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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Amazing India 18화

아우랑가바드(Aurangabad)

잔잔하게 정들어버린 아우랑가바드

by Euodia

'실크로 유명한 작은 타지마할'


인도 전역의 게스트 하우스나 작은 호텔에 머물다 보면 벽에는 창문 대신에 바람이 통하기 위한 구멍? 같은 것들이 있다. 그것을 뭐라고 부르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여러 문양으로 벽이 뚫려 있는 곳들이 꽤 있다. 한밤중과 새벽엔 바람이 들어와 가끔 춥기도 하고 시끄러운 경적 소리가 들려오기도 한다.

오랜만에 숙소가 워낙 캄캄하고 조용해서 깊은 잠을 잤다. 여독이 싹 풀린 듯 개운한 마음에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체크 아웃을 하기 위해 내려가 매니저와 여행은 어땠는지, 엘로라와 아잔타는 어땠는지 등 잠깐의 대화 후 아침을 먹기로 했다.

에그 오믈렛과 토스트 그리고 커피. 인도의 값싼 호텔에서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얼마나 고맙고 반가운지. 생각보다 혼자 온 사람들이 꽤 있었다. 잠시 후 어떤 아저씨 같은 사람이 다가와 앞에 앉았다. 나는 커피를 마시며 쳐다보았더니 자기소개를 한다.

“안녕, 나는 나이지리아에서 왔어.”

“나는 한국인.”

그는 나이지리아에 살고 있는 리치맨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처음부터 자신을 부자라고 소개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 자신은 비즈니스 때문에 종종 여행을 하며 인도에 몇 번 방문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내가 마음에 든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네가 원한다면 나의 세 번째 부인이 될 수도 있어.”

나는 웃음이 났다.

“제안은 고맙지만 난 원하지 않아.”

“아쉽네, 나이지리아에서 편하게 살 수도 있을 텐데.”


여자 혼자 여행을 하다 보면 종종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데 노골적으로 하룻밤을 원하는 사람들도 있고 젠틀함을 가장해 다가와서는 이렇게 프러포즈를 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과의 대화를 차단하기 위해 페이크 반지를 끼고 다니며 약혼자가 있다고 하는 방법이 가장 잘 먹혔던 거 같다. 물론 끊임없이 조르는 귀찮은 자들도 있었지만 말이다.


실크가 유명하다는 말에 선물용 스카프를 사려고 아우랑가바드를 구경해 보기로 했다. 사실 이곳에 대한 첫 느낌은 공기가 더럽고 맛있는 음식점도 드물고 시장도 멀어서 여행하기엔 애매한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며칠 다녀볼수록 친절한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느낀 잔잔한 정감이 가는 도시다.

비비-카-막바라(Bibi-ka-Maqbara)에서부터 판차키(Panchakki)를 지나 올드 타운, 자파르 게이트(Zaffar Gate)까지 느릿하게 시장 골목골목을 구경하며 다녔다.

비비-카-막바라는 작은 타지마할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약간은 인상적인 곳이지만 밤에 조명이 켜지면 더 예쁘다고 해서 아쉬웠다. 밤에도 와 볼걸! 아우랑가바드에서 편하게 다닐 수 있는 엘로라와 아잔타에 집중하다 보니 놓치고 있었던 정보들이 아쉽기만 했다. 판차키의 물레방아에서 시원하게 물이 떨어지는 것을 구경하고 정원도 평화롭게 거닐었다. 좀 더 걷고 싶어 메인 포스트 오피스 앞에서 엽서를 써서 부치고 올드 타운을 걸었다.

시장 골목의 순간들

역시 나는 시장길이 참 좋다. 야채를 파는 청년, 옷가게 아저씨들, 가방을 파는 부자, 스카프를 파는 여인, 과자를 몇 그람씩 담아 팔고 있는 아저씨, 머리 장식 꽃을 엮어 팔고 있는 아저씨를 구경하며 좁아터진 시장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선물을 사기 위해 힘루숄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마음에 드는 것을 발견했을 때 매우 비싸게 불렀다. 인도 역시 관광객이 많기 때문에 외국인들에게 매우 비싼 값을 치르게 한다.

“1200루피!”

나는 결국 800루피까지 흥정을 하고 매우 마음에 드는 힘루숄을 하나 샀다. 그때 환율로 28,000원 정도. 인도 물가 치고는 매우 비싼 편에 속했다. 그래도 원단이나 퀄리티를 보면 꽤 잘 샀던 선물 중 하나였다.



'귀여운 오렌지맛 사탕'


야채 가게를 구경하고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톡톡 건드렸다. 혹시 벅시시를 요구하는 아이들인가 하며 뒤를 돌아보았더니 두 소녀가 나에게 사탕 하나씩을 손에 쥐어주고는 수줍어하며 어딘가로 쪼르르 달려간다. 나는 그 아이들이 귀여워서 쫓아갔다. 아이들은 어느 상점 앞에 서 있었다.

“안녕”

아이들은 부끄러워하며 꾸벅 인사를 했지만 서로 뒤에 숨으며 말하기를 꺼렸다.

“왜 나에게 사탕을 준거야?”

소녀들의 부모님이 대신 이야기를 해주었다. 둘은 자매이고 학교를 다녀오는 길인데 나를 보고 외국인을 처음 봐서 궁금하고 신기했다고 한다. 아이들이 워낙 부끄러워해서 이야길 많이 못했지만 이 순간을 기억하겠다고 했더니 매우 좋아한다. 카메라를 목에 걸고 있어서인지 부모님은 소녀들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라며 부추겼고 그렇게 소녀들의 가족과 잠깐의 이야기를 하며 소중한 만남을 가지게 됐다. 두 자매의 사진을 찍어 주고는 액정에 찍힌 사진을 다 함께 보았다. 소녀들이 꺄르르르 웃고 부모님도 웃는다. 이런 만남이 있는 날은 사진을 바로 현상해서 직접 선물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다시 길을 나섰다. 아이들은 안 보일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이 자매는 잘 크고 있을까? 귀엽고 상큼한 오렌지맛 사탕이 아직도 마음에 오래 남았다.

사탕을 선물해준 귀여운 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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