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924 ~ 20160925
<바이칼 호수>에 대해 나는 알지 못했다.
그저 바이킹과 더불어 스칸디나비아 근처 어느 산맥을 떠올리게 했을 뿐인데,
이곳에 바이칼 호수가 있다니.
나는 정보를 준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 만난) 친구와 함께 바이칼에 갈 준비를 했다.
이르쿠츠크에 있는 숙소에 문의하니 바이칼 호수까지 갈 수 있는 교통편을 찾을 수 있었다.
바이칼 호수를 가기 위해 머무는 주요 도시인지라, 대부분의 숙소에서 교통편을 중개해주는 것 같았다.
8-10명 남짓한 사람들을 모아
승합차나 버스에 태우고 5-6시간 남짓한 거리를 달리는데
비용은 왕복 2,000 루블(약 40,000원). 고급 차를 이용하면 가격이 높아졌다.
우리가 타기로 한 승합차는 창문에 거미줄같이 금이 쩍쩍 나 있는, 낡고 오래된 것이었다.
운전은 몽골에서 온 사람들이 맡았다.
칭기즈칸을 떠올리게 한 퉁퉁한 몽골 운전자는
거침없이 길을 내달렸다.
낡은 승합차가 끊임없이 덜컹덜컹했다.
갈 길이 먼 모양이었다.
두세 시간쯤 달렸을까.
승합차는 어느 카페에 멈춰 섰다. 그리고 운전자가 뭐라 뭐라 말했는데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듣지 못했지만, 동시에 무슨 뜻인지 알아챌 수 있었다.
휴식 시간이었다.
우르르 내려 스트레칭을 하고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나와 친구도 식사를 했다.
눈에 보이는 몇 가지를 대강 골라서 (어차피 알아볼 수 없으니) 주문했는데 나쁘지 않았다.
특히 이 러시아 식 팬케이크는 딸기잼을 발라먹는데
쫄깃쫄깃하면서도 담백해서 맛있었다. (얇은 메밀전 같은 식감이었다.)
식사를 마치니, 승합차의 시간이었다.
기지개를 한 번 켜고, 몸을 구겨 넣었다.
그리고 어느덧 바이칼 호수에 다다랐다.
바이칼 호수를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알혼섬>에 가야 한다고 했다.
자동차를 배에 실어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또 우르르 내렸다.
주변에 옷과 잡화를 가져온 상인들이 보였다.
조용하고 신비로운 곳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깊고 오래된 호수.
그리고 그 안에 홀로 뜬 섬과, 섬 한가운데 자리 잡은 마을.
이곳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이들도 나처럼
만나고 헤어지며, 부딪치고 전전긍긍하며, 오르락내리락 두근대는 심장을 부여안고 있을까.
어쩌면 흘러가는 대로 시간을 관조하며
자연의 섭리대로, 조용한 순간들을 쨍하게 빛낼 소소한 것들에 감사하며 살고 있진 않을까.
어떤 생도 멀리서 보면 아름답다.
나는 이들의 삶을 모르므로, 이 조용한 마을이 그리웠다.
포털에서 간단히 검색한다.
호수 안에는 총 22개의 섬이 있는데, 가장 큰 것은 길이 72km인 알혼(Olkhon) 섬이다. 알혼 섬은 호수 내에 위치한 섬으로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이다. 바이칼이라는 명칭은 몽골어로 ‘자연’을 뜻하는 바이 갈(Baigal, 러시아어로는 Байгал)에서 연유하였다.
바이칼 호수 [Lake Baikal] (두산백과)
바이칼 호는 아직까지 우리에게는 이름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그곳에 우리 민족의 뿌리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바이칼 호 주변에는 여러 소수 민족이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부랴트(Buryat)족은 인구 40만의 소수 민족으로서 자치 공화국을 이루어 살고 있다. 이들은 우리의 ‘선녀와 나무꾼’과 같은 설화를 갖고 있고, 특히 그들이 간직한 샤머니즘의 원형은 우리 민속과 비슷한 점이 정말 많다.
끝없이 펼쳐지는 초원을 달리다 보면 오색 천 조각을 두른 나무 말뚝을 수없이 만날 수 있는데, 이것은 우리의 솟대나 서낭당과 비슷한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또 부랴트 족도 우리의 ‘개똥이’처럼 아기에게 천한 이름을 지어 주어야 오래 산다고 믿어 ‘개’란 뜻의 ‘사바까’란 이름이 흔하다고 한다. 아기를 낳으면 탯줄을 문지방 아래 묻는 전통도 우리와 비슷하다. 함께 따라서 추는 춤은 강강술래와 비슷하며, 예전의 샤먼이 썼던 모자는 사슴뿔 모양으로 신라의 왕관과 비슷하다.
이들은 17세기에 시베리아를 정복한 러시아에 동화되어 부랴트족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지만 남쪽 국경 너머 몽골과 중국 북부의 몽골인과 뿌리가 같고 언어도 비슷하다. 유목민인 이들은 자신들을 칭기즈 칸의 후예로 믿고 있다.
바이칼 호 - 시베리아의 담수 공장 (대단한 지구여행, 2011. 8. 1., 푸른길)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인간의 짧은 생은 무엇이 그토록 시끄럽길래 이 평온한 곳에서조차 신에게 기도를 하게 하는가.
행복하고자 하는 마음이 오색 천에 담겨 바람에 흩날린다.
그리고 호수.
대한민국 면적의 1/3을 차지한다는 이 호수는
끝도 없이 넓어서 바다를 연상케 한다.
짠 내음이 없어 얼음 같은 바람만 마주하는 곳.
사실 그곳에서는 별 감흥이 느껴지지 않았는데,
한국에 돌아오고 나니 종종 생각난다.
내가 끝없는 호수를 마주한 적이 있었지.
바람이 차가워 얼음 같았지.
보고 싶은 사람도 있었고, 용서받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
하지만 그곳은 파도도 없이 투명하고 고요했지, 하고 말이다.
저녁으로 친구와 식당에서 오믈이라는 물고기를 먹었는데.
엉망진창이었다. 이미 다 팔리고 남은 한 마리는 퍼석퍼석 탄 채 조리되어 나왔다.
오믈이 남아있지 않다는 말에 세 번째인가, 네 번째로 들른 식당이었다.
주인아주머니는 TV 드라마를 켜놓고 계셨다.
우리나라 아침드라마와 비슷한 것 같았다.
그래도 뭐, 나쁘지 않았다.
그곳에서조차 냉장고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콜라와
TV에서 눈을 떼지 않으시는 아주머니를 보며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랑 똑같구나. 그저 사람 사는 마을일 뿐이구나.
출발하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지만
걷고 싶어 졌다.
고요한 마을의 아침을 만끽하고자 길을 나섰다.
지난 오후, 숙소 앞에 우리를 내려주었던 승합차가 다시 우리를 데리러 왔다.
바이칼 호수를 구경하고 이르쿠츠크로 돌아가는 길.
모두 잠이 들었다.
신이 가만히 내려다보는 것 같은 순간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건 차 안에서 가만히 눈을 감고 햇볕을 쬐는 시간.
구름 사이에서 햇빛이 찬란하게 스며 나올 때
행복해진다.
아, 나는 행복하구나. 이러려고 여행을 왔구나.
괜스레 반갑다.
바이칼 호수의 고요함에서 돌아와 도시의 풍경을 보는 것이.
내가 사는 곳과 닮은 장소는 이곳이구나, 싶어서일까.
묘한 안정감이 들었다.
친구와 마지막 만찬을 즐기기로 했다.
나는 다음 날 아침 7시 25분 비행기로 모스크바로 향한다.
부디 다시 만나기를.
이르쿠츠크도, 바이칼 호수도
(이어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