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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ob Jul 16. 2021

아홉 달 레이스


아기를 낳으려면 아홉 달의 시간이 필요하다.

280일 나에겐 길고 긴 마라톤 레이스와 같이 느껴졌다.

사람의 임신기간은 다른 동물보다 조금 더 긴 것에 의문을 가지면서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사람이 사람을 만든다는 것은 세상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게 대단하다.

뱃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고 내 몸은 계속 변하니 어려웠던 것 같다.  


임신 초기 - 입덧은 술 진탕 먹고 난 다음날

처음엔 허리가 아파 한동안 걷기도 불편했던 거 같다.

심한 편은 아니었지만 계속 울렁거리는 숙취 느낌 으.. 오직 새콤달콤, 레모네이드, 과일, 매콤한 밀가루 음식에 의지했다.

세상이 좋아져서 입덧 약이란 게 나왔는데 효과는 있다.

좋아하던 음식에 거부반응이 생기는 것.. 이 작은 생명의 변화 무엇?

게다가 방광염에 걸려 며칠 새벽마다 미치는 줄 알았다.

(화장실 가고 싶지만 막상 소변은 안 나와서 내 방광과 신장이 터지는 줄 알고 남편에게 살려달라곤 했다.)

초기에 과일을 당기는 데로 먹었더니 아기도 나도 살이 와장창 쪘다.

과일이 몸에 좋을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과일은 설탕의 친구.. 란 사실!

(내 임신에서 가장 후회되는 것, 만약 주변에 임신한 사람이 있다면 과일 조금만 먹으라고 말해줄 테다..)


회사에 임밍아웃을 하기도 전에 말만 안 했지 티가 완전 났던 모양이다. 여성 동료분들은 눈치채고 나의 임밍아웃만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쑥쓰)


임신 중기 - 임신의 꽃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역시 입덧이 사라지니 한결 나아졌고 또한 살찌는 것과는 다르게 배가 불러오고 태동도 느껴보니 신기할 따름이다.(존재감을 드러내는 생명체)

궁금했던 성별을 알 수 있는 시기인데 초기부터 아들일 것 같은 예감이 들었는데 역시나 아들이었다.

아들이라고 하니 모두 첫마디가 ‘어떡해요?’였다. (ㅋㅋ)

코로나로 많이 돌아다지니도 못했고 재택근무로 앉아만 있다 보니 살이 급격히 쪘는데 산부인과 선생님이 진짜 무섭게 정색하셨다. (호달달)

임신 중에도 식단 조절은 필수다. ( 임신해서도 식단 조절이라니 ㅠ_ㅠ )

육아 선배들의 조언 ‘애 낳고 나면 한동안 여행은 꿈도 못 꾸니 지금 마음껏 여행을 가야 한다’에 제주도로 살짝 여행도 다녀왔다.

인스타그램 속에 몸매 좋은 임산부들의 D라인은 아니지만 배가 나온 모습을 기념으로 남겨두기도 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대체로 28주에서 30주에 만삭 사진을 남겨둔다.

진짜 만삭은 아니지만 이때 남겨두는 건 살도 덜 찌고 배도 예쁘게 나와있을 때라 그런 것 같다.



임신 동안


감사하게도 임신기간 동안 별다른 이벤트는 없었다.

딱히 태교를 열심히 하진 않았고 강아지 미용 영상 보며 힐링했었다.

남편에게 태교동화를 읽어달라 해서 가끔 읽어주었다. ( 태아는 물속에 있기 때문에 아빠 목소리가 잘 들린다고 한다 )  

커피도 디카페인과 일반 커피를 섞어가며 마셨고 음식도 이것저것 먹었고

뭔가 하고 나서 아차 싶어 검색해보곤 했다.

임신에 대한 정보는 검색하고 또 검색하고 끝없는 검색의 늪에 빠졌던 거 같다.
네이버에 20주, 21주 이렇게 써도 자동 완성으로 임신 관련 검색어로 촤라락 뜬다.

나처럼 모든 임산부들이 찾고 있다는 반증인데 평소 몸상태와 다르기 때문에  작은 것에도 계속 검색하게 되는 것 같다.

진짜 별것이 다 걱정되고 궁금하고 한데 맘 카페, 블로그에 사소한 것 까지도 웬만한 것은 다 찾아볼 수 있다. (K-맘 만세)

임산부에 대한 배려

전 세계에서 임산부석이 유일하게 있다는 대한민국, 그런데 다른 나라는 배려 때문에 필요 없어서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임신기간 동안 배지를 대놓고 걸고 다녔지만 임산부석 앉기란 쉽진 않았다.

초기 때는 초기라 힘들고 이후는 배가 불러서 힘들고..  

모두들 스마트폰 보기 바빠서 앞에 누가 서있는지 임산부가 서있는지 노관심이다.

급기야 퇴근길 지하철에서 누군가 배부른 채 서서 가는 나를 보셨는지

‘임산부석은 임산부에게 배려합시다’라고 적어 근처 아이폰 유저에게 이미지를 배포했지만

나는 양보받진 못했다. (임산부석에 앉은 사람은 안드로이드 폰.. 하하)  

물론 잘 양보해주시는 분들도 있었다.



임신 후기 - 언제 방 뺄래?

후기가 될수록 자고 일어나면 배가 불러있었다.

걸음걸이도 느려져서 노인이 되면 이런 느낌일까? 싶게 내 몸 하나 간수하기가 쉽지 않았다.

잠자기도 어렵고 몸이 저리고 붓고 역류성 식도염에 숨쉬기 조차 힘들었다. 역시 사람이 사람을 만드는 건 어렵구나..

듣기로는 막달엔 양말도 못 신고 발톱도 못 깎는다던데 정말 그 순간이 찾아왔다.

제일 힘들었던 것은 달달한 게 미치도록 당겼었다. 안 먹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다. (이때 먹지 말아야 하는데 ㅠㅠ)

출산 후엔 또 다른 것이 기다리고 있다고는 하지만 힘들다 보니 출산일을 손꼽아 기다리게 된다.

무서워서 유튜브를 찾아보면 쌩리얼한 콘텐츠들이 어후.. 오히려 겁먹게 돼서 안 보는 게 나을 것 같다.

막달이면 오히려 열심히 운동을 해야 한다.

그런데 매일 아파트 15층 오르기 아니면 스쿼트 100개씩 할 줄은 몰랐다.

마스크 끼고 오르면 정말 죽을 거 같다 지금 생각해보니 어떻게 했나 싶다.. 엄마가 되면 정말 초인적인 힘이 생기나 보다.

정말 무서운 의사 선생님인지라 닥치고 했는데 그 덕에 출산과정은 수월했다.

(출산할 때 ‘스쿼트100개 진짜 하긴했네!’ 하며 흐뭇해하던 의사선생님..ㅎ)


출산 한 달 전 소중한 휴직기간을 즐기고 싶었는데

38주 차 의사는 갑자기 이대로 두면 애기가 너무 커져서 안될 거 같으니 3일 후 유도 분만하자 해서

마음의 준비를 마치기 전에 소고기 열심히 먹고 출산하러 가면서 길고 긴 임신 레이스는 종료되었다.


우아 낳고 나면 배가 가벼워지겠지??


매번 함께 병원에 같이 가주고 내 모든 걸 챙겨주었던 남편이 있어서

건강했던 둥이가 있어서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회사에서는 좋은 동료분들 덕에 많은 배려를 받으며 지냈었다.  

길고 긴 임신기간을 이렇게 압축해서 끄적여보았다.

당시엔 모든 게 다 조심스럽고 걱정되고 그랬다.

이미 출산했지만 또 경험하더라도 조심스럽고 걱정될 것이다.


생명이 생명을 낳을 수 있게 만들어지는 것 모든 것은 경이로운 일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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