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두교의 5대 성지, 푸쉬카르
초저녁에 출발해 푸쉬카르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게스트하우스 주인이라는 한 사람을 만났다. 늦은 밤에 도착하기도 하기도 하고 즐겁게 소개하는 게스트 하우스 주인이 재미있어서 그가 안내하는 곳으로 함께 들어가 체크인을 했다. 이상하게도 라자스탄주에 들어와서는 계획이나 예약이 의미가 없었기에 숙소를 알아보지 않았는데 다행이다 싶었다. 늦은 시각이기도 했고 버스에서 만난 기념으로 할인을 해준다고 하기에 싼 맛에 머무르기로 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일찍 샤워를 하는데 정전이 되었다. 전기 공급이 안되면 온수로 샤워할 수 없어 얼음물로 샤워를 해야 하는데 가끔 일어나는 일이지만 더워 죽어도 따뜻한 물로 샤워하는 나에게는 결코 적응이 되지는 않는다. 이래서 감기가 한 달 가까이 지속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창조의 신 ‘브라흐마’가 연꽃을 떨어뜨려 생겨났다는 푸쉬카르 호수(Pushkar Lake)는 힌두교 성지인 만큼 많은 인도인들과 관광객들이 찾는 도시다. 또한 11월 한정으로 열리는 낙타 축제는 매우 찬란하며 이색적인 이벤트도 있다. 그 밖에는 사막도시이며 작은 도시이기 때문에 볼거리가 많은 곳은 아니다. 아쉽게도 방문했을 때는 11월이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다 보니 사기꾼을 만나기가 가장 쉬운 곳이다. 힌두교 승려가 아닌데도 뿌자를 드려주고 돈을 요구하거나 가트에 들어갈 수 있는 통행증이라며 실(매듭) 팔찌가 있어야만 가트에 나가 호수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거짓말을 하는 등 다양한 사기꾼들이 판을 치기에 조심해야 하는 곳이다.
이른 아침 게스트 하우스를 나서자마자 바로 가트에 나갔다. 고요하고 평온한 가트는 너무 이른 시간이라 관광객을 보기 어려워서인지 뿌자를 드리도록 강요하는 사람은 없었다. 현지 인들도 10명 남짓, 관광객은 한 두 명뿐.
힌두교 성지에 왔으니 어떤 식으로 뿌자를 드리는지 궁금해서 사람들이 몰릴 때까지 좀 기다리자 싶었다. 어느 그늘을 찾아 평화로운 호수를 바라보고 있는데 5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혼자 뿌자를 드리고 조용히 기도를 드리는 할아버지를 볼 수 있었다. 그는 위아래 모두 하얀 옷을 입고 있었으며 오렌지색 스카프 같은 것을 머리와 목에 두르고 있었다. 그리고는 한참 앉아 있다가 일어서서 가는 듯했다. 나는 그 할아버지에게 뿌자에 대해 알고 싶다고 했다. 그는 나에게 신을 믿느냐 물으며 뿌자는 ‘신에게 존경, 경의’를 표하는 것이며 숭배를 의미한다고 했다. 꽃, 물, 빛(작은 양초), 음식 같은 것을 작은 종이 접시에 담아 이 성스러운 호수에 떠내려 보내고 기도를 하면 된다. 힌두교의 필수 의식이며 할아버지는 매일 이 호수에 나와 뿌자를 드린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축복을 빌어주겠노라 말한다. 여행을 하다 보면 관광객들이 뱅글(팔찌)도 많이 사서 착용하고 다니지만 실로 만든 매듭 팔찌를 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볼 수 있다. 그는 붉고 노란 실을 꺼내 축복을 빌어준다.
“너의 삶과, 너의 건강, 너의 미래, 너의 가족, 너의 사랑에 축복이 있기를”
인생, 건강, 미래, 가족, 사랑이라는 단어마다 한 바퀴식 다섯 번을 손목에 감아 매듭 팔찌를 묶어준다. 그러고는 좋은 여행이 되라며 쿨하게 손을 흔든다. 그는 승려였을까, 아니면 신앙심이 깊은 순례자였을까?
뿌자를 드리고 싶으면 근처 어디에서든 뿌자 키트를 팔고 있기에 편하게 구입해서 초에 불을 붙이고 호수나 강에 띄워 보내고 기도하면 된다. 보통은 뿌자를 드릴 때나 매듭(실) 팔찌를 권할 때도 50에서 100루피 정도 요구한다. 운이 좋게도 쿨한 할아버지를 만나 뿌자에 대해서 이야기도 듣고 축복도 받았다. 새벽 기운이 좋았나 보다.
그리고 따뜻한 날씨가 너무 좋아 한참을 앉아 호수를 바라봤다. 바람이 살랑살랑 내 귓가를 오고 가며 간지럽히고 호수에 반사되는 뜨거운 태양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고요하고 잔잔한 호숫가에 반사된 건물들이 너무나 아름답고 평온하여 그림을 그리기에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림을 못 그리지만) 평온한 마음까지 사진에 담기지 않는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창조의 신 브라흐마(Brahma)에게 바쳐진 몇 안 되는 사원이며 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사원이다. 14세기에 지어졌지만 나중에 재건하였으며 대리석과 석판으로 만들었다. 성소에는 머리가 네 개 달린 브라흐마와 배우자 가야트리의 이미지가 있으며 순례자들은 신성한 푸쉬카르 호수에서 정결하게 목욕을 한 후 이 사원을 방문한다. 사람들은 브라흐마가 직접 사원의 위치를 이곳에 선택했다고 믿으며 세계에서 가장 종교적인 10대 도시 중 하나로 꼽히며 힌두교도 들에게 신성한 순례지 5곳 중에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힌두교 경전인 파드마 푸라나(Padma Purana)에 의하면 브라흐마는 악마인 바즈라나바(Vajranabha)가 자신의 아이들을 죽이고 사람들을 괴롭히자 자신의 무기인 연꽃으로 악마를 죽였다. 이 과정에서 연꽃이 세 군데에 떨어져 이 유명한 푸쉬카르 호수, 마디아 푸쉬카르 호수(Madya Pushkar : 중간 정도 크기의 호수), 카니슈타 푸쉬카르(Kanishta Pushkar : 가장 작은 호수)가 되었다고 한다.
이 브라흐마 사원은 여름과 겨울 개방되는 시간이 다르며 오픈되는 시간이나 경배의 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오전 일찍 또는 오후에 열리는 시간을 잘 보고 들어가야 한다.
브라흐마 사원은 처음이라 구석구석 자세히 둘러보고 싶었는데 한 사람이 안내를 해준다며 돈을 요구하고 끊임없이 쫓아다녀서 마음처럼 제대로 구경하기도 어렵고 사진도 찍기 힘들었다. 신성한 순례지에서 이런 사람들은 내쫓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동네가 작아서 걷기에 좋았다. 듣던 것보다 사람도 많지 않고 더 이상 귀찮게 하는 사기꾼들도 없어서 오히려 심심했다. 저녁까지 혼자 다녀도 무섭지 않았다. 푸쉬카르는 유리로 된 램프나 조개나 자수로 만든 직물들, 숄더백을 쇼핑하기에 좋은 곳이었다. 저녁을 먹고 마실을 나온 것처럼 구경하며 다니는데 캐시미어로 유명한 곳이 기억나서 이모들에게 선물할 숄 몇 개를 구입하기 위해 숍을 찾았다.
섬유의 보석이라 부르는 캐시미어는 이 인도 북부 끝 카쉬미르(Kashmir)가 본고장이며 몽골, 네팔, 인도 카쉬미르 지역에서 생산된 숄이 실크로드를 통해 유럽으로 전파되고 명품 취급을 받으며 유명해지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카쉬미르까지 가는 것은 어렵기에 이 푸쉬카르에서 캐시미어 숄을 많이 구입해 간다.
한 캐시미어 숍에 들어갔는데 그 상인과 이유 없이 말이 잘 통했다. 인도에는 언제 왔는지, 어느 도시들을 여행했는지, 뱅갈로르에는 얼마나 살았는지 등 1시간 남짓 친구처럼 대화했다. 알고 보니 같은 나이에 생일도 비슷했다. 한참 이야기를 하는데 한 인도 손님이 들어오자 숄을 빨리 고르라며 재촉하고는 다시 이야기를 이어간다.
“한국어로 인사는 어떻게 하는지 알려줄 수 있어?”
“안녕, 이라고 말하면 돼”
“안넝, 안녕?”
몇 번 어색하게 안녕을 발음해 본다.
“그럼 이제 Bye는 어떻게 말해?”
“안녕.”
“와우 똑같네?”
“맞아 똑같이 말하면 돼”
라자스탄 지방은 여름에는 너무 더워서 자신들도 한 여름인 6-8월 혹은 9월까지도 장사를 하지 않고 그냥 쉰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시기를 피해서 또 놀러 오라고 한다. 문을 닫을 시간까지 조잘조잘 이야기했다. 그리고는 하나에 200루피라 말했던 캐시미어 숄을 “우리가 친구가 되었으니” 쿨하게 230루피(약 4천 원 정도)에 4개를 주겠다고 했다. 아까 물건을 사러 온 인도인 보다도 저렴하게 주었다.
“나야 고맙지, 친구.”
원래는 자이푸르(Jaipur)를 가려고 했으나 저녁부터 고열과 감기로 정신이 혼미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델리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 안 뒤쪽에 앉아있는데 열이 계속 오르며 눈앞이 흐려졌다.
눈을 감고 앉아 있었는데 누군가가 다가왔다. 자신이 한의학을 공부하고 있는 학생이라고 소개한 뒤 어디가 아픈지 열심히 물어보며 빨리 나으라고 침도 놔주고 한약도 손에 쥐어주었다. 평소에 자주 아픈 곳이나 안 좋은 곳도 물어본다. 분명 이름과 나이도 말했던 거 같고, 이런저런 처치를 해줬던 거 같은데 열이 많이 나서였는지 기억 속에는 희미하게 빛바랜 사진 한 장처럼만 남아있다. 한국에 돌아와서 꼭 찾고 싶은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는데 아무런 정보도 없어서 아쉬웠다. 그는 지금쯤 한의원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