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신문기사

장편소설 스페셜 미드나잇 3부

by 나라연

배달을 마친 후 신문보급소에 서둘러 복귀했다.

자전거를 옥상에 올려다 놓고 아래 2층 미용실로 내려갔다.

문을 밀자, 익숙한 방울소리가 울렸다.

미용실은 한가로웠다.


카운터에 앉아 있는 갈색머리 원장이 나를 보고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소파에 앉아 잡지를 넘기던 하나가 고개를 들더니 환하게 반겼다.

“어, 여긴 웬일이야?”

“머리 좀 다듬으려고요.”

“아직 자를 만큼은 아닌데?”

“여기가 좀 지저분해서요.”

나는 뒷머리와 옆머리를 가리키며 웃었다.

머리가 그리 길진 않았지만, 일부러 하나를 찾아온 것이었다.


“그래, 여기 앉아.”

하나는 가운데 의자를 가리켰다.


“서로 아는 사이야?”

갈색머리 원장이 하나에게 물었다.

“네. 우리 집에 신문 배달하는 친구예요.”

“아~ 위층 신문배달 학생이구나.”

“네. 안녕하세요.”

나는 자리에 앉으며 인사했다.



하나는 커트보를 둘러줬고 머리에 스프레이로 물을 뿌리며 물었다.
“옆머리, 뒷머리만 살짝 다듬으면 되지?”
“네.”
“좋아. 예쁘게 다듬어 줄게.”
그녀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가위를 들어 머리카락을 잘라내기 시작했다.

‘슥슥-’ 가위날이 머리카락을 가르며 경쾌한 소리를 냈다.

눈이 저절로 감겼다.


"이제 샴푸 할게."

하나의 목소리에 눈을 떴다.

거울 속에는 한결 단정해진 내 머리가 비쳤다.


샴푸를 마친 뒤, 의자에 앉자 드라이어 바람이 부드럽게 머리를 스쳤다.
거울 속의 내 머리를 살피던 하나가 물었다.

“배달하고 온 거야?”
“네.”
“좋겠다. 나도 빨리 퇴근하고 싶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혹시 오늘 몇 시에 끝나세요?”
“왜? 데이트 신청이라도 하게?”
“아니요, 그런 건 아니고요...”
하나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하하, 농담이야.”


하나가 가위로 잔 머리카락을 다듬으며 말했다.
“오늘은 한 시간 뒤면 끝나.”
거울 속 벽시계를 보니 6시를 막 넘긴 시간이었다.
“근데 왜?”
“할 얘기가 있어서요.”

하나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할 얘기?”
카운터의 갈색머리 원장이 장난스럽게 끼어들었다.
“너, 누나한테 작업 걸려는 건 아니지?”
하나는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원장님, 놀리지 마세요.”


그녀는 거울 속 내 얼굴을 한번 보고 미소 지었다.

스펀지로 내 얼굴과 목에 붙은 머리카락을 털어내며 말했다.

“됐어. 깔끔하다.”

머리스타일이 맘에 들었다.


나는 계산을 마치고, 하나와 한 시간 후 건물 앞에서 보기로 약속했다.

미용실을 나와 신문보급소로 돌아왔다.


소파에 앉아 오늘 신문을 펼쳤다.

신문을 넘기다 사회면 구석에서 눈길을 끄는 기사 제목 하나가 보였다.
며칠 전에도 비슷한 제목을 본 기억이 났다.

‘르포! 연속기획 「여전히 끝나지 않은 시한부 종말론」’


나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리고 천천히, 기사를 읽기 시작했다.



‘[르포! 연속기획] 「여전히 끝나지 않은 시한부 종말론」

- 수도권 某교회, 휴거 잔존 세력의 현재

김정훈 기자


지난 1992년 10월 28일,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린 다미선교회의 시한부 종말론 사건.

“그날, 우리는 하늘로 들려 올라간다.”

그 한마디 아래 수많은 이들이 직장을 그만두고, 학업을 중단했으며, 전 재산을 헌납하고 가정을 등졌다.

그러나 그날은 오지 않았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난 지금, 그 여파는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본보 취재진은 최근 수도권 모 지역에서 활동 중인 잔존 신도들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잠복취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예상치 못한 사실들이 드러났다.


그 단체는 외견상 평범한 가정집이었다.

간판 하나 없는 일반 주택, 겉보기엔 아무런 특이점이 없었다.

정해진 시간에만 신도들이 드나들었으며, 취재 당시 예배에 참석한 인원은 약 30여 명.

20대 청년부터 70대 노인까지 연령층은 다양했고, 그 사이엔 몇몇의 청소년과 어린아이들도 보였다.


조금 의외였던 점은 대부분의 신도들이 여전히 직장을 다니며, 비교적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의 경제활동은 생계가 아닌 ‘헌신’을 위한 수단이었다.

예배 중 설교 내용은 과거 다미선교회의 설교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금 의외였던 점은 대부분의 신도들이 직장을 다니며 비교적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의 경제활동은 생계가 아니라 ‘헌신’을 위한 수단이었다.

예배 중 설교 내용은 과거 그 교회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은 곧 끝납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 우리가 가져갈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믿음뿐입니다.
헌금은 단지 물질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나라에 계좌를 여는 일입니다.
지금, 주님 앞에 나와 믿음의 씨앗을 심으십시오.”


설교자는 끊임없이 헌금을 강조했다.

실제 신도들과의 접촉 결과, 대부분의 교인이 소득의 절반가량을 ‘하늘나라에 올라갈 몫’으로 바치고 있었다.

별도의 ‘헌금’도 존재했으며, 일부는 ‘종말 준비 헌금’이라는 이름으로 모아졌다.

한 신도는 “목사님께 드리는 건 기쁨이에요. 곧 세상이 끝날 텐데, 땅의 재산이 무슨 소용이겠어요.”라고 말했다.


겉으로 보기엔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예배를 드리는 평범한 삶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하루는 모두 ‘그날’을 위한 준비였다.


1992년 10월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이들은 여전히 ‘두 번째 휴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신도는 이렇게 말했다.

“목사님 말씀이 아니면 어떤 말도 믿지 않아요. 대통령이 뭐라 해도 그건 세상 사람의 말일뿐이죠.”

또 다른 신도는 “휴거는 반드시 이루어질 겁니다. 우린 그날을 위해 기도할 뿐이에요.”라고 했다.


종교문제연구소 김희상 박사는

“당시 시한부 종말론은 대중적 충격을 동반했지만, 최근에는 사회적 은둔 대신 일상 속 이중생활로 형태가 바뀌고 있다”며 “지도자들의 통제 방식도 더욱 정교하고 은밀해졌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피해자들이 스스로 피해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이 가장 위험하다”며
“신앙의 이름으로 가려진 금전 착취와 심리적 종속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사회적 관심과 제도적 개입이 절실하다”라고 덧붙였다.


<연속기획 보도는 격주 화요일자에 연재됩니다.>




난 천천히 신문을 덮었다.
탁자 위에 신문을 내려놓으며 깊게 숨을 내쉬었다.

방금 읽은 기사 내용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간판이 없는... 평범한 가정집을 가장한 교회... 잔존 신도...’


그리고 ‘두 번째 휴거를 기다린다…’

눈앞의 문장이 자꾸만 잔상처럼 번졌다.

어딘가 익숙한 단어들이었다.


그 문장들을 곱씹을수록, 하나 둘 연결되는 기분이 들었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기사 속 그 교회가 ‘빨간 대문집’을 가리키고 있는 듯했다.


창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유리창 너머로 비친 내 얼굴이 어스레한 불빛에 겹쳐 보였다.
그 순간, 문득 내가 바라보고 있는 건 창 속의 내 모습이 아니라, 창밖 어둠 속에서 누군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일곱 시 오 분 전, 난 신문보급소를 나오면서 미용실 안을 힐끗 봤다.

갈색머리 원장이 손님의 머리를 드라이어로 말리고 있었고, 하나는 바닥에 머리카락을 쓸어 담고 있었다.


난 먼저 1층에 내려갔다.

일곱 시 십 분이 채 되지 않아 계단 쪽에서 빠른 걸음소리가 들려왔다.

하나가 가볍게 계단을 뛰어내려오며 손을 흔들었다.


“오래 기다렸지? 미안. 시간 맞춰 나오려고 했는데, 손님 마무리하느라 좀 걸렸어.”

“아뇨, 괜찮아요.”

“배고프다. 우리 저녁 먹자. 이 누나가 살게.”


그때 1층 의류매장에서 빨간 티셔츠를 입은 사장님이 문을 열고 나왔다.

“어? 둘이 웬일로 같이 있어?”

“안녕하세요, 사장님.”
우리는 동시에 인사했다.

“둘이 아는 사이였어?”
하나가 웃으며 말했다.
“네, 어쩌다 보니까요.”
“그래, 서로 알고 지내면 좋지. 같은 건물 사람들끼리.”


그 사장님은 잠시 나를 보더니 말을 이었다.

"그때 그 집은 여전히 신문이 안온 다고 해?"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네, 말도 마세요. 이주일에 한 번꼴로 전화가 와요. 저도 이제 진이 빠질 지경이에요.”

“그건 너네 소장이나 총무가 해결해야 하는 거 아냐? 괜히 너만 스트레스받게 하지 말고.”

“안 그래도 총무 형이 낮시간에 몇 번이나 찾아가 봤는데요. 갈 때마다 부재중이라네요.”

“그럼 뭐, 위에서도 해결이 안 된다면 네가 너무 신경 쓰지 마.”

"네. 사장님. 그럴게요."


사장님은 잠시 미소를 짓더니, 옆에 서 있는 하나에게 시선을 옮겼다.

"둘이 어디 같이 갈데라도 있는 거야?"

"어떻게 아셨어요."

“하, 내가 눈치가 하나 없겠냐?”

하나가 웃으며 말했다.

"얘, 저녁 좀 사주려고요."

"그래. 오영이 맛있는 거 많이 사줘. 한창 먹을 나이야."

하나가 날 보며 말했다.

"안 그래도 그려려구요."

"그래. 저녁 맛있게 먹어."

사장님은 손을 흔들며,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네 이름이 오영이였구나."

그러고 보니 그녀에게 내 이름을 말해준 적이 없었다.



뭐가 먹고 싶냐는 하나의 물음에, 가끔 가는 우체국 옆 중식당으로 안내했다.
식사 시간이라 가게 안은 시끌벅적했지만, 다행히 창가 자리가 하나 비어 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하나가 물컵에 물을 따르며 물었다.

“이 식당, 자주 와?”
“가끔요.”

그녀가 물컵을 내려놓으며 내게 물었다.
“그런데 이름은 아까 들었고… 성은 뭐야?”
“유오영이에요.”

“유오영…”
그녀가 내 이름을 조용히 되뇌었다.
“난 알다시피 이하나. 스무 살.”

“사실 처음 봤을 땐 제 또랜 줄 알았어요.”
“내가 그렇게 어려 보여?”

하나가 픽식 웃었다.

나는 짧게 웃었다.


“너 고3이야? 고2?”
“2학년이요.”
“집은 어디야?”
“학교 바로 앞이에요.”

“그 동네 나도 알아. 예전에 그 근처 여고 다녔거든.”
그녀가 말했다.
“학교 바로 앞에 미미분식 있잖아. 거기 가끔 먹으러 갔었어. 4층에는 복싱 체육관도 있고.”


“어, 정말요? 제가 그 건물에 살아요.”

하나는 놀란 듯 눈썹을 올렸다.
“거기 집이 있었어?”
“옥상에 옥탑방 하나 있어요. 거기서 혼자 살아요.”

“아, 그렇구나.”
그녀가 잠시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구나. 그럼 본가는?”

“서안이요.”

“멀리서 왔네. 부모님이 걱정 많이 하시겠다.”


나는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말했다.
“부모님은 안 계세요. 엄마는 사고로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작년에 실종되셨어요.”

그녀의 놀라나 표정으로 말했다.
“... 미안. 괜한 걸 물었네.”

“괜찮아요. 잘 지내고 있어요. 이렇게 밥도 잘 먹고.”
나는 별거 아닌 척 웃었다.


하나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혼자 산다는 거, 쉽지 않았겠다.”


그 말에 가슴 한쪽이 묵직해졌다.

나는 그저 짧게, 웃는 척했다.


잠시 후, 주문한 짬뽕과 간짜장, 군만두가 테이블 위에 놓였다.

그릇 위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짬뽕 국물을 한 숟갈 떠 넣자, 따뜻한 불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하나가 짜장소스를 면에 부으며 물었다.

“혼자 자취하면... 힘들진 않아?”

“처음엔 그랬는데, 이제 익숙해요.”

“근데, 아버지가 실종됐다니... 사고 같은 거야?”

“아뇨."

나는 잠시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빛줄기와 함께 사라지셨어요. 아직도 믿기지 않지만요.”


“빛줄기...?”

그녀의 표정이 굳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한 달쯤 지나니까 집이랑 땅까지 다 팔려 있었어요. 계약서엔 아버지 도장이 찍혀 있었고요.”

“저런....”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 일로 쫓겨나다시피 해서 지금 옥탑방에 살게 된 거예요.”

"어머, 힘들었겠다. 너."

“아직도 모르겠어요. 사고였는지, 도망이었는지, 아니면... 날 버린 건지.”


짧은 침묵이 흘렀다.

젓가락이 부딪히는 소리만 식탁 위에 맴돌았다.

하나는 면을 젓가락으로 휘감으며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교회?”


나는 놀라서 그녀를 바라봤다.

“그걸 어떻게...”


“그냥... 요즘 그런 일 많잖아.”

하나는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이비 같은 데 빠지면, 사람 완전히 달라지더라.


하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내 친척 언니도 그랬어. 휴거에 빠져서 직장도 그만두고 잠적했는데, 돌아왔을 땐 이미 전세금까지 다 날렸어. 하늘은행에 저축한다면서 교회에 다 바쳤다더라. 지금 그 언니 얼마나 후회하는 줄 알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도 아마 그랬던 것 같아요."

"아버지를 찾아볼 생각은 안 한 거야?"

"했죠. 일요일마다 아버지 찾으러 이곳저곳 교회를 찾아가 봤어요. 방송에 나오던 곳들도요.”


"결국..."

"네. 못 찾았어요."

“지금도... 그런 데 계신 걸까?”

“글쎄요. 정신이 돌아왔다면, 아마 학교로 벌써 절 찾아왔겠죠."

"...."

"그래서 가끔은 정말로... UFO에 납치된 건가 싶어요.”


창밖으로 빗줄기가 유리창에 가늘게 부딪혔다.

식당 안의 소음이 순간 멀게 느껴졌다.


식사가 거의 끝날 무렵, 하나가 물을 마시며 물었다.
“참, 아까 나한테 할 말 있다더니... 그게 뭐야?”


나는 지난주에 빨간 대문집 앞에서 쥐색 정장 남자를 만났던 일과, 진수에게서 들은 그 집 이야기를 차근히 설명했다.


하나는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 집이... 교회였다고? 그것도 휴거를 믿는…
“네. 저도 처음엔 믿기지 않았어요.”

“어쩐지... 요즘 밤마다 창문 열어두면 어디선가 찬송 소리가 들리더라. 그게 그 집에서 나는 소리였나 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뒤에... 그곳에 가보려고요.”


하나는 물 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거긴 왜?”

“혹시 아버지를 아는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서요. 직접은 몰라도, 건너 건너라도.”


하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침묵했다가 말했다.

“근데 혼자 가는 건... 좀 위험하지 않아?”


나는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럼… 혹시 저랑 같이 가줄 수 있어요?”


하나는 놀란 듯 내 얼굴을 바라보다가, 이내 천천히 미소 지었다.
“그래. 나도 그 집 좀 수상하다고 생각했어. 엄마가 말했던 것처럼, 요즘 처음 보는 사람들이 자주 드나든다고 했잖아. 거기 분위기도 좀 이상하고.”
“정말요?”
“응. 같이 가자.”


그녀의 대답에 마음이 조금 놓였다.
창밖 비는 어느새 그쳐 있었고, 가로등 불빛이 젖은 아스팔트 위에서 길게 번져 있었다.




장편소설 '스페셜 미드나잇'은 월요일과 목요일에 연재됩니다.

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