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을 눈앞에 둔 삼십 대의 끝자락 즈음이었어요. 어느 날 눈 떠보니 영국 스코틀랜드 한가운데 있더라고요. 웬 유럽?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낯선 곳에 서서 저는 어안이 벙벙했어요. 안정된 삶을 살아도 될 것 같은 나이였는데...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할 판이었지요.
가끔 사람들이 물어요.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랑 같은 나라냐고요. 웨일스, 북아일랜드와 함께 영국을 구성하는 네 나라 중 하나인데 헷갈리시는 분들이 많나 봐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사실 잉글랜드가 전체 인구의 85%나 돼서 '영국=잉글랜드'로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에요. 스코틀랜드는 겨우 8% 밖에 안되거든요. 그런데 그들의 깡다구, 자존심으로 보자면 잉글랜드와 맞짱 떠도 밀리지 않을 것 같아요. 척박한 자연환경을 개척하며 이룩한 그들의 문화도 독특하고요.
저는 좀 애매했다고 할까요? 여기서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고 고정된 직업이 있어 일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이 나라에 직장을 구한 남편과 함께 도착해 두 아이를 키우며 일상을 살아내야 하는 게 제 몫이었어요. 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앞으로 가야 할 길을 고민은 했으나 속도가 안 나더라고요. 영어도 부족하고 만나는 사람들도 한정적이었으니까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지만요.
한국 사람이 별로 없는 스코틀랜드에서 사람들은 저를 통해 한국을 봐요. 나름 민간 외교관이 된 기분이 들기도 하지요. 그렇다면 반대도 가능할 거라 생각했어요. 제 이야기로 스코틀랜드의 문화와 사회에 대해 알고 시골마을에서 살아가는 모습도 들여다보시라고요. 런던, 파리 같은 유명한 도시나 여러 다른 나라에서 사는 이야기는 많은데 스코틀랜드 편은 거의 없더라고요.
살면서 재미있고 신기했던 게 많았어요. 이 나라의 사람과 사회,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정착의 중요한 관문이라 생각해 열심히 경험하고 부딪혔어요. 힘든 일도 많았지요. 스카치 위스키를 벗삼아 수 차례 좌절하고 주저앉기도 했었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그러나 운명처럼, 작은 수공예품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어요. 가슴 설레는 일을 찾은 거지요. 마흔 넘어 찾아온 제 꿈에 어떤 색을 칠해 나가야 할지 계획이 많아요.
이 과정들을 기록으로 남겨보려고 해요. 때론 새로운 사회, 문화를 이해해 보겠다고 발버둥 치고, 자주 힘들다고 징징거리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살겠노라고,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고 말하는 꽤 용감한 아줌마의 이야기예요.
<1부 - 바람의 땅에 서다>에서는 전통의상, 전통음식, 의료시스템 등 스코틀랜드의 전반적인 모습과 함께 제 경험과 느낀 점을 곁들일 거고요. <2부 - 바람의 땅에 살다>에서는 넘어지고 부딪히며 살아가는 이야기에 초점을 맞출 거예요. <3부 - 바람과 함께 춤을!>에서는 스코틀랜드에서 저만의 자리를 찾겠다고 기를 쓰다가 종이접기 등으로 수공예품을 팔게 된 사연을 펼쳐 볼게요.
스코틀랜드에 온 지 첫해 어떤 날에 중고물품을 파는 채러티 숍에서 이 액자를 샀어요.
채러티 숍에서 산 액자
이 문구가 무척 마음에 들었어요. 영국 작가 비비안 그린(Vivien greene)이 한 말이래요.
Life isn't about waiting for the storm to pass... It's about learning to dance in the rain.
삶이란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빗속에서 춤추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어쩐지 저에게 하는 말 같잖아요. 얼떨결에 도착한 스코틀랜드, 아직 적응 중입니다만 이왕이면 빗속에서 바람 속에서 춤추는 것을 배우려고 해요. 삼바도 좋고 차차차도 좋은데 아하, 막춤이 괜찮을 것 같네요! 제가 제일 잘 추는 춤이거든요.
삶 앞에 폭풍우가 닥쳐와도 피하지 않으려고 해요.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비가 오면 눈을 감고 막춤을 출 거예요. 혹시 저와 같이 춤추고 싶은 분 안 계신가요? 바로 당신이요! 자, 얼른 오세요. 이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