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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Amazing India 24화

델리(Delhi)

익숙한 도심 수도, 델리

by Euodia

'쉬어가는 서울과 같았던 델리'


새벽에 도착한 올드 델리, 사이클 릭샤를 타고 예약한 호텔로 향했다. 마치 서울에 도착한 듯 현대적인 건물이 가득한 수도 델리, 익숙한 도심뷰에 마음이 편해졌다. 버스 안에서 밤새 고열을 앓아서인지 머리가 아파 이른 체크인을 하고 침대에 들어가 쉬기로 했다. 책을 읽다가 잠이 들었는데 2시간 정도 자고 일어나니 두통이 사라졌다. 전체적으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델리에 며칠 머무르며 여행의 재정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운동화 한 켤레와 긴팔 집업을 구입하는 것. 인도 북부 지방의 1~2월은 한 낮엔 25~30도 남짓, 저녁에는 10도 아래로 떨어지기 때문에 기온차도 크고 생각보다 쌀쌀해 밤에는 체감상 가을에서 초겨울 사이로 느껴진다. 남부 지방에 오래 있었던 나는 북부 지방의 최저 기온은 생각하지 못하고 여행하는 동안 긴팔이라고는 아주 얇은 집업 하나와 구멍이 숭숭 뚫린 니트 카디건이었는데, 그마저도 벵갈로르 버스 정류장에서 덜덜 떨고 있는 어린 소녀에게 긴팔 집업을 입혀주었기에 저녁 시간대에 입을 옷이 없어서 저녁과 밤이 너무나 춥게 느껴졌던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첫 배낭여행이었기에 북부와 남부의 온도차가 그렇게 클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뉴델리 커놋 플레이스

뉴 델리의 커놋 플레이스(Connaught Place)는 방사형으로 뻗은 거리로 여행사, 여행 안내소, 다양한 상점, 식당, 은행, 호텔 등 관광객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이 복합된 중심부라 할 수 있다.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이 커놋 플레이스에서 제일 먼저 들른 곳은 은행이었다. 몇 달간의 여행이라 현금을 모두 가지고 다닐 수는 없었기 때문에 거래하는 주 은행이 있는 도시를 확인해 놓고 필요한 만큼 인출해서 사용하는 것이 안전하고 편리했다. 다만 예상치 못한 지출을 해야 했을 때 쫄깃함이 있지만 소매치기와 도난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적당히 가지고 다니는 것이 그나마 안전하다. 커놋 플레이스(줄여서 CP라고 부르기도 한다)에는 익숙한 장소들이 많은데, 피자헛, 도미노 피자, 맥도널드와 같은 인도 전역에서는 보기 힘들었던(뭄바이와 뱅갈로르에서는 보았음) 세계적인 프랜차이즈 식당이나 인도의 커피 프랜차이즈인 카페 커피 데이가 곳곳에 있으며, 리바이스, 아디다스, 캔버스 등 의류 상점들도 즐비해 있었다. 또 그동안 길에서는 볼 수 없었던 팔짱을 끼고 다니는 커플들도 많이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커놋 플레이스의 연인들 | 가족들

나에게 필요한 조금 두꺼운 트레이닝 집업과 운동화를 드디어 구입하고 CP중심가를 둘러보며 공원 구경도 하면서 돌아다녔다. 두 달 가까이 여행을 하다 보니 하루 정도는 필요한 것을 구입하고 중심부를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자이살메르에서 운동화를 잃어버린 후 슬리퍼를 신고 다녔더니 다리도 더 아프고 저녁에는 발도 시렸다. 공원에 앉아 챙겨간 양말과 구입한 운동화를 신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온 김에 중국 식당에서 볶음밥과 따뜻한 국 같은 수프도 시켜 먹고 신선한 과일까지 야무지게 사서 호텔로 향했다.



‘인도의 음식들’


여행을 다니면서 먹을 것을 빼놓을 수 없지만 남부 몇몇 군데에서 물갈이를 강렬하게 경험한 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만약 민감하거나 배탈이 걱정된다면 외국인이 많이 다니는 식당을 찾아보고, 중국 식당을 이용하는 것도 괜찮다. 가장 많이 먹었던 인도 음식은 빼놓을 수 없는 탄두리 치킨과 볶음밥 또는 비리야니, 치킨과 양고기 커리, 난(Naan)이었는데 웬만한 식당에는 항상 있었고, 볶음밥은 우리가 항상 먹는 아는 맛이기 때문에 호불호가 없었다. 가장 추천할만한 커리는 토마토소스를 베이스로 한 치킨이 들어간 모든 커리, 의외로 시금치 커리와 양고기 커리도 맛있다. 인도에서는 돼지고기를 먹기 어려우며 가장 흔하게 치킨과 양고기를 가장 많이 먹는다. (뱅갈로르 한 정육점 앞에 '삼겹살'이라고 뚜렷한 한글로 쓰여있었던 것을 봤었는데 돼지고기를 잘 안먹는 나라에서 그렇게 써 있을 정도라면 한국인은 돼지고기를 정말 많이 먹는 것 같다.)

탈리(Thali)는 가정식 백반처럼 생각하면 되는데 라이스 또는 빵에 커리 종류와 달(콩을 베이스로 한 소스)이 여러 종류 나온다. 종류는 북부와 남부 조금씩 차이가 있다.

바나나나무 잎 양고기 비리야니 | 탈리 | 탄두리 치킨과 볶음밥, 난(Naan)

가장 대표적인 음식인 인도 커리는 한국의 인도 요리 전문점에서 먹는 것보다 향신료가 몇 배는 더 강하며 비리야니는 볶음밥처럼 생겼지만 고기(닭, 양, 소고기)와 향신료를 넣고 쪄서 만들기 때문에 약간의 누린내나 강한 향신료 때문에 처음에는 먹기 어려울 수도 있다. 커리 초보자라면 ‘알루 고비 커리’라고 하여 감자 브로콜리 커리인데 우리가 즐겨 먹던 3분 카레 맛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 요즘에야 인도 요리 전문점이 많아졌지만 인도에 가기 전에 인도 음식점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 접하는 인도 음식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첫 달에는 커리나 비리야니에 들어있는 고수 씨앗, 샤프란, 카다몸, 큐민시드를 한 번에 씹으면 음식이 넘어가지를 않았는데, 이제 웬만한 향신료에는 적응이 되었지만 고수만큼은 아직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 북부 지역에서 오믈렛을 시켜 먹을 때 가끔 달걀에 고수만 섞은 오믈렛을 주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괴로웠다. 그래서 잊지 않고 고수를 빼 달라고 하면

“너는 코리안인데 왜 코리앤더(Coriander)를 못 먹어?”

라며 물어보는 웨이터들도 종종 있었다.

“코리아와 코리앤더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인도에서 파는 과일들 | 바나나 잎을 그릇으로 썼던 식당

남부 지방에서는 가끔 커다란 바나나 잎 위에 비리야니나 탈리를 주는 식당도 있었는데 접시를 쓰지 않고 바나나 잎을 접시로 쓴 후 그냥 버리는 것도 친환경 적이라 꽤 괜찮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은 손으로 먹길래 도전해 봤지만 잘 안되어 숟가락을 요청했다. 종종 손으로 먹는 식당들도 있는데 음식이 너무 뜨겁거나 손으로 먹기 어려움이 있다면 숟가락이나 포크를 요구하면 준다.

길거리 음식은 많이 도전하지는 못했는데 파니 푸리(Pani puri)는 작은 공모양의 바삭한 과자에 구멍을 내어 찐 감자, 다진 양파, 레몬즙, 민트, 고수, 파프리카 가루에 향신료를 넣어서 먹는 간식인데 인도인들에게는 인기가 많았지만 나에게는 너무 시고 매웠다. 사모사(Samosa)는 인도 남부, 중부에서 많이 보았는데 세모 모양으로 찐 감자, 채소, 콩류, 고기류가 들어간 커리 맛 만두 튀김 같은 것이라 보면 된다. 생각보다 맛있어서 여러개 먹고 싶지만 튀긴 음식이라 배가 금방 불러온다.


과일을 워낙 좋아해서 인도에서도 정말 많이 사 먹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흔하게 길에서 사 먹을 수 있는 바나나, 망고, 구아바, 파파야를 가장 많이 즐겨 먹었다. 잘 익은 오렌지 빛 파파야와 구아바는 한국에서는 먹기 어려워 가끔 생각이 난다. 특히나 바나나는 오전에는 샛노란색이지만 저녁이 되면 갈색 반점이 생겨 다음날엔 팔지 못해 떨이로 파는 경우가 있는데 그만큼 농약을 치지 않기 때문에 하루, 아니 반나절이면 익어버려 아주 달고 맛있다.

과일 가게 | 파니 푸리(Pani puri)

‘레드 포트(Red Fort)’


레드 포트(Red Fort)

붉은 성 또는 붉은 요새라고 부르는 레드 포트는 무굴 제국의 5대 왕조였던 샤 자한(Shah Jahan)이 1638년 건설을 시작하고 1648년 완공한 거대한 성이다. 이 샤 자한은 누구나 알고 있는 타지마할(Taj Mahal)을 건설한 왕이며 그의 시대는 무굴 제국 건축의 황금기로 여겨질 만큼 훌륭하고 거대한 건축물을 많이 세웠다. 그는 아그라에서부터 델리로 천도를 시도했지만 끝내지 못했는데, 같은 시기 타지마할도 건설 중이었기에 제국의 재정이 휘청할 정도로 막대한 예산을 사용하고 있었고 과도한 세금과 수탈로 인해 민심이 악화되어 있었으며 정무에서도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다. 이 시기를 틈타 셋째 아들인 아우랑제브(Aurangzeb)가 샤 자한을 폐위시키고 아그라성에 감금해 버렸다. 이후 델리에서 시작된 아우랑제브의 통치는 무굴 제국의 막을 내리게 된다.

레드 포트라는 이름에 걸맞게 멀리서부터 보이는 성벽과 인도 국기가 펄럭이는 붉은 성의 크기에 압도될 만큼 그 넓이와 높이가 대단했다. 전체 벽은 2.5km에 달하고 높이는 16~33m 정도다. 샤 자한 시기는 세계적으로도 가장 강성했던 시기였기에 건축의 장식과 미술적 양식은 페르시아, 유럽, 인도 미술 등 가장 아름답게 표현되었다.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는 영국 식민지 때 군의 병영지로 쓰였고 인도의 초대 총리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곳이다.

라호르 게이트(Lahore Gate)

레드 포트의 정문인 라호르 게이트(Lahore Gate)로 들어가는 길, 성의 정문이 파키스탄 영토가 된 라호르를 바라보고 있어서 라호르 게이트라 부른다.

성 안에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넓고 컸다.

왕실 목욕탕 (Hammam)

왕실 목욕탕(Hammam) 3개의 큰 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위에는 돔, 중간에는 분수가 있고 사우나 실도 있다. 입구의 양쪽에 있는 두 개의 방은 왕족의 자녀들이 사용했을 것으로 보며, 동쪽에 있는 곳은 탈의실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한 때 수도에서 장미수가 흘러나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랑 마할(Rang Mahal)

색의 궁전(Palace of Color)이라 불리는 랑 마할(Rang Mahal)은 황제의 본부인이 살던 곳이며 바닥은 대리석의 아름다운 연꽃이 조각되어 있다. 원래는 하렘의 일부로 사용되었으며 왕족의 여성들이 쉴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영국이 1857년 이 붉은 요새를 점령한 후 이곳은 식당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카즈 마할(Khas Mahal)

카즈 마할(Khas Mahal) 황제의 개인 궁전이었으며 침실, 옷방 겸 거실, 대화하는 방으로 나눠져 있었으며 내부는 화려한 꽃 장식으로 칠해진 대리석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천장은 금박으로 수놓아져 있다. 동쪽에 튀어나온 팔각 탑 (Muthamman Burj)에서 매일 아침 신하들에게 연설을 하기도 했다.


레드 포트는 안에서 돌아다니다 보면 생각했던 것보다 커서 시간이 꽤 걸리기 때문에 구석구석 둘러보려면 시간의 여유를 가지고 보는 것이 좋다. 무굴 제국의 막대한 예산이 들어간 건축인만큼 대리석과 조각품들, 천장과 바닥의 상감기법 등 건축물의 의미와 용도를 알면 더 의미 있게 보고 올 수 있다.




‘인도의 대중교통’


전날 푹 쉬었지만 남은 일정들의 컨디션을 위해 레드 포트에서 나와 택시를 타고 다시 호텔로 향했다. 인도 전역을 여행하면서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녔지만 뉴 델리와 올드 델리로 나뉘는 만큼 넓은 델리에서 걸어 다니기에는 무리가 있기에 다양한 교통수단을 이용했다. 버스, 사이클 릭샤, 오토 릭샤, 택시 순서로 가격이 저렴하고 릭샤의 경우는 흥정을 해야 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에 관광객들은 사기를 당하기 쉬울 수도 있다. 사이클 릭샤나 오토 릭샤는 더운 날씨에 바람을 맞으며 잠시 더위를 식힐 수도 있지만 대기 질이 좋지 않은 도시에서는 먼지가 많아 저녁이 되면 꼬질꼬질해진다.

버스 | 사이클 릭샤 | 사이클 릭샤 타는 곳

가끔 타봤던 버스는 여성 전용 구역이 있어서 편리한 부분도 있었지만 사람들이 많이 타는 버스는 매달리며 타거나 버스 지붕 위로 타는 사람들도 볼 수 있는 만큼 숨 막히게 복잡할 때도 있다. 버스의 앞, 뒷문에 매달려 떨어질 것 같이 다니는데도 그들은 전혀 위험해 보이지 않는다. 같은 지역 안에서도 거리가 좀 먼 곳은 저렴한 버스비 때문에 배낭여행객에게는 좋은 교통 수단이 된다. 다만 델리나 뭄바이 외에 다른 지역은 정확한 정류장을 찾기 어려울 때도 있기 때문에 잘 확인해야 하며, 버스 기사에게 내릴 곳을 미리 말해 놓으면 복잡한 사람들 속에서도 내리라며 친절하게 안내해주기도 한다. 델리나 뭄바이, 첸나이에서는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했고 그 밖에 지역에서는 오토릭샤가 가장 편했다.


하루는 카메라를 호텔에 두고 편하게 돌아다녔는데 대통령 궁이나 국회의사당(Sansad Bhavan), 인디아 게이트, 라즈파트(Rajpath) 후마윤의 묘(Humayun’s Tomb)도 둘러볼만했다.


델리는 서울 같아서 며칠간 쉬며 에너지 충전을 하기에 좋았다. 전기가 끊길 일 없이 매일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그동안은 몇 벌 되지 않는 옷을 손 빨래하며 다녔었는데 호텔에 런드리를 맡길 수 있어서 편했고, 먹고 싶었던 샌드위치나 커피를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는 편한 쉼이었다. 카페에 하루 종일 앉아서 가지고 다니던 마지막 책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짧게는 5시간 길게는 2박 3일까지, 이동 거리가 워낙 길다 보니 책을 몇 권 가지고 다녔는데 기차나 버스 안에서 잠이 안 올 때는 책을 읽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다 읽은 책이 5권 정도여서 계속 가지고 다니기엔 무거워 뱅갈로르로 택배를 보내기로 했다. 자그마한 우체국에 들어가서 그동안 써왔던 엽서와 편지를 한국으로 보내고 뱅갈로르로 보낼 책 5권을 택배로 붙이려 했더니 하얀 천으로 책을 감싸 바느질을 해 포장을(?) 해준다. 이 천 위에 집 주소를 적으라고 해서 써 주었더니 무게를 달아 도장을 찍어준다. 편지나 엽서는 종종 보냈지만 택배는 처음이라 신기했는데 천으로 책 모양 그대로 바느질해 주는 솜씨를 보며 엄지 척을 보내줬다. 뜯어지지는 않을까, 제대로 전달이 될까 물어봤더니 걱정 말라며 가라고 한다. 이렇게 여행을 하면서는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그 나라의 구석구석을 알기 위해서는 살아봐야만 알아지는 것들도 있다.

책을 천으로 소포 포장 해주는 우체국 직원

런드리를 찾고 빠하르 간지에서 필요한 몇 가지 쇼핑을 한 후 호텔에 들어와 뭄바이에서 구입했던 인도 영화 DVD를 시청하며 델리의 마지막 날을 호텔에서 푹 쉬었더니 한 달 정도 계속되던 감기가 나아간다. 역시 아플 때는 푹 쉬었어야 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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