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양의 도시 고아
남부 여행이 끝나가면서 중부로 올라가기 전 뱅갈로르에 다시 들렀다. 크리스마스를 혼자 보내고 싶지 않기도 했고 25kg 되는 배낭에서 무엇을 더 빼고 가야 할지 고민하기 위해서다. 오전 6시쯤 뱅갈로르 역에 도착했다. 며칠 만에 왔는데도 오랜만에 내 집에 온 거 같은 편안한 느낌이었다. 꼬질꼬질 해져서 돌아온 내 모습에 스스로가 웃음이 났다. 며칠 묵혀 놓은 빨래를 하고 드디어 샤워를 했다. 3일 만인가? 이렇게 시원할 수가! 샤워를 할 수 있는 것에도 감사하게 될 줄이야.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기 위해 장을 조금 보러 MG로드로 나갔다. 고아원 아이들에게 산타가 되어주어야겠단 생각이 들었고 연말이 되니 왠지 감사한 삶을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했다. 학생이었기에 나도 얼마 되지 않는 여행비를 줄이고 줄여 과자와 음료수를 사서 돌아왔다. 서른 명 가깝던 아이들에게 선물로 나눠주고 나니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고 날뛰며 기쁨의 마음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그날 무엇에도 견줄 수 없는 천사의 미소를 보았다. 중요하지 않은 것에 쓰는 돈 보다 다른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는데 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이보다 좋은 것이 있을까 싶었다. 이 느낌을 계속 가져가자 마음먹었지만 한국에 돌아와서는 자꾸만 이 사실을 잊어버렸다. 크리스마스는 역시 ‘함께’와 ‘나눔’이 있어야 한다.
집으로 돌아와 여행 가방을 다시 챙겼다. 입지 못할 것 같은 옷가지들은 정리하고 이동하며 다 읽은 책들도 내려놨다. 쓸모가 있어 보여 가지고 다녔던 것들이 막상 여행을 통해 쓸모없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들이 있다. 그렇게 어깨에 매달린 짐이라 여겨지는 것들을 가급적 내려놓고 새롭게 단출한 여행 가방을 챙겼다.
며칠 전부터 몸이 으슬으슬하더니 감기 기운이 있었다. 약간의 열도 나면서 기침을 조금씩 하기 시작했다. 12월의 인도는 더울 줄만 알았는데 밤이 되면 서늘한 공기가 우리나라 가을 날씨와도 같았다. 벵갈로르 버스 스탠드에 앉아 호스펫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쌀쌀한 밤, 니트 카디건을 입고 있어도 추웠다. 짧은 옷을 입은 사람들도 몇 있었지만 니트 조끼를 입은 아저씨, 긴 사리로 머리와 어깨를 덮어버린 여인들이 앉아 있었다. 조금 후 귀여운 여자 아이가 엄마 손을 잡고 내 옆에 앉았는데 추운지 덜덜 떨고 있었다. 아이는 다홍색 반팔 원피스에 등에 있는 지퍼가 고장 나 허리까지 내려와 있었고, 엄마 역시 반팔 사리에 어깨만 감싸고 있었다. 한참을 쳐다보다가 커다란 백팩에서 얇은 짚업 긴팔 옷을 꺼내 아이에게 입히고 지퍼를 올려주었다. 아이의 엄마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꾸벅했다. 고맙다는 표현이겠지 싶었다. 아이는 부끄러운지 미소 조금 보여주다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다시 바라보기에 같이 눈을 바라보며 미소로 화답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그 아이가 나를 바라보는 게 아니라 내가 저녁으로 먹고 있었던 빵 봉지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는 걸 발견했다. 나는 웃으며 조심스레 빵을 내밀었더니 아이는 허겁지겁 먹으며 의자에 떨어지는 부스러기까지 쓸어 입에 넣는다. 나는 조용히 짜이를 하나 더 시켜서 아이 옆에 놓아주었더니 ‘호호’ 불며 한 모금 마시고는 그제야 행복한 얼굴로 나를 바라봐주었다. 아이가 너무 귀엽고 예뻐서 빵과 짜이를 다 먹을 때까지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는데 잠시 후 주변을 둘려보니 사람들이 모두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는 사람마다 나에게 따뜻한 미소를 지어주었고 기분 탓인지 쌀쌀하던 버스 스탠드가 조금 훈훈해진 느낌이었다. 남은 여행도 이렇게 훈훈하기를 바라면서.
연말이라 이곳에 있는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기에 슬리퍼 버스를 타고 고아로 향했다. 아침에 도착해 통화를 해보니 꼴바에 있는 게스트 하우스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버스를 타려다가 동정녀 마리아 성당이 아름다워 잠시 멈춰 구경을 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샌드위치를 사서 해변에 나갔다. 고아는 야자나무로 둘러 쌓여있는 바닷가라 인도 사람들도 여행으로 오거나 휴가로 많이 찾는 곳이라 여기저기 사람이 많았다. 뜨거운 한 낮이라 모두가 바다에 풍덩 빠져 들었고 해가 질 때까지 신이 나게 놀았다.
연말이니 만큼 신나게 즐기기 위해 뜨거운 커피와 저녁을 먹은 후 인도에서 처음 클럽을 가봤다. 금요일은 레이디스 나잇이라 입장료와 음료가 모두 프리!
새벽 3시까지 인도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우리, 어디에 가건 음악만 있다면 그곳에 심취되어 기분 좋게 흔들 줄 아는 나였기에 꽤 즐거웠다. 인도에서 밤 새 춤을 출 줄이야.
(나중에 생각해 본 거지만 음악이 나오면 흥에 겨워 자연스레 춤을 추게 되는 나란 사람은 혹시 인도인의 피가 섞여 있는 건 아닐까.)
야자수가 넓게 펼쳐진 바닷가가 좋아서 이틀 정도 더 머무르기로 했다. 새벽까지 춤을 췄기에 다음 날은 늦게 일어나 카메라를 내려놓고 여기저기 둘러보며 쇼핑과 시내를 즐겼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이었다. 오후에 출발하는 뭄바이행 티켓을 사러 나갔다 오니 친구들이 오랜만에 영화를 보고 싶다고 했다. 내 노트북에 있는 영화를 보다가 결국 뭄바이행 버스를 놓치고 말았다. 비싼 고속버스였는데!
운이 좋게도 깜짝 방문한 웨슬리라는 인도인 친구를 버스 스탠드 근처에서 만났다. 웨슬리가 나의 사정을 듣고 버스 스탠드에서 내가 타려고 했던 뭄바이행 버스를 확인해 보고는 버스 기사와 전화가 가능한지 물었다. 그리고는 기사에게 바로 전화해서 어디쯤에 있는지, 기다려 줄 수 있는지 확인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오토바이에 빨리 타라며 버스가 있는 곳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가방을 메고 헬멧도 없이 웨슬리 오토바이에 앉아 10분 남짓 달렸다. 다행히 길가에서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 고마워 웨슬리! 어떻게 고마움을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어.”
“우리 친구잖아. 그렇지? 네 마음 알아. 버스가 기다리고 있으니 빨리 타. 조심히 여행하고, Good Luck!”
웨슬리는 오토바이에서 조심히 내려오게 붙잡아주고 가방도 버스 차장에게 건네준 뒤 버스가 떠나갈 때까지 손을 흔들어주었다.
고마운 웨슬리! 이 고마움을 정말 표현할 길이 없었다.
여행을 모두 마치고 뱅갈로르로 돌아가서 웨슬리를 만났는데, 덕분에 너무 좋은 여행을 했다고 고마웠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살이 좀 찐 거 같다며 여행 다니면서 잘 먹었냐고 물어본다. 그와 웃으며 장난도 치고 그렇게 정말 친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