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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비일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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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선 Apr 22. 2021

맞으면서 큰 아빠라서

[290일] 아빠의 고해성사

뉴스에는 도통 관심이 없던 아내가 요즘 부쩍 뉴스를 보며 열을 내는 일이 잦아졌다. 인천에서, 천안에서, 구미에서 경쟁하듯 터져 나오는 아동 학대 사건 때문이다.

9개월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이다 보니 더 끔찍하게 여겨지는 사건들이라 아내가 감정이입을 할까 염려되어 되도록 뉴스를 찾아보지 말라 일렀다.


아내에게 말은 안 했지만 사실 속사정은 따로 있다. 그런 뉴스가 업데이트되고 아내가 어김없이 "미친놈", "죽일 놈" 할 때마다 나는 괜히 피의자처럼 고개를 숙이고 만다.


하루 종일 아이를 보는 아빠로서 나는 과연 떳떳한가?


요즘 이유식 권태기가 와서 안 먹겠다고 울부짖으며 밥알을 여기저기 내뱉을 때마다 나는 이성의 종점을 실감한다.

기껏 손에 쥐어 준 장난감을 괘씸하게 바닥으로 던질 때, 아내가 힘들게 만든 이유식을 바닥에 도로 뱉어낼 때 나는 더 이상 아빠도, 보호자도 아니게 된다.

가끔 아이 얼굴에 대고 모진 말을 뱉기도 하고, 옆구리에 끼거나 거꾸로 거칠게 들어 흔들어 대기도 한다. 몇 번은 집어던지고 싶은 욕구를 간신히 누르고 푹신한 침대에 던지듯 내려놓기도 했다. 아마 그렇게라도 내가 심히 화가 나 있음을 9개월짜리 아이에게 표현하고 싶었나 보다.


그게 뭐 어때서?
나는 어렸을 때 아빠한테 매일같이 맞고 살았는 걸? 오죽했으면 아버지 허리에 달린 열쇠 소리만 들려도 오들오들 떨었지. 손으로 뒤통수 맞기는 부지기수고 테니스 라켓이며, 빗자루며 우리 집에는 흉기로 늘 가득했어. 어찌나 아이템 선별도 참신하던지 우리 형은 밥상머리에서 밥그릇으로 머리를 맞아서 응급실에 실려 갔다니까? 그때 나는 그 옆 자리에 있었고 바닥에는 꽃잎처럼 피가 흩어졌어. 그게 철 없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근데 뭐? 내가 때리기를 해? xx놈, 개xx 쌍욕을 했어? 이 정도는 괜찮은 거 아냐?!


내 안에서 괴물이 소리칠 때면 되려 나는 차분해진다. 그리고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면서 내 몸을 타고 올라와 가슴팍에 안기는 아이를 내려다본다. 한참을 그렇게 보다 보면 아이는 언제 난리 쳤나 싶게 잠에 빠져들고, 나는 죄책감과 미안함에 사무쳐 아이의 머리를 한동안 어루만진다.


괴물이 또 한 번 지나갔구나...


언젠가 아버지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우리 어릴 때 대체 왜 그랬냐고.

아버지는 마시던 술을 이어 마시며 말했다. 그땐 자신도 여유가 없었다고. 세월이 지나 먹고 살만 해지고 일도 그만두고 나니까 여유가 생겨서 남들도 눈에 들어오고, 봐라 네가 좋아하는 회도 하나로마트에서 사 오고 그러지 않냐고.

나는 아버지에게 말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여유가 없다고 느꼈을 때,

아들은 아버지라는 존재가 가장 고팠고,

아버지가 이제와 여유를 갖게 되었을 때,

아들은 아버지를 용서했노라고.


근데 그건 아버지가 열심히 살아온 결과가 아니라 단지 아들인 내가 죽어라 바르게 살아온 결과라고.


이제 일흔을 앞둔 아버지는 저런 뉴스가 나오면 무슨 생각을 할까? 늘 궁금하지만 아마 돌아가실 때까지 묻지 못할 게다.


내 아버지 세대, 그러니까 내 아들의 할아버지 세대는 폭력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웠다는 걸 알고 있다. 시대가 바뀌고 세상이 바뀌니까 갑자기 범죄랍시고 단속하는 게 어색할 수 있다는 것도.

때문에 과도기인 우리 세대는 머리론 잘못된 걸 알지만 몸에 박힌 폭력의 기억이 여태 꿈틀대고 있다.


나와는 정반대로 자란 아내에게 말한다.

모든 부모에겐 마음에 선이 하나 씩 있다고. 아이를 키우는 게 너무나도 힘들기에 우리 모두는 그 선에 가깝게 살고 있고, 괴물들은 그 선을 넘은 거라고. 문제는 그 선을 언제든 우리도 넘을 수 있기에 최선을 다해 그 선 안에서 살아야 한다고.

(물론 아이를 죽음까지 이르도록 버려둔 자들이나 본인의 신세 한탄용으로 아이를 학대하는 종자들은 인간이길 포기한 자들이니 논외다.)


아직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아들에게 조용히 속삭인다.

오늘도 미안하다고, 

오늘도 아빠가 잘못했다고.

오늘도 너로인해 삶을 새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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