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끝, 깐야꾸마리
인도의 남부 가장 끝에 있는 마을 깐야꾸마리, 지도상으로 봐도 역삼각형 모양으로 되어있어 일출과 일몰을 모두 보러 온다는 이곳엔 새벽부터 엄청난 인파로 가득했다. 이 곳은 힌두교인들에게 영적으로 중요한 장소인데 빠르바띠(Parvati)의 화신인 데위 깐야(Devi Kanya)여신을 섬기기 위해 순례자들은 사원을 방문하고 성스러운 물에 목욕을 하기도 한다. 해안에서 400m 떨어진 비베까난다 메모리얼(Vivekananda Memorial)에 가기 위해 새벽부터 배를 타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일출을 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었을까. 새벽 4시부터 10분 간격으로 한 번씩 일어나 창 밖을 쳐다보았다. 이미 잠이 깨버린 후여서 5시에 침대에서 나와 세수만 하고 밖으로 나갔다. 캄캄한 시간이었음에도 외국인들과 인도 사람들도 가득했다. 오랜만에 느끼는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은 동이 트는 곳을 향해 바라만 보고 있었다. 분명 날은 밝아오는데 흐린 탓인지 좀처럼 해가 보이지 않았다. 6시가 지나가니 주변이 밝아졌다. 해는 어디에 숨어있는 걸까. 살면서 이곳에 또 올일이 있을까. 얼굴을 좀 보여줬으면 좋겠다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바다에서 해가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저 멀리 하늘, 구름 속에서 해가 갑자기 슝~ 나타났다. 나를 포함한 외국인 들은 조금 실망스러운 표정과 눈치였지만 언제나 즐거운 인도 사람들은 해가 보이자마자 환호하며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리고 신에게 기도를 한다.
“와우~~”
새로운 날에 박수를 보내는 인도 사람들을 보니 웃음이 났다. 실망이 아닌 환호라니! 나도 함께 웃으며 박수를 보냈고 주변에 있던 외국인들도 그제야 웃음을 지었다. 서로 즐겁게 웃으며 눈인사를 나눴다.
실망에서 환호의 마음으로 바뀌는 찰나의 순간이었다.
뭔가 그냥 들어가기 아쉬운 마음에 한참을 서 있었다. 바닷가를 바라보며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그곳의 공기를 마음껏 숨에 담았다. 시원했고 짠내가 가득했다.
바닷가 근처엔 조개로 만든 다양한 액세서리들, 거울 등 수공예품들을 팔고 있었다. 크기도 다양한 소라와 조개를 구경하느라 잠시 정신이 팔려있다가 결국 자그마한 조개 모양의 귀걸이를 하나 샀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하리라 생각하며. (하지만 한국에 돌아와서 누구에게도 선물하지는 못했다. 분명 그곳에선 가장 예쁘다고 생각하는 걸 사 왔는데 한국에서 보니 촌스러워서 하고 다닐 것 같지 않아서였다.)
여기저기 다녀보아도 이곳은 단지 세상의 끝이라는 이유만으로 인기가 있는 장소라고 했다. 12월 31일이 되면 더 많은 인파로 몰린다고 한다. 우리가 정동진에서 해돋이를 보는 것처럼 말이다. 곧 새해가 다가오기에 해를 한 번 더 쳐다봤다.
수많은 인파 속에 소리가 들린다.
“벅시시~ 벅시시”
구걸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벅시시 소리만 들리기에 나는 소리의 근원지를 찾았다. 사람들 틈으로 보이는 길가에 누워있는 누군가가 보였다. 자세히 보니 상체는 있는데 하체는 다리가 없이 발만 있는 사람이었다. 배 위에 그릇을 얹고 등으로 기어 다니며 벅시시 벅시시 외치고 있었지만 아무도 그 사람 근처에 가는 이가 없었다. 삶은 참 공평하지 않다. 그는 비싼 옷을 입고 있는 외국인들 사이로 한참을 외쳤고 대조되는 삶의 한 장면을 그냥 계속 바라보게 되었다.
너무 일찍 일어났는지 피곤했다. 게스트 하우스에 돌아와 다시 잠을 청했다. 일어나 보니 오후 3시, 6시간이나 자버려서 당황했다. 에라 모르겠다. 여행책을 가지고 점심 겸 저녁을 먹으러 갔다. 식사를 기다리며 여행책을 뒤적거렸다. 다음 여행지는 폰디체리였는데 갑자기 마두라이에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흥적으로 마두라이로 가는 나이트 버스 티켓을 구입해 버렸다.
안녕, 단지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