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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Amazing India 08화

코치(Cochi)

뜨거웠던 첫 도시, 코치

by Euodia

‘인도니까’


초저녁 뱅갈로르(Bangalore)버스 스테이션에는 줄이 길었다. 한참을 기다려 내 차례가 되어 버스 티켓을 사려고 했는데 티켓을 끊어주는 아저씨가 따밀어로 중얼거리며 다른 곳으로 가라고 했다. 한참 기다리기도 했고 20kg이 넘는 짐을 메고 있으니 지치기도 했지만 가리키는 쪽으로 갔다. 그런데 그곳에서도 원래 티켓을 끊으려고 했던 곳으로 가라고 한다. 그렇게 몇 번을 왔다 갔다 반복하고 나니 출발하기도 전에 지쳐버릴 것 같았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 사람에게 도움을 좀 받으려고 외쳤다.

“저기요, 좀 도와주세요.”

그 한마디 했을 뿐인데 줄을 서있던 인도 남자 열댓 명이 우르르 몰려와 나를 둘러싼다. 약간 당황했지만 상황을 설명했다.

“코치에 가는 버스 티켓을 사려고 하는데 저에게 티켓을 팔지 않아요. 좀 도와주실래요?”

“잠깐만 기다려봐요, 레이디.”

그러고는 사람들이 몰려가서 티켓을 파는 아저씨에게 화를 내며 뭐라고 한다. 뭐라고 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내 한 사람이 나에게 다가와 말을 한다.

“외국 손님이 탈만한 버스가 아니라서 그랬대요. 지금 시간에는 로컬버스만 있는데 그 버스라도 타고 갈래요?”

“네, 코치로 가는 버스면 상관없어요.”

도와주던 사람들은 줄을 서 있는 사람들에게 비키라고 하고는 먼저 티켓을 끊게 도와주었다. 그리고는 버스 타는 곳까지 안내해 주었다. 나는 도움을 준 열댓 명의 사람들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했고 그들은 으쓱해하며 버스를 탈 때까지 바라보고는 손까지 흔들어준다.

'다시 만나요, 뱅갈로르~’


첫 장소인 코치(Cochi)까지는 15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다. 버스 차장의 도움을 받아 짐을 앞쪽에 내려놓고 버스 안을 둘러보니 외국인은 정말로 단 한 명도 없었고 앉아있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속으로는 식은땀이 났지만 웃으며 인사했다.

“Hello” 손을 흔들었다.

어떤 사람은 똑같이 인사로 화답을, 어떤 사람은 미소로 화답해 주었다. 버스 차장은 맨 앞에 앉으라며 자리를 내주었고 90도로 바짝 앉아야 하는 딱딱한 의자에 세 명이 함께 앉았다.

‘언제 이런 주목을 받아보겠어, 순간순간을 즐기자’

불편한 의자에 허리가 좀 아플 것 같았지만 옆에 앉은 수줍은 인도 여인의 미소에 반해 마음이 편해졌고 그렇게 버스는 출발했다.




첫 장소는 께랄라(Kerala)주에 있는 코치(Cochi). 중국식 어망으로 펼쳐진 바다가 아름답다는 해변가였다. 아무래도 첫 장소이다 보니 설렘이 가득했다. 두근두근 하는 마음으로 몇 시간을 달리고 달렸다. 저녁에 출발하다 보니 한참을 자고 또 졸았다. 아무리 자다가 눈을 떠도 도착하려면 멀었나 싶은 그때, 어느 한 곳에 정차를 했다. 그리고는 따밀어로 뭐라고 하는데 알아듣지 못했다. 모든 사람이 내리고 혼자 멀뚱이 앉아있는데 버스 기사가 내리라고 한다. 일단은 내리라고 하니 내려서 티켓팅하는 곳에 가서 물어보기로 했다.

“(이상하다, 아직 15시간 안 지났는데) 여기가 코치인가요?”

“아니요, 오늘 코치로 가는 버스는 없어요. 버스 기사가 졸려서 못 가겠대요. 저쪽으로 가면 코치로 가는 기차를 탈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는 15루피를 거슬러 주었다.

새벽 4시, 도착한 곳은 캘리컷이었다. 한국이었다면 화가 났을 수도 있었겠지만 웃음이 났다.

‘그래 이게 바로 인도지!’



‘아리아리랑’


하룻밤을 덜컹거리는 로컬 버스에서 졸고 나니 여행 첫날부터 머리가 멍했다. 한 사람이 가리키는 쪽을 보니 함께 버스를 타고 온 사람들이 이동하고 있었다. 그 사람들도 기차를 타러 가고 있으니 따라가라고 했다. 생각지도 않은 캘리컷의 아침 공기는 상쾌하게 느껴졌고 기차역으로 가는 길은 조용하고 느긋했다. 두려움과 걱정으로 가득했던 마음을 한숨 돌리기에 더 잘 된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캘리컷 기차역에서

기차 티켓을 끊고 코치로 간다는 기차를 1시간 정도 기다렸다. 새벽녘 갓 내려준 뜨거운 짜이 한 잔을 사들고 마시며 기다림을 즐기고 있었다. 남부에서는 기차를 탈 계획이 없었기에 미리 경험해 보는 것도 재밌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여기저기 스트레칭을 좀 하며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너도 혼자 여행하니?”

“응 혼자야, 너도?”

“나는 브라질에서 왔어, 너는?”

“나는 한국인, 반가워. 나는 코치로 가는데 너는?”

“나도 코치에 가, 같은 칸에 타고 가자.”

“좋아”

같은 기차 칸에 타고 함께 서서 창밖을 바라봤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고 북적거리는 기차 안에서 서로 눈이 마주치기만 해도 왠지 마음이 편해졌다. 그녀는 어느새 짐을 놓아둔 위칸에 앉았다. 이야기할 사람도 없고 사람이 많아 앉는 것은 포기한 채 문 앞에 서서 멀리 경관을 바라봤다. 바닷가 근처인지라 바람이 시원하고 경치가 아름다워 지루할 틈은 없었다.

음악이라도 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 어떤 꼬마 남자아이와 그의 엄마로 보이는 여인이 함께 노래를 부르며 기차 안을 돌아다녔다. 남자아이는 타블라를 치며 노래를 했는데 어찌나 흥겨운지 음악을 좋아하는 나에게 최고의 라이브 콘서트가 되어주었다. 흥이 나는 음악을 들려준 아이에게 주머니에 남아 있던 3루피 동전을 쥐어주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너무나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고맙다고 한다.

기차 안 타블라를 치던 아이

어딜 가던지 마찬가지였지만, 기차 안에서도 사람들은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고 자리가 생기자 나에게 앉으라고 했다.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와서인지 꾸벅꾸벅 졸다가 안 되겠다 싶어서 기차 안에 지나다니며 팔고 있는 커피를 한 잔 사 마시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옆에 와서 앉았다. 그러더니 대뜸 인터뷰를 한다. 이름이 뭔지, 어디에서 왔는지, 인도에는 왜 왔는지, 한국에서는 무엇을 하는지, 가족은 어떻게 되는지, 어디를 여행할 계획인지 등 한참을 물어본다. 그리고는 자신이 사는 곳에 뭐가 유명하다며 꼭 들러보라 한다. 그러기를 몇 분 후, 그 사람의 친구들이 탔다. 친구들과 인사하더니 나를 소개한다. 그는 나에게 취미가 무엇이냐고 묻기에 별생각 없이 기타를 친다고 했다. 그러더니 노래도 좋아하느냐고 묻는다.

“응, 기타 치면서 노래하는 것도 좋아하지.”

“기타를 가져왔어?”

“아니, 여행할 때는 무거워서 못 가지고 다니지.”

“아쉽다. 그럼 그냥 노래를 불러줘, 한국 노래를.”

“응?”

설마 설마 했다. 처음 본 여행객에게 이 많은 사람 앞에서 노래를 하라니!

게다가 그가 노래를 하라고 하자 잠자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깨어 나를 쳐다보았고 (이 사람들은 자는 척을 했던 것인가?!) 옆 의자에 앉아 있던 사람들도 일어나서 내 주위로 빠르게 몰려들었다. 계속 노래를 해달라며 졸라대던 그는 커다란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니 알겠다고 답한 후 무엇을 불러야 할지 고민되었지만 고등학교 음악시간에 부르던 곡이 생각났다.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사람들은 내가 노래를 시작하기 무섭게 손뼉을 치고 무릎을 두드리며 그들 특유의 박자로 타블라를 치는 것처럼 장단을 맞춰주었다. 사실 가사도 끝까지 모르고 음도 잘 몰라서 대충 지어 불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제대로 알아 놓을걸) 당황스러워서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정선 아리랑도 남도 아리랑도 아닌 여기저기 지방을 섞은 아리랑이었음에도 노래가 끝나자 그 칸에 앉은 사람들 모두 박수를 쳐주었다. 이렇게 부끄러운 일이! 그래도 지지 않고 말했다.

“한국 민요야, 이제는 너희들의 답가를 듣고 싶은데?”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 타밀어로 노래를 부른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10분을 넘게 6명 정도가 장단을 맞추며 발을 구르고 신나게 노래를 불렀다. 나도 흥에 겨워 손뼉을 쳤다. 인도 사람들은 모두 가수라 해도 손색이 없을 듯, 너무나 행복해 보이는 얼굴, 아니 사실은 좀 느끼한 눈빛으로 한참을 불렀다. 그렇게 나 한 곡, 너 한 곡 계속 답가를 요청하며 1시간 남짓을 즐겁게 이야기하고 노래를 하며 코치로 향했다. 마지막곡은 애국가, 사람들이 워낙 장단을 잘 맞춰주어 애국가가 어느새 인도 음악이 되어버렸다. 약간 트로트 느낌의 애국가가 되어버렸다고 해야 하나.

졸다가 깨다가 반복하던 사람들, 서로 냉랭한 눈빛으로 아무 말 없이 가던 기차 안 사람들은 어느새 모두 함께 노래를 부르고 이야기를 나누며 미소 짓기 시작했다.

코치에 도착하자 그들은 여기서 내리라며 알려주고 커다란 짐도 친절하게 어깨에 메어 주었다.

“즐거웠지? 우리들을 기억해 줘.”

“그럼, 당연하지~ 고마워.”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여행 첫날부터 계획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갔지만 어디에서 어떤 사람들을 만날지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 모르는 설렘, 여행이 가져다주는 첫 번째 즐거움이 아닐까 싶다.


코치에 도착하자 캘리컷 보다는 약간 소란스러운 분위기가 나를 반겼다. 아까 만났던 브라질 여성과 함께 내려서 서로 행운을 빌어주며 각자 갈 길을 갔다. 에르나꿀람에서 머물기로 했기에 생각해 두었던 숙소를 찾으려고 책을 주섬주섬 꺼냈다.

‘지도가 이상한데?’ 내가 내린 길과 지도에서 알려주는 길이 달랐다. 알고 보니 한 정거장 전에 내린 거였다. 당황스러워서 다시 방향을 찾으며 두리번거릴 때 누군가 말을 걸었다.

“안녕, 아까 기차에서 노래 부르던 사람이지?”

“안녕, 혹시 시끄러웠다면 미안해.”

“아니야, 노래 잘 들었어. 덕분에 재미있었는걸.”

키가 크고 까만 머리에 매력적인 눈빛을 가진 스페인 여인, 방향이 같으면 함께 릭샤를 타려고 했지만 방향이 달랐다. 아쉬운 마음에 서로 손을 흔들며 ‘Good luck’을 빌어주고 각자 릭샤를 탔다.


뱅갈로르와는 다르게 릭샤꾼이 친절했고 값도 싸게 불렀다. 뱅갈로르에서는 매번 달라지는 릭샤값에 흥정하는 게 일이었기에 긴장이 되었는데 괜히 독한 마음을 가졌다 싶을 정도로 친절했고 그 때문에 약간 굳어져있던 경계심이 좀 풀어졌다. 호텔 근처에 내려달라고 한 후 골목골목 호텔을 찾아 한 바퀴 빙 돌아 찾아갔다. 어찌나 덥고 가방은 무거운지 땀을 한 바가지 쏟아내며 찾았고 방에 들어온 후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그대로 침대 위에 엎드려 잠이 들어버렸다.

그렇게 눈을 뜨고 보니 오후 6시가 되어가는 시간, 분명 아침에 도착했는데 하루가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다. 헛웃음을 짓다 보니 배가 고팠다. 그러고 보니 하루 종일 모닝 짜이와 커피 한 잔 마신 게 다였다. 시내 구경과 저녁 식사를 위해 해가 지기 전에 호텔을 나왔다. MG로드를 걷다 보니 빵집이 보였다. 예쁘고 맛있어 보이는 빵 몇 개를 사고, 시내를 잠깐 돌아보며 사과와 음료수를 샀다. 캄캄하고 좁은 골목길이라 너무 늦은 시간에 다니는 것은 위험할 것 같아서 8시쯤 들어와 TV를 켜놓고 빵을 먹고는 뜨거운 물에 샤워를 했다. 늦은 밤 다시 졸음이 왔고 내일의 계획을 세우며 잠이 들었다.



“헤이~ 나도 사진 좀 찍어줘요”


눈을 뜨니 아침 6시 반 정도였다. 어제 저녁 길거리에서 사놓은 사과를 한 개 입에 물고 밖으로 나왔다. 호텔 지배인에게 하루 더 머물다 가겠다고 이야기한 후 코치로 향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 스테이션으로 걸어갔다. 상쾌한 아침 바람을 기대했지만 쨍쨍 내리쬐는 햇볕, 벌써부터 더웠지만 발걸음은 신이 났다.


나는 길치여서 길을 항상 물어보며 다니거나 누군가 앞장서서 가는 길을 따라다니기만 했었다. 그런 내가 지도를 잘 보며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버스와 기차도 잘 탄다니 스스로 뿌듯하고 대견했다. 지금에 와서 신기한 건 인도에서 길을 잃고 헤맨 적이 없다는 것이다. 아마도 혼자서 여행해 보겠다는 용기를 내지 않았다면 내가 지도를 잘 보는지 아직도 몰랐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지금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사실은 안 해봤기 때문에 생긴 두려움으로 못한다는 생각을 하는 걸지도. 역시 인생에는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해봐서 두려운 것들이 가득 들어차 있는 듯하다. 아마도 떠밀리듯 살았던 내가 스스로 갈 길을 찾으려고 했던 이유, 그냥 한번 해보자를 배웠던 것은 인도의 여행길 위 였던 거 같다.


마탄체리 궁전(Mattancherry Place)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 요금도 저렴해서 기분이 좋았다. 남부 쪽으로 내려갈수록 물가가 싼 것 같다. 코치 항으로 가는 길, 윌링 던 섬을 지나서 고요한 마을로 들어섰다. 조용하고 편안해 보이는 시골 마을처럼 보였다.

마탄체리 궁전은 특색 있는 미로를 찾아다니는 느낌이었다. Rama Varma의 초상화, 방 하나를 가득 채운 벽화, Dutch drawing, 패널 벽화, 비쉬누와 시바 신을 경배하는 모습들, 라마의 대관식 그리고 Royal옷들과 장식품들까지. 지하에는 파르바티(Parvati)의 결혼식이 그려져 있고 여러 벽화와 크리쉬나 신화 내용이 그려져 있었다. 인도에 다양한 신들이 있고 그 신화들을 알고 가면 궁이나 박물관은 더 재미가 있다.


궁을 나와 Jew마을을 둘러보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릭샤를 탈 수도 있었지만 괜히 걷고 싶었다. 나는 걸으며 그 마을을 둘러보았지만 그곳 사람들은 나를 구경했다.

“헤이~ 나도 사진 좀 찍어줘요.”

“네, 여기를 봐요. 하나, 둘, 셋!”

사람들은 디지털카메라라는 걸 알고 자신의 얼굴이 찍힌 모습을 보기 위해 저 멀리서 뛰어왔다. 작은 액정 모니터에 보이는 자신의 얼굴을 확인하면 입이 귀에 걸린다. 빠르게 출력해서 줄 수 있다면 좋으련만. 이렇게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주면서 서먹하던 마음의 경계는 무너지고 어느새 친구로 남게 된다.


누군가 뒤에서 나를 툭툭 쳤다. 뒤를 돌아보니 어떤 꼬마 아이가 서 있었다.

“나도 사진 찍어줘.”

그러더니 원피스를 몸 위에 대고 그냥 찍으라고 한다. 기다릴 테니 집에 가서 갈아입고 오라고 했는데 그냥 찍어달라고 한다. 그런데 왜 그렇게 얼굴을 찡그리는 건지!

사진을 찍어 달라던 시크한 아이


'카타칼리 Kathakali 댄스'


인도의 8대 고전무용 중 하나인 카타칼리 공연을 예약하러 가기 위해 릭샤를 탔다. 릭샤꾼은 어디에서 왔냐고 물어보고는 자신이 투어를 시켜줄 테니 돈을 달라고 한다. 자신은 가난한 사람이라면서.

터무니없이 부르는 가격에 웃으며 걸어 다니고 싶다고 정중히 거절했다. 공연 예약을 한 뒤 중국식 어망을 구경하기 위해 바닷가 쪽으로 걸어갔다. 잔잔한 파도와 멀리까지 걸려있는 어망을 바라보며 갑자기 며칠 후 크리스마스라는 걸 상기했다.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라니, 35도가 넘는 뜨거운 태양아래 걷고 걸어 성프란시스 교회를 잠시 둘러보았다. 커다란 교회였지만 조용한 시골 분위기여서 아늑했다. 교회를 둘러보다가 전날 밤에 썼던 크리스마스 카드가 떠올라 우체국에 가서 카드 6통을 한국으로 보냈다. 물론 한국에서 보내는 선물이나 편지가 제대로 안 가는 때도 있었지만 늦더라도 크리스마스 카드만큼은 꼭 받아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고요한 윌링 던 섬의 평화로움을 느끼며 오후를 만끽했다. 좋은 자리에 앉아 볕을 조용히 즐기고 있는데 타블라를 파는 상인이 계속 말을 걸어온다.

“이 악기가 너의 여행을 더 즐겁게 만들어 줄 거야. 사서 배워보는 건 어때?”

여행을 하면서 종종 추근거리는 남자가 있을 때는 결혼을 했다고 한다거나, 무언가 사기를 치려고 할 때는 뱅갈로르에 살고 있다고 말하거나(딱히 틀린 말도 아니니까) 하는 등 귀찮은 사람을 떼어 버릴 때 거짓말을 할 때가 있었다.

“나는 뱅갈로르에 살고 있어, 그리고 그곳에 악기가 있어. 또 사는 일은 없을 거야.”

하며 좋은 말로 거절을 하려고 했다.

“그렇다면 잘됐네, 한 개 더 사. 내가 파는 타블라 소리가 더 좋다는 걸 알게 될 거야.”

그는 끈질겼다. 20분간 나를 설득시키기 위해 연주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다양한 대화를 시도했다. 나는 분명하게 “Nope!” 대답했지만 그는 그 자리를 떠날 줄 몰랐다. 잠시 뒤 어떤 외국인 히피 세 명이 악기에 관심을 보이자 그는 바로 달려갔다. 악기를 치는 방법을 알려주며 자신의 목에 걸려있던 타블라를 한 사람에게 걸어주고 나에게 했던 말들을 하며 판매에 열을 올렸다. 그 외국인들은 잠시 후 그 상인을 따돌리고 나에게 다가왔다.

“우리랑 함께 산책하지 않을래?”

멋진 히피들에게 조금은 설레 잠시 걸으며 이야길 나눴고, 곧 카타깔리 예약 시간이 다가왔다.

“아쉽지만 나는 다음 스케줄이 있어.”


생각해 보니 사과 외에 먹은 것이 없었다. 식사를 하기엔 애매하게 남은 시간이라 일단 물 한 병과 바나나를 사서 카타칼리를 보러 갔다. 약간의 여유가 좀 있었지만 일찍 들어가 보기로 했다. 극장으로 들어갔는데 연극을 하는 사람들이 분장을 하고 있었다. 분장을 해주는 사람이 따로 없고 본인들이 맡은 역할의 분장을 스스로 하고 있었다. 각자 거울을 들고 하얗게, 빨갛게, 파랗게 얼굴에 물을 들이고 있었다. 잠시 후 몇 명이 누웠다. 그러자 약기 연주를 준비하던 사람이 얼굴에 세세하게 그림을 그려주고 있다.

카타칼리를 준비하는 배우들

카타칼리의 내용은 보통 힌두 서사시, 민속 이야기들을 주로 한다고 했다. 그날의 주제는 두싸사나의 죽음(The killing of Dussasana)이었다. 간략하게 말하자면 전쟁 중에 두싸사나가 판다바 왕자들의 아내인 드라우파디를 욕보이려 하고 크리쉬나(신)의 도움으로 빠져나오지만 결국 화가 난 두싸사나는 드라우파디를 해친다. 이후 판다바 왕자 중 한 명인 비마가 두싸사나를 죽인다는 이야기이다.

사실 이 내용은 영어와 어색한 한글로 된 팜플랫이 있어서 보고 이해할 수 있었다. 카타깔리 댄스라고 했지만 댄스보다는 무언극에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이해가 어려운 춤 동작들도 물론 있었고 대사는 “악~~” “악악~~” “악악악~아~~ 아악”이 다였다. 마지막에 두싸사나의 심장을 뽑을 때는 좀 잔인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얼굴 표정과 온몸으로 하는 춤과 행동, 1차원적인 소리로만 많은 내용을 전달한다는 것은 어메이징 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약 우리에게 언어가 없었다면 모든 것을 온몸으로 표현하게 될 테니 얼마나 어려울까, 아니 우리의 감성적 표현이 더 풍부해졌을까? 모르는 일이지만 가끔은 말보다 행동이 더 감정에 와닿는다는 것을 잊어버린다. 가끔은 고개 숙임, 따스한 미소, 뜨거운 포옹으로 인해 마음이 더 잘 전달된다는 것을 느끼는데도 말이다.

지금 와서 알게 된 것이지만 그들의 온몸으로 표현하는 춤엔 언어가 있었다. 언젠가 한 번쯤은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카타칼리 '두싸사나의 죽음'에서 '크리쉬나' 배역


끝나고 나니 너무 늦은 시간이 되어버렸다. 버스를 타고 다시 숙소가 있는 에르나꿀람으로 향했다. 실수로 한 정거장 전에 내려버렸는데 다시 타고 가기엔 애매해서 조금 걸었다. 캄캄한 밤이어서 무서웠지만 조금 걸어가자 카페 커피 데이가 보였다. ‘아~ 저거다!’ 아이스 카라멜 라테를 하나 사들고 덥고 피곤한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었다. 커피 한잔을 들고 땀범벅이 되어 호텔에 들어갔다.

방에 들어가려는데 아침에도 말을 한참 걸던 지배인이 말을 걸었다.

“왜 이렇게 늦었나요?”

“코치에 가서 구경도 하고 카타깔리 댄스를 봤어요.”

“오늘은 무슨 구경을 했나요, 내일은 어디에 가나요? 체크 아웃은 몇 시에 할 건가요? (지도를 가리키며) 여기가 좋으니 꼭 들러봐요.” 등 한 참을 그렇게 말을 걸었다. 열정적으로 대화하려는 그에게 나는 웃으며 고맙다고 한 뒤 피곤하니 쉬겠다고 했다.

그렇게 방에 들어와 샤워를 하고는 긴 하루를 마무리했다.


코치항의 가장 유명한 '중국식 어망'

아름다운 중국식 어망

미로 같은 유태인 마을

조금은 웃을 수 있었던 카타깔리 댄스

시원한 바람과 뜨거운 햇볕의 조화

여유로운 마을

멋진 히피들과의 대화

열정이 넘치는 장사꾼들

가난하다며 자신을 종일 써달라는 릭샤꾼

잠깐 만나 인사한 한국 여인


하루종일 걸어 다녔지만 지치지 않을 정도로

이 모든 것들이 매력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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