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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 young in season Sep 01. 2020

레시피 독립

가장 오랜 매체, 책으로부터 홀로서기

인터넷이라는 세계가 열리면서, 레시피란 어디에나 존재하는 공공연한 기록이 되었다. 커다란 검색 엔진에 해당 요리나 식자재의 이름만 넣어도 순식간에 수백 개가 쏟아진다. 특히 요즘은 AI부터 빅데이터 등을 통해 내 취향에 맞는 순서대로 골라주기도 하니, 세상 참 편해졌다 싶다. 다만, 이런 공공연한 레시피만으로는 맛을 결정짓기도 하는 수많은 디테일은 찾아내기 어렵다. 원래 며느리도 모른다는 게 맛집의 비밀이었던 것도 같은데, 거의 모든 것이 적혀있음에도 결정적인 순간을 읽어내기 어려운 정보 사이에서 멀미가 나기도 한다.



그래서 사게 되는 것이 요리책이었다. 과정을 보여주는 사진과 저자의 이름을 믿고 더 나은 레시피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며. 그래서인지 좋은 레시피로 가득한 한 권의 책을 구매하면 그 순간은 매우 기쁘다. 내일부터는 새로운 요리로 식탁을 채울 수 있을 것 같은 환상도 생긴다. 다만 집에 돌아와 서점의 감동이 잦아들면, 책은 책장에 꽂히고 바쁜 일상은 여지없이 되풀이된다.


다시 요리책을 열어 볼 수 있는 여유는 다음 휴일에나 가능한 일.

언제나 스스로에게 묻는다. 한 권의 요리책 중에서 직접 해 본 레시피는 몇 개나 될까?


어린 시절 기억을 들춰보면, 가끔 엄마가 특별한 일로 며칠 자리를 비우는 경우가 있었다. 길어야 2박 3일이지만, 처음엔 은근히 신이 난다. 엄마 때문에 못 먹었던 중국집도 시켜 먹고, 라면도 끓여 먹고. 하지만 자유로운 세끼가 지나고 나면 대체로 속이 더부룩해지고, 결국엔 부엌에 서 보지만 딱히 답이 없다. 밥을 안치려 해도 쌀을 씻어서 물을 얼마나 부어야 하는지, 된장을 끓이자니 일단 꼭 한두 개 재료가 모자란다. 무조건 냄비에 물을 넣고 올려 보지만, 이번에는 순서의 문제가 시작된다. 다시멸치는 몇 분이나 우려내야 하며 된장은 언제 넣어야 하는지, 호박과 양파는 언제 넣는지 질문은 계속되지만 답해주는 엄마가 없다. 아무리 끓여도 엄마가 해 주던 된장국의 맛은 점점 더 찾을 길이 없다.


결국 믿을 수 있는 건 혼자 할 수 있었던 계란 후라이뿐. 대체로 엄마가 오기 전 마지막 식사는 간장과 계란후라이로 때우는 것이 지혜로운 길이었다. 당시 우리 집 레시피란 엄마라는 실체를 빼면 보이지 않는 그 무엇, 엄마 속에 내재화된 요리 습관 같은 것이었다.


"선생님, 이 책에 들어가는 레시피는 총 몇 개나 되나요?" 첫 번째 책 작업을 위해 편집자를 처음 만나 받았던 질문이다. 책의 주제나 흐름, 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기대하고 있던 터라 받은 질문이 좀 당황스러웠다. '무슨 책'에 대한 대답을 준비하고 있으면, 그녀는 늘 '어떻게'를 물었다.



사실 백 가지에 가까운 조리 과정을 레시피라는 이름으로 한 권의 책 속에 욱여넣기는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주어진 지면의 한계 속에서 과정별로 최대한 자세하게 사진들을 고르고, 설명을 정리하는 것. 넣고 싶은 수많은 정보들 속에서 꼭 필요한 것을 고르고 골라 얹어낸 지면들 사이에는 생략될 수밖에 없는 디테일들이 반드시 존재한다.


가끔 책을 먼저 본 고객들을 만나는 경우가 있다. 저자라고 밝히면 대개 한두 가지 정도의 질문을 주시는데, 이때 재미있는 갭을 경험한다. 고객 입장에서 접한 레시피는 사진과 텍스트가 전부다. 그러니 그 페이지의 문자나 과정을 집어서 질문을 주시는 편이다. 그런데 내가 질문을 듣고 떠올리는 것은 요리책 속의 페이지가 아니라, 요리책을 위해 해당 레시피를 촬영하던 날의 기억이다. 그날 어느 과정을 먼저 했고, 과정 컷으로 촬영된 움직임 사이에 또는 텍스트로 전달되기 어려운 그 행간에 숨겨진 디테일은 없었는지를 떠올려 본다.



결국 레시피의 실체란, 요리를 완성하는 일련의 과정이자 요리 주체자의 행동에 기반하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을 완성하고 나서 다시 워크숍을 시작했다. 우리가 직접 책 속에 적어 놓은 레시피의 실체가 무엇인지, 결괏값인 요리의 맛은 어떠한지 함께 경험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우리 책 속의 레시피라면 작가들과 함께 만들어 보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고 생각했기에.


음식이 인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해 봐도, 요리의 기본과 재료 활용법을 가르치는 과정이 왜 학교의 필수과정이 아닌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심지어 누군가는 밥 먹는 시간과 잠자는 시간이 비슷할 정도인데, 학교나 가정에서도 요리를 가르치는 경우는 흔치 않다는 것이다. 우리의 과거를 되짚어봐도 중학교 당시 가사실습은 한 학기에 1~2번, 평소에는 먹을 일 전혀 없는 경단이나 타래과, 탕평채 등을 만들었던 것도 같다. 어른이 되고, 부모님의 그늘로부터 독립을 시작하면서 각자 살아남기 위해 자취 요리라는 생존기술을 독학으로 익히게 되는 셈이다. 결국 필요는 학습을 부르고, 우리는 각종 미디어를 통해 우리의 생존기술을 업그레이드시켜줄 레시피를 찾게 된다. 요리 콘텐츠가 거의 모든 미디어에서 무제한으로 쏟아지고 있는 요즘의 고민은 딱 한 가지.



지금 내가 직접 써먹을 수 있는, 내게 맞는 레시피를 찾는 일이다.



요리책 수집이라는 취미는 종종 스스로 착각을 일으킨다. 책장에 저렇게 유명한 셰프들의 책이 꽂혀 있으니 이제 뭐든 다 해볼 수 있을 것만 같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가득해진다. 하지만 딱 한 권 빼 들고 어느 한 가지라도 시작하면, 그 자신감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때부터 시작되는 고뇌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이 조합이 정말 맛있는 맛이 날까. 나는 이 셰프의 맛을 구현할 수 있을까. 괜히 외국의 비싼 재료를 잔뜩 사 왔는데 다 버리게 되진 않을까. 책 속에 갇힌 두 페이지를 풀어 실제로 요리하기 시작하면, 하루 이틀 만에 결론이 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렇게 반복과 실험을 거듭하는 과정을 거쳐 어느 순간 우리의 입맛에 맞춰진 레시피를 찾아내게 되면, 그때부터는 언제든지 써먹을 수 있는 자신만의 레시피가 되는 셈이다. 그래서 가끔은 우리의 첫 번째 책 속에 담긴 수많은 레시피가 안타까울 때도 있다.



저 하나하나를 구경만 하지 말고, 직접 해보면 완전히 달라질 텐데 싶어서.

  

매주 워크숍의 마지막은 테이블로 끝이 난다. 대체로 이 테이블에는 수업 시간에 같이 만든 과일 저장식을 이용해서 만든 오븐 디쉬가 곁들여진다. 수업 시간에 그 재료를 같이 만들고, 그 재료를 활용한 디쉬를 맛보면 거의 모든 수강생이 요리의 레시피를 원한다. 대충 흘려 말해줘도 찰떡같이 기억해서 스스로 집에서 만들었다며 SNS에 사진들이 올라온다. 그럼 이제 그 레시피는 그들의 진짜 레시피가 된다. 어떤 상황에서도 써먹을 수 있는 생존기술이 된다. 더 이상 커다란 책 속에 갇힌 두 페이지가 아닌 것이다.



진짜 레시피는 책으로부터 독립해서 살아남아야 한다. 문제는 너무 좋은 레시피도 한 권의 책 속에 페이지로 묶여있으면 그저 그렇게 묻혀버리기 쉽다는 것이다. 실은, 단 하나일지라도, 정말 내 생존에 도움이 되는, 나의 일상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매일의 테이블을 변화시켜줄 수 있는 자신만의 레시피를 만나고 싶다. 직접 해 보지 않은 레시피는 모두 남의 이야기, 누군가의 인스타그램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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