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이야기가 있는 도시 아그라
델리에서 아그라로 향하는 기차표를 구하고 기대 반 설렘 반으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아그라에 대한 설명들을 읽어나갔다. ‘인도(India)’라는 말을 들으면 가장 떠오르는 단어 중 하나 인 ‘타지마할’을 보기 위해 전 세계 모든 관광객이 몰려드는 도시, 기대하고 또 기대가 되었던 도시 ‘아그라’에 도착했다.
프리페이드 릭샤를 타고 타즈 건즈(Taj Ganj Area)로 향하는 길, 아무래도 관광객이 최고로 많은 도시라서 사람이 북적거렸다. 게스트하우스가 워낙 많아서 당일에 방을 구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물과 과일을 사놓고 저녁을 먹기 위해 다양한 음식을 하는 티베트 식당이라는 곳으로 향했다. 맛이 없는 곳인지 아니면 작은 규모라 그런지 사람이 별로 없어서 식당 사장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지금 먹고 있는 불고기 덮밥 맛이 어때요? 한국 음식과 비슷한가요?”
“한국에서 먹는 맛과 비슷해요. 물론 고기는 더 크지만.”
양배추와 양파, 불고기감을(거의 보이지도 않게) 아주 얇게 다져서 하얀 밥 위에 올린 불고기 덮밥. 간장 소스로 맛은 비슷했지만 고기는 아주 조금밖에 들어있지 않아 불고기라 하기엔 좀 아쉬웠다. 불고기맛 덮밥에 더 가까웠달까.
“나는 요리하는 걸 아주 좋아해서 궁금한 게 있으면 찾아보고 만드는 것을 멈추지 않아요. 한국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해서 여러 번 만들어 보고 레시피를 찾았어요.”
“오 ~ 아주 멋지네요. 요리를 정말 좋아하나 봐요.”
“내가 이번에는 핫도그를 브런치 요리로 만들어볼까 하는데 혹시 알려줄 수 있어요?”
“미국식 핫도그요?”
“어떤 식이든!”
“그러고 보니 인도에서 핫도그는 아직 본 적이 없는 거 같네요.”
“사람들이 핫도그를 간단하게 많이 먹는다고 해서 한번 해보려고 해요. 가르쳐 줄 수 있나요?”
“음… 우선 길쭉한 빵이 필요해요. 그리고 양파와 오이 피클, 케첩, 머스터드소스가 필요해요.”
“오이 피클과 소스? 혹시 시간 되면 시장에 가서 같이 구입해 줄 수 있어요?”
“그래요. 오늘은 쉴 거니까 함께 갈게요.”
내가 무슨 생각으로 식당 사장님과 함께 시장을 가기로 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한참 요리에 대한 열정, 여러 나라 음식을 먹어보고 만들어 본 이야기를 나누며 한 두 명 있던 손님이 다 나가고 8시가 조금 넘은 시간, 식당 문을 닫고 그의 오토바이 뒤에 올라타고 시장으로 향했다.
해가 져서 캄캄한 밤, 조명이 가득한 도심을 지나 어두운 길로 들어서 30분쯤 더 달렸다. 그 순간 아차 싶었다. ‘아 나 이렇게 쉽게 인신 매매 당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도로에 불빛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차도 많이 다니지 않는 길인 거 같다. 나중에 지도를 찾아봤는데 방향을 모르니 도통 어디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의 직감은 요리에 대한 그의 열정을 믿고 있었고, 이성은 약간의 의심을 멈출 수 없었다. 작은 의심으로 달리는 오토바이에서 뛰어내릴 수는 없고 그냥 직감을 믿어보기로 했다. 이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그는
“조금만 더 가면 다양한 식재료를 파는 곳이 있어요. 거기에는 수입품도 있으니 분명히 재료를 살 수 있을 거예요.”
라고 말했다. 오토바이는 15분쯤 더 달려서 불이 꺼져가는 마켓에 도착했다. 부산 국제 시장처럼 캔, 다양한 피클 병, 외국 과자들 등 해외 수입 품들이 있는 작은 마켓들이 늘어서 있었다. 자주 이용하는 곳인지 식당 아저씨는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더니 다른 마켓보다 조금 커 보이는 곳으로 향했다.
“자 여기서 말한 재료를 골라봐요.”
미국에서 수입된 것으로 보이는 소시지, 오이 피클 병과 머스터드를 골랐다.
“내가 말한 오이 피클은 바로 이거예요. 그리고 이것은 케첩과 함께 들어가는 머스터드소스라는 거예요. 그리고 이 소시지, 빵과 양파가 필요해요.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핫도그는 이렇게 만드는 걸로 알고 있어요.”
식당 아저씨는 여러 빵들 중에서 핫도그를 만들 수 있는 길쭉한 빵이 들어있는 봉지를 하나 집어 들고 소시지와 오이 피클 병을 이리저리 둘러봤다.
“아! 너무 비싼데?”
그리고는 피클 병에 적혀 있는 글들을 읽어 본다.
잠시 생각하더니 결국은 빵 한 봉지와 머스터드소스만 사가지고 다시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에 다시 도착해서 부엌으로 들어가 레시피를 다시 확인한 후 빵을 반으로 가르고 양파를 어느 정도 크기로 다져야 하는지 연습해 봤다.
“빵을 반으로 가르고 소시지, 오이 피클과 양파 다진 것을 넣고 케첩이나 머스터드소스를 뿌리면 끝이에요. 간단하죠?”
“이 정도?”
“아니요, 조금 더 작게”
“그런데 소시지와 피클이 없는데요?”
“걱정 마요. 내일은 완벽하게 만들어 놓을 테니!"
그는 오늘 고마웠으니 내일 저녁에 들르면 핫도그를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좋아요. 몇 시?”
“당신이 올 수 있는 시간에!”
늦은 시간이었지만 게스트 하우스에 걸어가며 내일 맛있는 핫도그가 완성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날 아침, 사이클 릭샤를 타고 시티 투어를 했다. 좋은 아저씨를 만나서 편하게 릭샤 투어를 하고 아그라 성(Agra Fort)으로 향했다.
야무나 강둑에 있는 붉은 사암으로 된 거대한 아그라 성은 무굴 왕조의 3대 왕인 아크바르(Akbar)부터 시작해 5대 왕인 샤 자한(Shah Jahan) 시대까지 공사가 계속되었다. 붉은 사암으로 된 성채와 내부는 하얀 대리석 건물로 웅장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이 아그라 성 역시 붉은 요새로 알려져 있는데 델리의 레드 포트와 비슷한 느낌을 받는 이유는 아마도 무굴 제국의 황제가 건축한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수도가 아그라에서 델리로 옮겨 갈 때까지 무굴 왕조의 통치자들의 주요 거주지였다.
샤 자한의 치세 동안 궁전으로 사용되었지만 아들인 아우랑제브(Aurangzeb)의 왕위 찬탈로 샤 자한은 이 아그라 성 안에서 무삼만 부르즈(Muthamman Burj)에 갇혀 작은 창으로 보이는 강 너머의 타지마할을 바라보다가 생애를 마감했다.
원래 무삼만 부르즈는 아그라 포트의 가장 큰 보루 위에 있고 흰 대리석으로 지어진 대규모 단지이며 디와니카스(Diwan-i-Khas: 비공개 특별 알현실), 카즈 마할(Khas Mahal: 샤 자한의 개인 궁궐) 등 기타 궁전과 직접 연결된 곳으로 전국을 통치한 곳이었는데, 마지막 8년간 이곳에서 감금 생활을 하다가 죽었다고 알려졌다. 이후 시신은 타지마할로 옮겨져 뭄타즈 마할 옆에 묻혔다.
타지마할을 가보기 전에 이 아그라 성에 방문해 무삼만 부르즈의 작은 창으로 강 너머 타지마할을 바라보았는데 마음이 이상했다. 샤 자한과 뭄타즈 마할의 사랑 이야기를 알고 나서 바라봤기 때문일까. 저 멀리 보이는 타지마할이 단지 무덤이 아니라 애타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그리움 가득한 장소처럼 여겨진다.
타고르는 타지마할을 ‘영원이라고 하는 뺨 위에 흐르는 한 방울의 눈물(A teardrop on the cheek of eternity)’이라 묘사했다. 과연 얼마나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를 가졌기에 이런 시를 써내려 갔을까. 직접 보고 듣고 느끼기 전엔 알 수 없으리라.
무굴 건축의 걸작 중 하나인 이 타지마할을 더 깊이 이해하려면 무굴 제국의 히스토리를 알아야 한다. 인도의 무굴(몽골) 왕조는 모계 쪽으로 칭기즈칸의 15대손, 부계 쪽으로는 티무르(페르시아) 5대손의 후예인 1대 바부르(Babur) 왕이 건국했고, 1526년부터 1858년까지 인도 전역을 지배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성군이라 불렀던 3대 왕인 아크바르(Akbar)는 이슬람과 힌두의 융화를 도모했고 군사, 관료제도, 토지 제도를 재 정비하며 화폐제도를 통일하여 무굴 제국의 기반을 다졌다. 다양한 종교로 인한 싸움 속에서도 관용 정책을 펼치며 종교와 관계없이 인재를 뽑았다. 이 아크바르 왕 시대에 다양한 종교 양식과 예술이 수용되었는데 바로 이 시기에 들어온 건축 양식과 문화들이 지금의 아름다운 타지마할이 지어지는데 큰 역할을 했다.
(*아크바르 시대가 궁금하다면 '조다 악바르(Jodhha Akbar, 2008)'라는 인도 영화 속 무굴 제국의 시대를 감상해보자.)
이 아크바르의 손자인 ‘샤 자한(Shah Jahan)’이 바로 타지마할을 세운 무굴제국의 5대 왕이다. 샤 자한은 1628년부터 1658년까지 통치했는데 인도 역사상 가장 화려했던 시기였으며 이 시기 인도는 세계 제1의 경제대국이었다. 샤 자한의 아내는 ‘아르주만드 바누 베굼(Arjumand Banu Begum)’이라는 여인이었는데, 아크바르는 그녀에게 ‘궁궐에서 선택된 자(두드러진 자, 고귀한 자)’라는 의미를 가진 ‘뭄타즈 마할(Mumtaz Mahal)’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고, 후에 ‘타즈’는 보석이라는 말로 지금의 ‘타지마할(궁궐의 보석)’이 되었다. 뭄타즈 마할은 샤 자한이 전쟁을 나갈 때에도 보필하며 함께 다닐 만큼 사이가 좋았다고 하며 정략결혼을 통해 다른 왕비들도 있었지만 오로지 뭄타즈 마할에게서만 아이를 낳을 만큼 그녀만 사랑했다고 한다.
뭄타즈 마할은 샤 자한과 18년간의 결혼 생활 동안 14명의 아이를 낳았고 마지막 아이를 낳다가 과다 출혈로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녀는 자궁 속에서 들리는 아이의 울음소리에 불길함을 느껴 마지막 아이를 낳으며 자신이 죽을 것을 예감하고 샤 자한에게 두 가지 소원을 말했다고 하는데, 첫 번째는 자신을 위해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독특하고 아름답고 훌륭한 무덤을 지어 줄 것. 두 번째는 재혼하지 말 것이었다. 그녀를 너무나도 사랑했던 샤 자한은 그녀의 두 가지 소원을 모두 들어주었다. 샤 자한이 얼마나 슬퍼했는가 하면 그 비통함이 신록에도 남아있다.
샤 자한은 슬픔에 겨워 울었다. 그것은 마치 폭풍을 동반한 바다와 같았다. 고통에 찬 가슴은 절제력을 잃었다. 깨어진 술잔에 어찌 와인이 남아 있을 수 있겠는가. 그의 두 눈에서 흘러내리는 가슴속 피 눈물은 마치 자신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것이 더 크다고 다투는 듯했다.
- 칼림 카샤니(Kaleem Kashani)의 파드샤나마(Padshahnama)
하룻밤 사이 수염이 하얗게 변했고 애도의 마음으로 2년 동안 좋아하는 음식, 의복, 음악, 잡기들을 멀리했고 하얀 옷만 입었다. 고통이 너무 커서 남은 왕좌를 버리고 싶다고 몇 번이나 이야기했다.
- 압둘 하미드 라호리(Abdul Haid Lahori)의 파드샤나마 중에서
*파드샤나마 : 황제의 책이라는 뜻으로 샤 자한 1세의 통치에 대한 공식 역사로 쓰인 작품 모음집이다.
타지마할은 페르시아 출신의 건축가를 필두로 1632년부터 1654년까지 지어졌고 건축물은 12년간, 정원까지 22년간 지어졌다고 한다. 남쪽 출입문을 시작으로 정원, 좌우 사원(모스크), 대칭 건물, 무덤 이렇게 5개 구성 요소로 되어있다.
출입문으로 들어가면 정원이 보이는데, 이 정원은 밭 전 모양으로 차르바그(Char Bagh)라고 하며 이것은 코란에 명시된 천국의 개념을 지상에 구현해 내려고 했다. 무덤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천국에 들어가는 것으로 관념화하여 천국에 흐르는 4개의 강물인 꿀, 물, 우유, 와인을 상징하고 과실과 꽃들을 심어 천국을 연상시키는 정원으로 조성했다.
본 건물인 모스크(사원)는 100퍼센트 대리석으로 마감했으며 높은 아치는 페르시아 양식, 작은 기둥 조형물인 차트리(Chatri)는 힌두 양식, 그 밖에도 중앙아시아 양식과 유럽(선교사들이 가지고 들어온 기독교 장식 스타일) 양식 등이 혼용된 건물이다.
무슬림 양식의 특징인 그물(Jali) 모양으로 촘촘히 파내서 빛을 투과시키고 바람을 통할 수 있게 만든 벽, 이탈리아에서 기원한 피에트라 듀라(Pietra Dura)라는 세 가지 종류의 돌을 사용한 상감기법 등 다양한 구성 요소들의 유기적 관계, 완벽한 조화와 대칭, 불필요한 장식은 없는 천국의 개념을 본뜬 아름다움과 단아함이 있는 건물이라고 할 수 있다.
무덤 아래에는 비문이 새겨져 있는데 그중에서도 남쪽 아래 비문에는 ‘1631년 6월 17일 사망한 뭄타즈 마할이라 불린 아르주만드 바노 베굼의 빛나는 무덤’이라고 적혀 있다. 진짜 무덤은 지하에 있고 그 옆에 샤 자한의 무덤이 있는데 타지마할 안에서 유일하게 대칭이 아니라고 한다.
타지마할은 과연 뛰어난 대칭적 감각, 다양한 양식의 유기적 연결, 불필요함을 배제한 품격 있는 아름다움 때문에 유명한 것일까. 아마도 샤 자한의 뭄타즈 마할을 향한 사랑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이라 불리지는 못할 것이다. ‘사랑의 그리움’이라는 이름으로 지어진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인 타지마할은 직접 가서 보지 않으면 그 단아함에서 오는 화려한 아름다움을 느끼기 어려울 것이다.
타지마할은 해가 뜰 때부터 해가 지는 시간까지 오픈을 하는데 개인적으로 해가 지는 시간이 가장 아름다웠던 것 같다. 오랜 시간을 타지마할에 머물며 샤자한과 뭄타즈마할의 러브 스토리, 경제적 대국이었던 무굴 제국의 히스토리, 종교적 이원성을 넘어선 건축물의 의미를 느끼며 곳곳을 둘러보기만 해도 이 아그라라는 도시가 낭만 있게 느껴졌다.
해가 질 무렵 하얗던 대리석은 햇볕이 반사되며 노을빛으로 변해간다. 이렇게 노을빛에 물들어가는 타지마할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누군가 다가왔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걸 발견해서인지 자신을 포토그래퍼라고 하면서 타지마할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주겠노라고 말했다. 사진을 찍어주고 돈을 받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건가 싶기도 했고 여기까지 왔는데 타지마할을 배경으로 사진 한 장 정도는 찍어야지 하면서 내 카메라를 맡겼다.
수로에 비치는 타지마할이 아름다워 그 앞에서 찍겠다고 했다. 포토그래퍼는 여러 장 찍어주더니 갑자기 따라오라고 하며 뒤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마음에 안 든다고 한다. 인물도 배경도 예쁘게 나오는 포토 스폿을 알고 있다고 하며 손짓을 하더니 앞장을 선다. 정원 쪽으로 들어가더니 커다란 나무 아래 타지마할 전체가 보이는 벤치에 앉으라고 하고는 여러 장 찍어 본다. 더 아름답게 찍어주겠다고 하며
“다리를 꼬고 앉아, 벤치에 옆으로 앉아서 한쪽 다리는 뻗고 한쪽은 무릎을 굽혀봐, 팔은 이쪽에 이렇게.”
하더니 이런저런 포즈를 시키며 서서, 앉아서 무릎을 꿇고 다양하게 찍어준다. 이렇게 열정적이게 찍어주니 고마워서 얼마라도 챙겨주려 했지만 액정으로 찍은 사진을 확인하더니
“이것 봐. 잘 나왔지?”
하며 쿨하게 ‘바이 바이’ 인사를 하고는 자리를 뜬다.
혼자 여행을 다니면서 사진을 찍기 어려울 때가 많았는데 타지마할 앞에서는 기념사진을 남길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찍어준 사진을 보면서 그의 사진 찍어주는 폼이 생각나 웃음이 났다.
‘고마운 포토그래퍼, 이름이라도 알려주지.’
해가 질 때쯤 문을 닫기에 달빛에 빛나는 타지마할의 아름다움도 감상하고 싶었지만 아쉬움을 뒤로하고 나왔다. 저녁 시간이 되니 어제 그 핫도그가 생각났다. 이런저런 숍들을 구경하다가 배가 고파져 어제의 그 식당으로 향했다.
“Hello ~ 아저씨, 저 왔어요.”
“Hello ~ 오 구경 잘했어요? 핫도그 금방 줄게요. 커피? 주스? 뭘로 줄까요?”
“주스요.”
식당 사장님은 한 5분 만에 핫도그와 오렌지 주스 한잔을 건네주었다. 비주얼은 그럴듯해 보였다. 정말 반으로 가른 빵에 무엇이 들어가 있는지는 모르겠는 소시지, 양파와 피클 다진 것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들어가 있고 머스터드와 비슷한 소스가 들어가 있었다.
“와 그럴듯한데요? 정말 비슷해요!”
“그것 봐, 내가 만들어 준다고 했죠.”
먹어보니 미국식 핫도그와 비슷했고 소시지와 다진 양파의 조화가 꽤 괜찮았다.
“오이 피클은 사 왔어요?”
“내가 만들었지.”
“어떻게요?”
“비밀.”
빵과 양파를 제외하고는 정확히 무엇이 들어갔는지 모르겠지만 비주얼과 맛이 비슷해서 엄지 척을 해주었다.
식당 사장님은 웃으며 자신이 못하는 요리는 세상에 없다고 한다.
핫도그를 먹으며 오늘 다녀온 타지마할에 대한 소감을 이야기하고, 또 그의 요리에 대한 열정을 다시 듣다 보니 또 늦은 밤이 되었다. 그는 ‘핫도그 개시!’라고 한국어로 전단지를 써 달라고 했다. 나는 근처 숍에서 사 두었던 예쁜 편지지에다가 여러 가지 메뉴와 불고기 덮밥을 한글로 쓰고 가장 크게 ‘핫도그 개시’라고 써주고 인사를 하며 나왔다. 그는 오로지 요리에 대한 이야기 외에는 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이름도 모르고 가족은 있는지, 그에 대해 아는 것은 없었다. 오로지 요리에 대한 열정뿐.
그는 자신의 관심은 전 세계 요리를 해보는 것이며 자신의 식당에 다양한 메뉴를 개발해서 올리고 그것을 맛있게 먹어주는 손님을 만나는 것이 가장 기쁜 일이며 이것이 그의 꿈이라고 했다. (거창하게 꿈 이라기보다 바라는 일) 그의 요리에 대한 열정이 나에게도 전이되어 마음에 늘 남아 있다. 불고기 덮밥과 핫도그를 맛있게 먹으며 엄지 척을 날렸을 때 그는 너무나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었고 그의 열정적인 눈빛 또한 잊히지 않는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열정을 가지고 하루 종일 생각하며 몰두하는 사람을 보는 것이 나에게는 얼마나 큰 행운인지 여러모로 참 아름다운 여행의 하루였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