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도시 함피
사람들 모두 별 기대하지 않고 갔다가 반해서 돌아온다는 곳 바로 함피.
함피로 들어가는 버스 안에서 저절로 노래가 나왔다. 들어가는 순간부터 나오는 순간까지 자연이 만들어놓은 테마 파크를 즐기러 온 기분이었다. 멀리까지 보이는 돌산들과 야자수 그리고 즐비한 바나나 나무숲, 모험과 볼거리들이 나를 못살게 굴 것만 같은 그런 곳이었다. 신이 말씀으로 창조한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세밀하게 손으로 빚어 놓은 듯한 분위기의 함피는 누군가 말한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도시’라는 말이 딱 맞을 정도로 아름다웠던 장소다. 사진에 모두 담을 수 없는 현실이 아쉬웠지만.
어릴 적 보았던 알라딘 영화에 나올 것 같은 꿈의 나라 같았기에 현지 시장에서 팔고 있는 알라딘 바지를 입고 양탄자를 타고 다녀야 할 것만 같았다. 양쪽 템플 중간에 서서 감상만 하고 있어도 마법의 양탄자에 탄 듯 설렘에 두근거렸다.
한때 인도의 역사상 가장 큰 힌두 제국의 하나인 비자야나가르(Vijayanagar) 수도였던 이곳은 16세기 절정을 이루었다가 갑자기 몰락했던 곳이며 그때의 아름다웠던 제국이 그대로 멈춰 있는 듯한 모습이다. 많은 부분 파손된 부분도 있지만 여전히 크고 넓은 템플들과 주변 경치가 어우러져 황홀함을 가져온다.
쑬레 바자르(Sule Bazaar)와 아츄타라야 템플 (Achyutaraya Temple)을 보러 들어가는 입구 또한 놀이동산에서나 보았던 야자수 밑으로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데 조그마한 강가가 나오더니 그 주변엔 원숭이 떼와 모자를 엎어 놓은 듯한 꼬마 보트가 그림처럼 그곳에 있었다. 돌산 사이로 잔잔히 흐르는 강물과 멋진 날씨는 미술관에서 유명한 회화를 바라보듯 감상하게 해 주었다. 어츄타라야 템플도 놀이공원 같았고. 이 멋진 광경을 혼자 보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가족 생각이 났다.
헤마쿠타 힐(Hemakuta Hill)에 들어섰다. 힐에서 보는 경치와 돌산, 나무들과 바람은 황홀할 지경이었고 누군가 만든 이 경치를 찬미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감탄사로 이 아름다움을 노래할 수 있을까?
돌아보다가 감기 몸살이 심해져서 많이 구경하지는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봐야 할 템플과 건축물들이 많아서 이틀간 지내기로 했는데 몸 상태를 보니 하루는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함피에서의 게스트 하우스엔 차가운 물만 나왔다. 몰랐는데 함피의 게스트 하우스는 웬만하면 모두 차가운 물만 나온다고 한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좀 여유가 있다면 호스펫에 머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차가운 물만 나올 때는 씻고 싶다면 한 낯 뜨거운 시간 물이 미지근해져 있을 때 씻는 게 가장 좋다. 흙먼지를 뒤집어썼기 때문에 2시쯤 샤워를 하고 숙소에서 쉬기로 했다. 모기장을 치고 침낭 속에 들어가 일찍 잠을 청했다.
다음날 푹 자고 나니 좀 나은 거 같아서 동선이 좀 많은 김에 일찍부터 서둘렀다.
가네쉬(Ganesh)와 크리쉬나(Krishna Temple) 템플을 시작으로 언더그라운드 시바 템플(Underground Siva Temple), 로터스 마할(Lotus Mahal), 코끼리 우리(Elephant Stables), Basement of Queen’s Palace, Range Temple, Hazararama Temple 등 돌아볼 유적지들이 넓게 분포되어있어 릭샤 또는 자전거를 이용해야 한다.
비탈라 템플(Vitala Temple)
함피 유적에서도 최고라는 16세기 비탈라 템플은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건축도 멋있지만 조각 작품들이 매우 경이롭다. 화려한 장식의 돌로 만든 전차도 사원 마당에 있는데 가루다 상이 조각되어 전시되어있다. 한때는 실제로도 굴러갔다는 이 전차의 조각들만 보기에도 시간이 모자랄 듯 신전의 모습을 한 이 전차는 매우 정교했다.
음악 소리가 난다는 조각 앞에 사람들이 웅성웅성 거리며 음악 석주를 두드려 소리를 듣고 싶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오전이라 사람이 많고 시끄러움에 머리가 지끈 지끈 했다. 미열 때문에 머리가 아파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템플 뒤쪽으로 걸어 뒤쪽 그늘에 앉아 고요함을 즐기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몇 시간 앉아 바라만 보아도 기분이 좋아 한참을 앉아 있었는데도 지루하지가 않았다. 바람과 나무 돌과 흙, 시원한 템플 모든 것들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사진에는 담기지 않은 자연의 스케일은 유원지에 온 듯 설렘을 주었다. 이곳엔 꼭 다시 오고 싶다는 열망이 가득했기에 함피에 대한 느낌을 일기처럼 기록하고 있었는데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한 아이가 소리쳤다.
“헤이~ 뭐 하고 있어요?”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더니 몇 미터 떨어진 곳에 서른 명 정도 되는 아이들이 줄을 서 있다. 견학을 왔는지 아이들은 선생님처럼 보이는 몇 사람이 인솔하고 있었다. 아이는 또 소리쳤다.
“여기서 뭐 하고 있어요?”
나는 딱히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한 선생님이 아이에게 말했다.
“쉿, 조용히 해. 그녀는 지금 시를 쓰는 중이야. 어떤 작품이 탄생할지 모르니 우리는 조용히 해줘야 해.”
나는 그 선생님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고맙다는 눈빛을 보냈다. 그 선생님도 웃으며 계속 글을 쓰라고 손짓했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 앉아있었는지 점심 시간쯤 되자 줄을 서있던 많은 사람들이 어디로 갔는지 몇 사람만 보였다. 시끌 시끌하던 사원도 고요해졌다. 줄이 짧아진 김에 나도 들어보려 음악 석주에 귀를 대고 북 부분을 둥둥 두드렸다. 신기하게도 그 소리가 맑고 청명하게 울렸다. 사람들이 많이 만져서인지 혼자만 붉게 물들어 있었고 코는 닳아 보이지도 않는다.
뒤에 서 있던 예쁜 외국인 커플이 나에게 사진을 찍어달라며 카메라를 쥐어주고 부탁했다. 그러면서 포즈를 취한다. 남자는 드럼을 쳐주고 여자는 소리를 듣는 표정으로 몇 컷 찍어 달라고 한다. 매우 예쁜 커플이었고 주변을 둘러보니 혼자 온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너도 찍어줄까?”
“아니, 괜찮아."
감기 기운에 며칠을 골골거리다 보니 한국 음식이 먹고 싶었다. 웰컴 식당. 이름 만으로도 마음에 들었지만 Korean Food라고 쓰여 있기에 더 마음에 들었다. 감자 볶음밥이라는 걸 시켜봤다. 달걀 국에 하얀 쌀밥, 달걀 오믈렛과 감자채 볶음, 김치 대신 무 무침과 비슷하게 나온 식사. 솔직히 한국 음식 맛은 아니었지만 비슷하게 만들어 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오랜만에 먹는 하얀 쌀밥과 반찬이기에 열심히 입에 구겨 넣었다. 한참 점심을 먹고 있는데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한국 사람이세요?”
인도 사람이 한국 말을 너무 잘하니 이상했다.
“네, 한국 사람이에요.”
오랜만에 쓰는 한국말이었다. 그 옆에는 한국인으로 보이는 남자분이 앉아 있었는데 중앙대 건축학과 교수님이라고 한다. 델리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인도 사람과 함께 인도의 건축물들을 보며 한 달 일정으로 여행하고 있다고 했다.
“남부 쪽 건축물들과 함피의 건축물들은 어떤 거 같아요?”
생각하지 못한 질문에 나는 건축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에 큰 차이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저 이들이 섬기는 다른 신들에 따라 다른 조각과 상징물이 다른 것 외에는 차이를 잘 느끼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축이나 템플 보다는 시장과 학교, 사람 구경을 더 좋아하는 나였지만 함피의 건축물들, 인도 힌두 템플들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니 건축물을 더 둘러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델리와 아그라에 가봤어요?”
“아뇨, 아직이요. 남부먼저 여행하고 북부 쪽으로 올라가는 중이에요.”
“우리는 북부에서 내려왔어요.”
“타지마할은 보러 갈 거죠?”
“그럼요. 당연히 가 봐야죠.”
교수님은 타지마할 뷰가 보이는 아그라 포트에 꼭 가보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고 이야길 듣다 보니 문득 샤 자한의 사랑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같은 인도 여행을 하고 있지만 전혀 다른 관심으로 서로 다른 여행을 하고 있다니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방문했던 장소가 새롭게 느껴졌다.
식사를 마친 뒤 서로의 여행에 축복을 빌어주고 자신의 길을 걸었다.
비탈라 템플의 티켓으로 로열 센터(Royal Center)와 엔클로져( Zennna Enclosure), 코끼리 우리도 함께 볼 수 있어서 하루에 모두 가보기로 한다.
로터스 마할은 연꽃봉우리 모양으로 조각되어 있는 모습이 매우 멋졌다. 함피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템플이기도 하다. 옆으로 코끼리 우리는 아주 거대하게 자리하고 있는데 아직 코끼리가 그곳에 있었다면 더 와닿았을 거 같다.
로터스 마할에서 사람들이 모르는 듯 아무도 없는 뒷길, 신비로운 바나나 나무들과 저 멀리 보이는 돌산이 너무나 아름다워 나도 모르게 무언가에 이끌려 닫혀 있는 철문을 열고 들어갔다. 오후의 햇살이 뜨겁게 내리쬐고 바나나 나무 아래 시원한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왔다. 그늘에 앉아 돌산 너머로 해가 찬란하게 비치던 그 광경을 잊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