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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or 스코틀랜드?

낯선 땅에 도착하다

by 영글음

친구가 물었다. 그래서 이번엔 어디로 가는 거야? 나는 대답했다. 영국에. 그런데 스코틀랜드로 가는 것이기도 해. 그곳이 계속 영국이 될지, 스코틀랜드이기만 할지는 가봐야 알 것 같아. 복잡하구나. 영국이든 어디든 잘 가렴. 친구는 손을 흔들었다. 오케이. 나는 흔쾌히 답했다.






2014년 9월 17일. 그 날은 스코틀랜드의 독립투표가 시행되기 하루 전 날이었다. 영국이라는 이름 아래 잉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와 한 나라로 묶여 있던 스코틀랜드. 그 나라 사람들이 투표를 해서 따로 떨어져 나갈지 말지를 결정하는 날이 9월 18일이었다. 한 나라의 독립 여부를 국민들이 결정한다고? 그럴 수 있다니. 그런 것은 ‘정치인’들이 ‘정치적’으로만 결정하는 것인 줄 알았던 나는 남의 나라에서 펼쳐지는 생경한 모습에 감탄을 보냈다. 그날은 우리 가족이 스코틀랜드에 도착한 첫날이기도 했다.


미국 살이 5년을 마치고 잠깐 한국에 들렀다가 바로 유럽 대륙으로 방향을 틀었다. 유학 끝 무렵, 남편의 직장이 갑작스럽게 결정된 터라 좋네 마네 가릴 틈도 없었다. 우리 가족은 부랴부랴 짐을 정리하여 바리바리 싸들고 에든버러로 향했다.


비행기가 낯선 땅에 착륙했다. 미니밴 정도 되는 큰 택시를 잡았다. 커다란 짐 가방 8개와 유모차를 욱여넣고 7살, 2살 어린 딸들의 손을 이끌고 어리바리 차에 올라탔다. 창밖으로 펼쳐진 이국의 풍경은 독립투표만큼이나 생소했다. 동화 같다던 남편의 말과는 달리 황톳빛 건물이 대부분이라 조금 우중충하다는 생각을 먼저 했던 것 같다. 날씨가 흐려서 더 그랬을지도 몰랐다. 빗방울이 떨어졌다.


외곽을 지나 도심으로 들어오자 이번엔 영화 세트장이 나왔다. 뾰족 뾰족 솟은 석조 건물들은 중세 시대를 그대로 재현해 놓은 세트장 같았다. (재현한 게 아니라 원래 있던 건데도!) 우와~하고 입이 절로 벌어졌다. 이런 곳에서 살면 내 삶도 영화처럼 펼쳐지려나?


일주일 간 묵을 임시숙소로 가는 동안 덜컹덜컹 흔들리는 길을 지났다. 옛날 마차가 다녔을 때 만들어졌던 길을 그대로 쓰는 것이라 했다. 돌과 돌 사이 틈이 크게 벌어져 있어서 굽이 높은 신을 신고 걷는다면 여러 번 낭패를 당할 법한 길이었다. 하이힐이 없는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습기를 가득 머금은 공기 사이로 어수선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창문에 커다랗게 YES 혹은 NO라는 문구를 내건 곳이 많았다. 독립투표에 찬성, 반대를 표현하는 방식이었으리라. 그간 얼마나 활발한 유세가 펼쳐졌을까 짐작이 갔다. 그들의 투표 결과가 우리 가족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짐작이 가지 않았지만. 우리가 여행객이었다면 한 나라의 운명이 결정되는 역사적인 순간을 즐겁게 관망하고 안주거리로 삼아 쉽게 떠들 수 있었을 텐데...


그러나 우리는 이곳에 정착하여 새 삶을 살아내야 했다. 다음 날이면 이곳을 영국이라 부를 수 있을지 어떨지도 모른 채 도착한 그곳에서 말이다. 새로운 일터, 새로운 도시, 새로운 사람들, 안개가 걷히고 나면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그때까지는 미지수였다. 불확실성이 주는 달콤한 유혹, 잡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의 기회도 없이 그저 잡고 봐야 했다.


장강명 소설의 주인공 계나는 ‘한국이 싫어서’ 호주로 떠났다는데, 나는 한국이 싫지도 않은데 어쩌다가 오랫동안 떠나게 되었을까. 삶의 아이러니는 ‘툭’하고 발아래 떨어졌고 그것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도 없이 그렇게 서른의 마지막 부분과 마흔의 첫 시작을 이곳에서 보내게 되었다. 모두들 아시다시피 (아직은) 스코틀랜드이자 영국에서 살고 있다. 5년이 넘었다.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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