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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글음 Mar 28. 2024

ENFP 집사와 ENFP 개

돈 주고 한  MBTI 검사에서 ENFP가 나왔다. 재기 발랄한 활동가라나 뭐라나. 우리 집 개는 나를 닮았다. 식구 중에 가장 나를 닮았다. 남편을 비롯하여 내 배 아파 낳은, 나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딸들은 나와 성격도 취향도 정반대라 좀 외로웠는데 개만큼은! 나닮았다. 걔도 ENFP가 분명하다. 든든하다. 


4년 전 개를 입양하려고 알아볼 때 견종은 중요하지 않았다. 집이 크지 않으니 그저 조그만 개였으면 했다. 젝 러셀 테리어와 비글, 보더콜리 강아지가 눈에 들어왔다. (그땐 사진으로만 봐서 보더콜리가 그렇게 큰 개인 줄 몰랐다.) 그중 가장 작을 것 같은 잭 러셀 테리어를 선택했다. 선택한 후 알아보니 이 강아지에게는 애칭이 있더라?


"지랄견"


종 자체가 영국에서 여우 사냥용으로 개종된 것이라 에너지가 넘쳐 그런 별명이 붙여진 거였다. 특히 집사가 없는 동안의 지랄성이 돋보였다. 소파 물어뜯어 솜 빼놓기, 휴지 한통 다 풀어놓기, 벽지 뜯기 등의 매력을 선보이는 사진이 인터넷에 떠돌았다. 그걸 피하려면 산책을 아주 많이 해야 한다고. 그래서 무서웠다. 내가 과연 키울 수 있을까? 산책을 매일 씩이나 갈 수 있을까? 어려운 내가 해내고 있다! 


꼬댕이는 지랄견일까? 그렇긴 하다. 집에 있을 때 주로 창문 앞에 앉아 길거리를 예의주시한다. 사람이나 개가 지나가면 지랄 지랄 짖는다. 동네에서 유명하다. 아마 짖는 속사정은 이럴 것이다. "너 어디가? 털 이쁜데? 나랑 놀자! 여기 좀 볼래? 야 이 개자식아! 내 말 안 들려? 더 크게 짖어 줘?" 귀청 떨어지겠다. 


지가 파 놓은 땅에 머리 박은 꼬댕이


산책할 때 낯선 사람이 다가와 머리라도 한번 쓰다듬을라치면 지랄 지랄 꼬리가 떨어져 나가라 흔들어 제치며 두 팔을 번쩍 들어 낯선 이를 반긴다. 그러면 낯선 이는 더 신나 하며 두 팔을 벌려 포옹하는 자세를 취한다. 아주 이산가족 상봉의 시간 나셨다. 나보다 생판 처음 보는 이를 더 환대하는 모습에 자주 어이를 상실한다. 자기 맘에 드는 큰 개를 만나면 바닥에 벌렁 드러눕는다. 자존심이라고는 콩알만큼도 없다. 없어 보인다. 


길바닥에 드러눕는 거 쫌 없어 보이거든?


새로운 장난감을 좋아하고 (싫증은 금방 내고) 차 타고 놀러 가면 환장한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에 넋을 놓고 감상에 빠진다. 아주 시인 나셨다. 종이를 갖다 주면 뭐라도 쓸 판이다. 다른 사람을 웃겨야 한다는 개그본능도 있다. 자다가 이불이고 목도리고 뭘 자꾸 뒤집어쓰고 나타난다. 자기도 안다 이거지. 이렇게 하면 온 집안 식구들이 자기를 귀여워하며 까르르까르르 웃을 거라는 사실을. 


자기가 알아서 덮고 자다가 잠에서 깬 꼬댕이


심지어 술자리도 좋아해


자, 지금까지 쓴 꼬댕이의 성격을 나타낸 문장에 주어를 영글음으로 바꾸면 된다. 이 세상에 떠도는 온갖 이야기를 사랑하며 사람 좋아하고, 그래서 놀기 좋아하고, 감성적이며, 밖으로 도는 걸 즐기고, 개그본성까지. 알고 보니 개가 나를 닮은 아니라 내가 개를 닮았는 거였어. 이런!    





* <개새육아>는 주 2회 발행을 목표로 합니다(만 종종 밀려요 ^^;;). 같은 주제로 개 이야기와 새 이야기가 번갈아 가며 업로드될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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