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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Amazing India 21화

자이살메르(Jaisalmer)

황금색 도시 자이살메르

by Euodia

'골드 시티로 들어가는 길'


우다이푸르에서 15시간 정도 걸린 (중간에 버스를 갈아타고) 자이살메르로 들어오는 길은 비포장도로여서 버스가 흔들리고 또 흔들렸다. 캄캄한 밤을 지나고 어느덧 아침 해가 버스를 향해 비추는 느낌에 커튼을 치고 창 밖을 바라봤다. 자이살메르로 들어가는 길은 몇 안 되는 나무들과 빛을 잃어버린 땅들이 계속되다가 어느새 양 떼들이 우르르 몰려다니기도 하고 제주도에서나 보았던 유채꽃밭이 그보다 더 드넓게 펼쳐지기도 했다.


노을이 질 때면 황금 도시(Gold City)가 된다는 자이살메르, 이곳은 낙타 사파리를 하기 위해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곳이며 1박 2일에서 4박 5일까지 사파리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도심으로 들어가는 버스 스탠드에서 만난 일본인 한 명, 한국인 세 명과 함께 택시를 타고 한국 사람들이 많이 방문한다는 사파리 투어를 포함하는 게스트 하우스를 찾아갔다. 사막으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위험요소가 있다고 하여 마음의 안정을 위해 가급적 한국인 그룹에 합류하기로 했다. 비슷한 시간대에 자이살메르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몰려 방이 없었기에 ‘폴루’라는 직원이 자신의 친구가 운영한다는 다른 게스트 하우스로 안내해 주었다. 나이대가 비슷해 친구가 된 일본인 ‘미와’와 함께 방을 쓰기로 했는데 둘 다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대부분 밖에서 보낼 예정이었기에 그냥 머물기로 했다.

짐을 풀고 나와서 근처 한국 식당이 있다는 말에 반가워 가봤다. 그 식당에는 ‘계란국, 계란말이, 수제비, 오므라이스, 인도 라면과 밥, 백숙, 닭볶음탕’이라고 쓰여있었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방문하는지 한국어 단어들도 많이 알고 있었다.

“뭐 줄까? 뭐 먹고 싶어?” 또는

“닭볶음탕은 2시간 걸려 미리 예약해야 해. 수제비 맛있어” 등

그들이 자주 쓰는 한국어는 익숙한지 매우 자연스러웠다. 오랜만에 흰 밥과 뜨거운 계란국에 총각김치를 얹어 먹었다.

‘오~ 생각보다 맛있는데?’

간단하지만 몇 달 만에 먹는 진짜 한국 음식 같아서 눈물이 날 뻔했다. 몇 달간 인도 음식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흰 밥에 총각김치를 먹는 순간 다른 건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해야 하나. 나는 한국 사람이 맞았다. 행복한 아침 식사에 다른 것도 다 먹어보고 가야겠다는 식탐으로 머릿속이 가득 들어찼다.


머무는 게스트 하우스에서 오후에 시티 투어가 있다고 했다. (참여의 여부는 게스트 마음이다.) 4시간 정도 남았는데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가 무엇을 하기보다는 앉아서 광합성을 하며 쉬기로 마음을 먹었다. 늘 빡빡하게 여행을 하다 보니 장기 여행에서는 이 여유를 갖는 낮 시간을 따로 갖는걸 자주 잊게 된다.

근처를 둘러보니 지도에는 없는 건물이지만 깨끗한 카페가 있어서 루프탑에 올라갔다. 저 멀리 사막이 보이고 포트(Fort)로 둘러 쌓인 주변을 바라보니 타르 사막 위에 세워진 천년의 도시가 태양에 반사되어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아름다운 도시 뷰에 한가로이 태양을 즐겼다. 찌는듯한 태양 아래였지만 뜨거운 커피 한 잔과 초콜릿 팬 케이크, 시티 뷰 하나만으로 힐링이 저절로 된다. 새들이 바로 옆을 비행하고 잔잔한 바람이 불어오는 루프탑에 누워 게으름을 피우고 숨을 좀 쉬기로 했다.

루프탑 카페에 누워 구경하던 뷰 | 초콜릿 팬 케이크(라고 하기에 얇은 밀가루 반죽 위 초콜릿 소스를 얹은 것)


오후 4시 시티 투어가 시작되었다. 호수, 하벨리 그리고 선셋 뷰 포인트

돌아오는 길 포트 안에서 카멜 가죽으로 만든 모자를 하나 샀다. 태양이 뜨거운 도시라서 아무래도 사파리를 하는 내내 눈이 부실 거 같았기 때문이다. (는 핑계고 사실 모자가 멋있어 보여서 충동 구입을 했다.)

시티 투어를 함께 한 사람들과 한국 식당에 가서 오므라이스, 계란밥, 툭파 등을 시켜 먹고 포트 안을 구경한 뒤 다음날을 위해 방으로 들어가 쉬었다.

자이설메르 성 밖 하벨리, 호수 등



‘금빛 사막을 지나 은하수로’


다음날 아침, 추위에 눈이 저절로 떠졌다. 인도 여행을 하면서 가장 그리웠던 건 따뜻한 방바닥에 이불을 덮고 누워 차가워진 손과 발을 녹이는 시간이었다. 사파리를 떠나는 날이라 편한 카고 바지를 입고 머플러와 전날 산 카멜 모자를 챙겼다. (이야길 들어보니 사파리를 하는 동안 볕에 피부가 상하거나 정수리가 너무나도 뜨거워지기 때문에 모자 혹은 스카프는 필수라고 한다.) 그리고 한국 식당에 가서 뜨끈한 수제비를 먹고 사람들과 모이는 장소로 향했다.

낙타 사파리를 준비하는 중

모인 사람들은 크루의 설명을 듣고 저마다 마음에 드는 이름을 가진 낙타를 골라 타고 어디론가를 향해 출발했다.


영화에서나 보았던 커다란 모래 언덕 위 뜨거운 바람이 지속적으로 불어와 낙타가 지나간 자리가 어디인지 알 수 없도록 고운 모래로 동물들의 발자국을 빠르게 지워나가고, 매끄러운 모래 언덕을 만들어 오고 간 길을 알 수 없게 만들었다. 이런 모래 언덕을 상상하며 낙타를 타고 가는 길, 사막이 맞긴 하는 걸까? 싶을 정도로 상상했던 것과는 다른 사막이었다. 중간중간 풀과 나무도 보이고 바람이 전혀 불지 않아 낙타와 새들이 지나간 자리 발자국이 그대로 선명하게 드러나는 길이었다.

조용한 사막길에 바람이 없어 방울을 달고 찰찰 거리며 걷는 낙타의 발굽 소리는 멀리 퍼져나가지 않고 주위만 맴돌았다. 사막을 가로지르며 물을 길어 오는 아낙네들도 만나고 차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만났다. 그렇게 조금은 실망한 사막길을 한 시간쯤 가다가 바나나를 먹는 휴식 시간이 생겼다.

그룹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별로 사막 같지 않다며 소리를 냈다. 약간의 휴식 후 한 시간 정도를 더 들어가니 뜨거운 태양 아래 드디어 상상했던 커다란 모래 언덕이 고요히 우리를 맞이했지만 찌는 더위 아래 시원한 모래 바람이 불어오지는 않았다. 모래 폭풍에 머리카락 사이사이와 입과 귓속으로 들어간 모래를 털어내느라 바쁠 줄 알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애초에 그런 사막이 아니었다.


작은 텐트가 쳐있는 곳에 도착했다. 아직은 뜨거운 햇볕 아래였기에 텐트 안에다가 짐을 놓고 그늘에서 잠시 쉬었다. 크루는 간식을 나누어주고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듯했다.

바람 한점 없지만 주위에 보이는 커다란 모래 언덕으로 올라가서 지는 해를 바라봤다. 바람이 멈추니 시간도 멈춘 듯 세상이 너무나 고요했고 조금씩 변해가는 아름다운 노을만이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해 준다. 노을이 이렇게 아름다운 색이었던가. 이 뜨거운 사막의 모래 언덕에 앉아 바라봤던 매홍색 선셋(Sunset)이 아직도 가끔 생각이 난다. 해가 질 때 원래 이런 색이었나? 한국에서는 알 수 없었던 노을의 아름다움, 사진에도 담기지 않는 이 자연의 오묘한 색을 바라보니 경이로움과 경탄이 저절로 나왔다. 지금까지 느껴본 자연 속에서 느낀 최고의 감동 중 하나였던 만큼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자이설메르의 사막, 낮과 밤


해가 지고 나면 차가운 바람이 어디에선가 불어오고 캄캄한 사막의 밤을 재촉한다. 방금 전까지 뜨거웠던 사막은 체감상 영하의 날씨로 떨어지는 듯 손끝, 코끝이 시려온다. 낮에는 40도가 넘어가고 밤에는 10도 언저리가 되다 보니 극심한 기온차에 사람이 얼어 죽는다는 말이 무엇인지 피부로 느껴졌다. 크루는 분주했다. 짜파티, 뭔지 모르는 볶음밥 같은 것을 저녁으로 주고 모닥불을 피우고 흥을 돋우기 시작했다. 한국말을 할 줄 아는 크루는 한국에서 요즘 유명한 연예인은 누구인지 물어보며 흥얼거리고 크루 중 어떤 청년은 춤도 추고 노래도 불러준다. 인도 사람들의 흥은 내적 흥부자인 나도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 도대체 어디서 저렇게 흥이 나오는 것일까? 인도 영화에서 보던 떼창과 군무를 인도 곳곳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만 보아도 흥은 입증된 셈이 아닌가 싶지만.

모닥불에 구운 치킨, 감자, 고구마를 함께 나눠먹고 한참 별을 보다가 저마다 텐트 안으로 들어가 가지고 온 침낭을 펼쳤다.

사막의 모닥불

밖에서 더 놀고 싶었지만 해가 진 사막은 한국의 겨울과 같았다. 캄캄한 주변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이른 잠을 청했지만 모래 바닥에 얇은 침낭 하나, 그리고 사막을 떠 도는 개도 추웠는지 텐트 안으로 들어와 사람들 사이를 파고들어 다들 잠이 깨버렸다.

개가 자꾸만 파고들어 옆구리가 남아나지 않겠다고 생각이 들고 잠을 이룰 수 없어 정신이 말똥 해졌다. 추워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새벽녘 텐트에서 나와 곱디고운 모래를 평평하게 만들고 침낭을 온몸에 두른 후 그냥 앉았다. 보이는 것이 하나도 없기에 하늘을 올려다보니 이른 밤에 본 별과는 또 다른 수많은 별들이 쏟아질 것처럼 하늘을 촘촘히 수놓고 있었다. 숨이 멎을 것 같은 은하수 아래는 너무나 추웠지만 눈으로도 다 담기에도 벅찬 그 쏟아지는 별들이 잊히지 않아 지금도 그립다. 한국에 돌아와서 가장 생각나는 것은 여기서 봤던 노을과 은하수, 분명 서울의 노을과 별들도 다르지 않을 텐데 왜 더 아름답고 신비롭게 느껴졌을까.


동이 틀 무렵 크루들이 분주히 아침을 준비하며 불을 지피기에 앞에 가 앉아 불을 쬐기 시작했다. 아직 사람들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끓이기 시작한 짜이를 기다릴 수 없어 크루원들과 함께 마셨다. 아침에 마시는 짜이 한잔은 차가워진 온몸을 따뜻하게 데워준다. 토스트, 쿠키, 귤, 삶은 계란을 만들어주는 크루들, 간단하지만 사막에서 먹는 아침 식사로는 최고였다.

해가 뜨자 언제 추웠냐는 듯 다시 온도가 올라가기 시작한다. 모두가 일어나고 물이 없으니 물티슈로 손과 얼굴을 쓱쓱 닦고 다시 낙타에 올라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했다. 뽈뽈 거리며 뛰어가는 낙타와 방울 소리는 여전히 귀엽고 경쾌했다.


정오쯤 도시에 도착했다. 사막 투어에서 만난 사람들은 아쉬움에 함께 점심을 약속하고 저마다 게스트 하우스로 돌아가 뜨거운 물로 씻었다. 전날 밤 오들오들 떨었던 속 추위가 좀 가시는 듯했다.

사막을 오고 가는 동안 ‘미와’와 나이도 비슷하고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 보니 더 친해졌다. 자이살메르를 나서기 전에 함께 도시를 둘러보고 저녁을 먹기로 했다. 나도 미와도 가고 싶었던 자이살메르의 가장 인기 있는 식당에 가기로 하고 예약을 했다. 커리 집이었는데 시금치 양고기 커리가 인도에서 먹었던 음식 중에 가장 맛있었다. 우리는 엄지 척 “Great!!”을 외치고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영어 발음도 좋았던 미와는 동경대를 다니고 있었다. 그녀는 세상을 보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없기에 늘 영어 공부를 하고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해서 여행을 다니고 있다고 했다.

“그룹 투어는 내 마음에 들지 않아서 혼자 계획을 하고 여행을 다니는 편이야.”

“나도 여행해 보니 그룹 투어보다는 가고 싶은 곳을 편하게 다닐 수 있는 혼자 여행을 더 좋아해.”

미와는 델리에서 시작해 북부를 먼저 여행하고 있었고 나는 남부에서부터 올라오는 동선이기에 서로 좋았던 곳들을 이야기했다. 미와는 앞으로 어디로 향할 계획인지 알려주고 나의 계획도 물어보며 지금까지 다녀본 남부 중에서 추천할 만한 곳이 있는지 물어봤다.

“지금까지 가봤던 도시 중에 어디가 가장 좋았어, 추천할 만한 곳은?”

“남부에서는 코치, 함피는 다시 가보고 싶을 만큼 좋았고, 폰디체리는 며칠 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쉬움이 남아.”

여행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우리는 게스트 하우스에 들어가서도 가장 좋았던 함피, 코치의 사진들과 까따깔리 동영상을 보았다. 미와도 까따깔리 공연이 괜찮았는지 꼭 보고 싶다며 자신이 계획한 도시에 코치는 없었지만 계획을 조정해서 꼭 가보겠다고 한다. 여행의 묘미는 그 장소에서만 알게 되는 자신만의 느낌과 어떤 사람들을 만나느냐에 있는 듯하다. 나도 미와도 앞으로 남은 여행에 좋은 사람들만 만나기를 바랐다.


새벽녘 기척이 느껴져 잠에서 깼다. 미와는 새벽 일찍 출발하는 버스를 타야 하기에 가방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미와는 이른 시간이라며 더 자라고 했지만 인도 여행에서 처음으로 며칠간 동행인이 되어 준 친구라고 생각하니 아쉬웠다. 커다란 가방을 메고 방을 나서는 미와에게 안녕을 빌어주고 누웠지만 잠을 더 이룰 수 없어 일어나 천천히 가방을 정리하고 나와서 좀 걸었다.



‘황금 도시를 걷다’


원래는 사파리만 끝나면 곧바로 다른 도시로 가려고 계획했으나 왠지 모를 매력에 사로잡혀 며칠 더 머무르자 싶었다. 시간이 충분하다면 일주일 정도 더 살아보고 싶었다. 그 매력이 무엇인지 아직도 모르겠지만 황금 도시라고 불리는 자이살메르 성 안을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번에는 골목골목 좁지만 높은 길을 걷고 걸으며 구경했다.

멀리 보이는 자이설메르성 | 노을이 질 무렵 볕을 받아 황금 도시로 변한다

황금 도시라고 하면 황금으로 이루어진 성과 호화로운 보석이 연상되지만 자이살메르성은 노을에 반사되어 황금색처럼 보이기 때문에 황금 도시라고 부르는 거였다. 자이살메르성 안에 뭔가 특별한 게 있을까 했지만 사람 사는 것은 다 똑같았다. 야채와 과일을 골목길에 놓고 파는 사람들, 라자스탄 악기를 판매하는 곳, 옷가게, 슈퍼, 놀고 있는 아이들, 좁은 골목을 요리조리 바쁘게 달리는 릭샤왈라들(가끔 사람도 부딪치며 다닌다)을 구경을 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그러다가 누군가 나를 부르는 듯한 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오늘 머무를 곳이 필요하다면 여기 어때? 막 오픈 한 곳이라 레이디가 쓰기에 깨끗하고 좋을 거야. 욕조도 있고 핫 워터로 샤워할 수 있다고!”

그러면서 커피 한잔 마시고 가라며 불러 세웠다.

형제가 운영한다는 딥 마할(Deep Mahal) 호텔의 매니저라고 하는 사람은 동생이었는데 매우 친절하고 붙임성이 좋았다. 옥상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안내하며 달달한 커피를 한 잔 내주었다. 그러면서 인도에는 언제 왔는지, 자이살메르는 어땠는지, 낙타 사파리는 했는지 등 이런저런 것들을 물어봤다.

인도에 온 지 몇 달 만에 욕조를 사용하고 싶어서 머물기로 했다. 한국 돈으로는 1만 원도 안 되는 가격으로 고대 자이나교 사원의 조각품으로 가득한 큰 공간으로 조명도 잘 되어있고 에어컨까지 있는, 게다가 욕조까지! 내가 생각하는 완벽한 곳이었다.


체크인을 하고 나와서 다시 성 안을 돌아봤다. 라자스탄 음악을 하는 아저씨를 만났는데 음악이 매우 마음에 들어서 CD를 하나 구입했다. (하지만 길에서 산 CD의 음질은 좋지 않았고 한 곡도 채 녹음되어있지 않았다. 또 속았지만 화가 나지 않는 매력?!) 라자스탄 음악과 흥이 잘 맞았던 것인지 들을 때마다 어깨가 들썩들썩했다.

자이살메르 성 안의 모습들

루프탑이 있는 레스토랑에 가서 아침 겸 점심 식사도 하고 골목 구석구석을 누비는데 옷감을 팔고 있는 숍에서 붉은색 바탕에 낙타 모양이 그려져 있는 옷감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옷감을 구입하고 파자마 바지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인도에서는 어느 지역 어느 시장이든 이렇게 옷감을 사고 테일러에게 옷을 만들어 달라고 할 수 있는데 간단한 것은 당일에 찾을 수도 있고 사리(Saree)와 같은 인도 전통 의상은 치수를 모두 재서 만들어 주는데 빠르면 3일 일반적으로 5일에서 일주일 정도 소요 된다고 한다. 인도에서 가장 좋았던 것 중 하나가 남녀 할 것 없이 대부분(델리를 제외하고) 인도 전통 의상을 입고 다니는 것이었는데 다양한 색감과 무늬, 여러 의미가 있는 패턴과 상징, 그에 어울리는 액세서리들과 머리의 꽃 장식이 매우 찬란하고 아름다웠다. 남자들은 도티를 입고 여자들은 대부분 사리를 많이 입는데 그중에서도 사리는 지역에 따라서 매는 방법이나 천의 길이도 다 달랐다. 여건이 되면 사리를 지어서 입고 싶었는데 한국에서는 입을 수가 없을 것 같아서 마음을 접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조금 아쉬운 마음도 든다.

인도 여인들이 길을 걸을 때면 방울이 여러 개 달린 발찌 소리에 ‘찰찰’ 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데 그 소리가 경쾌하면서도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그 소리가 매우 좋아서 아주 작은 은방울이 여러 개 달린 발찌도 몇 개 구입했는데 서울에서는 괜히 시끄럽게 느껴졌다. 장소가 주는 힘일까, 아니면 문화의 차이일까. 같은 소리임에도 왜 그렇게 다르게 느껴지는지.

뱅갈로르에 사는 동안 인도라는 곳에 스며들고 싶어서 하얀색에 작은 금색 꽃무늬가 있는 살와르와 카미즈(Shalwar Kameez)를 입고 두파타(Dupatta)를 목에 두르고 다니거나, 여행을 다니면서는 ‘찰찰찰’ 소리가 나는 은발찌와 반짝 거리는 빈디를 이마에 붙이고 다녀보기도 했다.

카미즈, 사리 | 은발찌

사리: 여성들이 가장 많이 입는 인도 전통 옷으로 짧은 탑 상의에 하의를 긴 천으로 두르는 옷

도티: 남성들이 입는 인도 전통 옷으로 천으로 둘둘 말아 바지 혹은 치마처럼 입는 옷

카미즈: 여성들이 입는 무릎까지 오는 원피스처럼 생긴 전통 옷

살와르: 카미즈 안에 입는 스키니 스타일의 얇은 바지

두파타: 스카프

빈디: 물방울이라는 의미인 이마 가운데 찍는 점으로 원래는 종교적인 의미가 있었지만 지금은 일종의 패션 아이템이 됨(모양이나 색깔에 따라 의미가 있다)


골목을 걷다가 한국에서 온 여승 두 분과 마주쳤는데 한국어로 하는 대화가 그리워져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여행객의 이야기야 늘 비슷하지만 종교인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시각에 더 다양하고 잔잔한 즐거움이 있었다. 따뜻한 목소리를 가지신 두 여승은 불교의 발생지인 이 인도에 와보고 싶으셨는데 나이가 더 들기 전에 발걸음을 하셨고, 석가모니의 탄생지와 의미가 있는 곳들을 모두 둘러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서로 종교는 다르지만 만남의 인연이 닿아 함께 걸으며 대화하는 시간 동안 은은한 물결처럼 마음이 편안해졌다.

낙타 모양 바지를 찾으러 옷감 가게에 들러서 바지를 찾고 약국에서 종합 감기약을 산 뒤 호텔로 들어가는 길, 눈앞에 다시 나타난 두 여승,

“호텔에 들어가기 전 만날 것 같았어요. 감기에 걸렸으니 발을 따뜻하게 하고 자요.”

라며 발목 위를 덮는 긴 양말을 내미셨는데 새 양말이었다. 감기 기운이 있었던 것을 기억하시고 다시 숙소에 들어가서 챙겨 나왔다고 한다. 이날 밤 두 분의 마음에 매우 따뜻하게 잠을 청했다.


아침에 일어나 드디어 욕조를 사용하기 위해 온수를 받으며 물이 차오르길 기다렸다. 온수를 5센티 정도 받았을 때쯤 문 밖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줄리아! 오늘의 온수를 혼자 다 쓰려는 거야? 다른 손님도 써야 해!”

‘욕조의 용도는 물을 가득 받아서 쓰는 것이 아니었던가?’

살면서 물이 부족한 것을 경험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이곳에서는 내가 쓰는 물의 양만큼 다른 사람이 쓰지 못한다는 것을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만큼은 아니었지만 5센티 정도의 온수 속에 잠시 앉아 있다가 그 물로 샤워와 머리까지 깨끗하게 씻고 나와 사과를 했다.

"미안해, 온수가 한정되어 있는지 몰랐어."

이곳은 사막이었고 그날그날 쓸 수 있는 물의 양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욕조에 물을 가득 받아 반신욕을 할 수 있는 것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또 하나 깨닫는다.


사막 투어 후에 운동화를 잃어버려 들렀던 곳곳으로 찾으러 가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포기한 채로 한국 식당으로 가서 마지막 한식을 먹고 사막 투어를 안내했던 티토, 폴루, 가지와 인사를 했다. 티토는 혼자 다니는 내가 안타까웠는지 버스 스탠드까지 태워다 주겠다며 낡은 차에 내 가방을 실어주고 버스 스탠드에 내려 짐도 들어주고 버스 티켓도 함께 끊어주었다.

아직도 자이살메르가 가끔 그립고 기억에 계속 남아있는 이유는 이런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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