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아쉬람, 폰디체리
쌀쌀한 새벽녘에 폰디체리 버스 스탠드에 도착했다. 전날 마두라이를 종일 돌아다니고는 버스에서 통 잠이 오지 않아 밤을 새운 탓인지 더 피로하게 느껴졌다.
18세기 초 프랑스에 의해 식민지가 되었던 폰디체리는 프랑스 문화의 흔적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는 해변도시다. 여행객이 많은 곳이라 그런지 물가도 약간 비싼 듯 느껴졌다. 폰디체리에 며칠 묵을 예정이어서 우선 숙소를 정해야 했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여행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숙소를 우선 가보았다. 그런데 웬걸, 생각해 보니 곧 크리스마스이며 연말이라 그런지 폰디체리 해변에 남아있는 숙소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이 너무나도 많았다. 지금까지 다닌 여행 중에 가장 많은 여행객을 봤던 곳이다. 설마 남아있는 룸이 하나도 없겠나 싶어서 중심부에서 20km 떨어진 곳도 가보았지만 정말로 호텔 룸을 구할 수 없었다. 가장 저렴한 곳부터 비싼 곳까지 모두 가 보았는데도 말이다. 3시간 정도 돌아다니다가 빈방을 찾는 것은 포기하고 여기까지 온 이상 그냥 갈 수는 없다 싶어서 오늘도 릭샤꾼과 1일 여행을 하기로 했다. 온도가 높아 아침부터 땀으로 세수하고 떡진 머리로 돌아다닐 생각을 하니 더운 이 여행객 많은 도시에 민폐일 것 같았지만 할 수 없었다. 순간 우리나라 찜질방이 얼마나 그립던지!
폰디체리에서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 중 하나였던 ‘스리오로빈도 아쉬람(Sri Aurobindo Ashram)’ 스리 오로빈도와 더 마더(The Mother)라고 불리는 프랑스 여인이 설립했다는 이곳은 요가와 과학을 결합한 현대적 영적 교의를 제안하는 곳이다. 현재 폰디체리의 많은 교육과 문화 활동을 후원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아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조용하고 따스한 분위기였다. 이른 새벽이었지만 이곳을 찾은 모든 사람들은 오로빈도의 무덤 앞에서 경건했다. 아쉬람 안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도 대화를 할 수도 없는 곳이며 오로지 침묵으로 명상과 기도를 하는 장소이기에 고요함이 더욱 깊게 느껴졌다. 꽃으로 아름답게 장식해 놓은 아쉬람 위에 손을 올리고 기도를 드리고 향을 맡으며 머리를 숙이는 모습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고 온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인도에서 가장 크게 놀랐던 점은 사람들은 어떻게 자신들이 믿는 신 혹은 종교에 이렇게까지 온 마음을 다하여 섬길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본인들의 말로는 이들은 주말만이 아닌 매일 일을 하러 가기 전에 템플에 들러 신에게 기도를 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집에서 또는 일터에서 조차 자신들이 믿는 신의 성소를 만들어 놓고 기도를 한다. 물론 이들의 신에 대한 사랑이 윤리, 도덕과는 별개였지만 그들이 말하는 신에 대한 열정만큼은 따라갈 수 없지 않나 싶었다.
한참을 그 고요함 속에 빠져나오고 싶지 않았다. 오랜만에 느끼는 편안함이었다. 아쉬람을 돌며 나의 지금을 관조했고 성찰했다. 나는 왜 여기에 있는지, 나는 무엇을 알고 싶은 것인지. 이 여행에서 무엇을 얻고 싶은 것인지.
어느 순간 정적 속에 누군가 이런 질문을 했다.
“너는 나에게 온 마음을 다해 너의 몸과 머리를 숙여본 적이 있느냐?”
내가 믿는 나의 신이 나에게 걸어온 말일 수도, 내 무의식이 나에게 거는 말일 수도 있었다. 나는 내가 믿는 신에게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를 풍기며 기도하고 찬미하며 머리 숙여본 적이 있었던가.
한참을 그렇게 나는 내가 믿는 신에 대한 미안함과 함께 마치 환영을 보는 듯한 몸이 붕 떠서 내 모습을 내려 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그곳을 바라보기만 했다. 나를 사로잡은 그 무언가는 무엇이었을까. 아직도 말로 설명이 잘 되지 않는 경험이었다. 다른 종교의 수도원이었지만 내가 믿는 나의 신과 함께 하는 시간이었다. 마치 천국에서 자유로운 몸으로, 매우 가벼워진 몸으로 돌아다니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쉬람에서 나오니 3시간이 지나 있었고 허기가 밀려왔다. 체감상으로는 1시간 정도 있었던 듯했는데 말이다. Hot bread에서 빵과 커피로 아침을 먹었다. 여행 중 처음으로 인도의 설탕 범벅 빵이 아닌 일반적인 빵을 먹을 수 있었다. 몇 달 만에 먹는 이 담백한 빵이 그렇게 행복할 일인가 싶지만 인간은 단순하고 욕구에 기민하다. 간단하게 배를 채우며 가이드북을 들여다봤다.
오로빈도에서 하는 종이 공장을 가 보고 싶었는데 하필 일요일이었고 쉬는 날이었다.
스리 마나꿀라 템플(Sri Manakula Vinayagar Temple)에 들러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들에 눈길이 가 사람 관찰을 했다. 가끔 사원들을 구경하러 갔다가 사원이 아닌 사람 구경만 하고 나오는 경우가 더 많을 때도 있다. 그리고 정부 박물관에 갔다. 그 당시 왕이 쓰던 물건들과 방들을 그대로 보존해 놓은 모습들은 현대적인 느낌도 나고 프랑스 문화가 섞인 인도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폰디체리에 왔다면 외각에서 조금 떨어져 있지만 오로빌 황금 사원(Golden Place)이라 불리는 마트리만디르(Matrimandir)를 안 가볼 수 없다. 이 오로빌은 사람들이 종교와 정치, 국적을 초월하여 평화롭게 조화를 이루며 살 수 있는 국제적인 삶의 방식을 실현하는 실험을 하는 프로젝트이다. 이 역시 더 마더가 구상한 프로젝트이며 이들은 인간과 자연의 어우러진 삶을 지향하여 태양력과 풍력 등 자연에서 주어지는 에너지를 이용하고 자급자족을 하는 공동체이다. 이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식사, 의료서비스, 교육이 무료로 제공되며 이 운영 방식은 관계성(Relationship)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종교와 인종을 떠나 평화를 위해 함께 살아가는 이곳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해변에서 18km 정도 떨어져 있어서 릭샤를 타고 한참을 가다가 주변에 내려걸어 들어갔다. 저 멀리서 자그마하게 보이는 오로빌. 황금으로 이루어져 멀리서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유명하다면 유명한 만큼 처음 보는 외국인 인파가 대거 이동하고 있었다. 황금 사원을 보기 위해 걷고 걷는 많은 사람들 사이로 사진도 찍고 서로 찍어주며 웃고 떠들고 있는 모습들에 덩달아 즐거워졌다. (갑자기 친구들이 보고 싶기도 하고) 그룹들로 온 사람들은 오로빌 앞에서 사진도 찍고 웃고 떠들며 한참을 이야기하고 있었고 황금 사원은 세상을 향해 침묵하는 듯 조용히 우리를 지켜보는 듯했다. 걷고 걸으며 점점 가까워지는 황금 사원은 아직 공사 중이며 미완성의 모습이었다. 오로빌에 도착해 읽어 내려간 그들의 취지와 세상을 향한 외침에 나는 머리를 숙이고 한참을 느꼈다. 지구상에서 유토피아를 꿈꾸고 있는 이 장소가 과연 뜻과 가치대로 이루어져 갈지 오로빌의 완성은 그들이 꿈꾸는 평화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지 궁금해졌다. 완성이 될 때 즘 한 번 더 와서 이곳에서 숙박을 하며 요가와 명상을 즐겨볼 수 있기를 바랐다.
한참을 이런저런 생각에 문득 고개를 들고 주변을 바라보니 아름다운 자연 안에 있는 이 황금 사원이 부러웠다. 빌딩 숲에 둘러 쌓여 살고 있는 내가 점점 자연화 되고 있다고 해야 하나. 날은 조금 더웠지만 오로빌을 오고 가던 발걸음이 가벼웠다.
동정녀 마리아 성당, 마켓을 구경하고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Le Terrasse에 들어갔다. 너무 더웠는지 며칠을 씻지 못한 채로 땀을 많이 흘렸고 아이스커피가 간절했다. 커피와 치킨마요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샌드위치는 너무 퍽퍽했지만 얼음을 더 요청해서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마시자 좀 찝찝했던 하루가 내려가는 듯.
Sacred Heart Church에 가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한껏 느꼈다. 멋진 스테인드 글라스에 아기 예수를 생각하며 만든 종이 인형들, 이곳에도 크리스마스가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더워서 12월이라는 것도 잊고 있었으니 말이다.
뜨거운 볕이 강하게 내리쬐는 곳엔 아무도 앉지 못하고 있다. 인도 사람들도 더운지 그늘 바닥에 누워 잠을 청하는 사람들도 있다. 쓰레기는 여기저기 굴러다니고 버스 창문에 매달려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도 있다. 냄새가 나는 화장실 앞에서 온 가족이 모여 탈리를 먹으려고 모여있다. 잠깐 화장실을 다녀오려고 커다란 짐을 밖에 그냥 두었다. 분실의 위험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화장실 안이 더러워서 가지고 들어가기가 더 싫었다.
인도에서 여행객으로의 삶은 좋다. 여행 책을 들고 다니며 지도를 보고 열심히 그 지역을 구경하고 사진을 찍고 사람들도 만나고, 가끔 외국인들과 눈이 마주치면 싱긋 웃으며 스몰 토킹을 나누는 것도 좋다. 찌는 더위도 나쁘지 않다. 다만 화장실이 싫다. 이렇게 더럽고 지저분한 화장실을 이용하는데 2루피를 내야 하는 현실이 싫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런 화장실을 이용할 수밖에 없으니 어쩌겠는가. 앞에 3명의 여인이 엉덩이를 까고 앉아있다. 정류장 의자에 앉아 우아하게 아이스커피를 마시던 내 모습은 오간데 없고 앞에 있는 여인들과 눈이 마주쳐 같이 웃으며 엉덩이를 까고 있다. 그녀들은 싸리를 입고 있어서 잘 보이지 않지만 바지를 입고 있는 나는 하얀 엉덩이가 다 보일 텐데도 헤벌쭉하게 웃으며 그녀들과 앉아 볼일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내 모습이 참 바보 같아 웃음이 날 때도 있다.
화장실에서 나오니 어떤 사람이 내 가방을 부여잡고 토하고 있다. 나는 “악!” 소리가 저절로 나왔고, 뛰어가서 가방을 가지고 더러워지지는 않았는지 둘러봤다. 다행히 뭐가 보이지는 않았다. 그 사람은 술에 취한 듯 또 어딘가를 향해 걸었다.
버스 스탠드에서 늘 들리는 “코피 코피 코피~ 짜이 짜이 짜이” 하는 소리와 “벅시시 벅시시” 적선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는 벌써 여덟 번째. 어느덧 익숙해진 광경과 소리에 해가 저물어가는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