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과 극이 공존하는 도시 뭄바이
이미 인도의 매력에 푹 빠진 나에게 뭄바이는 또 다른 매력을 보여주었다. 세계 2위로 많은 영화를 배출한다는 이곳. 곳곳에 영화에서 보던 해변가나 호텔 등이 보이니 재밌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개인적인 느낌으로 뭄바이의 번화가는 델리(수도)보다도 더 세련된 도시 느낌이었는데 현대적인 옷차림, 짧은 미니스커트, 손을 잡고 다니는 연인, 큼직 큼직한 유럽식 건물들, 영국 스타일의 택시 등 인도의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힘든 것들이 많았다. 물론 교통 체증(퇴근 시간 꽉 막힌 도로는 서울과 다름없었다.)이나 비싼 물가도 비교되는 부분이다. 인도 전역을 다니면서 경험한 가장 저렴한 숙소는 16루피, 뭄바이에서 가장 저렴한 숙소는 1000루피였다. 물론 게스트 하우스가 아닌 호텔에 묵었지만 1000루피는 뱅갈로르에서 스테이크를 20번 사 먹을 수 있는 정도의 비용이었다. 한국 돈으로 환산해 보면 얼마 안 되지만 인도에서 오랜 시간 머물다 보니 이곳 물가에 적응이 되어버린 터였다.
해안가를 따라 세워진 고층 빌딩들, 즐비한 고급 백화점들, 영국 느낌이 나는 빅토리아 역을 시작으로 2층 버스와 택시들은 마치 새로운 나라로 여행을 온 듯했다. 국립 현대 미술관이나 아트 갤러리 같은 현대 미술도 관람할 수 있고 유럽식 대형 건물들도 너무나 아름답다. 도시적이고 현대적이지만 델리처럼 싫지가 않았다. 오히려 뭄바이의 매력에 빠져 며칠 더 여행하고 싶었다.
아침 일찍 도착해 머물기로 한 호텔에서 제공하는 아침 뷔페를 편안하게 먹고, 가장 먼저 뭄바이에서 영화의 도시라는 사실 다음으로 유명한 마하락시미 도비 가트(Mahalaximi Dhobi Ghat)에 도착했다. 세계 최대 빨래터인 이곳은 일반 사람들은 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곳에, 빨래터는 그 아래에 자리 잡고 있었고 아침부터 빨래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약 5천 명 남자들이 노천에 널린 빨래터에 매일 시 전역에서 들어오는 수천 킬로그램의 빨래를 하며 하루를 보내는 곳, 사진을 찍기 위해 마하락시미 스테이션 근처 철로 건너편 다리에 서 있다 보니 참 아이러니하게 보였다. 많은 외국인들은 빨래터를 내려다보며 빨래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그 아래서 허리를 숙이고 빨래를 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주변으로 길가에 판자촌처럼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벅시시를 요구하며 손을 벌리고 다니는 사람들. 그들은 그저 본인의 일을 하고 있는데 사진을 찍는 게 갑자기 미안해졌다. 가장 화려한 도시인 뭄바이는 그렇게 극과 극이 공존하는 도시였다.
마니 바완(Mani Bhavan)은 인도의 아버지라 불리는 마하트마 간디가 1917년부터 1934년까지 간디 운동의 본부로 사용된 이 건물은 간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간디의 지도 아래 인도 사람들이 자유를 얻기 위해 싸운 것을 기념하는 곳이다. 인도의 독립 투쟁과 관련된 많은 중요한 사건이 이곳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작은 건물이지만 간디의 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그의 기록이 머물러 있는, 인도 해방 운동(Quit India movement)이 이곳 뭄바이에서 발족되었다.
인도의 독립기념일도 8월 15일로 우리와 같다. 인도 사람들과 종종 이야기해 보면 독립 기념일과 간디의 해방 운동에 매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열변을 토하면서 간디의 일생과 위대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만나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우리의 해방 운동과 독립 기념일에 대해 그렇게 많이 알고 있나 하는 생각에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인도 사람들에게 ‘간디’는 매우 자부심을 느끼는 중요한 사람인데 인도의 국기 속 물레도 간디의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있고, 지역 곳곳 간디 메모리얼이 있거나, 어느 도시를 가던 메인 스트리트에 MG로드, 즉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 길로 명칭하고 있기 때문에 간디를 몰랐던 사람도 인도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저절로 알게 될 수밖에 없다. 우리도 독립운동의 길을 만들어 벽돌 하나하나에 독립 운동가들의 이름을 새기고 그 길을 지날 때마다 읽고 기념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1층에는 간디의 저서와 그의 생애, 사상, 그의 화제를 모은 책들이 비치된 도서관이 있으며 2층에는 간디가 사용한 방이 그 당시와 동일하게 보존되어있다. 간디가 처음 실을 짜는 방법을 배운 것도, 병들었을 때 첫 양젖을 마신 것도 이 방이었다고 한다. 간디의 생애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여러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간디는 1932년 1월 4일 새벽, 이 장소에서 아침 기도를 하던 중에 체포가 되었다. 이 건물은 현재 국립 기념관으로 지정되어 있다.
여행 전 숙소(고아원)에서 주말 인도 영화 상영회 같은 것을 했었는데 남부 지역이라 타밀 영화를 몇 편 보게 되었다. 전혀 알아들을 수 없고 자막도 없어서 내용을 몰라 재미가 없었는데 이후 한국에 돌아와서 찾아보게 된 인도영화에 점점 푹 빠져 들어 150편 이상을 시청하게 되었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영화 [세 얼간이] 주인공인 ‘아미르칸’, [내 이름은 칸]의 ‘샤룩 칸’, [둠 2]라는 영화를 보고 반했던 남자 주인공 ‘리틱 로샨’ 등이 나온 고전, 액션 영화들을 찾다 보니 50편을 넘어가고 있었다. 또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싶은 여배우들에 빠져 ‘아이슈와라 라이’, ‘디피카 파두콘’이 나오는 영화를 찾아보다가 생각보다 재미있는 러브 스토리나 액션 영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보게 됐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억지스러운 액션과 웃음이 나는 히어로물, 어디서 본 것 같은 작품들도 있지만, 동시대에 나왔던 액션 영화를 비교해 보면 한국 영화보다 스케일이 훨씬 크고 역사를 배경으로 한 다양한 주제들의 영화들이 있어 흥미롭게 시청하다 보니 어느새 150편을 훌쩍 넘기고 보게 되었다. 지금은 OTT로 시청할 수 있는 인도 영화들도 있지만 한국에서는 인기가 없어서인지, 진짜 볼만한 고전미가 담긴 영화나 엄청난 스케일을 자랑하는 액션물은 보기 어려운 것이 아쉽다. 한국으로 돌아올 때 보고 싶었던 영화들을 다 관람하지 못한 아쉬움에 DVD를 몇 편 사 오기도 했는데 지금 봐도 재미가 있다.
괜히 한번 어느 발리우드 영화에서 본 것 같은 초파티 해변(Chowpatty Beach)에 한참 앉아 바닷가를 바라보았다. 인도의 다른 지역들과는 다르게 해변에 앉아 연인들이 다정하게 키스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다른 지역에서는 감히 상상하지 못하는 일이다.) 뜨거운 볕이 내리쬐는 바닷가지만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와 머리카락을 간질이는 느낌도 이 좋았고 방파제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가 시원했다. 해변엔 델리에서도 휴양지에서도 보기 힘든 옷차림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비싼 외제차가 정신없이 달리기도 하는 대도시였다. 게다가 뿌연 공기, 미세 먼지로 가득한 도시이기도 한다. 초파티 해변을 지나 마린 드라이브( Marine Drive) 길까지 걸었다. 이곳은 가을에 디왈리(Diwali)가 열리는 곳인데 이런 축제를 경험하지 못하는 것은 좀 아쉽다. 감기에 걸렸어도 뜨거운 한낮의 온도는 차가운 음료를 생각나게 한다.
배스킨라빈스가 보여 반가운 마음에 다가갔는데 카레맛 아이스크림을 보고 웃음이 났다. 카레맛 아이스크림이라니 시도해보고 싶지는 않아 그냥 나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다시는 없을 경험인데 먹어볼걸 그랬다.) 대신 Mocha라는 곳에서 레모네이드를 마셨는데 분위기도 좋고 새콤 시원 달달해서 더위에 잠시 쉬어가기 좋은 곳이었다.
해변을 따라 걷다 보니 칼라 고다(Kala Ghoda) 지역(뭄바이의 주요 미술관과 박물관들, 화려한 식민지 풍 건물이 모여 있는 곳)까지 내려왔다. 플로라 파운튼(Flora Fountain) 분수대를 지나 후타트마 초크(Hutatma Chowk 순교자의 광장), 성 토마스 대성당, 빅토리아 터미너스(Victoria Terminus) 등의 건축물들을 구경하고 뭄바이 대학교 건축물까지 구경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마지막으로 저항기르 아트 갤러리(Jehangir Art Gallery)에 들어갔다. 현대 작가들의 작품들 전시를 하고 있었는데 한 그림이 나를 멈춰 서게 했다. 낭떠러지 같은 짙은 공간 속에 우뚝 솟아 있는 사람의 몸뚱이처럼 보이는 상. 혹은 송아지처럼 보이기도 한 그림. 어떤 뜻을 담고 그린 그림인지 모르겠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크리쉬나의 러브스토리를 담은 그림, 다양한 추상화, 물통으로 사람처럼 다양한 표정을 만든 오브제 등 인도의 현대 작가들의 작품들을 관람할 수 있었다.
미술관에서 한참 있었는지, 걸어 다녀서인지 모르겠지만 저녁식사를 하려고 했던 레스토랑이 문을 닫고 있었다. 할 수 없이 슈퍼마켓에 들려 저녁거리를 사서 들어오는 길, 늦은 밤 시간인데도 인도 답지 않게 화려한 조명과 복잡하고 정체된 길 위 정신없는 저녁 길거리가 마치 서울에 있는 거 같았다.
다음날 아침, 뭄바이에 더 머무르고 싶어서 호텔 프런트에 내려갔다. 며칠 더 묵을 수 있는지 물어봤더니 예약이 다 차버려서 안된다고 한다. 가방을 맡겨줄 테니 하루 더 재미있게 놀다가 가라고 한다. (이런 친절한 매니저 같으니라고!) 짐을 정리하고 가방을 맡기고 든든히 조식을 먹었다.
어제저녁 못 본 왕자 박물관(Prince of Wales Museum)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타려 했으나 사람이 너무 많았다. 출근길이었던가. 그냥 걷기로 했다.
프린스 오브 웨일즈 박물관, 소위 왕자 박물관이라고 부르는 이곳은 1905년 영국 왕 조지 5세가 웨일즈 왕자의 신분으로 인도를 첫 방문한 것을 기념해서 건립이 되었다고 한다. 인도의 사라센 양식으로 돔 천장이 거대한 것이 특징이다. 이곳에는 다양한 조각품, 점토로 만든 입상, 도자기, 무기류 등, 유럽 화가의 컬렉션도 있다. 확실히 건물이 더 아름답고 볼만했다.
꼴라바(Colaba) 쪽으로 내려와 유명한 인디아 게이트(Gateway of India)와 타지마할 호텔(Taj Mahal Hotel)을 구경했다. 역사가 있는 호텔이라 앞에는 구경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 사진조차 찍기 어려웠다. 외국인, 내국인, 관광객 할 것 없이 호텔 앞은 사람들로 붐볐다. 아쉽게도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100년 이상 된 호텔의 자태를 바라본 것만으로도 좋았다. 야경 역시 아름답다.
뭄바이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관광하는 곳은 바로 엘리판타 아일랜드(Elepahnta Island), 원래의 이름은 가라푸리(Gharapuri)인데 해안가 커다란 코끼리 석상 때문에 포르투갈 사람들이 엘리판타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인디아 게이트 근처에서 배를 타고 10km 정도 떨어진 곳으로 가는 길, 시바(Shiva) 신의 신전이며 힌두 신화의 이미지를 묘사하고 있다. 제작 연대는 확실하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6세기~8세기 정도 예측) 주요 석굴 안에서 거대하면서도 수준이 높은 표현이 담겨 있는 예술을 발견하였다고 하며, 중앙에 있는 대규모 부조들은 인도 예술에서 가장 위대한 작품이며 유산으로 손꼽힌다.
이 엘리판타 섬에는 관광객 주위를 어슬렁 거리는 원숭이들이 있다. 신전을 돌아보고 나오는 길 내 바로 앞에서 어떤 사람의 음료를 낚아채서 들고 가는 것을 보았는데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대처할 수가 없다. 가방을 빼앗기거나 음식을 낚아 채 가지고 달아나기도 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고. 어깨에 메고 있는 가방을 가져가려다 사람을 할퀴거나 다치게 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종종 인도에서 가장 위험한 존재이기도 하다.
감기기운에 두통으로 지끈거렸다. 낮과 밤의 온도 차이가 20도 이상 차이가 나다 보니 감기가 잘 낫지 않는다. 몸 상태가 말이 아닌 가운데 아우랑가바드로 가기 위해 버스 스탠드에서 예약을 했다. 고속버스 같은 좋은 버스를 타고 싶었는데 예약을 하다 보니 약간 저렴한 듯해서 기분이 영 찜찜했다. 숙소에서 짐을 찾고 택시를 탔는데 버스 스탠드를 이야기했더니 외국인들이 타는 좋은 버스는 다른 곳에서 운행을 한다고 했다.
‘응? 역시 뭔가 이상하다 했다.’
버스를 타고 보니 역시, 한 밤중 이동이라 10시간~12시간 가야 하는데 처음 뱅갈로르에서 코치로 갈 때 탔던 버스와 비슷하면서도 더 더러웠다. 이미 티켓을 사고 버스에 올라탔기 때문에 그냥 앉았다. 외국인 한 명 없는 불편한 시트와 부담스러운 시선으로 가득한 버스였지만 이들도 나와 같은 사람인데 뭐, 죽기야 하겠나 싶어 그대로 출발했다. 하지만 1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후회를 했다. 밤새 덜컹거리고 추운 버스 안, 머리는 계속 흔들리고 이빨은 부딪히며 추워서 덜덜 떨며 10시간을 뒤척거렸다. 내리고 나니 두통과 턱이 빠질 듯 아파왔다. 버스를 탈 때는 고속버스인지 확인하고 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