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교회

장편소설 스페셜 미드나잇 2부

by 나라연

격주로 수요일이면 어김없이 마지막 집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화요일에 신문이 오지 않았다는 연락이었다.
그때마다 지국장은 내게 한 소리씩 했다.


“너, 마지막 집 제대로 넣은 거 맞아?”


지국장도 내가 신문을 안 넣을 리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2주마다 같은 전화가 반복되니, 핀잔을 주는 게 습관이 된 모양이었다.
나 역시 억울했지만 딱히 할 말은 없었다.


경리는 그 전화가 올 때마다 “죄송합니다”만 되풀이해야 했다.
구독자에게 “마지막 배달지라서 배달이 빠질 리 없다”며 정중히 설명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언제나 냉담한 타박이었다.

그리고 몇 번이나 “대문에 신문사절 종이가 붙어 있었다”는 사실을 전했지만, 정작 구독자는 “그런 걸 붙인 적이 없다”라고 했다.

그렇다고 신문을 끊겠다는 얘기는 없었다.
그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지국장은 짜증 섞인 얼굴로 말했다.
“좋아, 당분간 화요일엔 두 부 넣어. 혹시 한 부가 사라져도 대비하게.”
“두 부요?”
“그래. 그리고 혹시 또 종이가 붙어 있어도 그냥 무시해.
붙인 적 없다잖아. 그건 신경 쓰지 말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마음은 개운치 않았다.

신문은 넣었는데 안 왔다고 하고, 붙인 적이 없다는 신문사절 종이는 또 어느새 붙어 있고 자꾸 반복되는 게 말이 안 됐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조금씩 쌓여가고 있었다.




예순다섯 번째 집 대문손잡이에 신문을 꽂아 넣고, 마지막 집으로 향하려던 순간이었다.
멀리서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빨간 대문이 열렸다.
그 문에서 피켓녀가 걸어 나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핸들을 꺾어 옆 골목으로 몸을 숨겼다.
자전거를 세운 채 고개만 내밀었다.
잠시 뒤, 쥐색 정장남이 그 뒤를 따라 나왔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인물이었다.


나는 자전거 위에서 몸을 낮춘 채, 그들을 지켜봤다.

두 사람은 대문 앞에 마주 서서 짧게 말을 주고받았다.
서로 웃으며,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곧 그들은 나란히 걸어 하나슈퍼 사거리 쪽으로 향했다.

나는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오후 4시 50분, 약속 시간 5분 전이었다.

두 사람이 사거리 모퉁이를 돌아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는 골목에서 빠져나왔다.


마지막 집 앞을 지나며 신문을 던졌다.
그러나 이번에도 신문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지국장이 지시한 대로 한 부를 또 던졌다.

이번에도 소리가 안나는 건 마찬가지였다.
불길한 기시감이 스쳤다.

자전거를 돌려 대문 앞으로 다가가 문틈 사이로 안을 살폈다.
지난번처럼 현관 밖엔 여러 켤레의 신발이 흩어져 있었다.
더 살펴보고 싶었지만, 괜한 의심을 살까 싶어 서둘러 하나슈퍼 방향으로 향했다.


멀리서 시내행 버스가 하나슈퍼사거리로 들어오고 있었다.

하나슈퍼 앞에 도착했을 때, 평상에는 쥐색 정장남 혼자 앉아 있었다.
함께 있던 피켓녀는 방금 떠난 버스에 오른 듯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자전거를 세우고 그 앞에서 짧게 목례했다.

그는 신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신문 한 부를 꺼내 건넸다.
그에게 왜 마지막 집에서 나왔는지 묻고 싶었지만, 이유 없이 물어 볼순 없었다.
그저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하고 돌아섰다.

돌아서며 건너편 하나슈퍼를 쳐다봤다.

카운터에는 하나 대신 한 아주머니가 나와 있었다.

미용실 쉬는 날인데, 하나가 나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약 이십여 미터쯤 갔을 때, 나는 자전거를 세웠다.
킥스탠드를 내려 세우고 장갑을 꺼내 끼우며, 하나슈퍼 쪽을 슬쩍 바라봤다.

쥐색 정장남은 여전히 평상에 앉아 신문을 넘기고 있었다.
잠시 후, 내 시선을 느꼈는지 그가 고개를 들었다.
나는 얼른 고개를 돌려 체인을 만지는 척했다.
사실 자전거 체인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몇 초 뒤, 곁눈질하자 한동안 신문 어딘가 한 곳을 응시했다.

그리고 그가 신문을 접고 잠시 미루나무를 올려다보더니 신문을 접었다.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잠깐 나를 흘끗 보았다.

나는 태연한 척 일어나 장갑을 벗고 바구니에 던져 넣었다.

그리고 자전거 킥스탠드를 내려 페달을 밟고 안장에 올라탔다.

난 십여 미터쯤 가다가 뒤를 돌아봤다.
평상은 비어 있었다.


나는 자전거 방향을 돌려 하나슈퍼 쪽으로 향했다.
슈퍼 앞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담벼락에 몸을 숨기고 마지막 집이 보이는 골목을 바라봤다.

예상대로 쥐색 정장남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는 천천히 길을 걸어가 빨간 대문을 열고 안으로 사라졌다.


그가 왜 그 집을 드나드는지 궁금했다.
처음엔 하나 어머니에게 마지막 집 이야기를 물었을 때, 경찰이나 기자쯤 되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건 아니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자전거를 타고 마지막 집으로 향했다.

대문 앞을 지나 우회전을 하고 아까 그 골목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대문 앞으로 다가갔다.
조심스럽게 문틈 사이로 안을 엿보았다.

그때, 문 안쪽에서 시선이 마주쳤다.
숨이 멎는 듯했다.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철컥-’

쥐색 정장남이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대문을 닫더니, 내 두 팔을 거칠게 잡고 나를 담벼락 쪽으로 몰았다.
순간, 몸이 뒤로 밀리며 담벼락에 부딪혔다.

그는 고개를 돌려 주위를 빠르게 훑었다.


“너, 지금 여기서 뭐 해?”

그는 누가 들을 세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왜 날 따라온 거야?”


이미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내 팔을 잡고 있는 그의 잡은 손을 뿌리치며 한발 앞으로 나섰다.

그는 순순히 손을 내 팔에서 거두고 뒤로 한 발짝 물러서서 미한하 다는 표정을 지었다.

난 입술을 깨물다가 낮은 목소리로 어렵게 말을 꺼냈다.

“아까, 아저씨가 이 집에서 나오는 걸 봤어요. 근데 아저씨가 이 집에 왜 있는 거예요?”

“그건 네가 알 바 아니야.”

그는 여전히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넌 그냥 이 집에 신문만 넣고 가. 이 앞엔 다시 오지도 말고, 더 이상 알려고 하지 마.”

그 말투는 경고를 넘어, 거의 협박에 가까웠다.
마치 내가 이곳에 와서는 안 되는 이유라도 있는 듯했다.


그는 내 어깨너머로 주위를 훑어본 뒤, 고개를 숙여 낮게 말했다.

“넌 오늘, 여기서 날 본 적 없는 거야. 알겠지?”

그건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알아들었으면 이제 어서 가.”


그가 뒤를 돌아 대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순간, 문틈 사이로 익숙한 얼굴 하나가 스쳤다.
진수였다.

빨간 대문은 이내 굳게 닫혔다.
하지만 내 시선은 진수를 따르고 있었다.

대문 안쪽에서 쥐색 정장남의 목소리가 낮고 빠르게 흘러나왔다.
“어서, 당장 가지 못해?”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쥐색 정장남도 그 집에 드나드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진수까지 그 집안에 있었다.

마지막 집이 뭔가 이상하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하나에게 이 사실을 먼저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슈퍼에 하나가 있을까 싶어 하나슈퍼로 가봤지만, 카운터에 아까 그 아주머니가 그대로 서있었다.





다음 날, 수업 내내 나는 진수의 얼굴을 몇 번이나 힐끔거렸다.
교과서 위로 시선을 두는 척했지만, 시선은 자꾸만 옆으로 새었다.
어제 그 집 안에서 그가 왜 있었는지, 묻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하지만, 오전 내내 기회를 잡지 못했다.

점심시간에 이야기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일부러 평소보다 가볍게 말을 꺼냈다.
“야, 오늘 점심시간에 매점 가자. 내가 쏠게.”
컵라면이랑 과자, 음료수까지 사준다고 덧붙였다.
가끔 아르바이트 월급을 받으면 진수에게 간식을 사주곤 했으니, 진수가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았다.


4교시 종이 울리자마자 우리는 매점으로 향했다.
진수가 자리를 맡고 도시락을 풀었다.
나는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돌아와 짱구 과자 한 봉지와 콜라 두 개를 꺼냈다.
컵라면 뚜껑 위로 김이 피어올랐다.
잠시 후, 진수는 젓가락으로 면을 휘저으며 “냄새 죽이네” 하고 웃었다.
우리는 라면을 다 먹고, 평소처럼 밥을 말아먹었다.


콜라를 따는 순간, ‘칙—’ 하는 소리와 함께 탄산이 터졌다.
그 소리가 괜히 공기를 가르는 듯했다.
나는 캔을 내려놓으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야, 너 어제 학교 끝나고 어디 갔었어?”

진수가 과자를 뜯으려다 손이 잠시 멈췄다.
“… 아는 형 집에 좀. 놀러 갔었어.”

“그 형 사는 데가 혹시 용정동이야?”
진수의 눈이 잠시 허공에서 멈췄다.
그리고 과자봉지를 마저 뜯고 과자 하나를 집어 입에 넣으며, 시선을 피했다.

침묵하던 진수가 말했다.

“넌 그걸 어떻게 알았냐?”
“내가 어제 그 동네를 지나다가 널 본 것 같아서.”
“날? 어디서?”

“빨간 대문집.”

“네가 어떻게 거길?”
“그 동네가 내 신문배달 구역이거든.”
“아... 그렇구나.”


내가 무심하게 물었다.
“그 형이 혹시... 쥐색 정장 입은 남자야?”
진수의 표정이 굳었다.
“어? 아니... 그건 아니고.”
말끝이 애매하게 흘렀다.
나는 과자 부스러기를 털며 고개를 갸웃했다.

“보니까, 그 집에 여러 사람들이랑 같이 있던데?”

진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어. 모임이 있었어.”
“모임? 어떤 모임인데 그렇게 사람이 많아?”
진수는 한참 말을 잇지 못했다.


가만히 입술을 깨물었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거기... 그냥 집이 아니야.”
“그냥 집이 아니라고?”
“응.”

잠시 침묵했다.
“야, 뭔데 그렇게 뜸을 들여.”

진수는 잠시 주위를 훑었다.
매점 한쪽 구석에 앉아 있던 몇몇 학생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그 소리를 의식한 듯, 한층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거기 교회야.”
“교회라고?”
“휴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순간, 귀에서 심장 소리가 났다.
“휴거? 지난번 속아놓고도 그걸 또 믿는다고?”
진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진수 표정엔 부끄러움보다 오히려 확신이 깃들어 있었다.

“지난번엔 날짜를 잘못 알았던 거였대. 실패가 아니라... 이제 곧 진짜로 일어날 거래.”

진수의 말투에는 단호함이 묻어 있었다.


그곳을 이끄는 사람은, 몇 달 전 ‘휴거 소동’을 주도했던 교회의 장로 중 한 명이라고 했다.

휴거가 무산된 뒤 실의에 빠진 신도들을 끌어 모아, 그곳에 교회를 열었다고 했다.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간판이나 십자가를 달지 않았다고 했다.

어느 누가 봐도 영락없는 평범한 가정집에 불과했다.

신도들만이 알고 있는 비밀 아지트였다.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가, 콜라 캔을 내려놓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미친... 너 또 속는 거야. 사기꾼한테 또 당하는 거라고.”

“말 함부로 하지 마.”
진수가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나를 똑바로 봤다.
그 눈빛은 냉정했다.
“그분은 우리를 하늘로 인도할 진정한 리더야.”


진수의 눈빛은 그때와 마찬가지로 확신에 차있었다.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믿음의 벽을 뚫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의 눈빛은 이미 다른 세계를 보고 있었다.

“... 미안.”
나는 목소리를 낮췄다.
“그냥... 네가 걱정돼서 한 말이야.”
진수는 나를 잠시 바라보다가, 짧게 웃었다.
그 미소는 이상하게 공허했다.

“그날은 내년 5월 31일이야. 밤 12시”
진수가 조용히 말했다.
“예수님이 부활한 후 50일째 되는 날, 그날 공중재림이 일어날 거고 우리는 하늘로 올라갈 거야.”


1993년 5월 31일, 그리 얼마 남지 않은 날이었다.
진수의 말은 논리처럼 들렸지만, 현실감은 없었다.


나는 화제를 돌리듯 말했다.
“그... 쥐색 정장 입은 아저씨는 누구야?”
진수는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아, 그 형. 예전엔 다른 교회 지부 신도였어.
교회 주보도 만들고, 예배 준비도 돕고... 되게 열심인 사람이야.”


쥐색정장남이 교회 신도였다고? 지금껏 정황으로 봐서는 여러모로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무심한 척 말했다.

“진수야. 그 교회... 나도 한번 가볼 수 있을까?”
진수는 눈이 커지며 놀랐다.

“진짜?”
“가봐야 믿든 말든 하지. 그래야 뭐가 뭔지 알지 인마.”
진수는 얼굴이 환해졌다.
“너무 좋다. 예수님 품으로 너를 인도할 수 있다니... 정말 기뻐.”
나는 억지로 웃었다.


“너무 들뜨지 마. 그냥 확인하러 가는 거니까.”
“괜찮아. 너도 가보면 믿게 될 거야.”
“... 그래, 한번 가보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진수는 눈을 내리깔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근데... 잠깐만.”
“왜?”
“그 교회는 아무나 들일 수 없어. 나도 너 데리고 가고 싶지만, 허락을 받아야 해.”
“허락?”
“응. 규칙이 그래. 지난번 휴거 불발되고 나서, 요즘 신도인 척 들어오는 몇몇 사람들이 좀 있나 봐. 그래서...”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허락 떨어지면 바로 알려줘.”


진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진수의 눈빛에서 어떤 경계감이 느껴졌다.




장편소설 '스페셜 미드나잇'은 월요일과 목요일에 연재됩니다.

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