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캐피탈
- 당일 대출 가능
- 조건, 담보 없이 GO
- 단기연체가능
- 친절상담
대출 스팸 문자나 전화가 올 때마다 생각했다.
‘왜 이렇게 돈을 못 빌려줘서 안달이야?’
지난 사십 년을 살면서 나는 할부로 물건을 산 적도 없고, 대출을 받은 적도 없다. 없으면 없는 대로. 그게 내 삶의 철칙이었다. 없는 돈을 쓰다 보면 적자로 돌아올 것이 뻔했으니까. 물론 인생 뜻대로 살 수 없고, 돈을 빌려 써야 하는 상황이 내게도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조건 없이 돈을 빌려준다는 저런 문자를 보면, 빚 낼 생각이 싹 사라진다. 언젠가 조건 없는 여성 전용 대출이 많은 이유가 돈을 못 받으면 여성의 몸을 성판매 업소로 팔아넘길 수 있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여성의 몸이 곧 증권이라는 말. 빚은, 특히 사채는 내게 두려운 존재였다.
처음 엄마 빚을 해결해 줬을 때, 나는 20%의 가까운 이자를 계산해 보면 아득해졌다. (법정최고이자율이 20%다.) 이자가 얼마나 큰지 아냐고 묻는 내게 엄마는 말했다. ”아니야, 이거 한 달에 몇 만 원만 내면 되는 거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소액대출로 300만 원을 18%에 빌리면 다달이 내는 돈은 4만 5천 원. 하지만 그 300만 원이 열 개가 모이면 45만 원. 돈이 없어 돈을 비싼 이자를 주고 샀으니, 원금은 갚지도 못하고, 새 빚만 늘어나는 악순환이었다.
“엄마, 이자가 20%면 천만 원을 천이백만 원 주고 사는 거야. 그게 2년이 되면 천사백이고, 3년이면 천육백 인 거라고. 왜 비싼 돈을 주고, 적은 돈을 사.”
나중에 알게 됐지만, 엄마가 새 빚을 내 버는 건 시간이었다. 독촉을 덜 받는 시간. 오래된 빚은 연체의 압박으로 독촉을 받으니 새 빚을 낸 것이다. 새 빚을 내주는 업자는 ”조건 없이“, ”친절상담“을 약속하니까. 연체이자가 어마어마하니 이들은 “단기연체”까지 권한다.
시작이 무엇이었을까. 코로나를 겪으며 엄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IMF 때도 이렇게 장사가 안 되진 않았어.” 처음에는 밀린 가게 월세를 메우려고 시작하지 않았을까. 아는 임대인의 독촉보다는 모르는 대부업체 상담원의 독촉이 더 낫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날 통화 이후, 이해할 수 없는 엄마의 상황을 가늠해 보려 애를 썼다.
신용정보원 홈페이지에 빚의 액수가 선명하게 뜨는데도 엄마는 아니라고 잡아뗐다. 오늘만, 아니 당장 지금만 사는 사람 같았다. 더 추궁하면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죽겠다고도 했다. 그 말을 듣고 눈물이 터졌다. 엄마는 정말 내가 안중에 없구나. 딸 앞에서 죽겠다는 말을 하는 엄마가, 그 말이 나에게 어떤 상처와 불안을 안겨줄지 생각도 못하는, 아니 사실을 잘 알고 있을 엄마가 미웠다.
한편, 추궁하는 나를 막기 위해 엄마가 걸 수 있는 게 목숨밖에 없다는 생각에 안쓰럽기도 했다. 빚만 1억이 넘는 무직의 60대 여성이, 남편 연금을 나눠 쓰는 엄마가 무슨 권력이 있겠는가. 딸에게 어떻게 죽겠다는 말을 하냐며 우는 내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는지 엄마는 미안하다며 절절맸다. 절절매는 목소리가 듣고 싶지 않아 전화를 끊었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났나, 원망이나 할 때가 아니었다. 이러는 사이에도 빚은 늘어나고 있었다. 빚의 전체 규모부터 확인해야 했다. 8년 전에는 눈앞에 드러난 채무 300만 원, 200만 원을 갚느라 바빴다. 늘어나는 이자가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갚은 빚이 나중에 모아보니 4천만 원이었다.
이번엔 달랐다. 경험상 드러난 빚이 다가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아빠 이름으로, 최악은 나나 동생 이름으로 진 빚이 있을지도 몰랐다. 지인에게 직접 빌리거나 지인을 통해 대부업체 돈을 빌렸을지도. 당장 빚을 갚기보다는 전체 채무를 확인하고 우선순위를 정해야 했다. 혹은 빚이 자산보다 많아 회생이나 파산을 선택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엄마가 빚을 더 못 지게 하기 위한 방책도 마련해야 했다.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혼란스러운 와중에 엄마에게 카톡이 왔다.
“아빠한테는 말하지 마.”
빚 진 게 맞구나. 마음이 아렸다. 모니터에 뜬 선명한 숫자를 보고도 나 역시 사실이라고 믿고 싶지 않았다. 엄마를 통해 간접적으로 확인받으니 다시 숨이 막혔다. 그래 아빠, 아빠는 어떻게 하지. 이전 같으면 당장 알렸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아빠가 사실을 알고 화를 내면 엄마는 더 많은 걸 꽁꽁 숨길 것이다.
우선순위는 엄마의 자백을 받아내는 것이다. 안 되면 휴대폰을 뒤져야 한다. 빚은 빚진 사람과 그 사람의 휴대전화만 알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