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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글음 May 05. 2024

내가 죽고 또 다른 내가 만들어진다면?

『본심』- 히라노 게이치로

세상을 떠난 가족을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어떨까? 


꿈에서가 아니라 현실에서 말이다. 다만 특수 고글을 써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가상공간 안에 만들어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버추얼 피규어에 대한 이야기다. 가상으로 만들어졌지만 의자에 앉고, 걷고, 살아생전과 꼭 같은 외모에, 꼭 같은 말투를 가진 인물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히라노 게이치로의 소설 『본심』에서 주인공 사쿠야는 돌아가신 엄마를 AI, VR 기술로 재생시켜 버추얼 피규어(이하 VF로 표기)로 만들었다. 시대 배경은 2040년 일본.


사쿠야의 어머니는 자유사(=안락사)를 원했다. 하지만 아들의 강력한 반대로 실행에 옮기지 못하다가 결국 사고로 세상을 뜬다. 그 후 사쿠야는 어머니가 그렇게 결심할 수밖에 없었던 본심을 알아내고자 VF를 만든다. VF를 제작하는 업체는 사전에 지인과 아들을 인터뷰하고 사진과 동영상 데이터를 모아 입력한다. 제작된 후에도 학습을 통해 더 실제와 같이 변할 수 있다. 


약 16년 뒤의 이야기지만 어쩐지 현실적으로는 더 빨리 실현될 것 같다. 이미 목소리만 따서 보이스피싱에 이용한다던지 딥페이크 기술로 드라마에서 주인공 아역의 얼굴도 성인 배우와 비슷하게 만들어내는 세상이니 말이다. 


『본심』은 어머니의 본심을 추리하며 상실과 애도를 통해 사쿠야가 성장해 나가는 소설이라 할 수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서사가 방대하다. 자유사와 자연사에 둘러싼 찬반 논란, 점점 더 심해지는 빈부 격차, 메타버스로 대표되는 가상세계와 현실의 간극 등을 통해 삶과 죽음, 실존과 허상 등 하나 같이 오래 곱씹고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책이었다. 


여러 분이라면 남겨진 사람을 위해 VF가 될 의향이 있는가? 내 딸과 내 아들이 원한다면?  


미래 시대엔 가상으로 만들어질 나에 대해서도 신경 써야 할 날이 올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내향형보다는 외향형 인간이 더 그럴싸하게 만들어질 것 같다. 축적된 디지털 데이터의 양이 복원의 질을 결정할 테니. 만약 VF고 뭐고 먼지처럼 사라지고 싶다면 유서로 남겨놔야 할 수도 있다. 유산 상속 내역 옆에 한 줄 써 넣으시길.  




주인공의 감정선이 세밀하게 그려져 있어 몰입하여 읽었다. 사실은 들었다. 밀리의 서재에서 오디오북으로 들었다. 12시간 재생 시간, 1.5배속으로. 전문 성우가 녹음을 한 오디오북이라 라디오 드라마를 한편 들은 기분이다. 색다른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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