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002 ~ 161003 : 베를린장벽, 대성당, 이스트사이드갤러리
이제 흔한 풍경이라고 하지만
비행기에서 보는 창 밖은 언제나 두렵고 설렌다.
(지상으로 내려가는 천사처럼)
환상에서 현실로 발 내딛는 순간.
낯선 풍경으로 스스로를 내던지는 순간.
마치 갓 태어난 아이가 세상과 인사하는 것 같은 순간.
어쩌면 이 순간을 경험하고자 여행하는 게 아닐까.
안나는 내 중학교 친구다.
학창 시절부터 노래를 잘하던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이탈리아로 성악 공부를 위해 유학을 갔다.
그곳에서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만난 대구 출신의 유학생 오빠.
그는 안나처럼 노래를 잘한다고 했다.
다정하고 자상한 데다 속도 깊다고. 오랜 친구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러더니 평생 옆에 두고야 말겠다는 듯 결혼을 했다.
이탈리아에서 공부를 마친 뒤, 자동차를 몰고 독일로 이사 온 부부.
내가 독일에 도착한 때는,
그들이 독일로 이사 온 지 2년 정도 됐을 때였다.
(지금은 또 다른 길을 향해 열심히 달리는 중이다. 거침 없는 부부다. 멋져 역시)
안나 부부가 알아봐 준 숙소는 지인의 집이었다.
동독과 서독을 가르는 베를린 장벽이 있던 곳.
그 바로 앞에 위치한 아파트였는데, 깨끗하고 넓었음에도 저렴하게 대여해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찌나 고마운 일인지.
그럼에도 당시 내가 충분히 감사하다고 표현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못했던 것 같다. 내가 이렇다.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 대강 정리하니
저녁이 다가오고 있었다.
뭔가 마음이 아쉬워
간단하게 산책(?)을 하기로 했다.
도착한 곳은 베를린 대성당 (베를린 돔).
1747년부터 지어진 건물로, 본디 훨씬 화려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을 받아 단순하게 바뀐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건물 외부를 스크린 삼아 빔 프로젝터 영상 쇼를 하고 있었다.
유적과 현대 예술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사람들이 가득 모여 쇼를 관람했다.
그렇게 밤이 지나고.
다음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생수와 간단한 간식거리를 사기 위해
마을을 둘러봤다
햇볕이 따스한 날.
숙소가 위치한 곳은 그야말로 역사의 중심지.
철골만 남은 베를린 장벽을 돌아보는 관광객이 보였다
지난달, 세 번째 이뤄진 남북정상회담.
우리나라의 휴전선 위에도 리본이 묶일 수 있을까
베를린 장벽 안쪽,
동독에 속해있던 마을을 휘휘 걸었다.
조용한 마을이었다.
벤치에 앉아 멍을 때리다가
숙소에 돌아와 주섬주섬 나갈 준비를 했다.
도착한 곳은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베를린 장벽 일부에 조성된 미술 갤러리로 슈프레 강 옆에 조성되어 있다.
벽 양면에 다양한 작품이 그려져 있다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를 구경한 뒤에는
아무 곳으로 향했다.
지하철 역 근처에 내려 허기를 채우려고 두리번거리는데
한쪽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벼룩시장이 열린 것 같았다
잡동사니가 나름의 질서를 가지고 자리 잡고 있었다.
누군가의 손에서 역할을 다 한 물건들이
또 다른 역할을 꿈꾸는 곳.
물건도 이럴 진대 사람은 어떨까.
모든 [END]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고
또 다른 시작을 웃으며 마주할 수 있기를.
하루하루 버텨낸 시간을 역사로 고스란히 안고
그 값어치를 증명할 수 있기를.
그리고 그 시간을 이겨낸 누군가를
누군가는 꼭 알아보기를.
(이어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