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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글음 Dec 06. 2024

속고 속이다 보면 진짜가 보일 수도

『친밀한 이방인』- 정한아

어제도 누군가를 속였다. 


"그 사람하고는 성격 진짜 안 맞아"라고 투덜댔으면서도 정작 당사자 앞에서는 활짝 웃었다. 친한 척을 했다. 속마음을 숨기고 다정한 말을 건네는 것. 이것은 기만일까 사회성일까? 나의 이중적인 모습이 못마땅하다. 그래도 진심을 까발릴 순 없을 것 같다. 


여러 가면을 쓰고 살았다. 내 안의 이기심이나 속좁은 모습은 뒤로 감춘 채 호탕하고 친절하며 진취적인 모습 같은 걸 앞세웠다. 가면이 나쁘다고만 생각하진 않는다. 사회에 적응하거나 타인과의 관계맺기가 부드러워지려면 가면도 잘 쓸 줄 알아야 한다. 문제는 그것이 어디까지 용납될 수 있느냐 하는 것.  


정한아의 장편소설 『친밀한 이방인』은 '속고 속이는 이야기'다. 


소설가인 나, 신분을 속이고 살아온 엠(이유미, 이안나 혹은 이유상), 엠과 결혼한 진이 주요 등장인물이다. 화자인 나가 주인공인가?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서사를 채우는 건 엠이 얼마나 교묘하게 남들을 속였는가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엠이 주인공인가? 책을 덮고서야 알았다. 이 소설은 자신이 진짜 원하는 삶을 살고자 했던 '진의 투쟁기'였다는 것을.


서로가 서로를 속고 속이는 동안 엠은 자신의 진짜 이야기를 글로 남긴다. 진은 엄마의 그늘에서 벗어나 원했던 사랑을 찾아 떠난다. 작품 화자인 나는 마침내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거짓과 거짓이 난무하다가 어느새 '진짜'에 한발짝 다가가는 것이다. 이 점이 무척 흥미로웠다. 


앞으로도 누군가를 속일 것 같다. 나 역시 속을 것이다. 삶을 함께 거짓말에 미리 당부의 말을 전한다. 좀 살살하렴. 내 안의 친밀한 이방인이 답하는 것 같다. 너 하는 거 봐서. 

 


우리가 질서를 연기하는 한, 

진짜 삶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그렇다면 진짜 삶은 어디 있는가?

그것은 인생의 마지막에서야 밝혀질 대목이다. 

모든 걸 다 읽어버린 후. 

폐허가 된 길목에서. 


『친밀한 이방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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