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Amazing India 12화

마두라이(Madurai)

친절한 릭샤왈라와 함께한 마두라이

by Euodia

‘당일치기 여행’


마두라이에 도착하자 새벽 5시쯤인데도 불구하고 릭샤꾼들이 여기저기서 몰려들었다. 한 해의 마지막 날에는 휴양지에서 사람들과 만나기로 약속했기에 마두라이에서는 하루 정도만 머무르기로 했다. 저녁에 출발하는 폰디체리행 티켓을 구입하기 위해 버스스탠드에 서서 문을 열기를 기다렸다. 8시 정도에 오픈한다고 하기에 마두라이에 뭐가 있는지 여행가이드북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코피 코피 코피~”

“짜이 짜이 짜이~”

사람들이 많이 없어서인지 커피와 짜이를 파는 한 상인이 내 주위를 왔다 갔다 하면서 맴돌았다. 거의 내 귀에다 대고 이야기하는 듯하여 코피(커피)를 한 잔 사들고 여유를 부렸다. 8시 반쯤 티켓팅을 한 후 예약센터를 나왔더니 언제 또 이렇게 몰려들었나 싶을 정도로 릭샤꾼들이 줄을 서 있었다. 그중에 한 릭샤꾼이 내게로 오더니 말도 되지 않는 가격을 부르며 마두라이 시내로 데려다주겠다고 한다.

가장 적게 부르는 릭샤를 타고 스리 미낙시 템플(Sri Meenakshi Temple)로 향했다. 그는 매우 어려 보였다. 릭샤꾼은 그 가방을 메고 돌아다니기엔 힘들 거 같으니 하루 자신이 가이드를 해 주겠다고 했다. 가방을 지켜주겠다면서 말이다. 처음에는 800루피를 부르더니 300루피까지 내려갔다. 내 생각으로는 300 루피면 적당한 거 같아 그러자고 했다. 혹시나 가방을 가지고 도망을 가지는 않을까 싶었지만 믿어보기로 했다.

스리미낙시 템플

스리 미낙시 템플은 한마디로 셀 수 없이 많은 신과 여신들, 동물들, 신화 속 인물들이 뒤덮은 사원으로 사람도 많고 복잡하고 화려한 곳이다.

4대 문이 모두 큰 템플로 이루어져 있어서 기대 이상으로 볼 것들이 많았다. 건축물이나 조각에 지식이 없는 나에게도 거대하며 다양한 신과 동물 조각들을 구경하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구석구석 한참을 보며 돌고 있는데 신에게 인사드리러 오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눈길을 끌었다. 신께 인사를 드리는 사람들은 모두 경건한 표정으로 몸을 숙여 마음을 다해 인사하며 기도를 드렸다. 엄숙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세상 가장 높은 것 아래 엎드러져 낮아진 자신을 표현하는 그들은 어떤 마음일지 궁금했다. 세상에서 가장 신이 많은 나라 인도, 그들의 삶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신을 모시는 일. 저마다 다른 신을 섬기긴 해도 신을 대하는 태도는 모두 같아 보였다.

스리미낙시 템플 안 조각들 | 기도하는 사람들


힌두 조각상들과 그림들이 있는 뮤지엄을 둘러보고 다른 문으로 들어가려는데 빨갛게 볼터치를 한 코끼리가 앞을 막았다. 자세히 보니 앞 발에는 사슬로 묶여있었고 조련사와 함께 서 있었다. 사람들이 동전을 주면 커다란 코로 머리를 툭 한번 쳐주고 지폐를 주면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사람들은 신기해하며 줄을 섰고 코끼리의 행동에 즐거워했다. 조련사는 코끼리가 다른 곳을 쳐다보거나 말을 듣지 않을 때는 긴 막대기로 쿡쿡 쑤시며 앞을 보게 했다. 코끼리의 눈이 젖어 있기에 한참을 바라봤다.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것만 같아서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크기를 보아하니 아직 작은 아기 코끼리인 거 같았다. 저 아기 코끼리는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까.


템플 안 인사해주는 코끼리


‘인생 첫 사인회’


인도에 몇 달 있다 보니 먹는 것에 그렇게 관심이 가지는 않아서 (탈이 많았기 때문) 끼니를 대충 때우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새벽에 조금 추웠는지 갑자기 따뜻한 수프가 생각났다. 오랜만에 중국 식당에 가서 달걀 볶음밥과 수프를 주문했다. 오랜만에 먹는 뜨끈한 국물에 조금만 마셔도 몸이 녹아내렸다.


“잠깐 어디에 들러도 될까요?”

식사를 마친 뒤 릭샤에 다시 오르자 릭샤꾼이 물었다. 나는 잠깐 볼일이 있나 보다 생각해, 뜨끈한 국물과 든든한 볶음밥에 기분이 좋아져서 그러라고 했다. 5분쯤 지났을까. 릭샤꾼은 마치 길이 아닌듯한 곳으로 빠르게 릭샤를 몰았다. 10분쯤 지나자 머리가 쭈뼛섰다.

‘이렇게 인신매매를 당하는 건가?’

너무 생각 없이 그러자고 했던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20분 정도가 지난 후 어딘가에 도착했다. 외국인들은 보이지 않는 마을이었다. 릭샤꾼은 친구들에게 오늘의 손님이라며 나를 소개하고는 오늘 하루 종일 마두라이 시내를 돌아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내 친구들이야, 인사해.”

“헬로~우”

그의 친구들이 손을 흔들며 인사하기에 나도 손을 흔들어 인사를 했다. 그는 왜 자신이 사는 곳으로 왔을까 궁금했다.

“점심을 먹지 않았으면 먹고 와도 돼.”

혹시나 해서 말을 했더니 기다렸다는 듯 10분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아차 싶었다. 내가 점심을 먹는 동안 그도 점심 식사를 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괜히 미안해서 1시간이라도 기다려주겠다는 생각을 하며 가이드북을 정독하려는 터에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릭샤 안에 커다란 짐과 나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는데 아까 인사했던 릭샤꾼의 친구들, 동네 아이들까지 몰려들었다. 사람들이 말을 걸었지만 나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간단한 힌디어나 타밀어를 배워둘걸 그랬다 싶다.

“너 이름이 뭐야? 어디에서 왔어?”

릭샤꾼의 친구 중에 한 명이 영어로 물어왔다. 다행이다 싶었다.

“나는 줄리아, 한국에서 왔어.”

“한국? 잘 모르는 나라야. 너 카메라로 우리 사진 찍어줄 수 있어?”

“그래 찍어줄게!”

라자의 친구들 | 마을 아이들

그렇게 사진을 찍어 주고 있는데 조금 뒤 어떤 아이가 나에게 작은 종이를 내밀었다. 나는 어리둥절했다.

“종이는 왜 주는 거야?”

“너 이름을 써달래.”

“응? 내 이름은 왜?”

“이 아이들에게는 마을에 온 외국인이 네가 처음이야. 그냥 이름을 적어줘.”

그 아이가 내민 종이에 이름을 적어줬다.

“나도.” “나도.”

팔이 아플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당황스럽게도 릭샤 안에서 그렇게 인생 첫 사인회를 열었다. 당황스러우면서도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것인가 싶어 상황에 웃음이 났지만, 아이들의 깔깔거리는 소리와 미소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너도 나도 종이를 내미는 한 명 한 명을 아이들의 눈을 마주 보는데 부끄러워하는 아이도, 기쁜 웃음을 짓는 아이도 있었다.

“몇 살이야? 결혼은 했어? 무슨 일해?”

그렇게 인터뷰도 함께 당하며? 사인회는 계속되었다.


몇 분 뒤. 점심 식사를 마친 릭샤꾼이 보였다.

“배를 가득 채웠으니 이제 다시 다닐 수 있어! 점심 먹을 시간을 줘서 고마워.”

미리 알았다면 함께 점심을 먹었을 텐데,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마을 사람들과 눈을 맞추고 인사를 하며 릭샤는 출발했다. 몇몇 아이들은 릭샤를 따라오기에 손을 흔들어줬다. 점점 빨라지는 릭샤를 따라올 수 없는 아이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서 뛰다가 헉헉대며 멈춰서 손을 흔들었다. 나도 끝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러고 보니 종일 같이 다닐 사이인데도 서로 이름도 모르고 있었다.

“내 이름은 줄리아야, 너는?”

“나는 라자(Raja). 스물한 살이야.”

라자는 릭샤꾼이 된 지 며칠 되지 않았고 외국인을 처음 태웠다고 한다. (나중에 알았던 사실이지만 마두라이에는 스리 미낙시 템플로 오는 여행객들이 많아 릭샤 왈라로 위장한 사기꾼이 많다고 한다. 어리고 착한 릭샤꾼을 만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라자는 간디 박물관을 가는 도중 중요한 건물들을 알려주기도 하며 정성껏 안내했다. 간디 박물관에서 나오자 함께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한다. 내 카메라로 찍어달라고 하는 줄 알았는데 자신의 핸드폰을 내밀었다. 사진으로는 모자랐는지 동영상까지 찍고는 흐뭇해하며 좋아한다.

"나의 첫 외국인 손님이라 특별해."


알라갈 코일 템플 (Alagar Coil) | 더위를 피해 템플 안에서 낮잠을 자는 사람들

알라갈 코일 템플(Alagar Coil)로 떠났다. 라자가 소개한 이곳은 마두라이 중심에서 20km나 떨어져 있기도 했고 갈 계획은 없었지만 동선이 많지 않아 한 번 가보기로 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한참을 달렸다. 원래는 힌두인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곳인데 본인과 함께 들어가면 가능하다며 에스코트를 해주었다. 사원 안에는 뿌자를 드리는 사람들도 무더위에 그늘에 누워서 쉬는 사람들도 보인다.


“너도 뿌자 드릴래?”

“아니야, 나는 그냥 여기서 바라볼게. 뿌자 드리고 와”

라자는 뿌자 대신 잠시 기도를 드리는 듯했다.

체감 온도가 너무 높아서 잠시 둘러보는데도 헉헉 거렸다. 티셔츠가 다 젖어버릴 정도로 땀을 흘리며 걸어 나오다 보니 달달한 망고 주스 판매대가 눈앞에 보였다.

“너도 마실래?”

라자에게 물었다.

“좋아”

망고 주스 두 잔을 사서 함께 마시며 템플을 나왔다. 라자도 덥고 목이 말랐는지 단숨에 마신다.

“라자, 이거 어디에다 버릴까? 쓰레기통이 보이지 않아서”

다 마시고 남은 컵을 어디에 버리면 좋을지 물어봤는데,

“내가 버려줄게.”

하더니 그냥 길 위에 훅~ 던져버린다.

“그래도 되는 거야?”

“누구나 이렇게 해. 다음에 또 쓰레기가 생기면 이렇게 버리면 돼.”


며칠 후 뭄바이에서 머물 때 호텔에서 잠시 TV를 틀어 놓았는데 이런 광고가 있었다.

한 가족이 여기저기 여행을 하면서 쓰레기를 휙휙 던져버리고 집에 도착했는데 자신들이 버린 쓰레기가 집 여기저기 쌓여 있었다. 힌디어 방송이라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길거리에 쓰레기를 버리지 말자는 공익 광고였던 듯하다. 곳곳에 이렇게 사람들이 버리고 가는 쓰레기를 보며 인도는 곧 쓰레기 더미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기에 이런 공익 광고가 이해되기도 했다.




중간에 들렀던 마리암만 테페꿀럼 저수지(Mariamman Teppakkulam Tank)는 1~2월에 축제가 열린다고 하는데 지금이 12월이라 왠지 아쉬웠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축제 기간에도 와보고 싶은 마음, 이렇게 여행을 다니다 보면 축제 기간과 맞지 않아서 그 공간을 깊이 있게 누리지 못하고 와야 할 때 가장 아쉽다. 내가 바라본 마리암만 테페꿀럼 저수지는 넓고 고요하고 잔잔했지만 Teppam(꽃수레) 축제를 할 땐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너무 궁금했다.

마두라이 마켓(Madurai Market)은 많은 인파로 인해 시끌시끌 복잡 복잡했다.


라자는 저녁 시간이 되어가고 있어서 버스 스탠드로 태워다 준다고 했다. 버스 스탠드에 도착하니 저녁 7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버스 시간은 9시, 라자는 출발 시간을 물어보더니 다시 와보겠다고 한다. 버스 스탠드에 앉아서 폰디체리 지도를 보며 호텔을 확인하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다가와 관심을 가졌다. 이런저런 질문을 하며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어떤 남자가 끼어들었다.

“나도 뱅갈로르에 살고 있어, 아직 시간이 남은 거 같은데 같이 저녁 먹을래? 내가 사줄게.”

“싫은데.”

“네가 원한다면 나는 너와 함께 폰디체리로 갈 수 있어, 버스 티켓을 바꿀까?”

그렇게 20분 정도를 나에게 함께 가자, 연락처를 알려달라 했다. 그렇게 이야길 하며 우린 친구가 되었으니 폰디체리행 표로 바꿔 온다고 한다.

“아니 나는 싫다니까.”

단호한 목소리로 이야길 했다. 어두워진 시각이라 무섭기도 하고 끈질긴 그 때문에 짜증도 났다. 가끔은 사람들의 친절이 고마울 때도 있고 외국인을 좋아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받아주기는 하지만 가끔 이렇게 추근거리는 사람이 있을 때는 혼자 하는 여행이 조금 무서워지기도 한다.


9시가 되어가자 라자가 정말 나타났다. 몇 명을 태워주고 다시 왔다고 했다. 약속을 지키는 인도 사람이라니, 인도에서는 보기 힘든 좋은 사람을 만났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는 손으로 룸미러를 가리켰다. 내가 고마워서 선물한 복조리 모양 열쇠고리를 매달아 놓았다. 여행을 다니며 한국에서 가지고 왔던 다양한 선물들(한국 전통 무늬가 있는 열쇠고리, 작은 필통, 손거울 등)을 특별한 사람들에게 선물로 하나씩 나누어 주었는데 하루 종일 함께한 친절한 라자에게 열쇠고리를 선물로 주었다. ‘복’이라고 쓰여 있는 복조리를 제대로 설명하기는 어려웠지만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라자에게 늘 행운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선물하는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불안함과 불쾌함이 있었던 잠시 잠깐을 그새 잊어버리고 라자의 배웅에 함께 웃으며 마두라이를 떠났다. 친절하지만 어색했던 그의 미소가 지금도 가끔 생각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