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의 도시 아메다바드
지금은 영향력이 쇠퇴했지만 17세기 가장 훌륭한 도시로 손꼽혔고, 주요 산업도시 중 하나이며 건축 유산과 훌륭한 수공예 품들을 판매하는 아메다바드는 가르다바드(Gardabad), 즉 ‘먼지의 도시’라고 불리는 만큼 뿌연 공기로 인해 약간 숨이 막혀오는 답답한 도시다. 여행 루트에서 이곳을 포함한 이유는 단지 간디의 삶을 느껴보고 싶어서였다.
아메다바드에 도착하자 엄청난 릭샤꾼들이 몰려들었다. 갑작스러운 인파에 놀라 다시 버스 스탠드로 들어가 의자에 앉아 갈 곳을 우선적으로 정했다. 숨을 고르고 다시 앞으로 나가자 시커먼 릭샤꾼들이 다시 몰려들었다. 어디론가 도망갈 길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다 싶어서 친절해 보이는 릭샤꾼에게 하루 가이드를 부탁하며 무작정 릭샤에 올랐다.
가장 먼저 이곳에 온 목적인 간디 메모리얼로 향하는데 릭샤꾼은 운전을 하는 내내 간디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간디가 없었다면 지금의 인도는 없었을 거야. 우리 인도 사람들은 간디에게 매우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 그의 업적은 훌륭하지. 네가 이곳에 온 것만으로도 알 수 있어. 그거 알아? 우리 국기마저도 간디의 물레를 상징하고 있다는 것을!”
그는 간디의 훌륭한 업적을 읊으며 매우 강렬한 목소리로 이야길 했다.
“우리가 지금 가고 있는 사바르마티 아쉬람(Sabarmati Ashram)에서 시작된 소금 행진(Salt March)을 알고 있어? 간디는 영국의 소금세 폐지를 위해 이 소금 행진을 시작했지. 비폭력 운동의 시작이며 우리가 독립을 하게 된 건 바로 이 소금 사티아그라하(Satyagraha)의 시작 때문이었어. 간디의 업적 중에서도 아메다바드에서의 시간이 그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을 거야.”
(이 열정적인 릭샤꾼으로 인해 사티아그라하에 대해 알게 되었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간디의 업적에 대해 더 더 찾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사바르마티 아쉬람과 간디 아쉬람에 도착했다. 이른 아침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이 별로 없어 고요하게 관람이 가능했다. 간디가 살고 있던 거처가 보존이 되어있고 그의 삶에 대한 사진 기록들이 있다. 특히 정원이 마음에 들었는데 강 옆이라 그런지 산책하기 좋고 희뿌연 공기 속에서도 아침 볕에 반짝이는 강물과 단아한 나무들, 지저귀는 새들, 뛰어노는 강아지들과 다람쥐들에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복잡하고 정신없었던 도심 가운데에서 벗어나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와 강가 앞 여인들의 수다 소리에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여행을 하면서 처음으로 그냥 앉아서 쉬고 싶은 공간이었다. 그렇게 한참 정원에 앉아 구경하고, 풀 밭에 앉아 강아지와 놀며 쉬기도 했다. 간디 도서관은 간디에 관한 책도 판매하고 있었는데 시간이 더 있었다면 얇은 책이라도 읽고 나왔을 텐데 싶었지만 정원에서의 휴식은 조금도 후회되지 않았다.
간디의 사진들을 보다가 뿌옇게 흔들린 사진 앞에 섰다. 어떤 선명한 사진 보다도 마음에 들어왔는데 그는 이렇게 희미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씩 흔들어 놓았을 것이리라. 강렬한 카리스마와 독재가 아닌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비폭력 운동을 이끌었을 그에 대해 다시 한번 존경을 표했다. (물론 그의 모든 삶이 존경스러운 것은 아니다. 독립을 되찾기까지의 여정과 사티아그라하 즉 진리를 위한 굳은 의지를 지속했다는 것에 박수를 보낸다.)
2001년에 큰 지진으로 인해 도시가 많은 피해를 입기도 했지만, 건축 유산이 많은 곳이라 간디 메모리얼 외에도 꽤 볼만한 곳들이 있었다.
아쉬람을 나와 바드라 성(Bhadra Fort), 시디 사이야드 모스크(Sidi Saiayd’s Mosque), 라니 시프리 모스크(Rani Sipri’s Mosque), 하티 싱 템플(Hathee Singh Temple), 다다 하리(Dada Hari Wav)와 마타 바와니 웰(Mata Bhavani’s Well) 등을 둘러보았다.
그중에서도 다다하리 우물 (바올리 Baoli라고도 부름)은 독특한 계단 형 8 각형 우물로 땅 속 깊이 파여 있으면서 안정적인 물을 제공하고, 뜨거운 인도의 태양으로부터 보호해주기도 하며 무더위에도 시원하여 누구에게나 쉬어갈 수 있는 아름다운 건축미를 자랑하는 곳이었다. 구자라트와 라자스탄 지역에는 가뭄이 자주 들기 때문에 물이 매우 중요했다고 한다. 고대의 우물 건축은 지위의 상징이었고 우물의 예술성은 건축을 후원한 귀족의 권력과 감성을 반영했다. 일반적으로 이 바올리는 신도들이 몸을 씻을 수 있도록 템플 안에 부속되어 있다. 여름의 더위를 시켜주는 곳이면서도 만남의 장소가 되었다고 하는데 관리가 잘 되고 있지는 않아서 약간 지저분하고 우물인가 싶게 물은 바닥을 보이고 있었고 사람도 별로 없었다. (사람이 왜 없었는지는 나중에 알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바드라 요새 남서쪽에 있는 아메드 샤흐의 모스크 (Ahmed Shah's Mosque)가 마음에 계속 남아 있는데, 아메다바드의 창시자인 아메드 샤흐 1세에 의해 술탄과 귀족들을 위해 지어진 건물이라도 한다. 150개가 넘는 기둥과 10개의 돔, 정교하게 조각된 천장과 기둥, 술탄 아메드의 초기 전투에서 죽은 전사들을 기념하는 간즈 샤히드(Ganj Shahid)라 부르는 순교자의 무덤까지, 이슬람교의 모스크지만 힌두교와 자인교(젠교)의 모습도 닮아 있다. 몇 명의 아이들이 뛰놀기도, 누군가는 기도를 드리기도 했던 이 모스크는 매우 고요하면서도 우아한 모습이었다. 누구를 향해, 무엇을 위해 그렇게 간절함을 담아 진심으로 기도하는지 묻고 싶었지만 기도하는 자는 매우 오래 이마를 땅에 붙이고 한참을 기도했다.
칼리코 섬유 박물관(Calico Museum of Textiles)과 연 박물관(Kite Museum)을 방문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아름다운 작품들이 있었다. 칼리코 섬유 박물관은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카메라에 담지는 못했지만 최고 수준의 고대, 현대 직물 컬렉션을 소장한 곳이며 인도 독특한 태피스트리, 멋진 의복, 목재 조각 등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하루 두 번만 입장이 가능하기 때문에 입장 시간을 잘 확인해야 한다.
길거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복잡 복잡하게 나와있었다. 시장 골목으로 사람들이 몰려 있었는데, 이것 역시 릭샤꾼의 안내를 받아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내가 방문했던 시기에 연날리기 축제(Makar Sakranti)를 한 주 앞두고 있었다. 이런 연유로 모스크나 템플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시장 골목과 길거리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있었던 듯했다. 연을 만들고 날리기 위해 마을 사람들은 연 실의 색깔을 붉게 물들이며 손과 옷이 모두 분홍 빛으로 변해 있었다. 가족들이 모두 나와 한쪽에서는 하얀 실을 풀고 가운데에서는 붉은 물에 실을 물들이고 마지막으로 물이 든 실을 다시 감고 있었다. 이 연날리기 축제는 국제적인 축제가 되어 매년 1월 13~15일 화려하면서도 독특한 세계 여러 나라의 연 축제를 볼 수 있다.
친절한 릭샤꾼은 외국인들이 잘 모르는 Sunday Market에 데려가 준다고 했다. 일요일에 열리는 이 마켓을 볼 수 있는 장소에 데려다주며 강가 주위로 커다란 천막들과 다양한 장터들이 서 있는 것을 함께 구경했다. 그러면서 아메다바드의 이모저모에 대해 이야길 한다.
이른 아침부터 해가질 무렵까지 아메다바드와 간디의 역사, 이곳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고 물건을 팔려고 릭샤 안까지 들어와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을 쫓아주기도 했던 그는 아메다바드의 답답했던 공기와 안 좋았던 첫인상은 싹 잊어버리게 도와주었다. 시간이 있다면 연날리기 축제까지 열흘 정도 더 쉬다가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도 간디처럼 살아보지 그래?”
“나는 릭샤왈라 일 뿐인걸” 하며 으쓱해 보였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훌륭한 가이드였어 고마워.”
릭샤꾼과 헤어지기 전에 한국풍의 선물로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인도에도 다양한 종류들의 먹을거리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도싸(Dosa)라는 크레페 혹은 전병과 비슷한 음식이 있는데 이곳에 기네스북에 올랐다는 도싸를 판매하는 집이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도싸는 쌀과 콩을 갈아 반죽을 얇게 부쳐내 각종 수프 또는 마살라, 감자 으깬 것, 사워크림과 비슷한 등등의 다양한 소스를 찍어 먹는 것으로 난, 로띠와는 또 다른 느낌의 음식이다. 점심을 대충 먹기도 했고 열정적인 릭샤꾼의 가이드로 많이 걸었기 때문에 배가 고파 저녁이 기대가 됐다. 보통의 마살라 도싸와는 조금 다르게 도싸가 고깔 모양으로 얇게 나오고 토마토 수프 비슷한 것과 콩을 갈아 만든 느낌의 소스, 고수와 민트 소스 등이 함께 나왔다. 너무 기대했던 탓이었을까, 도싸는 너무 짠 소금맛이었고 주스와 커피는 설탕 맛이다. 아무리 단짠이라도 내 입맛에는 충격적이었다. 알고 보니 7.5m 길이의 가장 긴 도싸로 기네스 북에 오른 것. 유명한 레스토랑이라고 할 때는 무엇으로 유명한지 제대로 알아보고 가야 한다는 교훈만 얻었다. 근처 맛있는 레스토랑이 많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