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도시 조드푸르
조드푸르는 라자스탄 주에서도 관광 중심의 도시이기 때문에 수많은 관광객으로 가득한데 블루 시티 골목과 메헤랑가르성(Meherangarh Fort), 사다르 바자르 (Sadar Bazaar) 정도를 중심으로 돌아보는 코스가 인기다.
이른 저녁 시간에 도착한 조드푸르, 다음 날 푸른빛이 도는 도시를 상상하며 해가 뜨기를 기다렸지만 뿌연 먼지 속에서 아침을 맞이했다.
블루 시티(Blue City)라고 불리는 도시인 조드푸르, 집집마다 브라만(Brahmin)을 나타내는 파란색으로 칠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브라만이 아니어도 너도 나도 파란색으로 칠하는 바람에 도시 전체가 파란색으로 물들어 블루 시티가 되었다. 블루 시티라는 이름만 본다면 낭만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지만 카스트의 잔해라고 해야 할까. 브라만은 힌두 사회 내 카스트 4대 계급 중 하나로 가장 높은 지위이며 성직자, 학자 등의 직업을 가지고 있다. 힌두교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신인 시바(Shiva) 신의 색이 파란색이라 브라만을 파란색으로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호기심도 생긴다. 인도의 카스트는 고대부터 시작된 전통적 사회 계급인데 사회적 업무, 지역, 종교에 따라 여러 분류로 나눌 수 있다. 산업화 이후 없어졌다고 하지만 인도 곳곳에서 이름, 직업, 피부색에 따라서 여전히 남아 있는 부분도 있다. 관광객들이 다니지 않는 지방 곳곳들을 다닐 때 이 카스트를 더 명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블루 시티 안에서 뭔가 색다른 느낌이 들 줄 알았지만 하얀 벽에 파란 집, 아름답기보다는 오래된 페인트가 벗겨진 올드 시티의 한 부분으로 답답하고 좁은 골목의 게스트 하우스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인생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멀리서 외적인 부분만 보면 아름답고 신비로워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가 보니 낡고 더럽고 냄새도 났다. 골목을 다니다 보면 전반적으로 파랗고 하얀 벽들과 천장이 계속되어 비슷한 느낌에 길을 잃어버리기도 쉬웠다. 다양한 벽화들의 그림들도 볼만한데 대부분 힌두 사회의 문화를 그림으로 그려냈기에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의미는 잘 모르겠지만 전래동화 같은 느낌의 스토리가 있는 그림들도 종종 보였고, 힌두 문화의 신들, 사람들의 의복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벽화 그림도 종종 보인다. 그중에서도 귀여운 연인, 어쩌면 부부 그림이 그려진 게스트 하우스에 머물렀다. (사실 가려고 했던 곳을 제대로 찾아가지 못해서 눈에 띄는 벽화가 보이는 곳에 머무르게 되었다.)
점심시간 전후로 관광객들이 너무 많이 몰리는 곳이라 제대로 보려면 일찍 방문하라는 사람들의 말에 이른 아침 메헤랑가르 성(Meherangarh Fort)으로 올라갔다. 성에서 내려다보는 블루 시티가 장관이라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며 영화에서도 몇 번 볼 수 있었던 장소다. (영화 ‘김종욱 찾기’에서 배경이 되었던 도시)
이 메헤랑가르 성에 대한 오디오 가이드도 들을 수 있는데 한국인도 워낙 많이 찾는 곳이라 한국어 설명도 들을 수 있다. 혹은 가이드를 구해서 성 곳곳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도 있다.
태양의 성이라는 뜻의 이 메헤랑가르 성은 인적 없는 타르 사막 위 122m 높이로 솟아 있는 사암 언덕 지대에 있다. 이 성 안에는 여러 개의 아름다운 궁전들이 있으며 잘리(Jali) 무늬의 다양한 사암 창문들, 넓은 안뜰, 코끼리 공격을 막을 수 있는 로하폴(LahaPol), 천장과 벽의 그림들로 여전히 그 웅장함과 아름다움을 보존하고 있다. 죽기 전에 꼭 가볼 세계 역사 유적 리스트에도 올라있기에 인기가 많은 곳이다.
풀 마할 궁전(Phool Mahal Palace)은 마하라자들이 유흥을 즐기던 곳으로 화려한 장식이 특징이다. 18세기 마하라자 아브하이 싱에 의해 건축되었으며, 복잡하지만 찬란한 금세공이 세밀하고, 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 생생한 벽화가 특징인 곳이다.
박물관은 왕실의 부속물들로 엄청난 컬렉션을 자랑하는데 동선이 많고 직접 확인하며 오디오 가이드를 듣느라 바빴다. 다양한 무기들, 번쩍번쩍한 유물들, 황금빛 벽화와 벽장식, 오색 찬란한 스테인드글라스, 대관식에 사용된 대리석 의자, 직접 썼던 커다란 대포까지 호기심을 자아내는 다양한 볼거리들이 가득이다. 메헤랑가르성 주변과 안쪽 곳곳을 잘 살피며 돌아다니다 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성에 들어가는 입구 마하라자 만싱 부인의 ‘사티(Sati: 붉은 손바닥 자국으로 죽은 남편을 따라 불속으로 뛰어드는 풍습을 상징함)’를 볼 수 있다. 이 붉은 손바닥 자국은 남편이 사망하면 과부는 손을 붉은색으로 물들여 문에다 손자국을 남기고 살아있는 채로 장례식 중 남편의 시체와 결합시켜 함께 화영이 되었다고 한다. 화려한 결혼식 옷을 입고 있는 여인과 남편의 시체는 천상에서 두 사람의 결합이 이루어져 하나가 된다고 믿는다. 과부 여인은 사랑이라는 명목상 아름답게 화영에 처해진다고 하지만 과연 사랑이며 아름답다 이름 붙일 수 있는 의식인 걸까.
사티 의식이 행해지는 것을 담은 영화가 있다. ‘파드마바티’라는 영화인데, 14세기 라지푸트 왕비 파드마바티의 삶을 다뤘다.
이슬람 힐지 왕조와 힌두 메와르 왕조 간에 벌어진 전쟁을 배경으로 한다. 힌두 메와르의 두 번째 왕비인 파드미니(배우 디피카 파두콘)가 너무 아름답다는 소문을 들은 이슬람 알라우딘 힐지 술탄(배우 란비르 싱)이 라지푸트를 침략한다. 결국 메와르 왕조는 전쟁에서 졌고 파드미니는 죽은 남편을 따라 사티를 감행한다는 내용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파드미니를 포함 궁중의 여성들이 남편의 죽음을 따라 불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을 시각적으로 매우 아름답고 신성하게 그렸지만 현실적으로 봤을 때는 과연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맞는 것인가 싶을 정도로 잔인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 자체는 메와르 왕과 파드미니의 아름다운 사랑, 알라우딘 힐지 술탄의 욕망에 집중한 소설 이야기지만 마지막 장면에 붉은 손자국을 남기고 불 속으로 웃으며 들어가는 여인들의 사티 의식에 많은 생각을 갖게 하는 영화였다.
종교에 문화, 가치, 신념들이 뒤섞인 이데올로기가 결합되어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가게 하는 것이 과연 바른 일인가를 고민하게 한다. 실제 힌두교의 의식으로 아내가 자발적으로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가족의 강요로 행해지기도 했다. 사티를 행한 과부는 여신으로 승격이 되어 사원이 지어지고, 그녀의 친척들은 막대한 기부금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사티라는 풍습은 사랑하는 남편을 따라 목숨을 끊은 사랑이야기 일까 단지 의무감에 떠밀려 행해지는 악습인 것일까.
비슷한 예로 우리나라의 열녀문이 떠오른다. 사대부 여성을 기준으로 과부는 자살을 강요당하거나 명예 살인을 당하는 일도 있었던 것을 보면 사랑 이야기는 허상일 뿐, 결국 명예와 돈 때문에 죽음 당한 불쌍한 한 영혼의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구 시가지에 들어서면 시계탑이 보인다. 이 시계탑은 메헤랑가르성에서도 볼 수 있다. 이 시계탑을 중심으로 사다르 마켓이 조성되어 있고 이곳은 상업의 중심지이며 골목골목 향료, 인도 과자들, 수공예품을 파는 곳이다.
이곳에는 누구나 알고 있는 오믈렛을 파는 유명한 가게가 있다. 길을 가다가 물어봐도 누구나 알려주는 이곳은 이름도 그냥 오믈렛 숍(Omelette shop)이고 매우 작은 노상 슈퍼처럼 보였다. 오믈렛 전문점도 아니고 과자나 음료수 같은 군것질 거리와 담배 같은 것도 팔고 있었다. 직접 먹어보니 눈물이 날 정도로 맛있거나 화려한 오믈렛은 아니어서 의아했다. 왜 그렇게 유명해진 걸까 싶어서 자세히 살펴보니 ‘론리 플레닛 인도 편과 라자스탄 편, 프랑스, 스페인, 북인디아 여행 가이드, 인디아 100배 즐기기 한국 가이드 북’에서 추천하는 곳이라 적혀있었다. 그리고 오믈렛을 사 먹으면 오믈렛 숍 아저씨가 사진을 함께 찍자고 하며 사진을 꼭 보내달라고 말한다. 어디로 보내면 되냐 물어보니 간판을 가리킨다. 간판에는 이 오믈렛 숍의 주소가 적혀있고 이 가게 밖에는 보낸 몇 백장의 사진들이 수두룩하게 붙어 있다. 물론 명함도 따로 내어주셨다. 아마 마케팅의 힘이란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