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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선 Feb 06. 2021

엄마가 달라졌다

[215일] 이유식에 진심인 엄마

아내가 화났다. 

나에게 화내는 일이야 특별할 것도 없는데, 이번엔 원인 제공자가 내가 아니라 7개월짜리 아들이다.

아들이 세상 떠나가라 울어도, 기저귀 가는데 오줌 총을 쏴대도, 목욕시키고 나자마자 똥을 싸도 화 한번 내지 않던 아내다. 어떻게 똑같은 사람이 상대에 따라 선인이 되기도 악인이 되기도 하는지 그게 궁금할 정도였다.


그런 그녀가 아들에게 화났다.

이유식 때문이다. 아내는 내 예상과 다르게 이유식에 진심이었다. 장을 볼 때면 자기 먹을 요구르트나 커피 사는 데만 열정적이고, 요리라고는 월에 한 번 하면 감사할 정도인 그녀였다. 그런 그녀가 아이 먹을 식재료 살 때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당근이나 무는 입에도 안 대는 사람이 요새는 채소 코너 앞에서 가장 오래 서성인다. 이른 아침 부엌에서 도마 두드리는 소리가 나질 않나, 잘 쓰지도 않던 울, 강판, 믹서기, 절구 등을 자유자재로 쓰는 아내가 달리 보인다.

그녀는 계량에 아주 민감하다


그녀에게도 닭 미음은 난제였다. 닭 안심을 사서 힘줄과 지방을 벗긴 다음 삶아서 잘게 다진다. 고작 7개월 주제에 육수가 왜 필요한지 모르겠지만 닭다리를 따로 사서 육수를 내고 당근, 찹쌀과 함께 만들어 낸 미음은 내가 봐도 정성의 산물이었다.


문제는 우리 7개월 아이돌(거꾸로)께서는 그런 히스토리 따위는 안중에 없다는 것. 녀석은 엄마 마음 안중에도 없이 입에 넣으면 뱉고, 다시 입에 넣을라치면 딴짓하면서 삼 분의 일도 채 먹지 않았다. 그마저도 목에 걸리는지 켁켁 거리며 우는 통에 더는 먹이지 못했다. 그 여파는 컸다. 얼굴은 물론이거니와 옷, 의자, 바닥까지 전부 닭고기 조각들로 난장판이 됐다. 거기서 아내가 폭발했다. 닭고기를 주우며 씩씩거리는 아내의 눈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터미네이터인 줄. 노력이 인정받지 못해 마음이 상한 것인지, 더럽혀진 옷과 바닥이 심기를 건든 것인지 확실치 않았다. 다행히 다음에 먹일 때는 조금 더 끓여 되직하게 만들어서인지, 이제는 녀석도 적응을 한 것인지 좀 더 수월하게 먹일 수 있었다.

고니 : 난 이유식의 반만 가져가


아내 말이, 이제는 하루에 두 번씩 이유식을 챙겨야 하고, 미음에 들어가는 재료의 입자가 너무 작아도, 너무 커도 안 되는 단계란다. 출산 후 얼마 전까지 육아에 대해서는 아내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 자신했는데 이유식이 시작된 후로 갑자기 부진아가 되어 버린 느낌이다. 아이를 먹이는 일은 신혼부부 끼니 때우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중요하고 또 까다로워 이제는 아빠가 범접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섰다. 그래도 엄마가 잘 먹여서인지 3.01kg로 태어난 아이가 벌써 9kg가 되었다. 아침에 출근 인사하며 안았던 아이가 밤에 퇴근해서 들면 그새 느낌이 다르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아들의 발


아이 이유식 덕분에 우리 부부 식탁 풍경도 많이 달라졌다. 이유식 하고 남은 재료로 끼니를 때우다 보니 늘 먹던 음식이 아니라 새로운 걸 하게 된다. 닭 이유식 때문에 아내는 속이 상했겠지만, 덕분에 남은 부위로 찜닭을 해 먹을 수 있어서 아주 좋았다. 아내가 당분간 속이 상하더라도 계속 새로운 이유식을 시도해줬으면 하고 철없는 째 아들은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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