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정밀하게 삶이 되고
나이가 적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나이가 많아졌다거나 많아지고 있다고 생각해온 건 아닌데,
그런데도 이미 나도 모르게 보인 빈틈에 차곡차곡 무언가 쌓여서 나는 벌써 이만큼
어른이 되어있다.
지금 보는 하늘은 또 일년 어치 만큼 멀어져 있고. 코 끝에 스치는 가을 냄새가 유난히 쓸쓸한 것이,
그다지 어디에서도 환영 받지 못한 채 뱅글뱅글
도는 내 삶에 그 냄새가 옮는 것만 같고.
사실은 내가 밀어내는 것인지 그들에게 떠밀리는 것인지도 모를 하루하루가 스물 아홉 언저리에
드문드문 쓸려가고 있다.
마치 이건 바닷가 모래 위에 하필 썰물이 쓸려갈 때 써놓은 사랑고백 처럼, 먹먹하지만 얌전히
휩쓸려 사라질 그 순간을 기다리는 것만 같아
위태롭고도 흥미롭게 딱 그만큼 아슬아슬하다.
내 발은 너에게 닿아있고 너의 손은 잠결에도 내가 있는 자리를 찾아주어서
나는 새삼스럽게도 다시
여기가 내 자리인 것을 깨닫는다.
복사꽃이 피고지는 뜨겁고 달큰한 여름을 우리는 아마 지나가고 있는 거야.
코 끝에 단내가 남아서 여전히 미소도 남은 채로,
오늘 내 이마에 닿는 것은 쌀쌀한 바람
아침에 면도한 너의 턱.
오늘따라 너에게서 어른냄새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