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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수없음 Oct 16. 2016

[여행] 시베리아 횡단열차 (2)

2016. 09. 20 - 2016. 09. 23


2016년 9월 20일 오전 11시 2분

블라디보스톡 발, 모스크바 행 열차에 탔다.


낡아보여도 001번, 최신식 열차다.
모든 자리가 열려있는 3등석


나는 방처럼 공간이 나뉘어져 있는 1, 2등석 대신 3등석을 택했다.

홀로 여행하는 여자의 경우, 오히려 사람 많은 공간이 안전할 수 있다는 블로거의 조언 때문이었다.  


하지만 3등석은 모든 자리가 지나치게 열려있었다.

옷을 갈아입는 건 불가능했고, 자고 있을 때도 끊임없이 누군가가 옆을 스쳐지났다.

사생활 따위는 개나 줘야 했다.


자연스레 이웃이 여행의 성패를 결정짓는 요소가 됐다.

내 윗 자리, 옆 자리에 누가 오느냐에 따라

7박 8일간의 여정이 지옥이 될 수도, 천국이 될 수도 있었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지옥일 수도, 천국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내 옆 테이블에 앉은 할아버지는

열차에 타자마자, 차근차근 익숙한 솜씨로 술판을 벌였다.

(차장님이 오실 때면 손바닥으로 술잔을 감추면 된다는 꿀팁도 전해주셨다)


까삐딴의 보드카와 나의 처음처럼
주머니칼 하나면 만사 OK
오 마이 까삐딴,  보고 싶은 할아버지


자신을 까삐딴(captain, 캡틴) 이라고 소개한 할아버지는 팔에 문신을 하고 있었다.

우리 둘 다, 각자의 모국어만 잘하는지라 긴 대화를 하지는 못했지만

사실 긴 대화는 필요 없었다.

한국에서 왔다는 내 소개에 '부산, 목포'를 되뇌이시며 반가움을 표시하던 그.

고기를 잡으며 전 세계를 돌아다니셨다는 그는 블라디보스톡에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이라 했다.



(왼쪽부터) 아나톨리, 금방 내리신 아주머니, 러시아 군인 자니, 까삐딴


통역이 되어준 아나톨리는 까삐딴의 윗층 자리였는데,

한국에서 농사일, 피자 배달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고 했다.

'한국을 좋아하는지' 묻는 내 질문에는 으쓱 거리며 50대 50이라고 대답한 아나톨리.

(언젠가 그가 장난으로 옆 사람의 멱살을 잡으며 한국 욕을 하는 시늉을 한 적이 있다. '개xx'.  

그의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나는 내가 대신 사과하고 싶었다.)


우리 칸에는 한국인이 무려 (나 포함) 다섯 명이나 있었는데

한 명은 병원에서 일을 하다가 그만두고 여행을 떠나온 아가씨였고,

한 명은 군대를 전역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여행을 떠나온 청년,

그리고 두 명은 대학교를 같이 다니다가 영상도 만들 겸, 경험도 쌓을 겸 온 학생들이었다.


카리스마 까삐딴 할아버지와 성격 좋은 아나톨리 덕택에(?)

우리 자리에는 늘 술판이 벌어졌고, 온 이웃들이 테이블로 모였다.


러시아 땅은 넓었다.

가도 가도 끝없이 이어지는 땅.

이들이 이토록 술을 마시고, 사람들과 어울려 대화하는 이유는

땅이 너무 넓어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 밖을 보아도 보이는 게 없다


하루에 세 네 번 정도.  

15분, 30분. 길게 정차할 때를 기다려 달려나가면  

찬 공기를 들이마시고, 음식도 사먹을 수 있었다.


담배도 피우고 기지개도 켜는 시간
승무원도 승객도, 일단 밖으로 나온다
때때로 선물처럼 주어지는 그림같은 풍경


나는 '블라디보스톡'에서 '모스크바'까지 7박 8일간 열차를 탈 예정이었으나

중간 '이르쿠츠크'에서 (다른 한국 여행객들과 함께) 내리기로 결정했다.


몸이 많이 안 좋아진 데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바이칼 호수>를 직접 보고 싶어서였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의 마지막 아침이 밝아오고 있다


내가 내릴 역은 '이르쿠츠크' 역.

아나톨리는 이미 7시간 전 '울란우데' 역에서 내렸기 때문에

까삐딴은 홀로 남아 기차를 타고 가야 했다.


까삐딴은 내게 왜 모스크바까지 가지 않느냐며,

자신이 사는 동네인 '노보시비리스크'에서 내려 구경도 하고,

카자흐스탄도 둘러보고 모스크바로 넘어가라 말했다.


'노보시비리스크'는 '아스타나' 위쪽에 있다


나는 (비록 대화는 못할지라도..)

까삐딴의 핸드폰에 내 연락처를 저장해드리고 싶었는데

까삐딴은 핸드폰의 저장 기능을 사용할 줄 모르시는 것 같았다.

나한테 자신의 핸드폰으로 전화하라 하시다가, 이것저것 눌러보시다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하시고는 전원을 꺼버리셨다. 배터리가 없다면서.

거짓말...


그러더니 결국 내릴 거면 마지막으로 술 한 잔 다 같이 하고 내리라고.

자신은 계속 잠들어 있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산전수전 다 겪은 노 선장의 그 말이 너무 쓸쓸하게 들려서 몰래 울었다.


2016. 09. 23. 아침 6시. 이르쿠츠크 역


그럼에도 이기적인 나는 이르쿠츠크 역에서 내렸다.

그럼에도 끝까지 손을 흔들던, 까삐딴.



술 먹지 말라고 단속하더니 '처음처럼'을 가슴에 품고 간 차장님, 그리고 까삐딴


나는 아마 그를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도. 그가 사는 도시 노보시비리스크도.

함께 마신 보드카도. 마지막 배웅도.



***


열차 안에서 기억에 남는 토론 시간이 있었다. 

궁금한게 있다는 내 말에 3등석 사람들이 모여 둘러 앉았고

영어를 좀 할 줄 안다는 1등석 요리사 아저씨까지 급하게 불러왔다. 

(내가 영어를 잘 못한다는 게 함정이지만 어쩔 수 없...)


내 질문은 두 가지였다. 

1) 러시아 사람들은 왜 그렇게 푸틴을 사랑하는가.

- 러시아 곳곳에서 '푸틴♥' 적힌 티셔츠와 각종 상품이 보였다

2) 구 소련을 겪은 사람들이 당시를 그리워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스스로의 젊음에 대한 그리움인가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그리움인가

- 이전에 만나 대화했던 루마니아, 폴란드 사람 역시 당시를 이야기하며 눈물을 글썽인 적 있었다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1) 소련의 몰락 이후, 미국과 함께 세계 최고의 국가로 군림하던 러시아가 초라해졌다. 

    정치인은 제 잇속을 챙기기 위해 비리를 일삼았고, 러시아는 모두에게 무시당했다. 

    그런데 푸틴은 '러시아가 강하다' 말한다. 우리가 주변의 약소국들을 도와줘야 한다고 말한다. 

    푸틴이 자신들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있다는 거다. 

    열변을 토하는 아주머니, 아저씨들은 내게 '푸틴이 얼마나 멋진 지도자인지' 설명하는데 바빴다. 

    내가 납득하지 않으면 밤을 샐 기세였다. 나는 웃으며 '아이러브푸틴' 했다. 엄청 좋아하셨다.


2) 소련 시대에는 옆집에 있는 사람과 내가 동등했다. 

    아프면 병원에 가고, 같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다. 

    그런데 자본주의가 들어오며 달라졌다. 옆집 아이가 고기를 먹는데, 우리 아이는 먹을 게 없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차별이 생겼다. 

    내가 못 먹고 못 쓰는 것이 '모두의 책임' 이 아니라 '나의 책임'이 되었다. 

    자본주의가 들어와 좋은 점도 있지만 분명 안 좋은 점도 있다. 

    그들은 1번 질문과 달리 조심스레 답했다. 


나는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그들의 말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



(이어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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