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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비일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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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선 Apr 22. 2022

두 번째 진급 누락

[655일] 아빠에게 붙은 육아휴직이라는 주홍글씨

 어제 회사 사람들과의 술자리가 있었다. 오래전에 잡은 약속인데 하필 그날 진급 발표가 날지는 몰랐다.

약속 시간 바로 전에 진급에서 떨어진 걸 알았다. 참석자 중에는 차장 진급을 한 선배가 있었고, 어쩌다 보니 진급 턱을 내는 자리가 되었다. 약속 장소에 가는 길에 몇 번을 멈춰서 갈팡질팡했다. 당장은 아내와 아이 얼굴을 볼 자신이 없어 결국 약속 장소에 갔다. 분위기를 망치기 싫어 내내 쿨하게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자정이 다 되어 자리를 파하고 택시를 기다리는데 문득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엄마 목소리가 그리워졌다. 지금 시각이면 소파에 누워 TV를 보다 잠들어 있을 게 분명한 엄마였지만 깨워서 목소리라도 듣고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엄마는 전화벨 소리에 잠에서 깬 듯 비몽사몽이었고, 나는 안부만 묻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오늘 아버지에게 톡이 왔다.


"별일 없지?"


 생전 전화라고는 안 하는 막내아들이 그것도 늦은 시각에 전화를 했으니 그들의 걱정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사실을 말하면 분명 마음 쓰실 게 분명하고, 혹여나 아이를 봐주지 못하는 본인들의 상황을 미안해할까 싶어 나는 끝까지 쿨한 척하기로 했다.


 어쩌면 육아휴직을 낼 때, 아니 아이를 갖게 되었을 때부터 나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나의 선택이 주홍글씨가 되어 나를 꽤 괴롭히리라는 것을.

작년에 육아휴직을 내고 바로 이어진 진급 심사에서 누락했을 때, 그러니까 비고란에 육아휴직 예정자라는 딱지가 붙으면서 그것은 현실이 되었고, 올해 동기들을 비롯한 모두가 진급 파티를 벌이는 동안, 쓰디쓴 술을 삼키면서 내 예상이 빗나가지 않았음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물론 예상했다고 해서, 각오했다고 해서 실망이 줄어들지는 않았다.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것과 현실로 맞닥뜨리는 것은 언제나 다르기 마련이니까. 힘든 마음이 오래 지속되는 것도 아니다. 잔잔한 호수 같다 가도 불쑥 분노, 짜증, 슬픔 등이 한 번씩 분수처럼 솟아 올라 마음을 어지럽히다 다시 사그라들곤 한다.


 어제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결국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치열했던 지난 1년이 떠오르면서 서러움이 북받쳤다. 울지 않으려 애를 쓰면 쓸수록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다. 다행히 기사님이 창문을 열어두어 바깥소리에 울음소리가 묻혔다.  


 육아휴직 동안 아이와의 관계가 많이 좋아진 것도 아니고, 남부러운 결과물을 남기지도 못했다.

그러나 결코 후회는 없다. 6개월의 육아휴직(잔여 휴가와 유급 휴직을 합하면 8개월)을 포함해서 복귀 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나는 누구보다 열심히 임했고, 그건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

회사는 내가 선택을 후회하길 바라는지 몰라도, 나는 추호도 후회가 없다. 물론 복귀 후에 그토록 미친 듯이 일하지 않았어도 결과가 같았을 거란 생각에 배신감이 들뿐이다.


 누군가 원망할 대상을 특정할 수 없다는 사실은 꽤 답답한 일이다. '나쁜 놈'이 한 명 있으면 그놈 욕하면서 좀 풀리기 마련인데, 이 경우에는 집단과 시스템이 문제다. 나를 1번으로 추천했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팀장도, 나를 투명 인간 취급하던 임원도, 재수 없는 인사팀도 콕 집어 나쁜 놈이라고 볼 수 없다. 굳이 말하자면 그들 모두가 나쁜 놈에 가깝다 할 수 있다. 그들 모두를 원망한다고 한들 내 마음이 편해지진 않는다. 운이 없었다고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특정할 수 없는 그들이 잘못된 거지 내 탓도 내 운이 나빴던 탓도 아니니까.


 이직을 생각한다. 그러자 자잘한 걱정들이 자석에 붙 딸려온다. 이직하면 아이 등하원은 어쩌지, 전셋집을 옮겨야 하나, 이제 막 새로 적응한 아이 어린이집은 어쩌지... 당장 해결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애 아빠에게 이직은 많은 용기와 희생을 담보로 한다. 내가 아닌 가족들의 희생을...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이렇게 또 1년을 기다리는 게 맞나 이런저런 상념들로 머리가 어지럽다. 육아휴직자라는 주홍글씨가 언제쯤 희미해질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쉽게 결론에 도달하지는 못할 것 같다. 새근새근 잠자고 있는 아이와 그 옆에 지쳐 잠든 아내 얼굴을 한동안 바라본다. 저들의 희생을 담보로 나는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까?


 사람들의 위로가 날아든다. 힘내라는 말이 얼마나 사람을 힘없게 만드는지에 대해 모르지 않을 텐데 할 수 있는 말이 그것뿐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모른 척한다면 그것마저 서운할 것 같다. 그냥 내겐 시간이 좀 필요할 뿐.

지금 이 순간 가장 위로가 되는 건 꼬물거리며 내 품 안으로 파고드는 아들의 재롱과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재잘거리는 아내의 푸석한 얼굴. 그것만이 나를 위로한다.

내가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턴 정말 별 것 아니게 된다. 지금 내겐 진급 따위보다 아이의 변비가 해결되기를, 부디 이제 입을 떼기를, 그런 것들이 중요하니까.

결국 나 스스로 힘을 내야 한다. 주저앉아 있기엔 계절이 너무 아름다우니까. 무엇보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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