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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Amazing India 17화

엘로라(Ellora)에서 아잔타(Ajanta)

조각 동굴의 도시 엘로라,우연히 발견된 벽화 동굴 아잔타

by Euodia

엘로라 아잔타 동굴을 탐험하기 위해서 실크로 유명한 아우랑가바드(Aurangabad)에 머물기로 했다. 중부 도시인 마하라슈트라(Maharashtra)에서 가장 많이 찾는 도시이기도 하고 엘로라와 아잔타도 버스로 가깝기 때문에 한 군데 머물러 양쪽을 다녀보기로 했다.

1월이라 그런지 더 차가워진 날씨에 버스로 이동하는 내내 몸을 뒤척이며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아우랑가바드에 도착하니 아직 동이 트기 전이었기에 버스 스탠드에서 조금 기다리다가 숙소로 이동했다. 지도를 제대로 보고 간다고 생각했는데 길을 잃어버린 느낌이라 릭샤를 타고 지도에 나와있는 호텔로 이동했다. 첫 호텔이었는데 더블 침대에 넓고 화장실도 깨끗, 뜨거운 물이 나와서 그냥 머무르기로 했고 아주 싼 값에 좋은 호텔이어서 행운이라 생각했다. 밤새 덜덜 떨었기에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다. 종종 값이 싼 숙소는 차가운 물만 나오기에 생각보다 찬 밤바람과 차가운 샤워 후 감기에 종종 걸리기도 한다. 인도의 겨울, 한낮에는 물론 우리나라 여름보다 더운 때도 있지만 저녁이 되면 일교차가 심해서 매우 쌀쌀하게 느껴진다. 반팔만 입고 다니다가는 싸늘해지는 저녁 공기에 깜짝 놀라기도 한다.

전날 밤이 길고 추웠기에 오랜만의 여행 외의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빵과 우유를 사가지고 들어와 따뜻한 침대에 누워 여행을 다니며 각 도시마다 모아 두었던 엽서를 쓰기도 하고 집에 전화, 그리고 노트북에 들어있는 영화를 보다가 포근하게 일찍 잠에 들었다.



'엘로라 동굴'


엘로라로 향하는 버스는 한 시간 남짓, 역사책에서 보던 곳을 가다니 무언가 두근두근 했다. 엘로라에는 34개의 석굴이 있는데 그중에서 12개는 불교, 17개는 힌두교, 5개는 자인교(젠교) 석굴이다. 라슈트라쿠타(Rashtrakuta) 왕조 시대에 르네상스를 맞이한 힌두교, 조금씩 쇠퇴하던 불교, 그리고 작게나마 소생했던 자인교 이렇게 3대 종교가 한 장소에 공존할 수 있었던 것은 어떤 의미일까?

종교는 늘 서로 적대적이며 전쟁을 일으키는 요소였다면 이 동굴들이 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 당시는 서로에게 조금은 수용해 주며 관용적인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엘로라 동굴

조각 위주의 엘로라 동굴, 1번 굴부터 차례로 감상하기로 했다. (뒤에서부터 관람하는 사람도 있고 힌두교 사원만 찾는 사람들도 있다. 어떻게 관람하던 관광하는 사람 마음.)

지도도 잘 되어있지만 동굴을 찾기 위해 길을 걷다 보면 친절하게 바닥에 가는 길이 모두 쓰여있다.


1번부터 12번까지는 불교 사원들, 초반 동굴에는 단순하면서 섬세하지는 않았다. 11번과 12번은 조금 더 크기가 커졌는데 힌두 사원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설도 있었다.

13번에서 29번 까지는 힌두 사원인데 역시나 인도는 힌두 사원들이 웅장하고 섬세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16번 카일라사 사원(Kailasa Temple 혹은 Kailash Temple)은 한 개의 바위를 깎아 만든 것이라니 믿을 수 없이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시바(Shiva) 신에게 바쳐진 이 카일라사 사원은 7천 명의 일꾼이 1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바위에 새긴 것이며 한 개의 커다란 바위를 이용한 조각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것이라고 한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의 두 배가 되는 면적을 차지하며 높이도 1.5배나 높다고 한다. 신들의 모습, 난디, 코끼리 등의 엄청난 조각들이 섬세하고 화려한 조각으로 도저히 한 바위에서 나온 모습이라고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구석구석 섬세히 잘 관찰하며 오랜 시간을 보내도 좋을만한 동굴이었다.

16번 카일라사 사원


힌두 사원의 건축물이나 조각품들을 감상하다 보면 힌두 신에 대해서 지식이 있어야 더 재미있게 감상할 수가 있다. 다행히도 사전에 힌두교의 3대 신과 특징들의 정보가 조금 있었기에 더 이해할 수 있는 부분들도 있었다.


힌두 신화에 의하면 시바(Shiva) 신이나 비쉬누(Vishnu)와 같은 남신과 락쉬미(Lakshmi), 파르바티(Parvati)와 같은 여신, 코끼리 형상을 한 가네샤(Ganesha), 원숭이 형상의 하누만(Hanuman) 같은 동물 신들, 그 외에도 강, 식물, 천체와 같은 자연물을 신격화시킨 신들과 정령, 악령, 위대한 인물들을 신격화하여 인도의 신은 그 종류와 수가 엄청 많다. 힌두 사원을 다니다 보면 어떤 신전은 시바신, 어떤 신전은 가네샤, 이렇게 서로 다른 신을 모시는 신전들이 있다는 것과 이런 신들을 위한 축제도 다양하다. 힌두교는 주요 삼신이 있는데 창조의 신 ‘브라흐마( Brahma)’, 우주의 유지와 보존을 담당하는 신 ‘비쉬누(Vishnu)’, 파괴와 재생의 신 시바(Shiva)이며 이른바 힌두 삼위일체신론(Trimurti)이다. 이들의 신의 개념은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낸 것이 아니라 신성은 인간을 포함해 우주와 자연 모든 것 속에 존재하며 어떤 형태로도 숭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구체적으로 인격화된 여러 신들이 숭배의 대상이 되고 있다. 삼신뿐만 아니라 그들의 배우자인 여신들과 자손들이 신격화되어 숭배되고 있으며 그들이 타고 다녔다는 동물들도 섬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런 인도 신화에는 ‘다르마’를 담고 있는데 이 것은 우주는 살아 있는 하나의 유기체이며 일정한 질서 체계에 의해 운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르마는 이런 질서 체계를 지켜야 할 의무와 행동 규범을 의미하는데 바로 이 것이 사회에 적용된 것이 ‘카스트 제도’이다. 인도 사회에서 이 다르마는 개인이 지켜야 할 사회적, 종교적 의무이며 넓게는 우주의 질서를 유지하는 의무를 의미하고 있다. 인도를 움직이고 있는 보이지 않는 이 질서는 종교를 떠나 그들의 삶 자체이며 신념으로 자리 잡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힌두 사원을 다니다 보면 종종 신들의 히스토리가 조각되어있거나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성경에 나오는 어떤 부분적인 이야기와 닮아 있거나 그리스 로마 신화와 비슷한 부분들도 많다.


힌두교, 불교, 자인교의 동굴들은 서로 멋지게 지으려는 자신들만의 기싸움이 나타난 곳 같았다. 교과서에서 나올 때는 몰랐지만 이 안에 들어와 이야기를 듣고 상황을 알고 나면 더 재미있고 흥미롭다. 겉으로 보면 다 똑같은 동굴 같아 보이지만 짓는 사람들의 마음이 다르고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고 남겨져 있는 조각과 그림 속 숨은 이야기들이 다르다. 저마다 나름대로의 멋진 이야기들이 그 깊이를 더해주는 곳이었다.




'아잔타 동굴'


눈이 일찍 떠졌다. 오랜만에 편안한 침대라 그냥 일어나기는 싫어 뭉그적거리다가 씻고 나와 릭샤를 타고 버스 스탠드로 향했다. 아잔타 행 버스를 타고 2시간 반쯤 지나자 아잔타 동굴(Ajanta cave)이라고 쓰여 있는 곳에 내려 주었다. 시설 이용료를 지불하고 유료 버스를 또 타고 4km 정도 들어가야 했다.


동굴에 들어가기 전 한 아이가 예쁜 꽃을 선물해주었다


엘로라가 조각 위주의 사원이라면 아잔타는 벽화 위주의 사원이다.

엘로라 동굴보다 시기도 앞선 BC200년에서 AD650년 사이 만들어진 이 동굴은 불교가 쇠퇴하면서 버려지고 잊혔다. 이후 영국인 사냥단에 우연하게 발견되면서 알게 되었는데 그동안 고립된 덕분에 보존이 잘 되어있어 역사 교과서에서 보았던 선명한 그림과 조각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세계 문화유산인 이 아잔타 동굴은 전체적으로 보면 말발굽 모양으로 바위 골짜기에 조각되어 있다.

1번 동굴부터 순서대로 들어가 관람하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할 정도로 구석구석 볼거리가 많다. 종종 플래시를 터뜨리는 사람들과 시끌 시끌한 사람들에 방해를 받거나 갑작스럽게 박쥐가 날아다니기도 하니 조심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 뻔하지만 마지막 26번 동굴 커다란 부처가 유연하게 누워있는 조각이 가장 멋졌다.

아잔타 동굴의 벽화들

동굴들을 차례로 본 후 전망대로 올라갔다. 한 여름 날씨라 뜨겁고 습하다. 한 10분 남짓 올라가니 아잔타가 한눈에 보이는 곳에 올라서 있었다. 시원한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전망대에 앉아 말굽 모양의 아잔타 동굴을 잠시 만끽하고 있을 때 단체 관광을 왔는지 많은 사람들이 전망대로 올라오고 있었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며 올라오는데 매우 오랜만에 한국어가 들렸다. 누군가는 내가 한국인임을 확인하고 편하게 사진을 찍어 달라 하기도 하고 서로 대화를 하며 그룹을 지어 단체로 사진을 찍고는 다시 정신없이 어디론가 향한다. 시끌 시끌하더니 다시 조용해졌다. 조금 전 앉아 있던 전망대 의자에 다시 앉아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산 하나에 저 많은 동굴 벽화를 그리고 조각을 했던 사람들의 신앙심과 마음은 어떤 것이며 어느 정도의 깊이였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부모님과 동생을 데리고 한 번 더 방문하고 싶은 마음이 들던 그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안녕?”

“안녕.”

“저 사람들 한국 사람이었지? 그럼 너도 한국 사람?”

“맞아, 어떻게 알았어?”

“빨리빨리”(한국말로 정확히 “빨리빨리”라는 표현을 썼다.) 하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한국 사람들 관광 오면 사진만 찍고 빨리 지나가. 이 멋진 경관을 제대로 감상하지도 않고 말이야. 매우 안타까워.”

“그러게 여기 앉아서 보는 경관이 좋네”

“여기는 이렇게 한참 바라보며 생각해야 하는 곳이야.”

“나는 한국인이지만 한참 앉아 있었는데?”

“응 널 아까부터 봤어.”

“그러니 한국인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야.”

“그러네, 너는 멋지네.”

“고마워”

“무슨 생각을 하며 보고 있어?”

“학교에서 배웠던 아잔타 엘로라 동굴을 직접 마주하니 다양한 생각이 들어. 인도 사람들의 종교에 대한 신념도 궁금하고. 가족들과 다시 한번 오고 싶다는 생각도 했고.”


그렇게 몇 분을 전망대에서 대화하던 친구는 아잔타 동굴의 가이드를 하면서 저녁에는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가게에서도 일을 한다고 했다. 왜 혼자 여행하는지, 지금까지 가본 인도 지역 중에서 어디가 제일 좋았는지 등 이런저런 질문들을 하며 한국 사람과 이렇게 길게 이야기해 본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가끔 이렇게 진지하게 인터뷰?를 하는 사람들을 만나는데 보통은 외국인과 대화를 해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거나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혹은 관종이기도 했다.

이 친구는 아잔타 동굴 가이드를 하면서 사람들이 유적에 대해 제대로 알고 갔으면 좋겠다고 이야길 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불교는 아니지만 이 그림들과 조각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매우 자랑스럽다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했다.

“난 이곳에 올라오는 사람들에게 여유가 있기를 바라. 단 5분 만이라도 신이 주신 ‘바람’이라는 축복을 느껴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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