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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스물아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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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시진 Apr 05. 2019

계절이 벚꽃이다

벚꽃이 흩날리는 계절, 봄



그야말로 벚꽃의 계절이다


봄이 오면 으레 꽃이 핀다. 개나리도 진달래도, 너도나도 할 것 없이 꽃망울을 터뜨린다.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지만 왤까, 죄다 벚꽃으로 시작해서 겹벚꽃으로 마무리를 한다. 그런 계절이다, 봄은.

이름도 예쁘지 아니한가. 벚꽃이라니.


길을 걷다 활짝 핀 벚꽃을 우연히 마주하면 카메라를 꺼내 들어 사진을 찍는다. 자연스레 좋아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사진을 전송한다. 영상통화도 좋다. 예쁜 걸 봐서 예쁜 사람이 떠오르는 걸까. 사람들은 왜 벚꽃을 좋아할까. 집에 모셔두기엔 힘든 존재라 그런 건가. 나는 이번 봄이 유난히도 길게 느껴진다.  몸이 아파 집에 틀어박힐 때쯤 만개했던 벚꽃이, 아직도 나를 반겼다. 예뻐서 흐뭇했다. 물론 이제는 시들시들해져 그만 보내줘야 할 때지만.



대구 경북대 교내 19.03.27.





짧아서, 오래 보지 못해서

3월 말부터 4월 초까지. 길어야 2주 정도. 벚꽃이 피고 지는 그 순간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간. 사시사철 피는 꽃도 아니다. 고개를 슬그머니 내밀 때도 멀겋고 옅은 분홍빛을 띤 꽃몽오리가 참 귀엽다. 겨울이 가져왔던 마지막 찬바람이 불고 봄이 데려오는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면, 때가 된 듯 곱게 잎을 펼친다. 작은 잎들이 한데 모여 눈송이 같기도 하다. 슬프게도 이때쯤엔 꼭 봄비가 내린다. 방금 막 피어났는데, 봄비를 맞고 금세 떨어진다. 하루천하. 딱 어울리는 말이다.


혹여 봄비를 피했다 해도 그다음엔 봄바람이 세차게 불어온다. 나무 아래 설 기회가 오면 재빨리 손바닥을 펼쳐본다. 이리 와, 나한테 떨어져. 그 짧은 순간조차도 설레는 마음을 선물하고 흩어진다. 필 때도 질 때도 순식간에 왔다 사라진다.


대학생들에겐 어떤가. 늘 벚꽃이 필 때쯤엔 중간고사 시즌도 만개한다. 도서관에서 찌든 얼굴을 한 채 바깥으로 걸어 나오면 벚꽃이 맞이해준다. 난 다시 들어가 봐야 하는데, 너는 왜 이리 예뻐서 내 발목을 붙잡니. 너무 미련이 남는다. 이 벚꽃을 마음껏 누리지 못해서. 눈을 감고 온몸으로 벚꽃 샤워를 해도 모자랄 판에.


대학 선배가 늘 하던 말이 있다. "중간고사 끝나면 벚꽃도 끝난다." 그 선배는 벚꽃이 끝나기 전에 몸소 후배들을 데리고 명소를 찾았었다. 참된 선배다. 잠깐이라도 흠뻑 벚꽃 샤워를 하고 나면, 이런 걸 느끼려 인생을 사나 싶기도 하다. 우리나라엔 이곳저곳 벚꽃이 참 많은데, 아무리 봐도 볼 때마다 즐겁다.




대구 경북대 교내-2 19.03.27.




그래도 보내줘야지

하얗게 온 세상을 밝히던 벚꽃이 듬성듬성 남았다. 그래도 아직은 남았다. 떨어질 때도 찬란하게 눈이 부신다. 나무 아래 서있으면 온 세상을 다 가진 듯 착각도 든다. 세상의 중심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일까. 이 벅차오름을 그대로 만끽하고 싶다. 눈을 감고, 물든 채. 촉촉한 작은 잎들이 내 손 끝에 닿기를. 내 손짓 하나에도 멀어져 가는 약한 잎들이 먼저 나에게 와주길. 손바닥을 펼치고 하늘을 바라본다. 이렇게 끝도 없이 떨어지면, 언젠간 끝이 있겠지. 그때는 보내줘야지. 이번 봄에도 너는 참 예뻤다.





대구 북구 벚꽃 명소 꽃보라동산 19.03.27.



남녀노소

혼자 벚꽃 명소를 찾았다. 카메라가 있으니 혼자는 아니었나. 사람을 찬찬히 구경하며 셔터를 누를 때, 나도 모르게 사람들의 웃는 얼굴을 담고 싶었다. 난 벚꽃을 찍으러 왔는데 사람이 찍고 싶어 졌다. 실례가 되지 않을까 싶어 찍지는 못했지만. 대신 그들의 표정을 보았다.


이제 막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는 아이를 품에 내려놓자 뭐가 그리 좋은지 벚꽃나무로 질주했다. 뒤에서 흐뭇하게 바라보는 아버지의 미소에 많은 감정이 묻어있었다.

또래 친구들끼리 소풍을 온 건가. 같은 과잠바를 걸치고 단체사진을 찍는 그들의 함박웃음. 이번엔 내 얼굴에 미소가 피었다.

예쁜 옷을 맞춰 입고 벚꽃 아래 꽃처럼 웃음을 피우는 젊은 남과 여. 함께 손을 잡고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는 노부부까지. 벚꽃은 아름다운 힘을 갖고 있다. 보기만 해도 눈이 부시고 미소를 띠게 하는 황홀함. 모두들 그 힘에 무너져 웃고 있다. 내년에도 이토록 짧지만 깊은 행복을 누리길.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아프지 말고.


올해 벚꽃도 지나간다. 또 다음을 준비해야 할 때인가 보다.


19년 3월의 벚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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