내로 들어가 터미널 근처 설렁탕집 앞에 멈췄다.
마침 시간을 보니 점심때였다.
그들은 식당으로 들어갔고, 잠시 텀을 두고 뒤따라 들어가 한쪽 자리에서 식사를 주문했다.

식사를 하며, 두 사람을 지켜봤지만 대화는 거의 없었다.


그들은 식사가 끝내고 근처 다방으로 들어갔다.
차마 거기까지는 따라가진 못하고, 차 안에서 기다렸다.

삼십 분쯤 지나 그들이 나와 트럭에 올랐다.

이삿짐 트럭이 출발한 후에 천천히 뒤를 따라붙었다.


그렇게 약 두 시간 반쯤 뒤 그 트럭이 멈춰 선 곳은 바로 그 빨간 대문집 앞이었다.


트럭이 대문 앞에 서자, 이미 그곳에는 작업복 차림의 남자 네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속도를 줄여 그 트럭 옆을 천천히 지나쳤다.
룸미러에 두 남자가 내리는 모습이 비쳤다.
작업복 차림의 사람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여 인사했고, 몇 마디 나누더니 곧바로 짐을 내리기 시작했다.


그는 하나슈퍼 앞에 도착해 차를 세웠다.
그리고 슈퍼 안으로 들어가 카운터에 있던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저기, 저 골목 위에 빨간 대문집에 누가 이사 오는 건가요?”
아주머니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 집엔 선생님 부부가 살아요. 그분들 이사 갔다는 얘긴 못 들었는데…”


내 얘기가 믿기지 않았는지 잠시 밖을 나갔다 돌아온 아주머니는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음료수를 하나 사서 평상에 앉아 마신 뒤, 천천히 빨간 대문집을 향해 걸었다.

그 집 앞에 도착해 트럭 주변에서 동네 사람인 척 어슬렁거렸다.
한 인부가 그를 경계하듯 흘끗 쳐다봤다.

잠시 후, 네 명의 인부가 짐 나르는 것을 멈추고 구석 담벼락 쪽으로 모여 물을 나눠 마셨다.

그는 그들이 있는 쪽 담벼락 너머 골목 안으로 가서 조용히 앉았다.

잠시 후, 담 너머에서 들려오는 인부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웬 짐이 왜 이렇게 많은 거야.”
“부잣집인가 봐. 가구며 가전이 다 고급에다 최신제품이야.”
“저 정도면 재산도 꽤 됐겠지.”
“요즘 우리 교회에 그런 사람들이 한 둘이어야지.”
“암튼, 우리 목사님 또 횡재하셨네.”


누군가가 낮은 목소리로 제지했다.
“어이, 목소리 좀 낮춰.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여기 우리 말고 누가 있다고 그래?”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단 말 몰라?”
“알았어, 그만해. 어디 무서워서 말도 못 하겠네.”
“입조심하자는 거야.”
“다 쉬었으면 늦기 전에 어서들 짐 옮기자고.”


그때 왼편에서 자전거 바퀴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이는 시늉을 했다.

자전거가 휙 하고 그의 앞을 지나 트럭 앞에 멈췄다.

‘동화일보’ 스티커가 붙은 신문배달 자전거였다.


뒷머리가 긴 신문배달원은 한동안 짐을 들이는 인부들을 지켜봤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하고는 신문 한 부를 들고 그 집 마당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다시 나와 자전거를 타고 슈퍼 쪽으로 향했다.


막 골목을 빠져나오려는 그때 단발머리를 한 여학생이 앞을 지나갔다.
그녀도 마찬가지로 트럭 앞에 멈춰 서더니 짐 나르는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슈퍼 쪽으로 걸어갔다.


둘 다, 낯선 광경을 보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도 골목을 돌아 나와 트럭 앞을 지나쳐 슈퍼로 향했다.
슈퍼에 도착해 차에 올라 시동을 걸며 슈퍼쪽을 바라봤다.

슈퍼 안에는 아주머니 대신 조금 전 보았던 단발머리 여학생이 카운터에 서 있었다.





우리 집 가구들이 왜 그 집에 있었는지 이제야 의문이 풀리는 듯했다.

그때 당시, 부동산 중개소 직원이 집을 찾아와서 새 주인이 곧 들어올 거라며, 가능한 한 빨리 집을 비워달라고 했다.

그리고 가져가지 못하는 큰 짐 같은 것들은 부동산에서 알아서 처분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난 최소한의 짐만 꾸려 서둘러 그 집을 비워준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 집 물건들이 빨간 대문 집으로 그대로 옮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지난번 휴거 소동 기억하지?
뉴스에서도 봤다시피 그 교회에 전 재산을 헌납한 신도들이 많았다고.
아마 네 아버지도 그중 한 사람이었을 거야.”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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