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th Valley 생존 일지 네 번째
스타트업은 식량이 떨어져 죽기 전에 Death Valley를 탈출하는 게 중요 미션이라는 점에서 일반 중소기업과 다릅니다. 따라서 짧은 시간에 효과적으로 달성해야 할 미션이 있고 대부분이 지켜야 할 Build Order 같은 것이 있습니다. 아직 Death Valley를 탐험하고 있는 탐험가로서 후발대를 위한 표시를 이렇게 남깁니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아이템이 사업의 외모라면, 사업모델은 보다 본질적이고 분석적인 부분입니다. 이 글은 사업 모델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사항만 간단히 언급해야 할 것 같습니다. 포괄적인 내용은 책을 써야 할 정도니까요.
세상의 모든 사업은 아래와 같이 그래프로 그릴 수 있다는 게 오늘의 핵심입니다.
사업이란 고객(갑)에게 가치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이템의 핵심이고요. 그런데 아이템에선 고객과 가치가 주로 보이는 반면 모델에선 그와 등가의 개념인 대가와 가치의 제공자를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사업을 시작하시는 모든 경영자는 자신의 사업을 위와 같이 그래프로 모델링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 자신의 환상적인 아이템에 빠져, 한마디로 눈에 콩깍지가 껴서 사업을 추진하다가도 막상 위와 같이 그래프를 그려 보면 어딘가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걸 확인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그 옛날 트위터가 만들어 지기 전으로 돌아가 나에게 그 멋진 아이템이 생각났다고 생각해 보죠. 아마 이렇게 모델을 그릴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 항상 그랬듯이 '대가' 부분을 빈칸으로 놓아두겠죠. 투자자가 물어보면 이렇게 얘기했을 겁니다. “광고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결과론적이긴 하지만 결국 그렇게 무책임한 대답이 현재의 트위터를 어렵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위의 그래프대로라면 저 대가 부분이 가장 취약한 부분이므로 단순히 광고로 해결하면 되는 문제가 아니라 트위터의 짧은 메시지 플랫폼이 광고하기에 적합한지 등 보다 다각적이고 전략적으로 분석되었어야 했다는 겁니다. 물론 이건 이해를 돕기 위해 결과론만 말한 것이고 실제 사업에서는 예외적인 경우가 많다는 것도 말씀드립니다. 정리하자면 모델을 그렸을 때 취약한 부분이 있다면 그 지점이 바로 “이 사업이 안 되는 이유”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리고 그걸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보강하는 것이 사업모델 분석의 핵심인 것 같습니다.
와이퍼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제가 처음에 그린 와이퍼의 사업 모델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차장과 고객을 딜리버리 서비스로 이어주면서 우리는 세차장으로부터 수수료를, 고객으로부터 고객 차량의 세차 전/후 사진을 가지고 외장 수리, 타이어 교환 등 다른 자동차 vertical market으로 확장하는 것이 애초의 계획이었습니다. 세차장으로부터 받는 수수료가 비록 적어도 어느 정도 볼륨이 확보되면 추가적인 vertical market 서비스에서 발생하는 매출로 보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다시 결과론인 얘기지만 이 모델 또한 잘못된 겁니다.
문제는 저를 포함해서 모든 초보 사업가는 항상 자신의 사업이 예상대로 잘 될 것이라 생각하고 가장 긍정적인 projection을 한다는 겁니다. 저 모델의 문제는 세차장으로 받는 수수료 대비 우리가 제공하는 딜리버리 서비스의 비용이 과다하다는 것입니다. 그것 까진 저도 알고 있었지만 국내 투자 업계가 그걸 버틸 수 있는 규모로 충분히 큰지 감을 잡을 수 없었던 게 문제였죠. 결국 플랫폼 사업을 하기 위해 고객을 확보하는 시간보다 초기 투자금을 소진하는 시간이 더 빨랐고, 그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 우리는 직영 체제로 빠르게 전환해야 했습니다. 즉, 위의 모델은 아래와 같이 단순하게 다시 그려야 했습니다.
사업모델을 만드는데 한 가지 참고할 만한 개념이 ‘오캄의 면도날’(Occam’s Razor)이라는 겁니다. 문제를 푸는 방식이 단순할수록 효율이 좋고 정답일 확률이 높다는 일종의 철학인데 살다 보면 정말 진리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사업모델 또한 노드와 링크가 많은 것보다는 적은 게 성공할 확률이 높습니다. (스타벅스나 코카콜라 같은 사업을 모델로 그려 보면 알 수 있죠) 이 부분에 대해서도 할 말은 많지만 아무래도 블로그가 아니라 책이 될 것 같아서 패스…
다시 말해 플랫폼 어쩌고 하는 개념은 사업 초기 모델에 그려 넣어 봤자 먹혀들지 않습니다. 그러한 개념이 작동하려면 투자금을 넉넉하게 확보할 자신이 있거나 적은 돈으로 오랫동안 개발할 수 있는 비용구조를 만드는 방안이 확보되어야 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사업모델을 그릴 때 다음 단계를 예상해서 그려 넣지 말고 가능한 1차에서 작동할 수 있는 모델로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글을 써 놓고 보니 사업 모델이라는 게 결과를 분석할 때만 쓰이고 저처럼 좀 안다고 하는 사람도 아무짝에 쓸모없는 것처럼 보이네요. 그래도 다른 분들의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한 가지 도움이 될만한 경험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최초에 그린 모델을 가지고 와이퍼가 조금씩 투자를 받으며 순조롭게 항해를 하고 있을 때에도, 모델에 결함이 있다는 사인은 조금씩 보였습니다. 문제는 대부분의 경영자가 그 사인을 무시한다는 거죠. 예를 들어 정부 지원금을 받기 위한 IR 발표장에서 스타트업 업계의 대부 중에 한 분인 고영하 회장님이 와이퍼의 심사위원으로 참석하셨는데, 대부분이 와이퍼를 높게 평가하는 분위기였고 결국 지원금을 받는데 성공을 하기도 했지만 고회장님은 집요하게 와이퍼를 비판하셨습니다. “시장이 너무 작다. 요즘 누가 손세차를 하나”라는 게 핵심이었죠. 세차할 때 손세차만 했던 저는 그 말이 너무나 우습기도 했고 상황상 그러한 비판에 기죽을 필요는 없었지만, 보다 신중한 CEO라면 앞서 그린 초기 모델의 그래프에서 ‘고객’이라는 노드가 너무 작을 경우 발생하는 문제를 대가의 의견에 따라 신중하게 재검토했어야 합니다. 그러한 사인은 고회장님의 지적 말고도 조금씩 보였으니까요. 특히 VC 심사역들은 겉으로는 좋은 말만 해주면서 결정적인 투자를 하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러한 모델이 갖는 문제가 작용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부분도 중요합니다. 엔젤투자자와 엑셀러레이터는 아이템만으로도 투자를 하지만 VC는 모델을 봅니다. 특히 VC 심사역들은 모델의 문제를 직감하고 투자하지 않으면서 그걸 구체화하여 지적해 주지는 않습니다.)
제가 강조하고 싶은 건 사업 초기에 ‘누군가가 지적하는 모델의 어딘가’는 다른 긍정적인 의견에 묻히기 일쑤이지만 death valley의 모퉁이 어딘가에서 커다란 괴물이 되어 들이닥칠 거라는 겁니다. 즉 그 누군가의 지적은 바로 비극의 복선이니, 경영자라면 너무 실무적인 일에 매몰되지 말고 사업 모델 같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영역에 대한 고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합니다.
사업을 시작할 때 반드시 모델을 그려 보고 그 모델에 약점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공개하고, 토론하고, 비판받으면서 개선해 주세요. 물론 쉽진 않습니다. 대기업에서 신사업을 하며 나름 깨달았다고 생각한 저도 저렇게 어이없이 빗나갔으니까요.
하지만 너무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고회장님의 말에 사업을 접을 수도 없었고, 곧바로 사업 모델을 바꿀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우리 와이퍼는 여전히 잘 하고 있습니다. 이유인 즉, 사업모델이 중요하긴 하지만 스타트업에겐 그 또한 절대적이지 않기 때문이죠. 사업 모델은 고민을 위한 수단일 뿐 상황에 따라 지속적으로 바꿀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스타트업의 장점입니다.
다음 편에선 아이템과 모델을 효과적으로 구현하는데 필요한 개념인 scale 관리에 대해 작성해 보겠습니다. 제가 사업을 하면서 가장 뼈저리게 느낀 부분이기에 지금보다는 더 도움이 되실 것 같습니다.
휴가를 끝내고 복귀하는 비행기 안에서 글을 썼더니 내용이 좀 산만하네요. 이론적인 글보다는 경험을 중심으로 쓴 것이니 이견이 있으면 자유롭게 반론하며 토론했으면 합니다. 스타트업 초보 CEO로서 저도 더 배워야 하는 입장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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