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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chrome blues Jan 28. 2021

늦었지만 새해 다짐.

올해는 넘어가려 했으나 온 세상 가르침에 손가락을 겁니다.

   새로 이사 간 집에서 냄새가 났다. 미약하지만 확실히 기분 나쁜 비린내. 생선 썩은 내 같기도 하고 하수구 악취 같기도 한 불쾌감. 현관에 들어선 뒤, 처음 마신 숨에서부터 미간이 찌푸려졌다. 처음엔 잘못 맡은 거라 치부했다. 집 보러 갔을 땐 맡지 못했던 냄새라서 말이다. 후각이 예민한 편이라 맡으려면 그때 맡았을 게다. 캔들이라던가 향초를 켜놓지도 않았더래서 더더욱. 근데 한 달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이렇게 되었다고? 이건 못 믿지. 심지어 회사 일이 바빠 입주 청소까지 맡긴 터다. 한두 푼도 아니고 이 정도 냄새를 빼먹었을 리 없다.  


   그때부터 냄새와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잊고 살다가도 종종 코를 찔러대는 통에 환장할 지경. 더 이상 참아주기 어려웠다.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여기저기 킁킁거렸다. 작은 오피스텔이라 맘만 먹으면 못 찾을 리 없을 터. 처음엔 현관과 가까운 화장실부터 수색했다. 왠지 냄새와 어울리는 장소기도 하고. 근데 아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되려 화장실에 있을 때 맡았던 적은 없었다. 주저 없이 바로 다음 후보지로 이동, 그리고 빙고. 싱크대였다. 정확히 말하면 개수대 부근.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문제의 근원. 겉으로 보았을 땐 멀쩡하고 깨끗해 보였는데. 개수대 망을 들어 올려봐도 문제없어 보이고 말이다. 근데 이제 보니 심연 저 깊은 곳에서부터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생각보다 난항이 예상되어 머리가 지끈거렸다. 싱크대 클리너라던가 베이킹 소다를 부어봐도 그때 잠깐일 뿐 신기할 정도로 원위치로 돌아가 버렸기 때문이다. 죽겠네. 몇 번의 제자리걸음이 계속되고 나니 울고 싶어 졌다. 요즘 같은 때, 집 없는 것도 서러운데 코에 생선 비린내라던가 썩어가는 냄새를 달고 버텨야 하는 걸까? 옷이라던가 몸에도 저 냄새가 배이면 어떡하지? 끔찍했다. 무언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망연자실.


   그런데 악의 근원을 뿌리 뽑는 방법은 의외로 매우 쉬웠다. 속담으로 비유하자면 ‘시간이 약’이었달까. 그로부터 한 사나흘 정도 지나니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혹시라도 코가 적응해버린 불상사는 아닐까 걱정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정말로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싱크대 부근에 가서 코를 킁킁거려보아도,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반기는 첫 공기 속에도. 기분 나쁜 냄새는 온 데 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다. 대체 이게 무슨 조화람. 어른들이 말씀하시길, ‘집에 사람 손이 타질 않고 오래 방치되면 금방 망가지고 문제가 생긴다’던데. 그래서였을까? 


   이번 집은 애정결핍이신가. 오래도 아니고 잠깐 비워진 동안 이리 편찮으셔서 어쩌나. 그간 소화불량이라던가 급체라도 걸리셨던 것으로 쳐야겠다.  ‘할머니 손은 약손’ 마냥 내 손 좀 탔다고 일주일 만에 쾌차하셨으니 말이지. 다른 가설을 세우기엔 자연 치유된 느낌이라 별다른 이유가 생각나지 않았다. 께름칙 하지만 어쨌든 해결된 거니깐. 좋은 게 좋은 거로 넘어가기로 했다. 


   악취 에피소드가 마무리되고 난 며칠 뒤. 엄청난 폭설이 내렸다. 상경 후 이 정도 맞아보긴 정말 몇 년 만이었다. 여기가 서울인지 시베리아인지 모를 강추위 직후 찾아온, 감당 못할 강설량. 퇴근길이 꽉 막혀 새벽이 다되도록 집 못 가는 사람들이 속출했다니 말 다했지. 그리고선 어찌어찌 주말이 찾아왔는데, 문득 등산이 고파지는 것이 아닌가. 이 정도로 온 세상을 뒤덮었다면 동네 뒷산 근처에만 올라서도 아름답지 않을까? 


이보다 아름다웠던.


   결국 벼르고 벼르다 일요일에 강행했다. 아이젠을 착용하고 초입으로 향했다. 동네 뒷산이다만 나름 500m는 넘는 곳이라서. 산 좀 타는 느낌 날게다. 사람도 적어 보이고 주변이 온통 하얘서 설레었다. 근데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 위에 물음표가 찍힌 채 아이젠을 벗었다. 분명 핸드폰으로 확인해보아도 영하 10도로 찍힌다. 온 세상은 여전히 새하얗다. 그런데 오로지 등산로만큼은 하얀 허물을 벗고 맨 땅인 상태로 등산객을 반겼다. 그러니 아이젠을 벗을 수밖에. 생각보다 수월하게 갔다 올 수 있겠다 싶어 다행이긴 한데 신기했다. 산 밑 도로라던가 길가만 해도 미처 제설 작업이 끝나지 못했거나 얼어붙은 곳이 많은데. 대체 등산로는 어찌 이리 완벽한 길을 내어준단 말인가.  


   나름대로 몇 가지 가설을 추려 보았다.

   첫 번째, 제설제를 뿌렸다. 등산로 옆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눈을 치운 흔적은 없다. 이렇게 깔끔하게 등산로를 닦아놓기 위해선 제설제 만한 것이 없겠지. 옆으로 쓸어내린 흔적도 없이 저 길들이 모두 관리되기 위해선 역시 처음으로 떠오르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내 머리를 가로저었다. 보통 제설제로 사용되는 염화칼슘이란 성분은 자연에 좋지 않다 들었다. 심지어 그런 걸 산 여기저기 뿌려대며 관리했을 것 같진 않다. 나름 대여섯 시간 동안 등산하며 이리저리 깊은 곳들도 다녔는데, 무거운 포대를 이고 지고 산 전체에 뿌렸을 성싶지도 않고. 애초에 그 고생을 누가 사서 하랴. 
   두 번째, 등산객의 힘이다. 눈으로 확인한 적 없어 미심쩍지만 가능성 있는 얘기다. 아무래도 등산로는 사람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 곳이고, 그들이 지나온 발자취가 이 정도 힘을 발휘했던 게다. 특정 인원이 제설하는 쪽 보다야 효과는 확실할 테고. 폭설이 내린 지 정확히 사흘째 되는 날 갔던 거니 가능성도 충분해 보인다. 다만 너무 깔끔했던 현장이 되려 의심을 가중시킨다. 눈은 저녁부터 내렸다. 어지간히 산에 미치지 않고서야 칠흑 같은 어둠 속 설산을 탈만한 이는 드물 거다. 그런데도 이만치 깔끔하게 치워졌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길가도 빙판이 되면 되었지 치워지진 않았거늘.  이번 가설도 보류다. 
   세 번째, 등산로가 원체 양지바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모두 살짝 못 미더워 쥐어짜 낸 세 번째다. 대자연과 사람의 컬래버레이션이랄까? 오랜 세월 동안 만들어진 등산로는 사람들의 발길을 통해 자리 잡았겠지만, 그간의 행보를 유도해낸 자연의 이치도 있을게다. 아무래도 양지바르거나 걷기 편한 쪽으로 다녔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렇게 이끌린 사람들의 발자취가 축적되어 더더욱 굳건해졌을 거고. 당장  빼곡한 수풀 사이로 등산로만 맨땅이란 점만 보아도 그럴듯하다. 결국 이러한 관계가 형성되어 폭설 현장마저 금세 원상 복구될 정도의 길을 만들어 냈다는 논리다. 


   결국 내려오는 동안까지도 정확한 답은 찾지 못했다. 하지만 그럴듯한 가설 속에는 모두 사람이 있었다. 아무리 대자연의 오묘한 이치가 닿아 벌어진 일 이래도 사람을 빼놓고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별달라 보이지 않고 미약해 보이는 손길이지만. 결국 오랜 시간 '사람 손을 탄다'는 것의 의미는 이런 거겠지.  


만들어진 길.


   어느새 2021년 첫 번째 달이 저물어간다. 몇 밤 자고 나면 벌써 달력 한 장 넘기게 생겼다. 올해는 뭔가 새해 다짐이라던가 목표를 세우기도 전에 시간이 흘러버렸다. 뭔가 무서울 정도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시간이 빨리 흘러간다는데 그 탓은 아니길 바란다.) 가까스로 부산스러움을 정리하고 고갤 들어보니 벌써 한 달이 흘렀다. 이번엔 그냥 아무 생각없이 넘기려 했는데. 매번 이맘때쯤 생각했던 목표들이 무엇이었나 해묵은 먼지를 털어 본다.  


   목표 달성은 둘째 치고, 어떤 식으로든 꾸준해야 할 텐데. 최소한 바쁘단 핑계로 제쳐두다 아예 제쳐버리면 안 될 텐데. 빈 집처럼, 혹은 사람 손이 타지 않은 깊은 산속 눈 덮인 오솔길처럼 변해버리지 않도록 말이다. 걱정이 앞선다. 한 해가 지날수록 새해 목표를 이야기할 때마다 설레기보단 공포감이 엄습한다.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것들을 망가트린다던가, 놓아버릴까 봐.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틀리고 무의미할까 봐. 혹은 걷고 있었단 사실마저 잊어버릴까 봐서.  


   사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정해져 있다. 멀리 보고 조급해하지 않으며, 꾸준하게 나아가기. 누군가 듣는다면 그게 무슨 새해 목표냐 비웃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나에게 목표라고 한다면 글이나 사진처럼 잘하고 싶은 일들 투성인데, 출간이라던가 어딘가 당선되는 일처럼 본격적으로 하기엔 본업도 있고 다른 해야 할 일들도 많으니까. 조금 비겁하더라도 추상적인 목표를 말할 수밖에 없고, 살짝 모호하더라도 꾸준히 시도하고 고민하며 나아가 보는 일밖에 없다. 결국 그렇게 올해 목표를 정했다. 우선 계속 나아가 보련다. 그런 다음 고민해봐야지. 일단 시작해보고 나중에 생각해 보기로.  


   하지만 솔직히 속상하다. 당장 내가 봐도 무언가 엉성하고 엉거주춤한 새해 다짐이라 불편하기 짝이 없다. 엄청난 꿈을 이루지도, 돈을 모으지도, 그렇다고 내 집 마련을 해놓지도 못했다. 그 와중에 애매하게 그간 쌓아 올렸던 시간이 망가지고 무너질까 봐서 겁이 난다. 게임은 중간중간 체크포인트도 있고 저장도 할 수 있는데. ‘인생은 실전’이란 단어가 더 이상 유머로 와 닿지 않게 되면서부턴 조바심도 커진다. 하지만 어찌하겠는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실패는 고민만 죽어라 하고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일이니까. 뭐라도 하고 나서 대책을 강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폭설에도 뚫리는 등산길처럼. 내 손을 타자 마법처럼 사라진 악취처럼. 사람 손 타지 않아 폐허가 되는 일만 없도록 해야겠지. 


   그러고도 남는 시간이 생긴다면 기도해야겠다. 올 한 해, 행하고 난 뒤의 시간은 나의 편이 되어주길 바라면서 말이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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