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교회 안으로

장편소설 스페셜 미드나잇 3부

by 나라연

마당을 지나 다섯 계단을 올랐다.

현관으로 이어지는 약 2미터 남짓한 바닥에는 신발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리고 왼편에 3단 신발장 두 개가 있었는데 거기에도 신발로 차 있었다.

모두 합해 오십 켤레는 족히 넘어 보였다.


거실로 들어서자, 마치 우리를 오랫동안 기다린 사람들처럼 미소로 반겼다.

하지만 그 미소는 어딘가 억지로 지은 듯,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식사를 끝낸 뒤인지 집안엔 옅은 음식 냄새가 남아 있었다.


사람들은 나이대가 제각각이었다.

성년부터 노인까지, 남녀노소가 뒤섞여 있었다.

간혹, 어린아이와 교복을 입은 학생도 간혹 보였다.

하지만 그들 중엔 쥐색 정장남도, 피켓녀도, 수염이 덥수룩한 그 장발 남자도 보이지 않았다.

간단한 인사를 마친 사람들은 의무를 다했다는 듯 조용히 흩어졌다.

몇몇은 두 개의 방으로 들어갔고, 나머지는 거실에 남았다.

닫혀 있던 방 하나의 문틈으로는 싱크대와 냉장고가 보였다.

그 안쪽에서 물소리와 달그락대는 소리가 나직하게 흘러나왔다.


집 밖에 십자가가 달려 있지 않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실내도 마찬가지였다.
그 흔한 십자가도, 예수 초상화도 걸려 있지 않았다.
대신 괘종시계와 일력이 걸려 있었고, 그 사이엔 ‘D-170’이라 적힌 작은 화이트보드 하나가 매달려 있었다.

그 아래엔 유리문 네 짝이 달린 장식장이 있었고, 그 위엔 TV와 비디오 플레이어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유리장 안에는 손글씨로 날짜가 적힌 비디오테이프들이 차곡차곡 꽂혀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낯설지가 않았다.

예전 우리 집에 있던 것들과 너무 닮아 있었다.

괘종시계, TV, 비디오 플레이어, 장식장까지 모양도, 컬러도 거의 비슷했다.

나는 천천히 시선을 옮기며 그것들을 하나하나 훑었다.

등줄기를 따라 서늘한 것이 스며 올랐다.


그때, 하나가 팔꿈치로 내 팔을 툭 쳤다.

“뭐 해? 진수가 따라오래.”

“.... 어.”

나는 진수 뒤를 따랐다.

진수가 멈춰 선 곳은 거실을 지나 오른편에 닫혀 있던 방문 앞이었다.

진수가 조심스레 노크하고 문이 열었다.


그 방 안에는 몇 번 봤던 피켓녀가 앉아 있었다.

하지만 내 시선은 그녀가 아닌, 그 방 안의 가구들에 멈췄다.

원목 책장, 책상, 의자, 책꽂이, 스탠드, 탁상시계까지 모든 게 낯익었다.

단지 낯선 것은 방문 옆에 놓인 짙은 호두빛 피아노 한 대뿐이었다.


등줄기를 타고 차가운 무언가가 서서히 올라왔다.

하나가 팔꿈치로 내 팔을 툭 건드렸다.

그녀가 나를 바라보며 입모양으로 물었다.

‘너 왜 그래?’

나는 짧게 고개를 저었다.


진수가 피켓녀를 전도사라고 소개했다.

우리는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녀는 내 얼굴을 한참 바라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너, 어디서 본 적 있는 것 같은데?”

“... 네? 저요?”

나는 잠시 숨을 삼켰다.

확실히 그녀를 몇 번 본 적이 있지만, ‘그렇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이내 시선을 거두며 말을 돌렸다.
“아무튼, 잘 왔어. 예수님이 너희를 구원해 주실 거야.”
“... 네.”

잠시 후, 그녀는 하나를 향해 물었다.
“너, 저 아래 가게 보던 애 아니니?”
“네. 거기서 가끔 아르바이트해요. 기억하지 못해 죄송해요.”
하나는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아냐, 죄송할 것까진 없고."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피켓녀가 말했다.
문이 열리고, 누군가 방 안으로 들어섰다.
나는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다.


바로 쥐색 정장 남이었다.

그는 나를 보자 놀란 듯, 얼굴 표정이 잠시 굳었다.

그리곤 아무렇지 않은 듯 어색한 미소가 번졌다.

“아, 너네가 진수 친구들이구나. 한 명이라더니 두 명이네.”
진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하세요. 원래 저 혼자 오기로 했는데, 제가 친구를 데리—”
내가 급히 말을 잇자, 피켓녀가 환한 웃음으로 가로막았다.
“둘이면 더 좋죠. 주님도 기뻐하실 거예요.”


쥐색 양복남이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거들었다.
“그러게요. 하나보다 둘이 더 낫지요.”

그는 진수를 바라보며 웃으며 말했다.

진수, 잘했어.”

그의 말투엔 억지로 눌러 담은 친절함이 배어 있었다.

나는 그 미소의 이면에 뭔가를 숨기고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너희들, 이곳에 온 걸 환영한다. 예수님이 너희를 구원해 주실 거야.”

“아멘.”
진수와 피켓녀가 동시에 대답했다.


우리는 인사를 마치고 방을 나왔다.

거실로 돌아오자, 소파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자리를 내주었다.

진수는 손짓으로 우리를 앉히더니 다시 그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소파에 앉았다.
손으로 팔걸이를 내려다보며 쓸어보았다.

하나가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래?” 하고 묻는 듯한 눈빛이었다.
하지만 나는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이곳의 가구들이 너무 익숙해서 소름이 돋았다.

마치 예전에 살던 우리 집이 그대로 옮겨온 듯했다.


괘종시계가 여덟 번 울렸다.

그 소리에 맞춰, 큰방과 작은방에서 사람들이 하나둘 나왔다.
그들은 익숙한 듯, TV 장식장 앞을 향해 오와 열을 맞추어 무릎을 꿇었다.
이내 각자의 무릎 위에 찬송가 책이 놓였다.
얇은 종이를 넘기는 소리가 바람결처럼 방 안을 메웠다.

순식간에 거실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그러나 피켓녀와 쥐색 정장남은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진수가 그 방에서 나와 내 옆 소파에 앉았다.
진수는 작게 귀뜸했다.
“곧 찬양 시간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우린 찬송가 하나도 모르는데….”
진수가 찬송가 책을 턱으로 가리켰다.
“이거 보고 그냥 따라 하는 척이라도 해.”


그때, 작은방 문이 열리며 4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나왔다.
그는 잠시 피켓녀의 방문을 두드리더니 안으로 들어갔다가, 곧 문을 열어둔 채 방문 앞에 서서 낮게 말했다.


“오늘의 찬송가는 288장, 예수를 구주 삼고입니다.”


잠시 후, 피아노 소리가 흘러나왔다.
짙은 호두빛 피아노 건반을 누르는 손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 연주자는 피켓녀가 분명했다.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니

이 세상에서 내 영혼이 하늘의 영광 누리로다….


사람들이 일제히 찬송을 따라 불렀다.

진수도 작은 목소리로 그 음률을 좇았다.

나와 하나는 찬송가 책을 들고 입모양만 흉내 냈다.

이어 일곱 곡을 연이어 불렀다.

가사는 신앙의 언어로 가득 차 있어 직접적으로는 와닿지 않지만, 단순한 선율에는 평온함이 묻어났다.

사람들은 찬송가를 다 부르고서는 일제히 찬송가 책을 덮고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목소리를 낮춰 사담을 나누었다.

몇몇은 삼삼오오 거실 밖으로 나갔다.


진수가 찬송가 책을 덮으며 낮게 말했다.
“잠시 쉬는 시간이야. 잠깐 마당에 나갔다 오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소파에서 일어섰다.
무릎을 오랫동안 꿇고 있었던 탓에 다리가 조금 저려왔다.
신발을 신으며 말했다.
“우린 저쪽으로 가자.”


마당에는 이미 몇몇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그들은 삼삼오오 모여 웃으며 대화를 나누었지만, 그 웃음이 어딘가 경직되어 있었다.

나는 일부러 그들과 거리를 두고 대문 근처로 걸어갔다.

“진수야, 목사님 설교는 몇 시부터야?”
“아홉 시.”

“응. 그럼 목사님은 언제 오셔?”
“오늘은... 목사님 안 오셔.”


그 말에 나와 하나의 시선이 동시에 마주쳤다.
우리가 이곳에 온 목적은, 바로 이요셉 목사를 직접 보기 위해서였다.


나는 진수를 향해 조심스레 물었다.
“그럼 이따 설교는 누가 해?”
“오늘은 녹화 테이프로 봐. 지난 주일에 남부지부에서 목사님이 설교한 영상으로.”


순간, 거실 장식장 속에 빽빽하게 꽂혀 있던 비디오테이프들이 떠올랐다.
날짜가 손글씨로 적혀 있던 라벨들, 그게 다 예배 영상이었던 걸까.

예전에 아버지도 목사 설교영상 테이프를 가져와 봤었다.


하나가 불쑥 물었다.
“남부지부라니? 여기 말고 교회가 또 있는 거야?”

진수가 잠시 말을 고르듯 입술을 깨물었다가 말했다.
“응… 그게, 이런 곳이 세 곳이 더 있어. 여긴 서부지부야.”


나와 하나는 서로 바라봤다.

진수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일부러 밝은 톤으로 말했다.
“와, 너네 교회 규모 꽤 큰데?여기가 그런곳이었구나.”

진수가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그냥 뭐…”

내가 물었다.

“근데, 그럼 예배 때 목사님 설교를 매번 영상으로만 하는 거야?”

“그건 아니고, 목사님이 네 곳 교회를 돌아가면서 예배를 보셔.”

“그럼 이곳엔 언제 오시는데?”
“지난주에 오셨으니까… 아마도 3주나 4주 후쯤? 정확한 건 다음 달 되어 봐야 알아.”


하나가 다시 물었다.
“다른 지부 교회도 다 이렇게 가정집이야?”
진수가 고개를 살짝 저었다.
“글쎄, 가보진 않았지만… 아마도 그럴걸.”


그때, 거실 창문 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수야.”


아까 찬송가를 인도했던 남자가 창문 밖으로 몸을 내밀어 부르고 있었다.
진수가 고개를 돌렸다.

“나 먼저 들어갈게.”
“그래, 어서 들어가. 우린 여기서 조금 있다가 들어갈게.”


진수가 거실로 사라지자, 하나가 낮게 말했다.
“생각보다 교회 규모가 꽤 있네.”
“그러게요. 여기만 있는 게 아니라니, 놀랐어요.”

“그럼, 이제 어쩔 거야?”
“기왕 준비해 온 거, 시도라도 해봐야죠.”

하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시선이 그녀의 어깨너머 가방으로 향했다.

“저도… 한 번 봐도 될까요?”

하나는 가방을 앞으로 돌려 메고 지퍼를 열었다.
그 안에는 성경책 한 권과 함께 작은 캠코더가 들어 있었다.
소니 핸디캠이었다.
카메라 아래에는 책 한 권이 바닥을 받치고 있었고, 양옆에는 수건이 말려 카메라를 단단히 고정하고 있었다.

하나는 주변을 한 번 훑어보며 속삭였다.
“지금 테스트로 잠깐 찍어볼게.”


그녀가 전원 버튼을 켜고, 촬영버튼을 누르고 뷰파인더를 90도로 들어 올렸다.
‘삑- 쓱.’
짧은 전자음과 함께 테이프 돌아가는 소리가 낮게 들렸다.

가방 옆면엔 약 10센티 길이의 검은 망사 천이 덧대어져 있었다.
가까이서 보지 않으면 구멍이 있는지도 알 수 없을 정도였다.
하나가 손수 구멍을 내고 가린, ‘촬영용 위장 가방’이었다.

하나는 몸을 자연스럽게 돌려 마당을 훑었다.


“초점은 잘 맞을까요?”
“그럼. 오토포커스가 되는 거라서 문제없어.”
“아주 좋네요.”

“오영아. 나 좀 가려줘.”


나는 하나가 사람들 눈에 띄지 않도록 몸을 가려 섰다.

하나는 촬영 정지버튼을 누르고 상단 플립을 열어 뒤로 가기 버튼을 눌렀다가 재생 버튼을 눌렀다.
뷰파인더 속 화면을 잠시 들여다본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잘 찍혔어.”

난 엄지를 살짝 들어 보였다.


하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까 보니까, 소파 옆 탁자 위, 벽 코너 자리에 올려두면 거실 전체가 다 나올 거야.”
“언제 그런 걸 봤대요? 좋아요. 그렇게 해요.”
하나가 어깨를 으쓱했다.


“지금 몇 분 남았어?”
“오 분 전이에요. 이제 들어가요.”


그때 마침, 진수가 현관문에 얼굴을 내밀고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우리가 현관 계단을 오를 때, 피아노 반주가 흘러나왔다.
익숙한 찬송가의 멜로디가 들렸다.


거실로 들어가기 전, 하나는 가방 지퍼를 열고 손을 안으로 집어넣었다.
잠시 후 짧은 전자음과 테잎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거실 안에는 이미 모든 사람들이 자리에 앉아 찬송가를 부르고 있었다.
우리는 진수가 앉은 소파로 향했다.
나는 그의 옆자리에, 하나는 탁자 옆 구석에 가방을 자연스럽게 올려두고 지퍼를 열었다.
그리고 가방에서 무언가를 찾는 척하며 카메라의 방향을 TV를 중심으로 틀었다.

하나는 뷰파인더로 위치를 확인하고 성경책을 꺼내 들고 지퍼를 닫았다.
하나는 내 옆에 앉고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잠시 후, 진수가 점퍼 주머니에서 워크맨을 꺼내 내 옆에 내려놓았다.
워크맨에 이어폰이 꽂힌 채 둘둘 말려 있었다.
진수는 성경책을 무릎 위에 펼쳤다.


찬송가가 끝나자, 머리가 희끗한 60대 남자가 앞으로 나왔다.
그는 두 손을 모아 눈을 감고 기도를 시작했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를 이 자리에 불러주시니 감사합니다…”


사람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숨소리조차 멎은 듯한 정적이 방 안을 채웠다.


“분주한 세상 속에서도 주님의 말씀 앞에 마음을 모으게 하시고…
지난 한 주, 주님 뜻대로 살지 못했던 우리의 연약함을 고백합니다.
세상의 염려와 욕심에 휩싸여…”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고, 다시 살아갈 힘을 달라는 기도였다.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아멘.”

사람들의 목소리가 일제히 겹쳤다.

기도가 끝나자, 일순간 조용해졌다.


잠시 후, 쥐색 정장남이 피켓녀가 있던 그 방에서 나왔다.
그의 손에는 비디오테이프 하나가 들려 있었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TV 앞으로 걸어가 전원 스위치를 눌렀다.

‘치-익-’
화면이 번쩍 켜지며 정적을 깼다.

그는 서둘러 볼륨을 줄였다.


이어서 비디오 플레이어 전원을 켜고, 들고 온 테이프를 천천히 밀어 넣었다.

‘덜거덕.’

테이프를 삼키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쥐색 정장남은 리모컨을 들고 일어서서 물러서더니 벽에 전등 스위치를 내렸다.

거실의 천장등이 꺼졌고 벽에 달린 노란빛 간접조명이 희미하게 거실을 밝혔다.


그 빛 속에서 사람들의 그림자가 벽에 겹쳐 붙었다.
움직이지 않는 그림자들.
모두가 한 방향, TV를 향하고 있었다.


나는 숨을 삼켰다.
괘종시계의 초침이 마지막 원을 그리며 숫자 12를 향해 돌아가고 있었다.


‘댕…. 댕…’

괘종시계가 아홉 시 타종을 시작했다.


타종이 끝나자 피켓녀가 작은방 문을 열고 나왔다.
“곧 목사님께서 하늘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거실을 가득 채웠다.


쥐색 정장남이 리모컨을 TV를 향해 버튼을 눌렀다.

‘지잉-’
비디오테이프가 돌아가는 소리가 거실을 가득 채웠다.

화면이 밝아졌다.
붉은 태양이 천천히 떠오르고 있었다.
바탕 위로 서서히 교회 이름이 떠올랐다.


'승천교회'


교회이름은 이곳과 딱 어울렸다.
너무도 잘 어울려서 오히려 섬뜩했다.


잠시 검은 화면이 이어졌다.
그리고 서서히 화면이 밝아지면서 한 남자의 상반신이 화면 위로 떠올랐다.

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