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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Amazing India 09화

알라푸자에서 콜람으로

야자수 가득한 알라푸자(Alappuzha)에서 콜람(Kollam)으로

by Euodia

알라푸자(Alappuzha)에서 콜람(Kollam)으로

'수로유람'


알라푸자에서 꼴람으로 가는 배를 타고 수로 유람이라니, 생각만 해도 낭만적이었다. 초등학교 때 바다에서 배를 타고 뱃멀미를 심하게 겪고 난 후 절대 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인도 남부를 여행하는 여행객이라면 이 수로유람은 꼭 한 번 경험해봐야 한다기에 300루피를 주고 티켓을 끊었다. (한 끼 식사비가 비싸봤자 30루피 정도인걸 감안하면 비싼 편)


좁은 해수면을 지나니 넓게 트인 바다가 보이고 야쟈수, 풍성한 나무들이 가득 우거진 경치가 이어졌다.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8시간 이겠지만 나에게는 한 권의 책과 카메라, 그리고 노트와 펜이 있었다. 혹시나 뱃멀미가 심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지만 웬걸, 속도가 워낙 느려서 바람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내가 탄 배에는 아이 한 명과 부모, 독일 부부, 스페인 여인, 드레드락 머리를 한 유럽 커플, 두 인도 여인, 스타일 좋은 게이 커플, 그리고 나까지 13명이었다.

야자수 가득한 수로

수로 양쪽으로는 인도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들이 곳곳에 보였다. 그 집들에서 나온 아주머니들은 우리가 지나가고 있는 수로에 설거지를 하기도 하고, 빨래를 하기도 한다. 자연이 너무 아름다워서 수로가 깨끗할 것 같지만 사실, 인도 길거리만큼 더럽다. 야쟈수 나무가 대견하게 서 있고 중간중간 대나무가 보이고 배의 엔진 소리만 아니라면 고요히 물가를 헤엄치는 느낌이다. 수로 위엔 오리 떼, 2인이 탈 수 있는 하우스보트, 짐을 가득 실은 나룻배가 지나간다.

초록 초록한 수로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조용히 책을 읽고 있는데 바닥에 빨래를 내려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또 꺄륵거리며 밝게 웃는 아이들의 목소리도 들린다. 물속에서 무얼 하는지 물속에 들어가 있는 아저씨들도 보이고 학교에 가는 교복 입은 아이들의 모습도 보인다.

강가에 사는 마을 사람들

출발 전에 사 온 바나나, 쿠키, 그리고 물 한 병으로 아침을 대신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배가 멈춰 섰다.

“무슨 일인가요?”

사람들이 일어나 묻기 시작했다.

유유자적한 그 순간을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즐기던 사람들은 기름 냄새가 나자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배를 몰던 사람들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무래도 어딘가 고장이 난 듯 보였다. 뚝딱 거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표정은 여유로운 듯 지었지만 속으로는 여러 생각이 오갔다.

‘여기서 내려서 다른 보트로 갈아타야 하나? 인도 사람들이 그렇게 발 빠르게 대처하는 사람들이 아닌데.’라는 생각은 잠시 그냥 그 순간을 즐겼다.

‘오늘 안에 도착은 하겠지.‘

모두들 나처럼 뱃소리도 멈춘 그 고요함을 즐기고 있었다. 그 고요함이 오히려 낭만을 더해주었다. 1시간 정도가 지나고 다시 물결이 흐르는 방향으로 보트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시원한 바람이 다시 돌아왔다.

조금 후 다시 마을이 나왔다. 꼬마 아이가 물속에 풍덩 뛰어들더니 양손을 흔들며 함박웃음을 보내자 배에 타고 있던 몇몇이 똑같은 함박웃음과 손을 흔들며 답례를 해 주었다.


그렇게 1시간 정도 흐르고 나니 20분간 점심 식사를 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렇게 우리가 지불한 보트 티켓에 포함되어 있는 줄 알았던 점심을 모두 먹기 시작했다. 배에서 내려 마을 어귀 한 집으로 들어가 먹은 생선탈리, 그다지 맛있지는 않았지만 케랄라 주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먹는 밥이 될 것 같아 다 먹었다. 커피까지 마시고 나니 웬걸, 먹은 갯수(바로따, 로띠, 커피)까지 음식 값을 지불하라고 했다. 사람들은 황당해했다. 짧은 시간에 그것도 지정해 준 맛없는 곳에서 먹은 음식값이 조금 아깝게 느껴졌다. 나만큼이나 외국인 부부도 언짢아 보였다. 그리고는 배에 다시 타려고 하는데 식당 바로 앞에서 비눗물을 한가득 품으며 빨래를 열심히 하는 청년을 보았다. 그 부부가 가리키며 말한다.

“저걸 잡아 구워주었군”

우리는 비눗물 속에 살고 있던 물고기를 먹은 거였다.

스페인 여인과 먹은 점심 식사 이야기를 하며 도란도란 잠시 대회를 했다. 그녀도 인도는 처음이었고 혼자 하는 여행이 마냥 설레기만 했단다. 다니는 방향이 비슷한지 확인해보았지만 남부에는 짧게 있고 북부로 빨리 올라간다고 했다. 여행 친구가 생기나 했는데 아쉬웠다.

손을 흔들어주던 아이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났다. 멀리서 손짓을 하며 보트를 멈추라는 신호를 보냈다.

‘또 무슨 일인 걸까?’

아무래도 수로 유람의 낭만은 조금씩 멀어져 가는 듯 보였다. 알고 보니 인도 대통령이 와서 이 주변의 모든 것을 멈췄다고 한다. 버스도, 배도, 기차도 사람들이 워낙 몰려서 지나가지 못한다고 했다. 유럽 커플은 내려서 인도 대통령이 있는 곳을 보러 가겠다고 했고 배에 탄 사람들은 잠시 멈춰 30분쯤 티 타임을 가졌다.

아까부터 생각한 거지만 배가 좀 느린 거 같았다. 배도 시원찮고 운전을 잘하는 것 같지도 않고 오늘 내에 콜람에 도착할 수 있는 걸까? 싶다. 아니나 다를까 한참을 가고 있는데 어둑어둑해진다. 그러면서

“오늘은 좀 늦어졌고, 보트로 꼴람에 가려면 8시는 넘어서 도착할 거 같네요. 차라리 내려서 버스를 타고 가는 건 어떨까요.”

안 그래도 사람들이 슬슬 걱정을 하는 말들을 했다. 5시면 도착한다던 배가 6시가 지나도 도착할 생각을 하지 않았고, 해가 지는 시간이 되자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르는 모기떼들이 우리에게 달려들기 시작하자 불만이 터져 나오던 터였다. 캄캄한 배를 타고 두 시간 남짓 더 간다고 꼴람에 도착할 거 같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늦었기에 버스를 타겠다고 내렸다. 그렇게 함께 가던 사람들은 같은 버스를 타고 꼴람으로 향했다. 나는 왠지 꼴람이 끌리지 않아 혼자 트리밴드럼으로 가겠다고 했고 모두 좋은 여행을 하기 바란다며 인사하고는 헤어졌다.

트리밴드럼으로 가는 버스 안,

나는 갑작스러운 졸음에 커다란 짐을 껴안고 쓰러져서 정신없이 졸았다. 왜 갑자기 그렇게 피곤했을까. 누가 무언가를 훔쳐가도 모를 정도로 혹은 나를 납치해도 몰랐을 만큼. 트리밴드럼에 도착하여 함께 내리던 아저씨가 나를 불쌍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레이디, 잠은 편안하게 자요.”


릭샤를 타고 여기저기 헤맸다. 여행 책에서 봤던 게스트하우스, 호텔이 거의 다 찼다. 네 번째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했을 때 방이 있다고 해서 머물기로 했다. 기대했던 낭만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여행에 갑자기 긴장감이 드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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