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스러운 뱀의 도시 트리밴드럼
새로운 도시에 도착해서 처음 하는 일은 그 다음 목적지의 버스 또는 기차 티켓을 구입하는 일이었다. 아무래도 뱅갈로르에서 코치로 가는 길이 험난했기에 여행 내내 루틴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트리밴드럼에 도착한 다음날 아침 버스 스탠드로 나가는 길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코치나 알라푸자에서 볼 수 없었던 사람들의 바쁜 움직임이 왠지 반가웠다. 북적거리는 길거리, 뿌연 매연을 내뿜는 릭샤들과 오토바이들, 과일이나 간식류를 사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걸었다. 버스스탠드에 도착해 깐야꾸마리행 버스 티켓을 사려고 하니 매시간 50분마다 버스가 있으니 티켓을 구입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봤더니 눈치를 챘는지
“걱정하지 마, 매 시간 버스가 있다니까.” 한다.
‘그래? 그렇다면 가고 싶을 때 가야겠다!’
가보기로 한 템플이 있어 릭샤를 탈까 했지만, 전날 하루 종일 배 위에서 움직이지 않아서였을까 그냥 걷기로 했다. 분명 햇빛도 적당하고 바람도 부는 것 같았는데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스리 파드마나바스와미 템플(Sri Padmanabhaswamy Temple)에 지도를 보며 가고 있었지만 상점 구경도 하고 사람들 구경하며 사진을 찍다보니 사람들이 가는 쪽으로 마음이 이끌렸다. 걷다 보니 시장이 보였고 잠시 후에는 가트와 가나파티 템플(Ganapathy Temple)이 보였다. 가트 주변이 너무 아름다워 사진을 찍으러 가는 순간 지린내가 났다.
인도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지린내. 유명한 성 주변이나, 풀밭, 가트 주변으로 오줌 지린내가 가득한 곳들이 있다. 가끔 길을 걷다보면 볼일을 보고 있는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기도 했는데 화장실을 이용하려면 돈을 내야 해서인지 아니면 그들의 문화적 습관인지는 모르겠다. 빈속에 냄새를 맡으니 속이 좋지 않아서 가트 쪽이 아닌 템플 쪽으로 향했다. 그래도 템플이 마음에 들어서 주변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누군가 말을 걸었다.
“나를 따라오는 거야?”
처음 보는 사람이기에 무슨 말인가 했다.
“나는 당신을 본 적이 없는데?”
“좀 전에 버스 스탠드에서 보았고, 길을 따라오는 걸 보았고, 또 지금 여기 템플 있는데 왔잖아.”
“아니, 나는 내 길을 가는 것뿐이야.”
그러자 그는 실실 웃었다. 그러고 보니 주변에 외국인 이라고는 없었고 그와 나 둘 뿐이었다. 억울함을 뒤로하고 나는 템플을 들어가 보기로 했다. 그런데 외국인 여행객은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종종 외국인이 들어가지 못하는 템플들이 있다.)
원래 가기로 한 곳으로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른 시간에는 문을 닫아 놓았던 길게 늘어선 상점들이 칩스를 파는 곳으로 가득해졌다. 그것도 대부분이 바나나칩. 케랄라 사람들은 바나나칩을 좋아한다는 이야길 들었던 터라 우리나라에서 먹던 마른안주의 대명사 바나나칩이 생각나 한 봉지 집어 들었다. 공기반 과자반 들어있는 우리나라 봉지 과자와 다르게 바나나 칩은 한 봉지 가득 터지게 들어있었다. 달달한 바나나 맛을 기대했다면 오산, 별 맛은 안나는 바나나칩이었다. 이 많은 한 봉지를 어떻게 다 먹나 싶을 정도로 내 입맛엔 그저 그랬다.
박물관이 보고 싶어서 또 걸었다. 여행을 할 땐 보통 3만 보는 거뜬히 걸어진다. MG로드까지는 걸었지만 너무 덥고 오르막 길이었고, 이상하게 몸 상태도 별로인 듯하여 버스를 탔다. 동물원과 박물관이 함께 있는 쪽으로 가고 있는데 곧 그냥 걸어갈 껄 그랬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가 터질 정도로 사람들이 타고 또 타고, 이리저리 밀리고 찡기고 가관이었다. 그 와중에 내 옆에 있는 여인들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기어 다니는 것을 또렷하게 보았다. 그렇게 온몸으로 주변을 경계하며 가다 보니 버스 차장이 나에게 내리라고 한다. 버스를 탈 때 어디에서 내리는지 물어보더니 정신없는 나에게 내리라며 안내를 해준다. 그의 친절함에 고마워하며 바이바이~ 손을 흔들었다. 분명 박물관을 보고 싶었는데 버스에서 내리자 사람 구경이 더 하고 싶어졌다.
초등학교 버스에 꽉 차게 타고 있는 아이들, 시원한 나무 그늘에 앉아있는 노부부, 또는 연인들, 장난을 치며 놀고 있는 학생들, 느긋한 오후를 보내고 있었고 그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잔디에 앉은 두 남학생이 휙~ 휘파람을 불며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한다. 멀리서 사진을 찍어주었고 자신들이 찍힌 걸 확인을 하지도 않았는데 방긋 웃으며 너무 좋아했다.
그렇게 걷고 걸으며 사람들을 눈과 카메라에 담았다. 카드를 파는 사람, 과일을 파는 사람, 길거리에 앉아 채소와 씨앗 종류를 팔며 신문을 보는 할아버지, 학교 운동장, 교회 모스크도 보였다. 그들을 보며 갑자기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그리워져 그늘에 있는 의자에 앉아 한참을 그렇게 사람들을 바라봤다. 나무 그늘이 편안했다. 어디서 오는지 모르는 솔솔 부는 바람과 저마다 할 일로 바쁜 사람들의 모습이 마냥 좋았다. 웃음도 나고 사람들이 따뜻해 보이기도 했다.
'지금 내 가족들과 친구들은 무얼 하고 있을까.’
콘네마라 마켓(Connemara Market)에 들어서자 인도에 와서 처음 보는 생선가게, 코코넛을 보고 있는데 나뭇가지들을 머리에 한 짐이고 있는 아주머니가 툭툭 쳤다. 뭐라고 하는데 (타밀어였던 거 같다)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길 한복판에 멈춰서 사진을 찍고 있었기에 길을 비켜달라는 줄 알고 옆으로 비켜섰다. 그런데 가지 않고 자꾸 뭐라고 한다. 알아듣지 못하겠다는 말을 몸짓으로 표현하자 카메라를 한번 자신을 한번 가리켰다. 사진을 찍어달라는 거 같았다. 왜 이렇게 사진 찍어주는 것을 좋아하는지 모르겠지만 사진을 찍고 액정에 나타난 모습을 보여주자 함박웃음을 지었다. 나도 웃음이 났다. 그리고는 또 뭐라고 말을 했다.(미안해요. 알아듣지 못했어요.) 아마도 고맙다거나 잘했다거나 그런 말이겠거니 했다. 가끔 이렇게 말을 걸어오거나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하면 괜히 그들에게 애정이 생겨난다. 그리고 사진을 자꾸만 들여다보게 된다. 손을 흔들며 잘 가라고 하는 거 같아서 나도 손을 흔들며 웃었다.
기분 탓인가. 안 그래도 오렌지 주스 한잔으로 버티고 있는 와중이었다. 갑자기 배에서 신호가 왔다. 어젯밤부터 이상하더라니. 아무래도 수로 유람 중 먹은 점심이 탈이 난 게 분명했다. 비눗물 물고기가 머릿속에 떠올라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화장실이 보이지 않아 빠르게 호텔로 향했다.
‘꾸르륵꾸르륵’
하마터면 여행 중에 큰일 치를 뻔했다.
속을 다 비우고 나니 다시 배가 고파졌다. 낮에 산 바나나 칩을 처음으로 입에 하나 물었는데 이건 아니다 싶었다. 다행히도 해가 지기 전이어서 근처 스펜서 데일리에 가서 생바나나와 물을 샀다. 하루 종일 무더위에 흘린 땀을 씻어내고 배앓이에 조금 지쳐 다음 날을 위해 일찍 잠에 들기로 했다.
상쾌해진 다음날 아침, 이른 시간부터 배가고파 포테이토 칩스를 먹으며 버스 스탠드로 향했다.
(만약 인도에서 포테이토 칩스를 바로 튀겨주는 곳이 있다면 반드시 먹어볼것. 우리 나라에서 사 먹는과자와는 차원이 다른 갑자칩이기 때문)
트리밴드럼에는 특별한 것은 없었지만 사람 냄새나는 이곳이 왠지 기억에 많이 남을 거 같단 생각을 했다.
“깐야꾸마리행 버스 어디서 타요?”
“6시 반에 버스가 오는데, 저 쪽으로 가서 예약을 하세요.”
"응? 분명 어제는 매 시간 버스가 있다고 했는데”
“아니, 저기에 가서 버스 티켓을 구입해야 해요.”
버스스탠드를 둘러보며 어제 그 녀석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예약은 안 해도 된다더니 결국 6시 30분 버스 티켓을 구입하고 커다란 여행 가방을 메고 길을 걸으며 점심을 먹으러 갔다. 식사를 하고 난 후 커다란 짐을 들고 다니기 어렵기에 버스 스탠드 의자에 앉아 코치에서 읽던 책을 읽기로 했다. 저녁 시간이 다가오면서 혹시나 버스가 떠나 버릴까 봐 미어캣처럼 두리번거리기를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계속 모르는 다른 사람들이 돌아가며 아직 멀었으니 앉아 있으라고 했다. 응? 여기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내가 깐야꾸마리에 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출발 시간이 다가오자 여러 사람들이 한 버스를 가리키며 얼른 타라고 한다. 속으로 웃음이 났다.
내가 버스에 타자 버스 차장은 앞쪽에 앉아있는 남자들을 일어나라고 하더니 나보고 거기에 앉으라고 한다. 조금 뒤 부부로 보이는 두 사람이 타면서 내 옆에 앉자 차장이 남자의 뒤통수를 때리며 이 여자분 안 보이냐고 했다. 비키라면서. 3명 자리였지만 나와 아주머니만 타고 가게 되었고, 남편으로 보이는 사람은 바로 뒤에 앉았다. 괜히 내 뒤통수가 따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